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68)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68화(168/250)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백세진.
그는 오늘 친한 평론가 양일우와 주원의 독주회를 보러 왔다.
한국 클래식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인 주원의 연주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클래식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KM 클래식의 홀도 처음 와봤다.
아이보리색 대리석 표면에 직선미가 돋보이는 현대적이며 세련된 느낌의 KM 클래식 본사 건물 안의 리사이틀 홀.
1500석 정도의 규모를 가진 중급 규모의 홀이었다.
붉은색 의자에 적힌 번호를 확인한 후, 평론가 양일우와 자리에 앉았다.
앞자리엔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가 옆자리엔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녀커플이 앉았다.
뒷자리엔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과 엄마로 보이는 조합이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기대감을 갖고 보는 공연.
무대 위의 지휘자로서가 아니라 공연장에서 살피는 청중의 모습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모두들 팸플릿을 보며 프로그램 목록과 연주자에 대한 소개 글을 탐독했다.
하나라도 놓칠까 스마트폰으로 그 음악을 미리 들어보는 남녀 커플, 악보를 보며 오늘의 곡을 떠올려보는 학생.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홀 안의 공기는 밝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요즘 한국 음악계에는 놀라운 십 대들의 활약이 넘친다.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문주원을 비롯 반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손성혁까지.
문주원의 파가니니 콩쿠르 영상은 콩쿠르가 끝난 후, 그에 관한 기사가 음악잡지에 범람할 때쯤 찾아보았다.
아마도 그 영상을 백 번은 넘게 본 것 같았다.
환상적인 바이올린 연주 실력은 물론 콩쿠르에서 즉흥 카덴차를 선보이는 담대함과 놀라운 작곡 능력까지.
충분히 세기의 천재라 불릴만했다.
게다가 얼마 전 빈 필과의 협연에서 포어가이거까지 되었다니.
주원은 역사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것 같았다.
‘당당하고 멋있단 말이지.’
기회가 닿는다면 자신의 오케스트라에서 빠른 시일 내에 협연자로 만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정말 궁금했다.
‘직접 들으면 어떨까? 화면에서 보던 것 이상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 십 분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곧이어 휴대폰의 전원을 끄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조금 후 몸에 딱 맞는 검정색 정장을 입고 나온 문주원.
훤칠한 키에 빛나는 눈빛을 가진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주원의 등장과 함께 객석은 들썩였다.
어두운 무대 위에서 핀 조명이 환하게 그만을 비췄다.
분명 첫 독주회라고 들었는데 그의 눈빛엔 긴장이나 두려움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직접 보니까 훨씬 카리스마가 느껴지네.’
그리고 그의 설명과 함께 연주가 시작되었다.
바흐의 두 대를 위한 바이올린 협주곡과 직접 작곡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투 피아노 변주곡.
직접 작곡한 영화의 OST와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까지.
그는 시대를 넘나드는 아름다운 음악과 이야기에 취하고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그의 바이올린은 소름 끼치다 못해 황홀했다.
게다가 피아노 실력까지 출중하다니.
그가 작곡한 투 피아노 곡은 대담한 화성적 탐색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피아노란 악기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느껴졌으며 높은 완성도로 파가니니의 곡을 재탄생시켰다.
파가니니 카프리스의 선율을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 작곡가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파가니니를 훌쩍 뛰어넘는 곡을 만들어내다니.
연주도 작곡도 모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휘자 백세진이 가장 놀란 사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렇게 격식을 따지지 않는 연주회는 처음이야.’
곡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며 자신의 감상을 덧붙이는 주원의 친절함.
그 친절함은 청중의 음악에 대한 몰입을 높였다.
‘이렇게 진심으로 모두가 즐거워하는 클래식 공연을 본 적이 있었던가?’
티켓 값이 수십만 원이나 하는 베를린필, 런던필 같은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서도 지루해하는 청중들이 꽤 많다.
그 이유는 클래식 공연 자체가 청중에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고 있지만 개선하기 쉽지 않은 문제.
주원처럼 이야기와 음악을 곁들이고 연주자의 감상을 생생하게 전달하니 객석의 반응이 사뭇 달랐다.
마치 음악과 이야기가 결합 된 새로운 형태의 연주회라고나 할까?
주위를 둘러봐도 지겨워하거나 조는 사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백세진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그동안 내가 살아온 모든 격식을 집어던지고?’
청중들은 주원의 음악성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그의 바이올린 실력이 왜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그의 작곡 능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자신처럼 열 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백세진은 그런 것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현학적인 말로,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서 음악을 평가하는 것보다 이렇게 음악을 즐기는 것이 훨씬 중요한 건데.’
어쩌면 자신은 그런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산 게 아닐까 후회가 밀려왔다.
백세진은 주원의 행보가 신기하면서도 그의 신념과 자신감이 멋져 보였다.
‘스스로 장벽을 세운 클래식계에 제대로 변화의 바람이 불겠네.’
그리곤 그의 다음 연주를 기다렸다.
정장에 찬 마이크 덕분에 주원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잘 들렸다.
“다음 곡은 제 음악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파가니니에 대한 헌정곡입니다. 제목은 Consolazione(위로)입니다.”
주원은 청중과 눈을 맞추며 곡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파가니니는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삶이 행복한 사람은 아니었죠. 언제나 무대 위의 연주를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악마라는 이유로 죽은 뒤 몇십 년이 지나서야 교회 무덤에 묻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슬프더군요. 그는 과연 뛰어난 재능을 가져서 행복했었을까요?”
어느새 내 이야기에 몰입한 청중들.
그들은 내 이야기가 자신의 과거인 듯 집중했다.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외로웠을 파가니니에 대한 헌정곡을 바칩니다. 파가니니의 악기, 캐논을 연주하는 내내 저는 느꼈습니다. 그의 영혼이 바이올린에 깃들어 있음을요. 캐논이 저에게 말을 걸더군요. 그의 음악이 그리웠다고요. 혹시 지금 이 순간, 파가니니의 영혼이 제 헌정곡을 듣는다면. 그에게 위로가 되길. 그리고 이 곡을 듣는 여러분에게도 위로가 되길 바라봅니다.”
마치 본인이 파가니니라도 된 듯 감정이입 하는 주원을 보면서.
백세진은 작곡가와 진심으로 교감하는 주원의 모습이 새로웠다.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함께 숨 쉬었을 파가니니의 음악들.
주원은 아마도 파가니니의 음악과 생애에 깊이 빠져 있었나 보다.
헌정곡까지 만들어 그의 외로운 삶을 위로하고 싶었다니.
백세진 자신은 파가니니를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음악가들이 보기에 파가니니는 고귀한 음악을 하는 작곡가가 아니었으니까.
지금의 기준으로도, 그때의 기준으로도 말이다.
그는 위대한 베토벤처럼 심오한 음악을 하는 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정의나 분류 따위가 우습게 느껴졌다.
‘그냥 들어서 좋으면 좋은 거지. 뭘 그렇게 따지고 분석하고.’
주원의 나이 때에는 백세진 자신도 그러지 않았었다.
나이가 들수록. 명성이 커질수록.
지킬 것이 많아질수록.
클래식 음악가들은 더더 견고한 그들만의 성을 쌓아갔다.
이제는 그 누구도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외진 곳에 두텁게 쌓아진 성.
주원이 조금씩 그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헌정곡 Consolazione (위로)가 시작되었다.
무대 위의 조명이 주원과 피아니스트만을 비추고 객석의 말은 잦아들었다.
그랜드 피아노 위에 앉은 피아니스트와 주원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주원의 어깨에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갈색의 바이올린이 올라갔다.
현과 활이 맞닿은 순간.
짙은 위로가 전해졌다.
길고 긴 음의 길이만큼.
깊은 위로였다.
고독한 바이올린의 애절한 음색이 경건한 피아노의 음들을 이끌었다.
우아한 활의 움직임 사이로 스며드는 따스한 공기.
피부 속까지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고음도.
미친 듯이 질주하는 화려한 격정도 아니었다.
묵직한 화성 속에 피어나는 끝없는 울림.
파도에 흔들리는 물결처럼.
심장 박동이 거세게 뛰었다.
악마의 재능을 가졌던 외로운 파가니니의 삶이 눈앞에 펼쳐졌다.
방탕한 생활로 점철된 순간도.
경탄 속에 느꼈을 고독도.
죽음 후에도 편히 쉬지 못한 영혼까지.
그가 차가운 땅속에서 흘렸던 눈물을 닦아내듯.
애절한 바이올린의 선율이 그 모든 삶을 기꺼이 어루만져 주었다.
백세진의 앞에 앉은 노부부가 두 손을 꼭 맞잡았다.
그리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었다.
한 줌의 고난이 사라진다.
주원의 음악엔 그런 힘이 있었다.
그가 주는 위로는 지금 이곳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파가니니의 영혼 뿐 아니라.
찰나의 순간을 함께하는 모든 청중에게도 깊은 위로가 되었다.
* * *
짙은 호흡과 함께 허공에 멈춘 활이 내려왔다.
나는 지긋이 감은 눈을 떴다.
객석에 가득찬 청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꽤 어두워야 할 객석들 중 한 곳이 환하게 밝아져 있고.
모두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순간 멈춰 있는 청중들 사이로 희미하게 예전의 나, 파가니니의 모습이 빛나는 것이 보였다.
‘내가 꿈을 꾸는 걸까?’
무덤덤한 표정의 파가니니가 현재의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의 눈을 또렷이 마주 보며 과거의 기억을 깨우쳤던 날을 회상했다.
나의 과거는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다.
그건 지나간 나의 과거였고 어느 날 불현듯 떠오른 기억이었으니까.
소용돌이처럼 밀려오는 기억은 때때로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과거의 내 삶이 모두 아름답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파가니니였던 나의 감정이 문득 떠오를 때마다.
나는 그에게, 아니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음악으로 전하는 위로.
그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감정이 솟구칠 때마다 덤덤히 그려낸 악상.
그게 오늘 연주했던 Consolazione (위로)였다.
우리는 말 없이 서로를 한참 동안 우두커니 바라봤다.
우리 둘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못했지만.
둘 사이에 흘렀던 헌정곡이 서로의 마음을 전해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마치 지난 아픈 과거와 작별하듯.
허상처럼 빛나고 있는 파가니니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무덤덤했던 그의 표정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 역시 나의 위로가 담긴 음악이 마음에 들었던 듯하다.
뒤돌아서는 그의 모습과 함께 빛무리가 점차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우와!!!”
갑자기 들려온 청중의 박수와 환호에 객석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는 청중의 모습.
마치 격정으로 치닫는 음악의 피날레처럼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은 음악뿐이 아니었네.’
청중의 뜨거운 박수와 공감.
이들의 열정적인 사랑도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청중의 박수는 그치지 않았고 점점 거세어져 갔다.
청중들은 오늘 집에 가지 않을 모양이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연호했다.
“앵콜! 앵콜!”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앵콜 곡을 연주했다.
오늘 독주회에서 들려주지 못한 파가니니의 곡과 내 자작곡을 섞어 청중의 기대에 부응했다.
나는 리사이틀 홀의 구석구석을 뚫고 쏟아지는 환호와 갈채 속에 파묻혔다.
음악만이 전해줄 수 있었을 위로와 함께.
그렇게 나의 첫 독주회 밤이 저물고 있었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