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67)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67화(167/250)
어느덧 조용해진 홀.
음악을 기다리는 수천 개의 시선 속에.
곡의 시작을 알리는 카프리스 24번 메인 테마의 첫 음이 울려 퍼졌다.
활로 현을 그어 음이 끊기지 않고 깊고 진한 울림을 주는 바이올린과 달리.
현을 타격해서 소리를 내는 피아노는 진하고 애절한 울림 대신 열 손가락으로 화려한 음의 향연을 선보일 수 있다.
게다가 두 대의 피아노라면 더욱 그렇다.
연주는 메인 테마를 지나 2변주로 넘어가고 건반 위로 손가락이 춤추듯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두 피아노에서 울려 퍼지는 선율이 쉴 새 없이 서로를 파고들었다.
가볍게 튀기지만 절대 빠지지 않는 음.
카프리스 주제 멜로디에 섞인 묘한 불협화음들.
나는 노골적으로 화음을 비틀기 시작했다.
예전이라면 시도해보지 않았을 음들의 향연.
조화로운 화음 속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불협화음들은 제자리인 양 곡의 구성을 더욱 화려하게 빛냈다.
변주가 거듭되면서 나와 장웨이의 호흡은 더욱 완벽해졌다.
메인 멜로디를 이끄는 나의 연주를 완벽하게 받쳐 주던 장웨이의 눈빛이 나와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7변주로 넘어가면서 나는 이제 눈을 거의 감았다.
나는 필사적이었다.
내 안에 잠든 모든 영혼을 이끌어내 듯.
엄청난 빠르기로 연주되는 거친 변주의 한 음, 한 음에 완벽한 의미와 감정을 실었다.
시선은 건반에 둔 채.
조성을 변화시켰다.
엄청난 도약이 있음에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템포가 서서히 빨라지며 격정적으로 솟구치는 피아노의 음들이 벌컥벌컥 감정을 드러냈다.
더. 좀더. 더더더.
나는 음악으로 파고들었다.
몰아치는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의 테마.
익숙한 테마 속에 담긴 수많은 고민과 열정.
그 뜨거운 열정에 내 몸을 던져넣었다.
활활 타오른다.
끝없이 꺼지지 않을 불꽃처럼.
건반을 수놓는 스무 개의 손가락들은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순간의 예술을 펼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음악을 듣는 모든 이의 가슴에 영원히 남기를.
파가니니의 과거와.
문주원의 현재가 만나 이룬 하모니.
그렇게 새로운 역사가 또 한 번 써지고 있었다.
관객의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청중들의 흥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장웨이와 나는 라이브 연주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경험하며 청중에게 거듭 인사를 했다.
독주회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의 반응은 마치 지금 연주회가 끝난 것처럼 앵콜을 외치기 시작했다.
장웨이는 공연 초반에 나온 앵콜 소리에 크게 웃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이크를 들고 앵콜을 외치는 관객을 바라보았다.
“공연 중에 앵콜을 외치시다니. 너무 좋은데요?”
내 말을 듣고 청중들은 더욱 거세게 앵콜을 외쳤다.
틀이 없는 독주회에서 자유롭게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른 가수들의 공연을 가면 관객들이 떼창도 부르고 응원봉도 흔들고, 모두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왜 굳이 클래식만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지.
그래서 이런 청중의 뜨거운 반응이 너무 좋았다.
“앵콜 대신 이번엔 저와 장웨이 그리고 미사키가 함께하는 연주를 들려드릴게요. 제가 ‘April in New York’이라는 영화에서 연주곡도 몇 곡 작곡했습니다. 그중 하나를 들려드릴게요.”
무대 위엔 이제 한 대의 그랜드 피아노만 남아 있었다.
스태프 한 명이 내 바이올린을 가져다주었고.
미사키가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채 다시 무대 위에 등장했다.
장웨이가 치는 A 음에 맞춰 튜닝을 마친 미사키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영화 ‘April in New York’에 삽입되었던 연주 음악, ‘The Moment’가 무대에 흐르기 시작했다.
남녀 주인공의 행복한 한 때를 회상하듯.
피아노와 바이올린 두 대의 풍성한 화성이 홀을 가득 채웠다.
봄날의 햇살처럼 밝은 노란색.
서정적인 바이올린의 선율을 받쳐 주는 균형 있는 피아노의 조화.
때로는 경쾌한 듯 활기찬 바이올린의 리듬 사이를 파고드는 피아노의 멜로디.
우리 셋이 만드는 뉴욕의 한 풍경 속으로 모두가 빠져들었다.
청중들의 머릿속에 영화의 한 장면이 그려지도록.
우리는 음악이란 붓으로 모두의 머릿속을 상상력으로 가득 채웠다.
우리 셋의 합주가 끝나고 나는 소중한 시간을 기꺼이 내준 장웨이와 미사키에게 인사를 건넸다.
친구들과 만든 무대는 굉장히 만족스러웠고 그간의 연습 과정보다도 더 완성도가 높았다.
‘역시 무대 위에서 연주할 때가 가장 좋아.’
미사키와 장웨이가 퇴장한 뒤, 홀로 무대에 남은 나는 누군가 앞에서는 정말로 오랜만에 연주해 보는 곡을 소개할 차례였다.
그건 바로 내가 파가니니였던 시절 무대에서 즐겨 연주하던 곡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주하지 않게 되었던 곡.
그 곡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다음 곡은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이란 곡입니다. 과거 파가니니는 독주회에서 이 곡을 종종 연주했었습니다. 어느 날, 작곡가 타르티니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 중에 잠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악마와 계약하는 꿈을 꾸게 되죠.”
대다수가 모르는 곡이겠지만 파가니니와 악마라는 키워드 때문일까?
청중들은 굉장히 집중하고 있었다.
꿈에 나타난 악마는 타르티니에게 계약의 대가로 모든 소원을 이뤄주겠다고 했다.
타르티니는 문득 악마가 어떤 음악을 연주할 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에게 자신의 바이올린을 주고 켜보라고 했다.
악마는 바이올린을 받아 엄청난 기량으로 환상적인 연주를 해버렸다.
꿈속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은 타르티니는 잠에서 깨자마자 꿈속의 멜로디를 기억해 그려냈다.
하지만 완벽히 기억해낼 수 없었던 타르티니는 절망했다.
자신이 그린 악보는 꿈속의 음악만큼 감동적이지 않았으니까.
그런 이야기가 숨겨진 ‘악마의 트릴’.
파가니니였던 시절, 나는 그 곡의 아름다움에 빠져 종종 무대에서 연주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나를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부르고, 진심으로 믿기 시작하자 이 곡을 연주하기가 꺼려졌었다.
지금이야 초월적 존재에 대한 소문쯤은 웃어넘길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나를 악마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와 나눈 서신을 강제로 출판까지 해야 했다.
그건 바로 내가 다른 이들처럼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것을 입증하기 위함이었다.
타르티니, 악마의 트릴
[ TARTINI: Violin Sonata No.4 ‘Les trilles du diable’ ]곡에 대한 설명이 끝난 후, 나는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렸다.
그리곤 활을 내리 그었다.
선율은 나를 과거의 어느 날로 이끌었다.
* * *
방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아빠의 감시 속에 연습을 해야 했던 어느 날이었다.
연습이 끝나기 전엔 물도 못 마실 거란 아빠의 협박에 나는 쫄쫄 굶은 상태였다.
아빠가 엄마에게도 큰소리를 내며 집을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빠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열심히 바이올린을 연습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악보는 이미 다 외워서 너덜너덜해진 지 오래였고.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계속 작곡했다.
바이올린은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재밌는 악기였다.
창문으로 아빠가 저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 나는 방문을 열고 엄마에게 갔다.
엄마는 귀족 부인의 집에 가져갈 음식 중에 예쁘지 않은 부분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그제야 아주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음식의 종류가 평소와는 다르게 굉장히 다양했다.
“엄마, 오늘은 왜 이렇게 많이 만들었어?”
“오늘 엘리사네 집에서 작은 음악회가 있다는구나. 끝나고 여러 사람이 같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해서.”
“작은 음악회? 나도 가고 싶어.”
엄마는 아빠가 두려운지 조금 망설였다.
지난번에 아빠에게 들켜 내가 꼬박 하루 동안 방에 감금당한 적이 있었으니까.
“괜찮을까? 혹시라도 아빠가 돈이 떨어져서 빨리 오면 우리 둘 다 큰일 날 텐데.”
“괜찮아. 또 방에 갇혀서 연습하지 뭐. 나 음악회 보고 싶어.”
“그럼, 얼른 갔다 오자.”
“잠깐만.”
나는 방으로 가서 바이올린을 챙겼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었다.
거기서 내가 모르는 어떤 멋진 곡이 있으면 바로 듣고 외워서 연주하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이미 여러 번 갔기에 엘리사의 집으로 가는 길은 훤하다.
나는 엘리사네로 가는 내내 신이 났다.
한 손에는 엄마가 만든 음식을 나눠 들고 한 손에는 바이올린을 들었다.
그리고 오늘따라 유독 정겨워 보이는 제노바의 돌길을 따라 걸었다.
바다의 향기가 느껴졌다.
드디어 도착한 엘리사의 집.
화려한 집 안은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여러 악기의 소리도 들렸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많았다.
“엄마, 나는 얌전히 구경하고 있을게.”
엄마는 마르타 부인에게 갔고 나는 초대받은 손님인 척 인파 속에 숨어 있었다.
그때, 하필 엘리사와 눈이 마주쳤다.
엘리사는 나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옆으로 왔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나 보러 온 거야?”
“아니. 연주회가 있다길래. 유명한 사람이라도 와?”
“어, 아주 유명한 사람이라던데. 오늘 연주할 곡이 엄청 어렵대. 제목이 아주 희한했는데.”
“뭐였는데?”
엘리사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기억이 났는지 손뼉을 ‘탁’하고 쳤다.
“‘악마의 트릴’이라고 했어. 무서운 곡인가 봐.”
“악마의 트릴? 그런 곡이 다 있어? 궁금하다. 엄청 어려운 곡인 걸까?”
너무 궁금했다.
‘악마의 트릴’이라니.
제목만 듣고는 구체적으로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 제목을 가진 음악은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현란하게 트릴로 시작해서 트릴로 끝나는 곡일까? 악보 갖고 싶다. 아니 빨리 들어보고 싶어.’
그리고 나는 조금 후, 그 곡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남자가 엘리사의 집 안에 모인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짙은 흑갈색의 바이올린을 꺼냈다.
그리곤 악보를 펼치고 피아노 연주자와 함께 연주를 시작했다.
그 곡은 애절하다 못해 구슬픈 멜로디였다.
제목을 들었을 때 연상되었던 음악은 전혀 아니었다.
사람을 현혹시키는 악마의 몸짓을 떠올렸던 나는 예상치 못한 선율에 더욱 귀 기울여 집중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트릴이 빈번해지고 곡의 구성이 화려해졌다.
그의 연주가 끝나고 나는 소란스러운 틈을 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다가갔다.
“혹시 악보 좀 볼 수 있을까요?”
“꼬마야. 이건 너같이 어린 애가 할 수 있는 곡이 아니란다.”
“저 할 수 있어요.”
그러자 어느새 엘리사가 옆으로 다가왔다.
“얘가 아저씨보다 훨씬 잘해요. 니콜로의 연주를 들으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름답거든요.”
어느새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야기를 귀를 쫑긋 세운 채 듣고 있었다.
그러자 바이올린 연주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 들으면 쉽게 들릴 수도 있는데 아마 뒤로 갈수록 악보도 못 읽을 게다.”
“제가 만약 연주를 잘 해낸다면 이 악보를 주실 수 있나요?”
갖고 싶었다.
‘악마의 트릴’이란 이름을 가진 악보.
그러자 그가 크게 웃었다.
“주고 말고. 그런데 ‘잘’ 연주한다는 건 내 기준이야. 내 마음에 들게 연주한다면 악보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
그의 확답을 듣고 나는 신이 나서 바이올린을 꺼냈다.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처음 만난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는 기분.
그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같다.
가본 적 없지만 아름다울 것이 명백한 그런 세계로의 여행.
나는 곧 주세페 타르티니라는 작곡가의 영감과 마주할 생각에 들떴다.
서둘러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리고 조율을 했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은 뒤.
활을 내리 그었다.
갈구하는 듯 애달픈 선율이 엘리사의 집을 뒤덮었다.
‘악마의 트릴’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오묘하고 감미로운 멜로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숨긴 악마의 모습일까?
마음 한구석이 저릿할 정도로 애처로운 멜로디가 울려 퍼지자.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손님들의 시선이 나의 활 끝을 향했다.
지판 위를 움직이는 손가락은 드문드문 이어지는 트릴과 선율을 노래했다.
애가 타는 듯한 바이올린의 음색은 모두의 입을 틀어막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치닫는 격정적인 음색이 엘리사의 집안 구석까지 닿았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이 끝이 없는 트릴을 만들어냈다.
끝없이 이어지는 겹음과 트릴의 향연이 악마와의 계약으로 옭아 매어진 꿈처럼 펼쳐졌다.
업보우(올림활)로 마지막 겹음을 지긋이 누른 후 허공에 머무른 활.
활을 쥔 오른손이 허공을 가르고 내려오자.
숨죽였던 손님들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타르티니가 꿈에서 보았다는 악마의 음악.
본심을 감춘 채 사람을 현혹하려는 악마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한참을 공간에 머물렀다.
* * *
지긋이 감은 눈을 뜨자.
취한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청중의 모습이 보였다.
타르티니가 꿈속에서 만났다는 악마.
마치 그 악마를 본 것 같은 청중들의 모습들.
‘이제는 그 누구도 나에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손가락질하지 않을 테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도 그 누구도 이제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을 세상이니까.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