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90)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90화(190/250)
높고 커다란 성에 왕이 입장하는 것처럼.
나와 장웨이는 행진곡 풍의 경쾌한 리듬을 피아노로 연주했다.
이어서 현악기가 절도있게 활을 그으며 용맹스러운 누군가의 걸음을 표현했다.
악기를 바꿔가며 반복되는 웅장한테마.
늠름한 누군가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낸 선율.
한 옥타브 올라간 위치에서 다시 주제 테마가 반복되었다.
때로는 포효하기도, 때로는 늠름하기도 한 현악기의 조화가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2분 남짓의 연주가 끝나자 아이들이 한 명씩 소리치기 시작했다.
“공룡이요!”
“박쥐 같아요!”
“뱀이요!”
“아르마딜로!”
친구들의 엉뚱한 대답을 듣자 아이들은 꺄르르 웃음이 터졌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대답을 들은 나는 파울로를 쳐다보았다.
“파울로, 도입부 테마 좀 한 번만 연주해줄래?”
파울로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아이들을 향해 ‘쉿’ 손가락을 입에 댔다.
아이들은 조그만 두 손으로 입을 꾹 막고는 숨죽였다.
아이들이 집중하는 사이, 파울로가 바이올린으로 늠름하고 위엄있는 동작을 표현했다.
파울로의 연주를 유심히 듣던 한 어린이가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사자요! 사자의 걸음걸이 같았어요.”
“앗, 정말 사자 같아요!”
뛰어난 관찰력으로 정답을 말하는 아이들이 생겨났고 난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잘했어요. 동물의 왕인 사자의 위엄있는 모습을 표현한 곡이었어요. 그럼 다음 곡 힌트를 줄게요.”
“네!!”
“동물도 남자, 여자가 있죠? 그걸 생각하면서 한 번 들어봐요.”
어느새 아이들은 굉장히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떠들까 봐 양해를 구하던 선생님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불안정한 음계를 치는 피아노.
역시 불안정한 음계로 연주하는 첼로와 비올라.
이어지는 클라리넷의 오묘한 멜로디.
바쁘게 움직이며 먹이를 쪼아먹는 누군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악기들의 다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쾅.
피아노의 겹음으로 성급하게 끝난 엔딩.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곡의 익살스러운 분위기가 매력적인 곡이었다.
“어려워요. 생각이 안 나요.”
“개미요!”
“땡.”
“두더지요!”
“땡.”
오답 퍼레이드에도 아이들은 좋다며 웃었다.
도저히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기에 나는 직접 답을 말해 줄 수밖에 없었다.
“암탉과 수탉이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모이를 쪼아먹는 모습을 상상해봐요. 비슷하지 않아요?”
“본 적이 없어서 몰라요!”
“크큭.”
아이들은 천진난만했고 우리는 설명과 연주 그리고 정답을 맞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3번 곡인 당나귀 – 길들여지지 않은 천방지축 당나귀가 들판을 뛰어가는 것처럼.
속도감 있는 피아노의 연주로 뛰노는 당나귀의 모습을 표현했다.
그 뒤로도 엉금엉금 거북이, 묵직한 코끼리 그리고 겅중겅중 뛰는 캥거루를 지나.
이제 제7번 곡을 연주할 차례가 되었다.
“제가 개인적으로 동물의 사육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에요. 여러분이 이 곡을 들으면 특별한 상상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어떤 동물들이 모여 사는 곳일까 한 번 생각해보세요.”
길이가 짧은 곡들이었고 곡마다 특색이 다르다 보니 아이들이 전혀 지루해하지 않았다.
게다가 매 곡마다 미션이 주어지니 더더욱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파란 물속.
유유자적 헤엄치는 생명들.
누군가는 바위 뒤로.
누군가는 수초 뒤로.
혼자 또는 무리 지어 헤엄치는 이들.
피아노가 끊임없이 펼치는 화음들.
그들이 불러일으키는 몽환적인 환상 속에서.
누군가의 움직임 때문에 물은 계속 흔들렸다.
피아노와 현악기의 아름다운 조화가 이끄는 신비한 물속 세계.
플룻의 나긋나긋한 음색이 평화로운 물속 풍경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하지만 완벽한 자유로움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느껴지는 속박.
툭하고 터지지 않는 환상 속 물의 정경.
아름답지만 자유롭지 않은 신비의 음악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아이들 역시 음악이 주는 몽롱함에 취한 듯.
홀린 눈으로 입을 벌린 채 감동한 눈치였다.
연주가 끝나자 제일 먼저 앞에 앉은 여학생이 감탄했다.
“마법 속 나라 같았어요.”
“아름답고 신비했어요.”
“물고기 같아요.”
“인어공주가 사는 바닷 속 성이요.”
“기분이 몽글몽글 상상 속 나라 같아요.”
‘역시 아이들은 상상력이 뛰어나다니까.’
오답이지만 아이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훌륭했다.
“멋진 대답이었어요. 아마 작곡가 생상스 아저씨도 여러분의 제목을 들으면 바꾸고 싶을 만큼요.”
곡의 제목을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이제는 답을 말해줄 차례였다.
“이 곡의 이름은 아쿠아리움(수족관)이었어요.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수조에서 유유자적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모습이 연상되나요?”
“이름을 듣고 보니 정말 잘 어울려요.”
“나중에 이 곡을 들으면 한 번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의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다.
아쉽지만 준비된 시간은 여기까지였다.
앙상블 멤버를 일으켜 세워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데 아이들이 너무 아쉬워했다.
그러더니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한 곡만 더 해주면 안 돼요?”
“다음에 또 와줄 거예요?”
아이들의 요청이 쇄도하자 나는 난처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선생님도 난처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시던 그때, 파울로가 바이올린을 들고 일어서더니 성큼성큼 내 옆으로 왔다.
그리곤 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내가 아주 멋지고 빠른 곡을 연주해 줄게. 바이올린 곡 중에 가장 유명하다고 보면 될 거야.”
“와아!”
아이들이 연주가 끝이 아니란 사실에 환호했다.
파울로가 연주한 곡은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이었다.
시작과 동시에 터진 환호성.
아이들은 넋을 놓고 파울로의 연주를 감상했다.
어떤 아이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의 아쉬움을 만회라도 하듯.
마치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연주하는 것처럼 멋지게 연주를 끝낸 파울로.
연주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소리쳤다.
“한번 더! 한번 더!”
“너무 멋있어요.”
“형이 세상에서 바이올린을 제일 잘 켜는 거죠?”
“야! 당연한 걸 말하고 그래.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졸지에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파울로는 나를 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씨익 입꼬리가 올라가는 파울로의 모습을 보자 결심했다.
‘나도 애들한테 한번 들려줘야겠는걸.’
그리곤 선생님께 부탁했다.
“선생님 진짜 마지막 한 곡만 더 해도 될까요? 아주 짧은 곡으로 할게요.”
선생님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가 바이올린을 집어 들자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지금 저 형이 세계 최고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하니까 도전하는 분위기 아니야?”
“그럼 누가 최고인지 우리가 들어보고 말해주자.”
아이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난 뭐, 굳이 파울로를 이기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굳이 그렇다기 보다는.
아이들에게 내 연주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곤 회심의 카드를 꺼냈다.
“내가 정말 빠른 연주를 보여 줄게. 게다가 이번엔 곤충에 관한 음악이야. 어떤 곤충일지 상상해 봐.”
“에이, 진짜 곤충 음악도 있어요?”
“징그러운 음악이에요?”
음악이 징그럽다니.
‘징그러운 감정은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궁금하긴 하네.’
아이들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음악이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난 아이들에게 신기하면서도 재밌는 곡을 보여 줄 작정이었다.
나는 파울로를 향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는, 엄청나게 빠른 트레몰로로 시작되는 이 곡을 시작했다.
“…!”
아이들이 흠칫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듣기 시작한 곡.
러시아 작곡가 림스키 코르샤코프의 ‘왕벌의 비행’이었다.
이 곡은 원래 관현악곡이었지만 피아노로 편곡된 곡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바이올린으로 편곡한 버전이 벌떼의 울림을 더욱 완벽히 표현해 주는 것 같아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었다.
고음과 저음을 넘나드는 트레몰로로 벌떼의 날개 소리를 더욱 리얼하게 연주하고 있던 그때.
“여기 말벌 들어온 것 같아!”
“꺄악!”
어떤 아이가 진짜 벌이 나타난 줄 알았는지 소리치자, 옆에 있던 여자 아이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순간 모든 아이들이 잠깐 그 두 명의 친구들을 쳐다보면서 한바탕 웃고.
나의 연주는 작은 저음의 트레몰로로 뭔가 주변을 맴도는 벌들의 모습을 계속 그려나갔다.
그러다가 활을 멈추고 피치카토로 현을 퉁퉁 튕기며 내가 아이들을 보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자.
“와하하하!”
아이들 사이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나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트레몰로의 향연을 계속 이어나갔다.
저음에서 고음으로 계속 올라가면서 빠르게 진행되는 속주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보는 아이들.
그건 바로 음악에 깊이 빠져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허리를 뒤로 꺾으며 락커 같은 몸짓으로 약간의 쇼를 보여주었다.
1분 조금 넘는 짧은 곡의 마무리는 원곡과는 다른 약간 우스꽝스러운 스프링 튀는 소리로 끝내고 활을 높이 치켜들자.
아이들은 어떻게 연주가 모두 끝난 줄 알았는지 한꺼번에 환호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우와!”
나는 마치 연미복을 입은 연주자처럼 아이들에게 허리를 숙이고 팔을 아래로 내려 꾸벅 인사를 했고.
그래도 박수가 계속되자 마치 커다란 무대에서 커튼콜 인사를 하듯 다시 한번 또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미 정답이 나왔죠? 이 곡의 이름은 ‘왕벌의 비행’이에요.”
연주 중간에 소리를 질러 조금은 연주를 방해했던 아이가 나와 눈이 마주치며 멋쩍은 듯 웃었고.
나는 그 아이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진짜 창문 밖에서 벌이 들어왔던 건 아니었죠? 제 연주를 들으면서 정말 벌을 떠올려 줘서 고마워요.”
그러자 아이는 용서를 받은 것 같이 편안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더 외쳤다.
“My pleasure!”
다른 아이들에게서 다시 폭소가 터졌다.
어쩌면 연주 중간에 난입하고 다른 아이들을 놀라게 한 그 아이에게 짜증을 낼 수도 있었지만.
순진하게 고마움을 받아들이는 친구를 웃음으로 용서하며 연주 시간을 즐기는 밝은 아이들.
어느 다른 연주에서도 느낄 수 없는 행복하고 뭉클한 순간이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여러분 뒤에 수업 있다면서요.”
“수업보다 이게 더 재밌어요.”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음악이 아주 예쁘고 멋있었어요.”
진심으로 감동 받은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아이들에게 다음을 약속했다.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봉사 연주를 신청하셨던 선생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오늘 수고 많았어요. 이렇게 멋진 연주를 아이들과 선생님들께 선물해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모두에게 잊지 못할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과 인사가 끝나자 몇몇 아이들이 내 주변을 서성였다.
그러더니 그중,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곱슬머리 여자 아이가 종이를 전해주었다.
7~8살쯤 되어 보이는 학생이었다.
“나 주는 거야?”
“네, 음악 들으면서 그렸어요.”
아이가 건네 준 종이에는 오늘 우리가 연주했던 동물의 모습이 모두 그려져 있었다.
사자, 암탉과 수탉, 당나귀, 수족관 속 물고기 그리고 파울로가 연주한 백조와 내가 연주한 왕벌까지!
그리고 거기엔 한 줄의 짤막한 글도 써 있었다.
-다음에 꼭 다시 와주세요. 제 평생 들은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음악이었어요.
나는 무릎을 굽혀 앉아 학생과 눈을 맞췄다.
그리곤 약속했다.
“다음엔 더 좋은 곡 가지고 꼭 올게.”
볼이 발그레해진 아이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연주를 한 친구들도 어린 학생이 준 그림편지를 돌려보며 감동 받았다.
장웨이는 거짓말을 조금 보태 눈물까지 글썽였다.
“저 어린아이에게 평생의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음악을 우리가 들려줬다니. 음악가로서 이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야.”
그러자 미사키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오면서 할렘이라 위험하다고 걱정했던 내 자신을 반성해. 그림 편지는 사진 찍어서 평생 간직해야지.”
소녀의 작은 세상에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음악을 선물한 나와 친구들.
그런 우리에게 되돌아온 소녀의 진심이 담긴 그림 편지.
나는 한동안 물끄러미 서툰 솜씨로 그린 귀여운 그림을 바라보았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