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78)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78화(178/250)
크리스토퍼 교수님이 가르치는 신입생 실내악 수업 클래스는 총 네 개.
모두 시간만 다를 뿐 같은 날에 있는 수업이었기에 교수님은 모스 리사이트홀의 사용을 하루 종일 허가받으셨다.
그리고 줄리어드 홈페이지에 공고도 잊지 않았다.
오늘 모스 홀에서 제가 맡은 실내악 수업 학생들의 공연이 연달아 있을 예정입니다. 와서 신입생들의 파릇파릇한 연주를 보시고 가장 좋은 공연에 투표해 주세요. 연주 감상평까지 있으면 학생들의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괴짜로 알려진 크리스토퍼 김 교수님은 판을 키우셨다.
다른 교수님의 실내악 수업을 듣는 신입생들은 우리를 부러워했다.
수업이 빈 신입생들은 모두 모스 홀로 공연을 보러 가겠다고 입을 모았다.
나도 기숙사 카페테리아에서 보러오겠다는 인사만 열 명도 넘게 받았다.
‘우리끼리 수업 시간에 하는 발표인 줄 알았는데 점점 스케일이 커지는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실내악 수업 발표날이 되었다.
우리는 최종 연습을 마쳤고 드디어 우리 수업 시간이 되었다.
엄연히 다른 친구들의 실내악 연주를 지켜보는 것도 수업의 일환이었다.
우리는 모두 우리 팀을 제외한 다른 팀의 연주에 대한 감상평을 적어서 제출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팀을 제외한 다른 팀들에게 점수를 줘야 했다.
마치 우리가 콩쿠르의 심사위원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아침부터 모스 홀은 신입생들의 실내악 앙상블 소리로 가득 찼다.
150개의 좌석이 있는 작은 홀.
무대를 위한 특별한 단상 없이 좌석과 무대가 그대로 이어진 홀이었다.
관객의 호흡을 코앞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크기였다.
첫 번째 팀은 미사키의 팀이었다.
미사키의 팀은 하얀색 상의에 검정색 하의로 옷을 맞춰 입고 나왔다.
미사키 팀의 곡목은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종달새’였다.
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 그리고 첼로가 경쾌한 멜로디로 밝은 악상을 펼쳤다.
곧이어 미사키가 움츠리는 날개를 펴듯 즐겁게 날아다니는 종달새의 모습을 바이올린으로 표현했다.
그녀의 하얀 블라우스가 종달새처럼 나풀거렸다.
들판에서 지저귀는 종달새처럼 밝고 화사한 음악이 모스 홀을 가득 채웠다.
경쾌하고 가벼운 음악이 완성도 높은 조화와 화성 속에 마무리되었다.
두 번째 팀의 곡목은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 1악장이었다.
느릿느릿 감정을 절제하며 연주하는 베토벤의 음악.
두 번째 팀의 앙상블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러면서도 악장 전체에 흐르는 적막한 분위기를 비통하고 애절하게 표현해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다른 팀의 연주를 들으며 감상평을 열심히 작성했다.
그리고 채점표의 기준에 의해 점수를 매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제나 시험이나 콩쿠르에서 채점을 당하지만 했던 학생들.
이렇게 여러 항목으로 누군가의 연주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시간 자체가 큰 도움이 되었다.
나 역시 그랬다.
이렇게 완성도 높은 연주를 보이기까지의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평가와 감상평을 적는 것에 신중했다.
세 번째 팀은 바로 파울로가 속한 팀의 연주였다.
파울로의 팀은 마치 정식 무대에 오르는 것처럼 제대로 된 의상을 갖춰 입었다.
남학생들은 넥타이와 함께 검정색 수트를 입었고 여학생들 역시 검정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곡목은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 D.810.
파가니니 콩쿠르 이후로 처음 듣는 파울로의 연주는 놀랍도록 성장해있었다.
연주의 테크닉이나 기술적인 측면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파울로의 개성이 넘치는 연주가 놀라웠다.
죽음의 신과 사투를 벌이는 듯한 파울로의 바이올린.
파울로는 붉은 머리 색만큼이나 통통 튀는 그만의 색깔을 다채롭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데 완벽하던 파울로의 연주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분명했다.
쫓아오는 죽음의 사신을 피해 도망치는 소녀가 막다른 곳에 도착한 듯 그들의 음악이 점점 더 긴박해졌다.
죽음을 직감하고 맞서는 소녀처럼 고통스러운 그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힘겹게 연주를 이어가던 파울로의 활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는 어떤 기억을 힘겹게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울음을 가까스로 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음악은 무르익어 갔고 절정을 향해 갔다.
그럴수록 그는 눈을 부릅뜨고 슬픔을 이겨내려 했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그의 음악을 잡아먹고 있었다.
그제야 다른 친구들도 파울로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듯했다.
감정의 동요에도 무사히 연주를 마친 파울로에게 난 큰 박수를 보냈다.
그리곤 이제 마지막 팀인 우리의 순서였다.
앞의 팀과 편성이 같았기에 무대 세팅이 변경될 일은 없었다.
교수님의 진행을 기다리며 뒤를 돌아보니 어느덧 홀의 좌석은 만석이었다.
모스 홀의 뒷자리는 빼곡히 선 학생들 때문에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보였다.
나를 볼 때마다 오늘 내 공연을 보러 오겠다던 신입생들도 잔뜩 보였다.
크리스토퍼 교수님은 서 있는 학생들을 보며 웃었다.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을 줄 알았으면 티켓을 팔아서 대목 한 번 잡을 걸 그랬군.”
모스 홀에는 한차례 웃음이 터졌다.
작은 홀에 열기가 가득 했고 모두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우리 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수님은 맨 앞자리에서 악기를 가지고 무대 위로 올라가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보며 곡을 설명하셨다.
“이 팀은 특이하게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곡을 선곡했네. 원래 편성은 반도네온, 바이올린, 기타, 피아노, 더블베이스의 5중주인데 이 곡을 어떻게 현악 4중주로 편곡했는지 궁금하군. 편곡 작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소피아는 본인의 뜻대로 하늘거리는 붉은색 롱 원피스를 입었다.
의상으로도 음악을 표현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남학생들은 모두 검정색 셔츠를 입었고 노타이 차림이었다.
우리는 박수를 받으며 조심스레 악기를 들고 무대로 나갔다.
오늘 우리가 연주할 곡목의 이름은 피아졸라가 작곡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사계 중 ‘항구의 겨울’과 ‘항구의 봄’이었다.
Las 4 Estaciones Portenas – Invierno Porteno, Primavera Porteno.
아직 피아졸라의 내면과 음악에 대해 알아갈 것이 많지만 2주간의 시간 동안 확실히 느낀 것이 있었다.
그의 음악 기저에 흐르는 도전적인 탱고의 정신.
육감적이며 때로는 자극적인 특성.
폭발하면서 흩어지는 유혹적인 음악.
그런 감성이 섞인 매혹적인 음악이었다.
튜닝을 한 후, 호흡을 가다듬은 우리 넷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한 번도 가보지 못 했지만 음악으로나마 끝없이 그려보았던.
부에노스 아이레스 항구의 겨울이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 * *
크리스토퍼 김 교수는 주원 팀의 무대를 유심히 지켜봤다.
클래식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주원의 이름은 호기심 그 자체이다.
지금 이 상황만 봐도 그렇다.
작은 홀을 가득 메운 학생들.
서서라도 보겠다고 뒷자리를 차지한 학생들.
주원은 신기한 음악가였다.
청중으로 하여금 음악에 몰입하고 공감하게 하는 능력을 가진 천상 음악가.
더 이상 발전할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바이올린 테크닉과 예술성을 겸비한 주원이었지만.
그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크리스토퍼 김 교수는 도서관에서 그가 피아졸라의 악보를 펴놓고 편곡 작업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켜지 않으면서 편곡 작업을 한다는 것이 기이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제 그때 하던 편곡을 직접 들을 수 있겠네.’
피아졸라는 작곡가이기 이전에 반도네온 연주자였다.
반도네온은 아코디언과 비슷한 악기이지만 훨씬 그 연주 방법이 까다롭고 정교했다.
반도네온의 음색을 어떻게 대체해 편곡했을까 궁금하던 크리스토퍼.
드디어 그들의 활이 천천히 움직였다.
느릿느릿 중독성 있게 깔리는 현들의 속삭임.
항구의 겨울은 스산하지만 아름다웠다.
끈적하게 흐르던 네 대의 현악기의 선율 너머 항구의 바닷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쓸쓸하게 흐르는 첼로의 묵직한 음색 위를 덮는 바이올린의 시리고 가느다란 고음.
어느새 변해버린 서늘한 바닷바람이.
네 대의 현을 격정적인 혼돈 속으로 뛰어들게 했다.
주원의 바이올린이 처연한 고음으로 그려낸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겨울.
제2 바이올린와 비올라가 그의 고음을 감싸 안았다.
‘많이 외로웠지. 많이 힘들었구나.’
속삭이는 현악기의 음색이 온몸을 지배했다.
서러움과 외로움이 사무쳤다.
버림받은 자의 겨울이었을까?
고통받은 자들의 추운 나날들이었을까?
‘누구에게나 그런 겨울이 있지.’
가슴 깊이 가진 상처를 건드리듯 주원의 바이올린이 조심스레 시린 선율을 노래했다.
조금씩 치유되는 마음을 똑똑 두드린 봄의 온기.
겨울이 지나고 어느덧 봄이 왔다.
유혹적인 탱고의 리듬과 함께 얽혀 들어가는 네 대의 현악기.
카랑카랑 거친 활시위에 뿜어져 나오는 역동적인 항구의 봄.
비올라와 어우러지는 첼로의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나직한 음색.
그 뒤를 파고드는 바이올린의 유혹.
긴장되는 박자의 당김음이 폭발하며 관능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다시 활기를 찾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항구에 불어오는 봄바람은 강렬했다.
‘반도네온도 피아노도 없이 이렇게 다채롭게 화성을 채우다니.’
군데군데 보이는 신선한 편곡 덕분에 더욱 곡이 새롭게 느껴졌다.
현악 4중주의 편곡으로 더욱 고전미를 갖춘 탱고의 묘미.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탐구하고 연습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더더욱 기대되는 음악이었다.
‘첫 발표인 만큼 편곡할 필요 없이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곡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힘든 길을 택한 주원의 선택이 멋있고 리더를 신뢰하는 팀원들의 연주도 조화로웠다.
매혹적인 현악기들의 음색과 대담한 연주는 관객 모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한 강렬한 리듬을 뿜어내는 네 명의 연주자들.
시작부터 끝까지 난무하는 당김음에 그려지는 탱고의 향기.
엉킨 듯 어지럽게 춤추는 댄서의 환상이 그려졌다.
서서히 그들의 그려낸 부에노스 아이레스 항구의 봄이 서서히 끝을 마주했다.
봄이 끝나도 여름이 오는 것처럼.
그들의 연주도 끝없이 계속되길.
크리스토퍼는 줄리어드의 교수가 된 이래 가장 흥미로운 시간을 보낼 것이 분명했다.
주원의 활 끝을 바라보는 세 명의 연주자.
그들은 마치 한 명의 연주자처럼 다운 보우(내림활)로 마지막 음표를 내리 그었다.
허공에 머문 활이 가쁜 숨과 함께 내려오자.
모스 홀을 채운 학생들이 뜨거운 박수를 쏟아냈다.
“와아아아!”
“Fantastic!”
어마어마한 박수 소리가 쉴새 없이 터져 나왔다.
휘파람 부는 소리, 열렬한 박수 소리와 함성에 달아오른 공기.
주원이 팀원들과 웃으며 다시 한번 인사했다.
크리스토퍼는 이 상황을 얼른 정리해야 했다.
일단 다른 팀들에 대한 감상평과 점수를 쓴 종이는 조교에게 전달하라는 지시를 했다.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완성도 높은 연주를 한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너희들은 모두 훌륭한 프로 연주자였어. 모두의 음악이 각기 다른 이유로 훌륭했다. 취합된 결과는 다음 수업 시간에 알려주겠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실내악 발표 수업이 마무리됐다.
* * *
폭발적인 환호화 함께 마친 우리의 앙상블.
친구들과 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악기를 들고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과 함께 실내악 수업이 마무리 되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에게 우르르 몰려든 신입생들과 선배들.
그들은 나에게 한결같은 부탁을 했다.
“오늘 편곡한 악보 좀 볼 수 있을까?”
“혹시 구매할 수 있는 악보일까? 현악 4중주 편곡은 처음 봤어. 너무 좋아서 연습하고 싶어.”
나는 그들에게 악보를 복사할 수 있게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들이 다 간 후, 함께 연습하느라 수고한 소피아와 페르난도 그리고 데이빗과 오늘 우리의 연주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때 페르난도가 나에게 말했다.
“너한테 아직 할 얘기 남은 애가 있나 봐.”
뒤를 돌아보니 서 있는 사람.
그건 바로 파울로였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