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88)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88화(188/250)
같은 하늘 아래, 두 명의 1인자는 있을 수 없다.
혼신의 힘을 다해 클래식만 파고 있는 자신이 여러 장르를 흘끔거리며 넘보는 주원 따위에 질 수는 없었다.
‘수백 년을 이어온 클래식보다 더 가치 있는 음악은 없어. 최고의 클래식이 뭔지 내가 가르쳐주지.’
블라디미르는 에이전시를 통해 뉴욕 언론과의 인터뷰를 서둘러 잡았다.
-블라디미르, 향후 계획에 대해 알려주시죠.
-저는 내년 벨기에에서 열리는 퀸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 출전할 것입니다.
-혹시 제이미 켈로그 쇼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주원의 대답을 보셨나요?
-네, 봤습니다. 그래서 오늘 기사를 주원이 꼭 봤으면 합니다. 그리고 남자답게 제 제안을 수락했으면 합니다.
-주원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내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출전해서 나랑 겨뤄봅시다. 나오지 않는다면 내가 두려워서라고 생각하겠습니다. 혹시 예선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겠죠? 뮤직 샤펠에서 꼭 같이 지내기를 기대하죠.
* * *
블라디미르의 계속된 도발이 있자, 이제는 줄리어드 학생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줄리어드에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준비하는 학생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블라디미르의 도발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콩쿠르에 참여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뭔가 또 다른 이유가 있어야 마음이 움직일 것 같았다.
그렇다고 녀석이 계속 여러 언론사에 내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깔끔하게 말을 없애려면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게 제일 간단하긴 한데.’
하지만 자신 있게 뱉었던 말과는 다르게 콩쿠르에 다시 나가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고민을 하던 나는 도로시 교수님과의 1:1 전공 실기 수업에 들어갔다.
교수님은 내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셨다.
그리고는 내가 뭔가 고민이 있다는 걸 눈치 채신 모양이었다.
“곡이 잘 안 써지기라도 하나요? 아니면 여자 친구 고민이라도?”
“그런 문제는 아닌데요. 고민이 있긴 해요.”
그러자 교수님의 시선이 하얀 벽 위에 있는 바이올린 모양 시계로 향했다.
“레슨 전에 십 분만 같이 얘기해 볼까요? 혹시 알아요? 나랑 얘기 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될지 말이에요. 일단, 들어나 봅시다.”
“실기 시간인데 이래도 될까요?”
“음악에 관한 고민이라면 당연히 되고, 사실 인생에 관한 고민이라도 괜찮아요. 그것 역시 음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요.”
나를 편안하게 해주려는 교수님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기도 했다.
모순된 내 마음의 방향을 말이다.
나는 도로시 교수님께 블라디미르가 나를 지속적으로 도발하는 사실에 대해 말씀드렸다.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자극적으로 도발하는 블라디미르를 보며 화가 났다는 얘기도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데 오로지 그 녀석의 도발 때문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도전하고 싶지는 않은 거죠. 제 마음이 어떤 건지 저도 모르겠어요. 파가니니 콩쿠르 때랑은 마음가짐이 다르거든요. 그때는 반드시 나가야만 했었어요.”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주저 없이 하곤 했다.
깊게 생각하기보단 먼저 행동했다.
하고 후회하는 것이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어느 한쪽으로 딱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았다.
블라디미르의 도발 외에도 뭔가 내 마음을 끄는 요소가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뭔가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란 생각이었다.
뒤죽박죽 정리되지 않은 내 심경을 토로하자, 교수님은 인자하게 웃었다.
“참 어려운 고민이네요. 보통의 학생들이라면 하지 않을 고민이기도 하고요.”
“그런가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혼란스러울수록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좋은 법이죠. 어린 학생이 부모에게 등 떠밀려 콩쿠르 나가는 상황도 아니고 말이에요.”
“그거야 그렇죠.”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는 독특한 특징이 있는 콩쿠르에요. 내 생각엔 룰을 살펴보면 답이 나올 것 같네요. 내가 생각하는 주원 군이 라면요.”
“그래요? 그럼 레슨 끝나고 바로 찾아봐야겠어요.”
기준을 정하자 머리가 조금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룰을 읽어봐도 내키지 않는다면 안 하면 그만이다.
아직까지 제대로 콩쿠르의 규정에 대해서 찾아보지 않았기에 파가니니 콩쿠르와의 차이점을 알지 못했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자 내가 대상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편견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블라디미르의 인터뷰에서도 이해 못 한 파트가 있었지.’
콩쿠르의 취지와 성격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거란 결론에 도달했다.
“교수님, 정말 교수님과 대화한 10분 동안 복잡했던 머리가 정리됐어요.”
“그럼 이제 레슨 시작해 볼까요?”
도로시 교수님과의 전공 실기 수업이 끝난 뒤, 나는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규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는 매년 열리지만 해마다 악기를 바꿔가며 열린다.
올해는 첼로 부문의 콩쿠르가 있었고 내년이 바이올린이 열리는 해였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는 특이한 점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파이널 리스트를 뮤직 샤펠이라는 공간에 합숙시킨다는 것.
게다가 그 기간 동안엔 핸드폰도 반납하고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생활을 해야 했다.
두 번째, 콩쿠르를 위해 작곡가에게 의뢰된 곡을 7일 전에야 준다는 것.
따라서 연주자들은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을 콩쿠르 기간에 받아 연습해서 무대 위에 올려야 하는 것이었다.
‘이건 엄청난 차이점이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엄청 흥미로운 일이었다.
콩쿠르를 위해 작곡가에게 의뢰된 현대곡.
그걸 동시에 받아서 연습을 시작하는 참가자들.
게다가 모두 한 공간에서 핸드폰도 없이 합숙을 한다는 것은?
‘아마도 연주자들끼리 새로운 곡에 대해서 토론이 펼쳐질 거야. 곡 해석에 관해서도 그렇고.’
굉장히 흥미로웠다.
독특한 규정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되는 과정일 것 같았다.
같은 무게를 든 저울처럼 팽팽하던 균형이 한쪽으로 드디어 기울었다.
‘역시, 도로시 교수님 말씀이 맞았어. 내가 이 부분에서 흥미를 느낄 걸 아셨던 거지.’
내가 알지 못하는 현시대 작곡가의 곡을 만나 또래 음악가들과 연습하고 연주하는 시간.
‘너무 재밌겠잖아?’
게다가 아직 콩쿠르까지 시간도 꽤 여유로운 편.
마음을 정하자 복잡했던 머릿속이 싹 정리가 됐다.
짐을 챙겨 도서관에서 나와 연습실로 향했다.
오늘은 친구들과 앙상블 연습을 하는 날이었다.
오늘 연습할 곡은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
오늘은 장웨이도 함께 연습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피아노까지 있는 편성으로 연습할 예정이었다.
연습실을 열자마자 보이는 풍경.
그건 정열적인 장웨이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페르난도와 소피아가 탱고를 추는 모습이었다.
탱고 특유의 리듬을 어려워하던 소피아는 어느새 정열적인 남미 여인처럼 리드미컬해졌다.
둘의 춤을 보며 신나게 피아노를 치는 장웨이.
장웨이는 피아노를 치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Amazing!”
서로를 바라보며 스텝을 밟던 소피아와 페르난도.
절도있는 동작과 표정이 자못 진지했다.
소피아는 빙그르르 몸을 돌며 페르난도의 손에 몸을 의지했고.
그런 둘은 무대 위의 탱고 댄서처럼 수준급의 춤을 선보였다.
손을 잡고 양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지켜보던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크게 박수를 치며 웃었다.
“너네 설마 댄스 전공으로 바꾸는 거 아니지?”
“그거 좋은 생각인데? 요즘 느끼는 건데 춤추는 게 너무 신나. 음악을 몸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처음 봤을 땐 상상도 못했던 소피아의 반전이었다.
정교한 바흐의 곡을 가장 좋아한다던 소피아와 피아졸라의 만남은 운명이었나보다.
앙상블 연습을 제대로 시작하기 전에 나는 편곡자로서 음악의 방향을 설명했다.
“오늘은 장웨이도 함께 연습하니까 사운드가 더 꽉 차서 좋을 것 같아. 데이빗이랑 나는 도입부에서 악기의 바디를 타악기처럼 두드리자. 리듬을 제대로 살리고 싶어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나는 데이빗에게 바이올린의 바디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데이빗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첼로로 내가 한 방법을 따라해 보았다.
모든 준비가 끝난 우리는 리베르 탱고의 연습을 시작했다.
페르난도와 소피아가 이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연습하긴 했지만.
사실 이 곡은 춤을 위한 음악이 아니었다.
오로지 춤만을 위한 탱고에서 벗어나 연주 음악으로 발전을 꾀하며 만들어 냈던 ‘누에보 탱고’의 시초.
그게 리베르 탱고였으니까.
첼로의 두터운 피치카토로 시작한 음악.
나는 그 위에 자유로운 리듬을 가볍게 얹었다.
마치 타악기를 치듯이 바이올린의 바디를 두드리는 손가락의 절도있는 움직임.
첼로를 연주하는 데이빗 역시 첼로를 몸에 감싸고 바디를 두드리며 리듬을 표현했다.
열정적이지만 슬픈.
화려하지만 애환이 담긴.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음색 사이로.
첼로와 피아노의 선율이 얽히고 쌓여 오묘한 화성이 만들어졌다.
나는 관능적이며 로맨틱한 탱고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드러나도록 더욱 거칠게 활을 그었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리듬에 모두가 점점 취하고 있었다.
때로는 끈적끈적하게.
때로는 과감하게.
애절한 현악기의 음색과 자신감 있는 장웨이의 피아노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다운보우로 활을 내리 그으며 절도있게 끝맺은 마지막 음표.
짧은 순간 곡에 몰입해 에너지를 쏟아냈기에 모두의 만족도는 최상이었다.
데이빗은 첼로의 바디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즐거워했다.
“주원아, 이 편곡 반도네온이 없는데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고 탱고의 묘미까지 제대로 살린 것 같아. 너무 마음에 들어.”
“피아노 들어가게 편곡하니까 느낌이 더 잘 살더라고. 편곡하면서 진짜 재밌었다니까. 새로운 작곡가의 곡을 편곡할수록 실력이 느는 듯.”
“여기서 주원이 실력이 더 는다고?”
장웨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모두 크게 웃었다.
줄리어드의 친구들과 함께 이런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그 누구의 강요도 없이.
온전히 음악을 즐기는 순간.
부족한 음악을 서로의 생각과 연습으로 메꾸는 과정.
완벽하지 않아도 좋았고.
완벽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웠다.
그건 앞으로 우리의 음악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만족스러운 연습이 끝나고 친구들과 학교 앞에서 피자를 먹으러 가려는 중이었다.
짐을 챙겨 나오려는데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피자가게에 가 있으라고 손짓을 한 뒤, 연습실에 혼자 남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바이올리니스트 문주원 씨죠?
-네, 맞아요. 누구시죠?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담당자입니다.
-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담당 자요? 아니 어떻게….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도 아닐 테고.
이럴 수는 없었다.
오싹오싹 소름이 돋았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