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72)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72화(172/250)
브래드의 색소폰은 부드러우면서도 파워풀 했다.
탁 트인 음색과 맑은 소리는 듣는이의 감탄을 자아냈다.
게다가 재즈 특유의 리듬감과 그루브는 그저 가만히 서서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자신감 넘칠 만했네.’
영화와 광고 음악으로도 자주 들을 수 있었던 친숙한 멜로디.
공명하는 듯한 힘이 넘치는 관악기의 경쾌한 소리가 탁 트인 공원에 청명하게 울려 퍼지자 점점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냥 학생들의 장난 같은 버스킹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뛰어난 연주 실력이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찍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났다.
브래드의 ‘Sing Sing Sing’ 연주가 끝나자 그의 악기 케이스엔 돈이 제법 많이 쌓였다.
브래드의 뒤를 이어 이번엔 내가 연주할 차례였다.
사방이 뚫려있고 도시의 소음마저 공존하는 곳.
색소폰의 음량에 비해 바이올린은 상대적으로 소리가 크지 않다.
나는 어떤 곡을 연주하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문득 이 상황과 계절에 잘 어울리는 곡을 떠올렸다.
바로 크라이슬러의 ‘아름다운 로즈마린’이 떠올랐다.
무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푸르름이 남은 센트럴 파크.
도시의 소음과 갑자기 만난 버스킹에 들뜬 관중들.
지금의 상황과 분위기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선곡이었다.
하지만 좀 전에 브래드가 연주한 곡에 비하면 임팩트가 부족하긴 했다.
‘시작은 부드럽게 끝은 강렬하게 끝내야지.’
조셉의 연주에 흥에 겨웠던 관중들이 조금 차분해지자 나는 곡의 제목을 소개했다.
“제가 연주할 곡은 크라이슬러의 ‘아름다운 로즈마린’이란 곡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만든 곡.
이름처럼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곡이다.
첫 곡인 만큼 사람들이 가볍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곡을 선택했다.
모두가 가벼운 차림으로 여유롭게 산책하는 공원.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기분 좋은 선율이 내 손끝을 타고 흘렀다.
Grazioso(우아하게)
악보에 표기된 ‘우아하게’란 악상.
업보우(올림활)로 조심스레 슬러 스타카토를 사랑스럽게 표현했다.
그리곤 셋잇단음표와 당김음 때문에 생기는 다양한 리듬의 변화를 경쾌하게 그려냈다.
이름처럼 아름다운 로즈마린이 연상되는 우아한 선율.
늦여름의 향기를 머금은 꽃잎이 향기롭게 로즈마린의 머리카락처럼 흩날렸다.
밝고 따스하게 그려지는 바이올린의 음색에 우리를 삥 둘러싼 관객의 표정까지 온화해졌다.
그들의 머릿속에도 나처럼 아름다운 로즈마린의 모습이 떠올랐을까?
움직이는 활 끝마다 피어오르는 우아한 악상이.
센트럴 파크의 푸른 숲길 사이 흙내음까지 파고들었다.
경쾌하게 시작한 첫 테마가 끝나고 왈츠 곡 같은 흥겨운 박자의 두 번째 테마로 이어지자.
관객들 중 몇몇 커플은 서로 바라보다가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어린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맑은 하늘.
그렇게 아름다운 악상이 높고 높은 하늘의 끝까지 선율을 늘어놓았다.
어떤 꼬마는 내 바로 앞까지 와서 빤히 연주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몰려들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한 줄에서 두 줄이 되고.
두 줄에서 세 줄이 되었다.
다시 빠른 스타카토의 첫 테마로 돌아가 힘차게 활을 들어 올리며 곡을 끝내자.
“와우!”
“브라보!”
겹겹이 모여 듣고 있던 관객들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춤을 추고 있던 커플들은 고개를 젖히거나 두 손을 하늘로 올리면서 제각기 멋진 포즈로 동작을 마무리하고.
모여 있던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연주자에 대한 감사를 표시했다.
나의 바이올린 케이스에도 동전과 지폐가 쌓였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센트럴 파크를 거닐던 수많은 사람들이 더더욱 많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브래드와 나는 계속 번갈아 가면서 재즈와 클래식을 연주했다.
우리의 음악은 센트럴 파크를 걷던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멈춰 서게 만들었다.
이제 두세 줄이 아니라 연주하는 자리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름 같이 몰려든 관중들.
저마다 즐거운 표정 속에 다음 곡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이제 나의 마지막 연주만 앞둔 상황이었다.
나는 반짝이는 관객들의 눈빛을 보면서 잠시 선곡을 고민했다.
그때, 쨍쨍하던 햇빛이 구름에 가려지면서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센트럴 파크의 커다란 나무들이 바람에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높은 나무들에서 들려오는 세찬 나뭇잎 소리와 떨어지는 잎사귀들.
‘그 곡이 좋겠네.’
Czardas(차르다시).
문득 이탈리아의 작곡가였던 비토리오 몬티의 곡이 떠올랐다.
원래는 만돌린을 위한 곡이었으나 바이올린으로 편곡되어 많이 연주되는 곡이었다.
차르다시는 헝가리의 민속 무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집시의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느릿하게 시작되는 도입부는 애잔한 느낌을 자아내고 뒤로는 휘몰아치듯 열정적으로 변한다.
나는 이 매력적인 곡을 연주하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은 뒤, 활을 바이올린에 올렸다.
애잔한 단조의 첫 음표들이 나뭇잎이 흩날리는 센트럴 파크의 침묵을 깨자.
“아….”
관객들 사이에서 웅성이듯 깊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우수에 찬 댄서가 눈을 감고 흐느적거리듯 애수에 찬 짙은 멜로디가 이어졌다.
관객들도 반쯤은 눈을 감고 바람에 흩날리는 음악을 무방비상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얼어붙은 듯 무아지경의 표정으로 연주에 빠져 있는 것이 보였다.
첫 테마의 클라이막스를 알리는 찌를 듯한 고음의 멜로디를 지날 때.
더 크게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나의 온몸에도 전율이 흘렀다.
그렇게 첫 테마가 끝난 찰나의 순간.
나는 다시 눈을 뜨고 관객을 바라보면서 살짝 미소를 지은 채.
대부분의 관객들은 예상하지 못할 반전의 두 번째 테마를 이어갔다.
아다지오(느리게)에서 알레그로 비바체(아주 빠르게 힘차게)로 갑자기 바뀌면서.
빠른 16분음표와 스타카토로 이어지는 정열적인 집시의 음악.
갑자기 커다란 나무 위에서 수십 마리의 새들이 날아오르면서 나뭇잎이 관객들 머리 위로 쏟아졌다.
온 힘을 다해서, 슬프지만 빠르게 춤을 이어가는 집시 댄서의 손끝부터 발끝까지.
댄서의 긴 눈썹과 날카로운 턱에서 가녀린 어깨로 흘러 내리는 섬세한 움직임을 활로 그렸다.
잠시 마음의 포근함을 주는 세 번째 테마를 지나.
연주는 다시 빠르게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활이 격정적으로 폭발했다.
강렬한 음들이 마구 쏟아졌다.
나의 연주를 지켜보는 관중들의 눈가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벌써 여러 곡을 연주했는데도.
야외 공연이기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만한데도 불구하고.
센트럴 파크를 채운 관중들의 마음은 더욱 뜨거워져 갔다.
나 역시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정식 공연이 아니라 해서.
유료 공연이 아니라 해서.
대충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순간.
그곳이 곧 무대이니까.
나에게는 작은 무대도, 큰 무대도 없다.
청중이 있는 모든 무대는 소중하다.
하나의 음도 소홀히 하지 않고 깊이 있는 감정을 담아 연주했다.
현장의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거침없는 보잉과 함께 혼신의 힘을 쏟아 집시의 음악을 재현해냈다.
집시의 영혼이 깃든 음악은 관중들의 마음을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이끌었다.
“Wow!”
연주가 끝나자 마치 콘서트 홀에 모인 관객들같이 사람들은 폭풍 같은 환호를 보냈다.
센트럴 파크에 모인 관중들은 내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마구 넣었다.
지폐를 들고나와 조심스레 케이스 안에 넣는 어린 소녀.
동전을 들고 나와 케이스에 넣는 소년.
너무 감동적이었다며 무려 20달러 지폐를 넣는 중년의 여인.
1달러 지폐를 넣는 배낭 여행객 등.
공연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작은 성의 표시가 고마웠다.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는 이제 1달러 지폐와 쿼터 동전 그리고 10달러와 20달러 지폐까지 가득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브래드의 케이스와 꽤 큰 차이가 나 보였다.
마지막 곡을 마치고 여전히 우리의 음악을 더 기다리는 사람들 앞으로 청바지에 회색 티셔츠를 입은 갈색 머리 남자가 기타를 맨 채 걸어왔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합주를 제안했다.
“나도 같이 한 곡 하면 어때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꽤 기분 좋은 제안이었다.
우리 셋이 같이 할 만한 곡이 뭐가 있을까 잠깐 생각했다.
그리곤 기타를 든 남자에게 물었다.
“Autumn leaves 아세요?”
“물론이죠. 제가 노래까지 같이 할 수 있어요. E 마이너 키로 할까요?”
“좋아요. 잠시만요.”
남자는 기타로 어텀리브즈의 기타 코드를 쳐보며 손을 풀었다.
나는 넋이 빠져있는 브래드에게 마지막 곡을 제안했다.
“우리 같이 Autumn leaves 연주하고 마무리 하면 어때? E 마이너 키로.”
얼이 빠져있던 브래드가 피식 웃었다.
그리곤 브래드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말로 ‘예스’하지 않아도 그건 긍정의 표시였다.
우리는 그렇게 즉흥적으로 재즈의 명곡인 ‘Autumn leaves’를 연주했다.
오늘 처음 만난 브래드의 색소폰과.
역시 오늘 처음 만난 이름 모를 남자의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기타가 둥둥 코드를 튕기며 베이스를 표현했다.
낯선 이들과 대화하듯이 조심스레 시작한 나의 바이올린.
단 한 번의 연습도 없이 관중들 앞에서 하는 즉흥 연주는 새로웠다.
묘한 떨림을 가진 채 서로의 악기와 맞춰가는 조화.
때로는 현란한 스케일로 애드립을 표현하기도.
때로는 서정적인 선율로 떨어지는 잎사귀를 표현하기도 했다.
풍부한 울림이 있는 색소폰의 음색까지 더해지자 센트럴 파크에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었다.
‘Autumn leaves’ 연주가 끝나고.
관중들은 갑작스레 이뤄진 버스킹의 놀라운 수준에 감탄을 거듭했다.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박수 소리와 수북하게 쌓여가는 동전과 지폐.
그런데 그때 익숙한 말이 들렸다.
“저희 한국에서 왔어요. 주원 씨.”
저쪽 뒤에서 한국 관광객으로 보이는 몇 명이 폴짝폴짝 뛰며 손을 흔들었다.
내 이름까지 아는 걸 보니 평소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인 듯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한국 분들 만나니까 너무 반갑네요.”
“바이올린 소리가 환상적이어서 발걸음을 멈췄는데 주원 씨가 있는 거예요. 완전 깜짝 놀랐죠. 사진 한 장 같이 찍어주세요.”
“물론이에요. 아! 바이올린도 들고 찍을게요.”
“좋아요!”
나는 우연히 만난 한국 관광객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기다리고 있던 브래드와 조셉의 팀 멤버들에게 갔다.
녀석들은 벌써 케이스의 돈의 액수를 모두 파악한 상태였다.
그리곤 엄청 놀란 표정이었다.
“브래드는 얼마고 나는 얼마야?”
그러자 조셉이 들뜬 표정으로 액수를 말해줬다.
“주원이는 지폐만 500달러가 넘어. 쿼터는 다 세지도 못했다고. 그럼 돈은 모두 주원이가 갖는 걸로. 너네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며.”
나는 일그러진 표정의 브래드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에 우리 같이 한 곡 참 좋았어. 그치?”
“어. 뭐 좀 괜찮았지.”
“우리 이 돈으로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내가 쏠게.”
“그러던지.”
브래드는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결과에 충격받은 듯 퉁명스러웠다.
우리는 센트럴 파크 근처의 작은 이탈리안 음식점에서 페퍼로니 피자와 마르게리타 피자를 주문했다.
조금 후,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피자가 나왔다.
따뜻한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자 오늘의 피로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브래드는 피자집으로 오는 동안 생각을 정리했는지 아까 전처럼 날이 선 느낌은 보이지 않았다.
피자를 우물우물 말없이 먹던 브래드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클래식 오늘 들어보니까 좀 괜찮더라. 내가 편견을 가졌던 것 같아.”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망설인 것 같은 브래드.
나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재즈도 너무 좋았어. 색소폰 소리도 그렇고.”
“그럼 다시 한 번 버스킹 할래?”
“나야 언제든지 좋지.”
그러자 모두 입을 모아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럴 바엔 다 같이 그냥 공연 하자고. 그게 훨씬 멋있잖아!”
“그래, 다 같이 하자고!”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