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80)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80화(180/250)
나는 왈리드의 집에서 뉴욕 예술고등학교 친구들과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진 뒤 헤어졌다.
왈리드와는 이번 주 주말에 소호에 위치한 화가의 작업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스트라디바리 협회에서 바이올린이 무사히 도착했다.
나는 연습할 때마다 두 개의 악기를 번갈아 사용했다.
아직까지 다 빈치의 소리를 찾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했다.
평생을 함께한다는 생각이니 마음이 급할 것도 없었다.
윌은 내가 연습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모두 담았다.
그러면서 KM 클래식 채널에 올릴 영상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악기 소리를 비교하는 컨텐츠를 만들려는데 괜찮겠어요?”
“같은 곡을 연주하고 구독자분들이 어느 악기인지 맞추는 컨셉으로요?”
“맞아요.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그럼 어떤 곡으로 하면 좋을지 고민해 봐야겠어요. 아직 다 빈치는 음색이 트이지가 않아서 너무 쉬울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윌의 눈이 보름달만 하게 커졌다.
“그럼 현재로서는 문성주 장인의 바이올린 음색이 더 좋다는 얘기인가요? 아무리 그래도 스트라디바리인데.”
“어느 게 더 좋다 나쁘다 단정 지어 말할 순 없지만요. 음을 그려내는 색깔이 다르다고 할까요? 지금으로서는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악기가 훨씬 힘이 있긴 해요.”
“오. 보통은 편견이 있어서 무조건 스트라디바리가 더 좋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렇다면 일단 윌한테 먼저 테스트를 해야겠네요.”
나는 어떤 곡목이 좋을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길이도 길지 않고 멜로디가 아름다운 곡이 뭐가 있을까? 아!’
순간 구독자 분들이 집중해서 듣기에 좋을 것 같은 곡이 떠올랐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v)
Vocalise Op. 34, No. 14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라흐마니노프.
그가 작곡했던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 외에도 ‘보칼리제’라는 명곡이 있다.
원래는 14개의 성악곡으로 작곡된 곡이었지만 14번만 가사 없이 모음(vowel)으로 부르는 곡이다.
일종의 무언가(無言歌)라 할 수 있다.
너무 아름다운 선율 때문에 현악기 연주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은 곡이었다.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조차 본인의 곡에 심취해 수십 번 반복해서 연주하곤 했다던 그 곡.
보칼리제를 두 대의 바이올린으로 연주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곡을 정하자 그 뒤는 수월해졌다.
몇 번의 연습을 한 뒤, 나는 윌을 바라봤다.
“이제 영상 촬영해도 될 것 같아요.”
처음엔 다 빈치를 꺼내 보칼리제를 연주했다.
아직은 본연의 색을 찾지 못한 다 빈치.
그럼에도 우울하기도 하며 때로는 서정적인 라흐마니노프의 감성을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다 빈치로 연주를 마친 뒤.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악기를 들었다.
Lentamente. Molto cantabile
느릿느릿. 매우 아름답게.
감정을 절제하며 내리그은 활.
활과 현이 밀착되며 만들어낸 음색은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세기의 음악가였던 라흐마니노프의 손끝에서 탄생한 굴곡진 선율.
절제하던 비브라토의 떨림이 커져 갈수록.
처연한 우울함이 드리워졌다.
힘 있지만 과하지 않고.
꿈꾸듯 아스라이 사라지는 마지막 E음의 페르마타를 끝으로.
시간이 멈춘 듯 음악과 활이 멈췄다.
내가 감은 눈을 뜨고 큰 호흡을 내쉬자 윌은 촬영을 끝맺었다.
“와, 숨이 막혀서 촬영이 힘들 정도였어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가까이서 이런 연주를 촬영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행운이네요.”
두 개의 악기로 연주를 모두 마친 뒤.
KM 클래식의 구독자들에게 스트라디바리가 나에게 온 경위를 간단히 설명한 뒤, 영상을 올리기로 했다.
영상의 타이틀은 ‘어느 악기로 연주한 것일까요?’로 정했다.
구독자들이 더욱 ‘소리’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윌은 헤드폰을 끼고 바로 편집 작업에 들어갔고 나는 ‘다 빈치’로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영상을 모두 만족스럽게 편집한 윌은 KM 클래식 채널에 바로 업로드했다.
영상을 올리자마자 구독자들의 반응은 열렬했다.
하지만 정답을 맞춘 사람보다 오답인 구독자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그 뜻은 할아버지의 악기 소리가 워낙 좋다는 뜻이고 아직 스트라디바리가 제 음색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구독자들은 재밌다며 2탄을 꼭 만들어 달라고 했다.
-다음 번엔 꼭 맞춰야지!
-경품으로 다음 번 한국 연주회 티켓 좀 걸어봐요. 지난번에 매진돼서 못 갔어요!!
-주원아. 2탄 꼭 만들어줘. 그리고 이제 제발 앨범 좀 내주면 안 되겠니?
여전한 구독자들의 사랑과 반응을 보며 감사했다.
그리고 마음 속에 작은 계획을 하나 더 세웠다.
‘다 빈치가 제 음색을 찾으면 레코딩을 해야지. 그리고 그걸 구독자 분들께 선물하는 거지.’
나의 음악이 머무른 시간을 선물하는 것만큼 값진 것은 없을 테니까.
* * *
날씨가 화창한 토요일.
나는 왈리드와 함께 소호에 위치한 화가의 작업실에 가기로 했다.
나는 ‘다 빈치’를 챙겨 기숙사를 나섰다.
오늘도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링컨센터 앞 분수대를 지나 지하철로 향했다.
뉴욕의 지하철은 서울처럼 깔끔하지 않다. 게다가 특유의 냄새까지.
뉴욕의 많은 곳이 마음에 들지만 지하철만큼은 서울이 정말 그리웠다.
‘그래도 지하철 없었으면 이렇게 편하게 못 다니지.’
조금 후 도착한 소호의 거리.
조그만 카페나 아기자기한 샵이 즐비한 거리를 거닐다 보니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따뜻한 느낌의 적갈색 벽돌 건물의 반지하.
왈리드가 알려준 주소는 이곳이 틀림없었다.
반지하의 투명 유리 안으로 화가가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잔뜩 물감이 묻은 앞치마를 한 청년.
삐죽삐죽 뻗은 갈색 머리와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화가는 고뇌하는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뭔가 동질감이 느껴지네. 나도 곡이 잘 안 풀릴 때는 딱 저 모습인데.’
창작자의 고통이 유리문 밖으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관계로 아직 왈리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화가의 작업실로 먼저 들어가기로 했다.
똑똑.
문을 두드린 후, 작업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왈리드 친구 주원이라고 합니다.”
“아, 오늘 같이 온다던 분이시군요. 들어오세요. 저는 빈센트 반 다이크라고 합니다. 근데 거기 발밑에 조심하세요.”
빈센트의 갑작스러운 경고에 발밑을 보니 바닥에 원래의 무늬인 것처럼 물감이 여기저기 튀어 있었다.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빈센트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물감 좀 묻어도 괜찮아요.”
“대부분 놀라길래요. 그럼 전 마저 작업할게요.”
“그럼 저는 저쪽 그림 좀 구경해도 될까요?”
“편하게 보세요. 단, 작품만 건드리지 않으면요. 아직 물감이 마르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요.”
작업실 안에는 물감 특유의 냄새와 종이 냄새가 풍겼다.
아늑한 작업실은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커다란 이젤에 아직 미완성으로 보이는 작품이 있었고 벽에 걸린 작품도 여러 개였다.
곳곳에 있는 다양한 크기의 붓과 물감들 때문에 조심스레 걷다가 한 그림 앞에 멈췄다.
채도가 낮은 색으로 스케치를 하다 만 듯한 미완성의 그림.
왈리드의 집에서 봤던 그림과 묘하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그림이구나. 이게 연작의 마지막 그림인가 보네. 한 번에 여러 작품을 동시에 그리나 봐.’
나 역시 한 곡을 작곡하다가 악상이 잘 떠오르지 않으면 다른 곡을 쓰곤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몇 년째 미완성인 곡이 있지.’
음악과 미술 사이 또 하나의 공통점을 찾으며 작품을 감상하던 나는 작업실이 주는 느낌과 향기에 취했다.
그리고 아직 미완성인 빈센트의 그림을 보면서 악상을 떠올렸다.
아직 그가 그리지 않은 부분까지 내가 상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나는 작업실 한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바이올린은 옆에 내려놓고 가방을 열어 작곡 노트를 펼쳤다.
그리곤 머릿속에 쏟아지는 음표를 흐르게 했다.
캔버스처럼 하얀 바탕에 검은 줄만 있었던 오선지가 어느새 빼곡하게 채워졌다.
누군가의 미완성 그림이 나에겐 넘쳐흐르는 영감이 되다니.
화가에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별안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빈센트와 나는 작업실의 각기 다른 공간에서 서로의 작업에 몰두해 있었다.
그때였다.
작업실 문이 활짝 열리고 소호 거리의 소음이 작업실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자동차 경적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소음과 얽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늦어서 미안해요. 어제 너무 늦게 잠드는 바람에 늦잠을 잤네.”
“좀 늦으면 어때요. 누가 잡아간답니까?”
빈센트의 말에 왈리드가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빈센트야 여기서 작업하는 게 일상이지만 오늘 주원이랑 약속했잖아요.”
“괜찮아, 나도 작업 중이었어.”
“뭐? 그림이라도 그리고 있었던 거야?”
“이것도 그림이라면 그림이지.”
나는 왈리드와 빈센트를 향해 음표가 빼곡한 작곡 노트를 흔들어 보였다.
노트를 본 왈리드는 눈가에 주름이 가도록 웃었다.
“여전하네. 변한 게 없구나. 너는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1등을 해도, 링컨센터에서 데뷔 연주회를 해도, 빌보드에서 1위를 해도 그대로구나.”
왈리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빈센트도 하던 작업을 멈추고 왈리드의 뒤를 따라 내 쪽으로 왔다.
왈리드는 내 노트를 보며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혹시 빈센트 그림을 보고 만든 곡인가?”
“맞아, 너네 집에서 본 그림 그리고 여기서 본 미완성의 그림까지.”
“아직 구상 중이구나.”
“어, 악기 편성에 따라 다르게 진행되면 재밌을 것 같아서. 그리고 전시 방법도. 그런데 그 전에 먼저 빈센트의 얘기를 듣고 싶어.”
나는 먼저 빈센트의 그림을 보며 느꼈던 점을 이야기 했다.
화가가 자신의 의도를 말하기 전에 내 느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후 빈센트에게 그림들의 의미를 물었다.
“작품이 가진 의미를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빈센트는 커다란 이젤 위의 미완성 그림 앞에 앉았다.
그리곤 한참 동안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기억을 가지고 있죠. 행복한 기억, 슬픈 기억, 간직하고 싶은 기억, 지우고 싶은 기억이요.”
빈센트는 자신의 삶에서 어떠한 경험들을 떠올리는 듯 애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이젤의 한 구석을 만지작거리다 우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그런 기억들이 희미해진다고 하죠. 또 누군가는 병으로 사랑하는 이의 얼굴과 이름조차 기억 못 하게 되고요. 저희 어머니처럼요.”
빈센트는 그림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그것 역시 음악가와 비슷했다.
삶의 기쁨이건 고통이건 컴플렉스건 모두가 소재가 되어버리는 창작자의 딜레마.
“어머니가 아프신가요?”
“알츠하이머예요. 제 얼굴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세요. 그런데도 저는 그림이나 그리고 있죠.”
그의 짐작할 수 없는 아픔에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기가 어려웠다.
빈센트는 어느새 무거워지고 숙연해진 분위기를 느꼈는지 박수를 한 번 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이런 얘기 불편하죠? 미안해요, 그래도 왈리드 친구라니까 마음이 편해졌네요. 이 작업실도 모두 왈리드가 구해줬고 저희 어머니 요양병원도 모두 왈리드가 비용을 내주고 있죠. 아버지의 알콜 중독 치료까지도요.”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왈리드도 분위기에 맞춰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나 자선사업가 아니에요. 빈센트의 작품에서 위대함을 봤기 때문이라니까요.”
“그렇게 말해주니 내가 대단한 화가라도 된 것 같네요. 아무튼 지금은 어머니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너무 편해요.”
짧은 시간 동안 빈센트의 작품이 주는 의미가 어렴풋이 이해됐다.
그의 작품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까지도.
‘아. 혹시 그래서였나?’
나는 왈리드와 빈센트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작곡 노트를 펼쳤다.
그리곤 그림의 미완성 부분을 상상해 작곡을 했다.
선율을 떠올리고 음표를 그리고.
음의 높낮이과 길이를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템포와 악상의 변화를 생각해 그려낸 악보.
그건 바로 빈센트가 완성하지 못한 미완성의 작품.
그가 그리지 못한 결말이었다.
그가 그려낸 결말은 나와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이건 그의 삶의 무게와 그림을 보고 내가 그려낸 엔딩이니까.
마지막 음표의 페르마타를 그리고 난 후, 나는 왈리드와 빈센트를 바라보았다.
“지금 연주해봐도 될까요? 빈센트의 그림과 삶을 보고 완성한 곡이니까요.”
“지금 여기서요? 좋아요. 이런 일은 처음이지만요.”
빈센트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유심히 바라봤다.
나는 그의 시선을 느끼며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었다.
그리고 아직은 음색이 트이지 못한 ‘다 빈치’로 미완성의 그림 앞에 섰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완성의 그림을 수도 없이 남긴 세기의 천재.
묘하게 상황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을 붙인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렸다.
알츠하이머로 아들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와의 행복했던 추억.
지금은 가슴 아픈 추억이 되어버린 그 추억의 끝이 결국 아름답게 남길 바라며.
나는 내가 상상한 그림의 결말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내 연주가 끝이 나고 한참 동안 곡의 여운이 작업실에 가득했다.
고요한 침묵만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을 때.
갑자기 빈센트가 부산스럽게 내 악보를 연신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지금 그 곡 다시 한 번만 더 연주해 줄 수 있어요? 지금이라면 이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