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82)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82화(182/250)
빈센트는 휠체어를 밀고 오는 자신의 아버지와 휠체어에 앉아있는 어머니를 보고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빈센트에게 미리 얘기하지 못한 것은 미안하지만 성사 여부를 백 퍼센트 확신하지 못했기에 그에겐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빈센트의 아버지는 왈리드의 도움으로 알코올 중독 재활 치료를 열심히 받으셨다고 한다.
아직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호전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소녀처럼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휠체어에 앉아계신 빈센트의 어머니.
그녀가 빈센트를 기억하지 못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눈빛이었다.
나는 아직도 넋을 놓고 있는 빈센트의 귀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연주하기 전에 잠깐 작품에 대해 짧게라도 소개해주면 어때요? 어머니가 얼마나 집중하실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어떻게 어머니와 아버지가 여기에…….”
“그건 나중에 얘기해 줄게요. 지금은 설명부터요.”
“그래야죠.”
휠체어에 앉은 빈센트의 어머니는 관객의 맨 앞까지 왔다.
빈센트의 바로 앞에 위치한 어머니와 아버지.
정신을 차린 빈센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떨렸던 그의 목소리도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갔다.
꾹 참은 감정이 터질까 봐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흘끔흘끔 시선이 갔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 그림을 설명할 때, 그는 그림이 아닌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저희 어머니는 제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신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사랑했던 가족을 모두 기억하길 지금도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도 만약 어머니가 끝내 못하신다면 제가 기억하면 되죠. 어머니가 기억하지 못 한다 해서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빈센트의 눈이 빨개지며 가까스로 울음을 참는 것이 느껴졌다.
“제 작품 속에서 영원히 우리는 함께 할 겁니다.”
기자들은 빈센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휠체어에 탄 여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휠체어에 앉은 여인이 빈센트의 어머니임을 직감하고 기자들은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까스로 울음을 참는 빈센트를 보며, 나는 이렇게 좋은 날에 빈센트가 관객들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게 할 수는 없었다.
빈센트의 옷을 살짝 뒤에서 잡아당겼다.
그리곤 이제 내가 연주를 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빈센트는 감정을 추스르고 나에게 바통을 넘겼다.
나는 아까 곡의 제목만 말하고 끝내지 못한 말을 짧게 마무리 지었다.
“그럼 지금부터 빈센트 반 다이크의 그림과 함께 두 곡의 연주를 시작하겠습니다. 연주가 끝나면 자유롭게 관람하셔도 좋습니다. 지금은 음악과 그림에 집중해 주세요.”
하얀 벽면을 채운 여섯 개의 작품.
작품마다 쓰인 화가의 이름과 작품의 크기 그리고 그림의 이름.
그 그림의 모티브가 된 휠체어에 앉은 여인을 앞에 두고 다 빈치를 어깨에 올렸다.
첫 번째 내가 연주할 곡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언(망각)이었다.
원래 피아졸라는 반도네온으로 이 곡을 연주했었지만 나는 오늘 바이올린으로 연주할 수 있게 편곡했다.
기존에도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연주자들이 있었지만 나는 빈센트의 그림에 더욱 어울리도록 심혈을 기울여 편곡을 했다.
빈센트의 어머니가 그토록 기억하려 했던 지난 시절.
기억하려고 하면 할수록 잊히는 추억들.
아스라이 사라지는 기억의 끝자락을 고스란히 담은 캔버스.
나는 차분히 호흡한 뒤 활을 현에 밀착시켰다.
가느다란 고음이 전시회장의 넓은 공간의 구석까지 아지랑이 피듯 퍼져 나갔다.
가슴이 먹먹한 선율이 흐른다.
선율은 다시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다시 흐트러진다.
아픈 기억은 빨리 잊는 것이 좋고.
행복한 기억은 오래 간직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내 머릿속 기억마저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
그렇게 뒤죽박죽 혼재된 내면의 모습을 그려내듯.
나의 활은 깊은 감정을 노래했다.
비브라토가 점점 두터워지고 진해질수록.
바이올린의 울림은 증폭됐다.
활의 보폭이 넓어지고 손가락이 지판 위로 올라갈수록 감정은 더더욱 깊은 골짜기로 떨어지려 했다.
애잔한 바이올린의 고음이 심장을 쿡쿡 찔러대면서 오블리비언의 클라이막스로 향하고 있을 그때.
갑자기 정적을 뚫고 들리는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빈센트!”
놀란 나는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목소리는 바로 빈센트의 어머니였으니까.
잔잔한 호숫가에 파문을 일으킨 돌멩이처럼.
그녀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
빈센트.
나는 연주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기억이 얼마 만에 돌아온 것인지.
얼마만큼 지속될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빈센트에게는 어느 때보다 소중할 이 순간을 그에게서 뺏을 수 없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인자한 눈빛으로 빈센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빈센트도 놀란 두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외침은 빈센트의 눈동자에 물보라를 일으켰다.
음악이 멈춘 뒤 쥐죽은 듯 조용해진 장내.
여섯 번째 그림 앞에 서 있던 빈센트는 비틀비틀 어머니 앞으로 걸어가더니, 갑자기 오열하며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엄마! 나를 알아 본 거야? 나, 빈센트, MoMA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어요. MoMA라고요….”
관객들은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에 당황했지만 이내 모두 사태를 파악했다.
그녀는 당신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펑펑 울고 있는 빈센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빈센트, 내가 지금 네 전시회에 와 있는 거구나. 정말 자랑스러워.”
빈센트의 어머니는 고개를 든 빈센트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며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전시회장에는 카메라 소리와 그들이 흐느끼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 * *
마리는 병원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안개가 낀 듯한 뿌연 머릿속.
굉장히 중요한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잊고 산다는 느낌이었다.
그것들을 기억하려 할수록 머리는 아팠고 그때마다 창밖 풍경을 보며 아픔을 견뎌냈다.
원래의 기억이 돌아오는 간격이 점점 길어지고, 지속되는 시간은 짧아졌다.
기억을 찾았다 돌아왔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가 여느 때처럼 창밖을 보고 있는데 친절한 사람들이 자신을 어딘가로 데려왔다.
휠체어를 타고 올라온 곳의 하얀 벽면에 그려진 그림들.
그림 속 사람들은 유난히도 낯이 익었다.
조금 후 들려온 바이올린 소리.
가느다란 고음의 바이올린 소리가 마리의 심장을 쿡쿡 바늘처럼 찔렀다.
연주가 뒤로 갈수록 바이올린 소리는 더욱 애절해졌다.
그리고 그 멜로디는 마리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절제하며 억누르는 슬픔을 표현하는 바이올린의 음색이 마리에게 속삭였다.
‘오늘은 아프지 않을 거야. 떠올릴 수 있어. 이 멜로디 익숙하지 않아?’
마리는 신비한 음색의 바이올린 소리에 취해 하얀 벽면을 채운 그림들을 다시 눈여겨 보았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그리고 마지막 시선이 멈춘 여섯 번째 그림.
애달픈 바이올린의 음색이 그녀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그녀가 다다른 곳은 공원.
공원에선 한 사람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멜로디언 같은 건반으로 된 악기.
하지만 세로로 세워져 몸에 붙여 연주하던 악기.
화창한 날씨와 다르게 아련한 슬픔이 베인 연주였다.
악기의 소리는 커졌다 작아졌다를 절묘하게 반복했다.
기억 속의 멜로디.
흐릿한 멜로디가 점차 뚜렷해졌다.
그리고 마리 앞에 보이는 두 사람.
열 살쯤 된 개구쟁이 빈센트와 남편 다니엘.
그들의 얼굴이 보였다.
애잔한 바이올린 소리와 아코디언 소리가 합쳐졌다.
그리곤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마리는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들, 빈센트인 것을 정확히 기억해냈다.
그리곤 외쳤다.
“빈센트!”
* * *
빈센트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이윽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 멜로디, 제가 정말 좋아하던 음악이었어요. 갑자기 기억났어요. 그림 속 공원, 우리가 자주 가던 공원에서 토마스가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던 음악이었거든요. 잊고 있던 걸 떠올리게 해줘서 고마워요.”
관객의 방해로 연주가 중단된 초유의 사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전시회에 온 모든 이들은 지금 벌어지는 상황에 감동할 뿐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옆자리에 서 있는 빈센트에게 신호를 보냈다.
연주를 시작해도 되겠냐는 눈짓이었다.
그는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어머니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나에게 미소와 함께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블리비언의 클라이막스.
나는 조용히 다시 중단되었던 연주를 이어갔다.
나도 그런 적이 꽤 많았다.
거리를 걷다 들은 음악.
그 순간이 음악과 함께 사진처럼 기억되는 경험.
‘나도 수없이 했었는데.’
빈센트의 어머니가 잠시 기억이 돌아온 것인지 일시적인 현상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감사했다.
잊었던 기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대신.
깊은 슬픔이 내면을 잠식하는 대신.
완전히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기억들이 차츰 돌아오길 바라며.
하나하나의 음에 빈센트와 어머니를 위한 나의 마음을 담았다.
그리고 가녀린 E현의 소리가 끝까지 어디론가 사라지는 듯한 마무리.
그렇게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언 연주를 마치자 숨죽인 관객들이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있는 빈센트의 촉촉한 눈빛을 마음에 새기며.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번엔 제가 작곡한 ‘기억’이라는 곡을 연주하겠습니다.”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현인 G현에서부터 시작된 오래된 기억은.
차츰 D현으로 또 A현으로 또 E현으로.
네 개의 현을 넘나들며 시간을 추억했다.
같은 시간을 공유했어도 다르게 기억될 수 있는 순간들.
그래도 그 안에 사랑이 있었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리고 그건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을, 그런 소중한 감정이었다.
짜낸 물감으로 아름다운 색상을 조합하듯.
그렇게 조합된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내듯.
나 역시 기억에 기억을 묻고.
또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냈다.
빈센트의 어두운 밑그림이 점점 밝아졌듯이.
그렇게 음악도 희망을 노래했다.
그 순간, 한 줄기 빛이 빈센트의 그림을 비췄다.
‘빈센트의 가족에게도 희망의 빛이 드리워지길.’
서정적인 멜로디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그려낸 악상.
이 곡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기억만 떠올리기를 바랐다.
‘슬픈 기억은 빨리 잊고 좋은 기억만 오랫동안 함께 하길.’
네 개의 현 위를 넘나드는 손가락이 만들어낸 선율.
음악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해왔다.
때로는 오늘처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도.
때로는 말이 필요 없는 경험도.
‘나에겐 모든 순간이 음악이었으니까.’
어느덧 두 곡의 연주가 끝났다.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언과 이어진 나의 자작곡 ‘기억’.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의 표정엔 기쁨이 가득했다.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내 음악을 들으면서.
빈센트의 그림을 보면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도 떠올린 것일까?
다른 건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바로 빈센트의 가족.
서로의 손을 꼭 잡은 그들은 지금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고 있다는 것을.
끝없는 박수 세례에 거듭 인사를 한 나는 바이올린을 손에 든 채, 빈센트의 옆으로 갔다.
전시회에 온 수많은 언론 매체의 기자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빈센트, 어머니께 직접 작품 소개다시 해드리는 건 어때요?”
“그럴게요. 정말 고마워요. 이 순간이 꿈만 같네요. 이 시간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빈센트는 휠체어를 밀며 부모님께 작품에 대해 다시 설명했다.
관람객들은 그 뒤를 조심스레 따르며 화가의 설명과 함께 작품을 감상했다.
나는 다시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려 이번엔 아까보다는 조금 더 작은 소리로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언과 내가 작곡한 ‘기억’을 연달아 연주했다.
그림과 음악이 다시 어우러졌고 관람객들의 시선과 얽혔다.
내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
가만히 내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
그렇게 한참 동안 음악과 미술로 사람들과 기억과 감정을 공유했다.
하얀 벽면을 채운 빈센트의 그림들.
나는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고.
그는 내 음악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내 음악을 듣고 삶의 한순간을 떠올렸다.
그렇게 우리의 음악과 그림은 누군가의 인생에 새로운 기억이 되었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