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71)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71화(171/250)
여기 있는 친구들에 대해 내가 아는 바는 없지만 줄리어드에 들어온 걸로 보아 모두 천재라 불리며 자랐을 거다.
‘그러니 자존심도 강하고 실력도 있겠지.’
내가 브래드에게 재즈로 본때를 보여줄 순 없을 거다.
하지만 적어도 ‘클래식 연주자라면 재즈는 못 해’라는 편견 정도는 쉽게 부숴줄 수 있다.
‘그런 편견이 앞으로 평생 음악을 할 때 큰 장벽이 될지도 모르고’.
나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는 브래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평소 네가 하던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걸 확인할까 봐 두려운 거야?”
순간 브래드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었다.
“그럴 리가. 나 올해 유일한 색소폰 신입생이야. 전 세계에서 딱 한 명뿐인 줄리어드 신입생. 그런 내 생각이 틀렸을 리 없잖아?”
“그러면 서둘러 연주나 해보자고.”
조셉이 나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태블릿 PC를 건넸다.
“이거 코드 보고 해. 괜찮겠어? 괜히 나 때문에 미안하네. 아까 연습실 가게 둘걸.”
“미안하긴.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 이 상황이 혼자 연습하는 것보다 백 배는 재밌으니까 걱정 마.”
연습실에 가려던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조셉.
한국을 떠나 뉴욕으로 유학 와서 줄리어드까지.
나는 혼자서만 연습하고 곡을 만들려고 미국에 온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그 안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고, 나의 색깔을 다채롭게 만드는 일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합주가 이뤄지는 일은 나를 흥분시켰다.
나를 두근거리게 만든 이들의 재즈 음악에 나의 피아노가 어떻게 어우러질까?
‘피아노를 해본 뒤엔 바이올린도 해볼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 데 혼자 실실 웃으며 다음 스텝까지 생각하는 중이었다.
여유 있는 내 모습을 본 브래드는 몸을 돌려 색소폰을 들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조셉이 준 태블릿 PC 속 악보를 보았다.
악보의 이름은 루이스 프리마라는 작곡가의 ‘Sing Sing Sing’ 이었다.
멜로디는 익숙하지만 이름은 몰랐던 곡.
‘이렇게 훌륭하지만 내가 모르는 곡이 얼마나 많을까?’
나는 몇 걸음 걸어 스타인웨이 피아노에 앉았다.
그리고 악보를 대충 훑었다.
악보를 훑는 눈길마다 화성의 조합이 머릿속에 빠르게 지나갔다.
어떤 텐션이 어울릴지.
어떻게 변주를 해볼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연주의 방향이 모두 정해졌다.
나는 룸메이트인 조셉을 바라보았다.
“하자.”
“벌써? 한 번 제대로 쳐봐도 되는데.”
“괜찮아. 그냥 해보고 싶어. 그게 더 재밌을 것 같아.”
내 말을 들은 그들은 눈이 보름달만 하게 커졌지만 이내 서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예열과정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드럼의 비트를 시작으로 트럼펫과 색소폰의 멜로디가 들렸다.
트럼펫의 화려한 음색.
호흡과 함께 울리는듯한 색소폰의 섬세한 사운드.
콘트라베이스의 피치카토 소리를 들으며 나는 적절한 타이밍에 그들의 음악에 끼어들었다.
그리곤 코드의 텐션음을 변화시키며 무작정 몸으로 부딪쳤다.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느낌.
최소한의 틀 안에서 최대의 자유를 느끼는 재즈의 본질.
처음 연주해보는 ‘Sing Sing Sing’의 춤추는듯한 스윙 리듬은 환상적이었다.
나는 점점 달아오르는 열기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온갖 애드립을 섞었다.
연주자들은 그런 내 모습에 처음엔 당황하는 듯했다.
‘아마도 나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어서였겠지.’
하지만 색소폰 연주자인 브래드까지 어이없는 미소를 지으며 모두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리듬감. 정박에 들어오는 리듬은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 잘 어울리다니.’
조셉이 친구들과 이룬 팀의 재즈는 놀라웠다.
이제 막 입학한 신입생의 연주라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블루 노트에서 당장 공연을 해도 전혀 손색없을 것만 같은 완성도였다.
‘Sing Sing Sing’의 연주가 끝나고 모두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마치 힘겨루기라도 하듯 시작한 연주였으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화합을 이뤄냈다.
하지만 나로서도 굉장히 큰 자극을 받은 상태였다.
이런 친구들이 세계에서 모두 모여있다고 생각하니 그 시너지가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조셉이 트럼펫을 내려놓고 황당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클래식 바이올린이랑 작곡 전공이라더니 나한테 거짓말 한 거 아냐?”
색소폰 연주자인 브래드도 드러머와 베이스 연주자도 마찬가지였다.
“재즈 피아노 전공인데 솔직히 거짓말한 거지?”
“아니야. 근데 미리 말을 안 한 게 있긴 해.”
“뭔데?”
잘난 척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 역시 재즈를 사랑하고 꽤 관심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가장 최근에 그에 대한 결과물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음악의 OST를 작곡한 사람의 얼굴을 사람들이 알기는 어렵다.
그 곡이 아무리 빌보드 1위를 찍었다고 해도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만 기억하니까.
물론 미국에서도 클래식 전공자들, 특히 현악기 전공자들은 나를 거의 알아봤다.
바이올린 전공자들은 모조리 알아봤다.
하지만 재즈 전공자들에게 나는 여전히 아시아에서 온 유학생일 뿐.
스마트 폰을 꺼내서 내가 작곡한 영화 OST를 클릭했다.
바로 뉴욕 최고의 재즈클럽 블루 노트에서 촬영했던 그 곡.
내 폰에서 ‘In the crowd’가 흘러나왔다.
“어? 나 이 곡 알아. 영화 ‘April in New York’에서 어떤 피아니스트가 블루 노트에서 연주했던 음악이잖아. 이거 엄청 좋았는데.”
“진짜 그 곡이네. 모처럼 OST에서 재즈곡 제대로 나와서 좋아했었는데. 근데 이 곡이 왜?”
나는 그들의 눈을 하나씩 마주치며 싱긋 웃어 보였다.
“이거 내가 만든 곡이야. 연주도 내가 직접 했고.”
하지만, 못 믿겠다는 듯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보는 연주자들.
나는 내 폰을 그 녀석들에게 주었다.
“여기 봐 작곡자 이름.”
그들은 모두 머리를 맞대고 이름을 확인했다.
녀석들은 입을 벌린 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선 채로 굳어버렸다.
나는 유유히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고 내가 작곡한 곡이자 OST에 실렸던 ‘In the crowd’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피아노 연주가 끝나자 색소폰 연주자인 브래드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뭐야. 진작에 재즈에도 관심 있다고 말하지. 난 또 고리타분한 클래식만 하는 연주자인 줄.”
“내가 재즈에 관심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내 전공만으로 속단한 건 너잖아. 그리고 클래식은 고리타분하지도 않아.”
여전히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마치 내가 잘못한 것처럼 이야기 하는 브래드.
이번 내 모습을 보면서 브래드가 자신의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걸 깨닫길 바랐지만.
당장은 바뀌는 게 어려울 거라 이해는 한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유연한 태도를 가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신념이 아니라 ‘아집’이니까.
‘애먼 곳에서 버티면 부러진다는 걸 알면 좋겠네.’
나는 브래드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나는 클래식, 너는 재즈 이렇게 버스킹 한 번 해볼까? 배틀 컨셉으로 센트럴 파크에서 말이야.”
“지금 당장?”
“응, 네가 클래식보다 재즈가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아서. 확인해 보자. 나는 전부 클래식만 연주할게.”
브래드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웬 또라이한테 잘못 걸렸다는 표정이었다.
난 그의 무례를 두 번이나 이해해줬고, 그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길 바랐다.
하지만, 여전한 그에게는 강한 자극이 필요할 것 같아서 나도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난 적어도 음악을 하는 예술인이라면 이런 편견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수백 년을 타고 그렇게 흘러왔을지라도 앞으로도 같은 방향일 거라고 단정짓고 또 다른 장르를 폄하하는 것은 오만이고 편견이다.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드러머가 말했다.
“배틀을 어떻게 해? 누가 낫다고 판단이라도 해준다는 거야?”
“앞에 모금을 하는 거지. 그래서 더 돈을 많이 모으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관객들한텐 미리 설명하고.”
그러자 드러머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재밌겠는데? 아! 드럼을 지금 당장 옮길 수도 없고. 아쉽다. 나도 하고 싶은데.”
그러자 내 룸메이트인 조셉이 나를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난 네가 이런 성격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너 진짜 화끈한 녀석이었구나.”
그러자 브래드가 질 수 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좋아. 당장 가자고. 줄리어드 재즈 색소폰 전공의 실력을 보여주지. 난 올해 유일한 재즈 색소폰 전공 신입생이지만 넌 수많은 바이올린 전공자 중에 하나일 뿐이니까.”
예상처럼 녀석의 대답은 유치해서 대답해 줄 가치를 못 느꼈다.
“가자. 근데 돈은 어디다 담지?”
“악기 케이스 열어 놓으면 되지.”
“오케이.”
우리는 서둘러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모두 어이없어하면서 이 상황을 은근히 즐겼다.
내가 이 대결을 제안한 마음은 ‘클래식으로 이 녀석을 눌러버리겠어’라는 마음이 아니다.
‘클래식도 충분히 매력 있는 음악이야’라고 이 친구가 ‘포용’하길 바랄 뿐이다.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자신감 있는 신입생들.
게다가 줄리어드에 붙었으니 모두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시기일 것이다.
그런 자신감은 무대 위에 서는 연주자들에게는 굉장한 장점이지만 그게 오만으로 발전하면 곤란하다.
파가니니였을 때에도, 지금도 나는 내 음악에 자신이 있지만 언제나 훌륭한 음악가들을 보면 경외심이 앞섰으니까.
우리는 어떤 레파토리를 연주할지 왁자지껄 떠들면서 센트럴 파크로 향했다.
학교를 나와 브로드웨이와 콜럼버스 애비뉴가 만나는 교차로를 건너 65번 스트릿을 따라 3분 정도만 걸으면 바로 센트럴파크가 나온다.
한여름의 무더위는 이제 한풀 꺾이고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 시기.
센트럴 파크의 모습은 아직도 푸르렀다.
우리는 커다란 나무 밑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애초에 얘기했던 대로 서로의 악기 케이스를 앞에 열어 두었다.
셋팅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니, 저 멀리 비보이들이 묘기를 부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이 틀어놓은 음악 소리가 워낙 커서 아직은 우리 연주를 시작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조금 후 비보이들의 무대가 끝났고 우르르 그곳에 몰려있던 관광객들이 흩어지려고 했다.
나는 그 순간을 포착했다.
그리고 브래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이야. 사람들이 다 가버리기 전에. 일단 들어주는 사람은 있어야 뭐라도 하지.”
브래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색소폰을 크게 불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작한 연주였지만 선곡이 훌륭했다.
곡은 바로 재즈의 정수를 느끼게 해주는 ‘Mo’ better blues’였다.
아련한 재즈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곡.
여름의 끝자락에 선 센트럴 파크에 너무 잘 어울렸다.
끈적끈적한 느낌.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브래드의 색소폰 소리를 듣고 관광객과 뉴요커들이 우리 앞으로 몰려들었다.
‘성공이다.’
브래드의 연주가 끝나고 나는 모인 관객들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지금까지는 리허설이었고요, 이제 저희 연주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는 바이올린, 이 친구 는 색소폰입니다. 재미를 위해서, 저의 바이올린과 이 친구의 색소폰 중에서 더 좋은 연주였다고 생각되는 곳에 돈을 넣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 악기 케이스 보이시죠?”
비보이의 공연을 보고 모인 사람들이 웃었다.
그중 한 명의 어린 소년이 물었다.
“둘이 배틀하는 거예요? 그럼 이긴 사람이 돈은 다 가져요?”
“음, 그런 구체적인 얘기는 안 했는데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걸? 브래드 어때? 이긴 사람이 다 갖는 걸로.”
브래드가 관중을 의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인 사람들이 하늘 높이 손을 올려 박수를 쳤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열기가 달아올랐다.
브래드가 인사를 하더니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그건 바로 아까 연습실에서 친구들과 연주했던 루이스 프리마의 ‘Sing Sing Sing’이었다.
가만히 정자세로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곡.
예상대로 사람들은 점점 몰려들었고 급기야 옆에서 가볍게 춤추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리고 좀 전에 공연을 끝냈던 비보이들까지 우리 쪽으로 다가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우리의 버스킹이 시작되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