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61)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61화(161/250)
모두가 주인공인 축제와도 같았던 1부의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청중들의 열띤 반응에 긴 시간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청중과의 교감이 이뤄지고 그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감사한 마음 뿐이었다.
지난번 뉴욕 필과의 협연에서 나는 내가 작곡한 오페라 로마의 휴일 오케스트라 서곡을 초연한 바 있었다.
이번엔 내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초연할 차례였다.
파가니니였던 과거에 남겼던 바이올린 협주곡은 총 6곡.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오늘 내가 연주할 곡은 나의 일곱 번째 협주곡이다.
문주원으로서는 첫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
과거의 삶을 인지하고 다시 음악을 하기까지.
나의 무수한 고뇌와 기쁨이 담긴 음악.
다시 음악만을 바라보며 살기로 다짐한 후, 많은 작곡가들과 세상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었다.
지난 삶에서 작곡한 협주곡의 아쉬운 점을 보완하려 노력했다.
나는 누구보다 바이올린에 대한 이해는 높았지만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모든 악기의 특성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과거 나의 곡은 관현악 부분에 있어서 단순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이 곡을 작곡할 때, 나는 좀 더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모든 악기에 관심을 갖고 작곡해 보았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넘치지만 과거에 비해선 꽤 발전이 있었다.
이제 곧 문주원으로서 작곡한 첫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을 대중들에게 선보일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나를 비롯해서 역사상 많은 작곡가들이 새로운 곡을 처음 선보일 때.
보통 두 가지의 상상을 하게 된다.
첫째, 엄청난 호평과 함께 성공적인 초연을 상상하든지.
둘째, 엄청난 악평 속에 곡이 빛을 발하지 못하든지.
전자를 바랄 뿐이지만 당연히 세상은 언제나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라흐마니노프도 야심차게 발표했던 교향곡 1번 공연에 실패하고 혹독한 비평을 받았다.
그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꽤 오랜 시간 작곡을 할 수 없었다.
언제나 작품을 내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 예술가들은 이런 고통과 기쁨을 겪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나는 대중의 판단을 속단할 수 없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가 시작되었다.
빈 필 단원들이 자리에 모두 앉은 후, 나는 바이올린을 들고 다시 콘서트 홀 무대로 입장했다.
나의 등장과 함께 청중들이 뜨거운 함성과 박수갈채를 무대 위로 쏟아냈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에너지.
한국에 돌아온 것이 실감 났고 그들의 응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에스트로 베르크만이 등장한 후,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1부의 경쾌한 축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이었다.
* * *
문화예고의 실기교사 권태오.
권태오는 주원이와의 실기 수업을 떠올려보았다.
문화예고에 편입해 다사다난했던 제자 주원이.
주원이의 실기를 지도할 때면 권태오는 희한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자신보다 훨씬 바이올린을 잘 켜는 학생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원이는 낭만 시대 이전 작곡가들에 대해서는 완벽한 이해를 보였지만 후대 작곡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도 많았다.
실기시험 곡이 아닌 곡도 항상 궁금해했으며 초견으로 연주하는데도 몇 달 연습한 학생보다 월등히 뛰어난 연주를 하곤 했다.
새로운 악보와 작곡가를 만나는 것에 그렇게 즐거워하는 학생은 좀처럼 본 적이 없었다.
주원이가 지금까지 이룬 일도 엄청 대단하지만 권태오는 주원이의 앞날이 훨씬 기대됐다.
‘저 호기심과 저 열정 그리고 엄청난 재능으로 어디까지 발전할지.’
천재를 만나면 많은 예술가들은 절망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권태오는 스스로 다짐했다.
‘나 역시 나만의 음악을 할 거야. 천재가 아니어도 괜찮아. 주원이에게, 또 나 자신에게 당당한 음악을 해야지.’
드디어 주원이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연주가 시작될 모양이었다.
Concerto for Violin No. 1 in E♭ Major by Juwon.
1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옅게 깔리는 현악기의 음색 사이로 고독한 호른의 선율이 파고들었다.
목관악기의 소박하며 서정적인 음색이 차분한 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오케스트라의 서주에 이어 드디어 주원이의 바이올린 음색이 오케스트라를 뒤덮었다.
밀도가 진한 현의 울림.
‘정말 강렬하구나.’
탄식하듯 이어지는 깊은 영혼의 소리가 콘서트 홀을 가득 채웠다.
고전적인 단정함과 낭만적인 서정성이 깃든 멜로디는 마치 골짜기에 피는 아름다운 꽃처럼 티 없이 맑고 아름다웠다.
잔잔하고 맑은 시냇물이 굽이굽이 흐르다 만난 폭포.
칼날 같은 바이올린의 선율과 오케스트라의 짙은 음색이 교차했다.
예기치 않게 닥친 인생의 고난처럼 거세진 물결이 출렁인다.
장대한 선율과 낭만적인 선율이 뒤섞여 모두를 감싸 안았다.
‘바이올린 독주와 오케스트라의 합이 완벽하구나. 곡의 짜임새가 훌륭해.’
숨조차 멈추게 할 만큼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음색과 오케스트라의 정교한 사운드가 얽혔다 풀어졌다.
켜켜이 화성을 쌓고 조화를 이룬다.
고요한 목관악기의 음색이 평화로운 순간을 선사하는 것도 잠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엄숙하게 두터운 저음을 노래했다.
주원이는 화려하면서도 지나치지 않은 기교를 쏟아부었다.
받은 영감을 모두 토해내듯이.
질주하는 활이 청중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거칠게 긁는 활의 노래.
굵은 활시위 안에 깃든 섬세한 악상.
점점 고조되는 악상에 주원이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매혹적인 선율 속에 활짝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새처럼 감정이 벅차올랐다.
매혹적인 리듬을 뽐내며 점점 뻗어가는 바이올린의 황홀한 소리에.
권태오를 비롯한 3000명 청중의 마음은 점차 흥분이 고조되었다.
풍성하고 섬세한 악상의 변화가 감정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원숙한 빈 필의 음악이 격정적인 바이올린의 음색과 만나 절정을 이루었다.
귓가를 가득 채우는 풍성한 선율.
숨소리가 닿는 모든 곳마다.
황홀한 바이올린의 음색이 흩뿌려졌다.
한 번 들으면 그 누구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그런 마법이 펼쳐지고 있었다.
* * *
비엔나 필하모닉과의 연주회는 대성공이었다.
연주회가 끝난 후, 단원들은 나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음악적 자부심이 세계 제일이라는 빈 필의 단원들.
악장 로버트 바우어가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다음엔 비엔나에서 함께 공연해봤으면 좋겠네. 자네의 협주곡을 비엔나의 청중들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군.”
“좋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늘 청중들이 클래식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비엔나에는 꼭 갈게요.”
“오늘 프로그램 말이야. 조화가 아주 좋았다고 생각해. 대중들이 편하게 호응하면서 즐길 수 있는 곡과 좀 더 음악적으로 진지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곡을 같이 하니 몰입이 더 잘되더군.”
그게 원래 나의 의도였다.
같은 두 시간의 공연이라도 좀 더 청중들이 즐겁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으려면.
프로그램도 다양화하고 직접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연습 내내, 앞으로 나도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처럼 관객 참여형 곡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퀸의 ‘We will rock you’ 라이브 공연을 보면.
관객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가 음악의 일부분이 되는 것처럼.
클래식도 라데츠키 행진곡처럼 충분히 그런 관객 참여형 곡이 가능한 것이다.
‘나도 앞으로 그런 곡들도 만들어 봐야겠어.’
그런 다양한 곡을 만들어 진지한 음악과 함께 편성한다면 사람들이 조금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을까?
음악 평론가들이 아무리 걸작이라고 외쳐도 듣는 사람이 지루하다고 느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 음악은 생명력 있는 음악이 될 수 없다.
나는 앞으로 다양한 길이와 편성의 곡, 그리고 대중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곡들을 작곡해보리라 다짐했다.
공연이 끝난 후, 마에스트로 베르크만도 아쉬움과 기대감을 함께 표현했다.
“곧 또 만날 수 있겠지? 어디에서 또 놀랄만한 행보를 선보일지 기대가 되는군.”
“마에스트로 덕분입니다. 지휘도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뭐 가르쳐준 게 있나? 자네가 스스로 만들어 온 것이 대부분일세.”
마에스트로가 그렇게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의 가르침으로 나는 지휘의 기본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
아직 내가 범접하지 못할 미지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쁘고 설레었다.
마에스트로 베르크만은 그리고 한 가지를 덧붙였다.
“자네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말이야. 앞으로 모든 바이올리니스트의 단골 레파토리가 될 거라 확신하네. 2번도 3번도 빈 필과 함께 초연했으면 좋겠군. 레코딩은 함께 할 생각 없나?”
“레코딩이요?”
“진지하게 묻는 걸세. 가벼운 마음으로 거절하지 말아주게. 충분히 생각하고 답을 주면 좋겠군.”
그동안 여러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이 레코딩을 제안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내키지 않았었다.
지금보다 20대의 음악이.
지금보다 30대의 음악이.
더욱 원숙하고 아름답지 않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음악은 더 깊이 있게 익어갈 테니까.
이번에도 마에스트로 베르크만은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혹시 오 년 후, 십 년 후에 레코딩하면 더욱 완벽할 것 같아 그런가?”
“귀신은 속여도 마에스트로는 못 속일 것 같습니다. 지난번 포어가이거부터 오늘까지. 제 머릿속에라도 들어왔다 가셨나요?”
“하, 내가 정곡을 찌른 게로군. 하지만 난 그 고민에 대해 정확한 답을 알아.”
“정말요? 그게 가능한가요?”
두 번의 삶을 살아도 정답을 알기 쉽지 않은데.
혹시 마에스트로도?
‘훗. 내가 별생각을 다 하네.’
마에스트로는 자신이 내린 답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자네가 만약 바흐의 곡을 레코딩한다고 가정해보겠네. 십 대의 바흐, 이십 대의 바흐, 삼십 대, 사십 대의 바흐. 그 음악이 같겠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하지만 말이야. 그 나이대에만 할 수 있는 음악이 있다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는 자신의 음악을 깨닫는 거. 그게 얼마나 매력적인 줄 아나?”
파가니니로서의 레코딩도 문주원으로서의 레코딩도 없다.
영화 음악의 OST말고 정말 내 이름으로 만들어진 음반 말이다.
마에스트로의 말처럼 같은 곡을 지금, 십 년 후, 이십 년 후 녹음한다면.
세월에 따라 변하는 음악적 해석도 느낄 수 있고 발전하는 내 모습도 담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굉장히 흥미로운 관점이었다.
지금 나의 음악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잘 생각해 볼게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제 음악을 남긴다는 것도 의미 있겠어요.”
그렇게 비엔나 필하모닉과 한국에서의 연주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언론에서는 연주회에 관한 기사가 넘쳐났다.
[축제 같은 클래식 공연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다] [바이올리니스트 문주원, 포어가이거가 되어 비엔나 필하모닉을 지휘하다] [바이올리니스트 문주원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이제는 지휘까지?] [세기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문주원 – 연주회의 역사를 새롭게 쓰다] [마에스트로 베르크만 – 문주원 같은 음악가가 이 시대에 태어난 건 인류의 축복이다] [문주원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음악성과 예술성에 있어 역사상 가장 훌륭한 곡 중 하나이다 –에른스트 폰 베르크만]* * *
나는 가족들과 함께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한국에서도 ‘April in New York’의 인기가 엄청났다.
우리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극장으로 출발했다.
극장으로 가는 내내 내가 만든 곡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내 설명을 들으면서 계속 웃고 계셨다.
“주원이가 만든 음악이 영화관 전체에서 흐를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구나.”
“아버지, 저도 그래요. 상상이 안 간다니까요.”
운전을 하던 아빠가 살짝 고개를 돌려 말했다.
우리는 극장에 도착했고 거의 만석인 채로 영화를 관람했다.
대형 스크린에서 다시 보는 영화의 느낌은 색달랐다.
다시 보니 더 마음에 와닿는 대사와 장면들.
그리고 그 장면을 채우는 음악.
좋기도 아쉽기도 했다.
‘다음엔 더 잘 만들어보고 싶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통해 내 음악을 듣는 사람의 숫자가 엄청날 거라는 것.
그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고 나의 창작 욕구에 더욱 불을 지피는 일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우리는 맛있는 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밥을 먹는 도중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지환이는 잘 모르는 영어 가사를 중얼중얼 부르기도 했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미리 준비한 봉투를 꺼냈다.
영화 OST의 성공 이후.
첫 정산을 받았을 때, 나는 정말 놀랐다.
그동안도 작곡이나 연주 그리고 콩쿠르를 통해서 제법 큰 수입이 있었지만 이 정도 규모는 처음이었다.
어떤 선물을 사면 할아버지와 아빠가 기뻐할까 고민했지만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부모님이 받고 싶은 선물 1위는 바로 ‘현금’이었다.
‘그래, 직접 마음에 드는 거 사시면 좋을 것 같네.’
그래서 준비한 현금 봉투.
물론 지환이를 위한 용돈도 준비했다.
어린 나이에 너무 큰 돈을 주면 안 될 것 같아 적절한 액수로 준비했다.
그리고 쑥스럽지만 현금과 함께 나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준비했다.
생일에 카드를 써본 것 외에는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길지는 않지만 짧은 진심이 담은 편지.
편지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몇 줄의 말.
문자나 전화로는 낯간지러워 하지 못한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항상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은 많이 했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어릴 때 말고는 꺼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제라도 할아버지와 아빠에게 전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편지라 다행이지. 말로 하라면 절대 못 할 것 같아.’
두둑한 봉투와 편지를 받은 할아버지와 아빠는 어안이 벙벙한 기색이었다.
“이게 다 뭐야? 무슨 돈이 이렇게 많이 들어 있어?”
“주원아, 할애비한테 너무 큰 돈이다.”
“영화 음악 인기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어요. 원하는 거 사시고 친구분들한테도 자랑하세요.”
그러자 지환이가 그새를 못 참고 끼어들었다.
“형, 나도 나도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어. 내 것도 있지?”
“그래. 당연히 네 것도 있지.”
어렵고 힘든 순간들을 같이 견뎌온 우리 가족.
환하게 웃는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을 보자 괜스레 마음이 울컥했다.
“할아버지. 어디 아픈 데 없으시죠?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제가 효도 제대로 할게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이 행복이 영원했으면.’
그런 나의 마음은 또 악상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가방에서 서둘러 작곡 노트를 꺼냈다.
식사를 하던 테이블 위에 작곡 노트를 펼치고 쏟아지는 영감을 그려냈다.
가족들은 그런 나를 조용히 지켜봐 주었다.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지만.
음악은 영원할 수 있다.
순간의 악상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또 하나의 곡을 탄생시켰다.
그렇게 멈추고 싶은 소중한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