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212)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212화(212/250)
주원과 눈이 마주친 브래들리.
그는 5분 전부터 일어난 일들이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알파벳 순서대로 1라운드 통과자의 성이 T까지 불렸을 때 벌써 23명째였다.
마음 속으로 체념하고 있는데 들려왔던 심사위원장의 목소리.
“영국에서 온 브래들리 짐머 (Bradley Zimmer)!”
마지막 콩쿠르에서도 쓸쓸히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슬픈 생각과 정말 마지막 순간의 실낱같은 기적을 바라고 있었던 순간.
심사위원장의 입에서 드디어 자신의 이름이 울려 퍼진 것이다.
“으아! 으아!”
브래들리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면서 조용했던 콩쿠르 홀에 비명을 쩌렁쩌렁 울리게 하고 말았다.
그러자, 홀에 앉아 있었던 모든 관객의 눈과 카메라들이 일거에 브래들리를 향해 시선을 꽂았다.
이름을 불렀던 심사위원장도 처음에는 벌떡 일어나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브래들리를 보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아빠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한 번 마이크를 잡았다.
“마지막 1라운드 통과자는 영국에서 온 브래들리 짐머. 축하합니다!”
일어서 있는 브래들리를 향해 모든 관객들이 우렁찬 박수를 보냈다.
멍하니 서 있는 브래들리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지난 세월이 흘러 지나갔다.
올해가 콩쿠르에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인 거 이왕이면 가장 큰 콩쿠르에 도전하고 끝내자는 마음이었다.
언제나 무대 위에만 서면 위축되고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브래들리였기에.
사전심사만 통과한 것도 감사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곳에 와서도 축제처럼 마지막을 즐기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세미파이널에 올라가다니.’
브래들리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교차했고 끝까지 자신을 응원해 주었던 어머니와 여자 친구, 애슐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브래들리는 이번 콩쿠르를 마지막으로 연주자의 길 대신 교직을 알아보기로 애슐리와 약속한 터였다.
“합격하신 24명의 참가자들은 기념 촬영이 있으니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언론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주원과 블라디미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2위를 했던 파울로 만치니의 모습도 보였다.
‘내가 이런 사람들과 같이 호명되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야. 믿을 수 없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무대 위로 올라간 브래들리는 24명의 합격자와 함께 미소를 지으며 기념 촬영을 했다.
믿을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브래들리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플라제의 스튜디오 4를 나왔다.
그렇게 건물 안의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는데.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주원과 파울로가 같이 서 있었다.
“브래들리, 안녕하세요! 오늘의 주인공은 브래들리예요! 다시 한번 정말 축하드려요.”
주원은 자신의 사연을 어떻게 기억했는지 이야기를 이어 갔다.
“파티에서 우리 얘기 나눴었잖아요. 올해가 콩쿠르 출전할 수 있는 마지막이라고 하셨는데 진심으로 축하해요.”
주원과 파울로에게 감사 인사를 했지만, 브래들리는 마냥 기뻐하는 표정을 짓지 못했다.
갑자기 걱정이 밀려왔다.
사실 브래들리는 자신이 세미파이널에 붙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세미파이널에서는 미발표 현대곡을 연주해야 한다.
콩쿠르 참가 확정과 함께 주최 측에게서 세미파이널의 악보를 받은 것은 약 한 달 전.
다른 세미파이널 곡인 바이올린 소나타나 협주곡 등은 그나마 예전부터 종종 연주하던 곡이었지만.
처음 접한 미발표 현대곡은 솔직히 연습도 충분히 하지 못한 채 브뤼셀에 왔다.
‘내가 뭘 하는 거지? 얼른 가서 현대곡 악보라도 읽어야겠다.’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실수를 거듭하는 연주 영상이 인터넷에 평생 박제될 거라 생각하면 끔찍했다.
‘나 같은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기권을 해야 할까?’
1라운드에 합격한 기쁨은 잠시였다.
갑자기 세미파이널 무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브래들리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너무나 해맑게 웃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을 축하하고 응원하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를 보자.
브래들리는 불현듯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히 주원에게 말하기로 했다.
“주원 씨. 글렌 캠프의 미발표곡 있잖아요, 당연히 주원 씨는 완벽히 준비하셨겠죠?”
“아뇨. 그 곡은 저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스타일의 곡이었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완벽하진 않아요. 그런데 왜 그러시죠?”
“제가 1라운드를 통과할 거라곤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무대에만 서면 긴장해서 실력 발휘를 못 하는 편이라서요.”
브래들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조금 망설였다.
“저, 혹시 주원 씨가 현대곡 연습하는 모습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제가 감만 잡았으면 해서요. 도통 그 곡에 대한 감을 잡지 못했거든요.”
브래들리의 말을 듣고 옆에 있던 파울로가 깜짝 놀랐다.
“주원아, 그건 안 돼. 엄연히 콩쿠르 중간인데. 네 해석을 가로챌 수도 있잖아.”
브래들리는 생각지도 못한 파울로의 말에 한숨을 쉴 뿐이었다.
‘맞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 내가 너무 실례했어.’
사과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주원이 브래들리를 붙잡았다.
“파울로 말대로 엄연히 우리는 콩쿠르 중이지만, 제가 연습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면 오세요. 내일 오전에 제가 연습하는 곳으로요.”
“정말 그래도 될까요? 말하고 보니 너무 어처구니없는 부탁 같아서요. 주원 씨에게도 중요한 콩쿠르일 텐데요.”
“물론, 제게도 중요한 콩쿠르이고 최선을 다할 겁니다. 하지만 제가 연습하는 것만 봐도 브래들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굳이 거절할 이유 없는 것 같아서요. 다른 나쁜 의도가 보이지도 않고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 * *
브래들리는 연신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리고 내가 머물고 있는 마르타의 집 주소를 적어갔다.
파울로는 내 옆에서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다.
“야! 너, 예전에 내가 파가니니 콩쿠르 때 연습하는 거 보여달라고 했을 땐 거절했잖아.”
“그땐 네 눈빛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지금이랑은 좀 달랐어.”
“뭐라고? 그때 내 눈빛이 뭐가 어때서!”
“그땐 누가 봐도 음흉한 사람의 눈빛이었다고. 난 또. 파울로, 네가 나 걱정해서 표정이 구겨진 줄 알았더니 따지려는 거였어?”
“뭐야. 아무리 그때 내 눈빛이 안 좋아도 그렇지, 왜 사람 차별해.”
파울로가 화가 난 듯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 뭔지 알겠어. 넌 나만 라이벌로 의식하는 거구나. 브래들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인 거고. 내 말 맞지?”
어처구니없는 결론이었다.
나는 그때 파울로의 실력도 몰랐고 지금 브래들리의 바이올린 실력도 모른다.
하지만 난 브래들리의 눈빛에서 간절함을 읽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작은 산만 넘어보자는 마음도 분명 존재할 테니까.
브래들리가 1라운드에 통과할 줄 몰랐다는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물론 콩쿠르에 도전하는 내 마음도 결코 가볍지 않다.
반드시 우승을 해야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은 없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다짐은 수도 없이 했으니까.
게다가 브래들리가 제대로 연습하지 못했다는 콩쿠르의 위촉 작곡가인 글렌 캠프의 곡은 굉장히 까다로운 곡이었다.
나 역시 콩쿠르 측으로부터 악보를 받은 한 달 전부터 연습을 시작했지만 꽤 고난의 시간을 겪었다.
브래들리와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평생 음악만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공통점만으로도 난 친밀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의 마지막 콩쿠르에서 내 연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굳이 거절할 필요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연주회에서나 너튜브 그리고 음반을 통해 내 연주를 보고 들을 수 있다.
내 연주를 보고 듣는다 해서 똑같이 연주할 수 있다면?
그것도 그 사람의 능력인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남의 연주만 따라 한다면 결코 자신의 연주는 남지 않을 것이다.
‘브래들리도 마지막을 그렇게 장식하고 싶진 않겠지.’
나는 브래들리가 후회 없이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잡음을 만들기보다 파울로의 오해는 그냥 두기로 했다.
“맞아, 파울로. 세미파이널 같이 올라가는 연주자 중에서 내 적수는 너밖에 없어.”
“나만?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블라디미르인지 뭔지 하는 놈이 너랑 라이벌 어쩌구해서 얼마나 화났었는데. 알겠어, 그럼 나 연습하러 간다.”
“야, 같이 가!”
“아니야. 나 세미 파이널 준비하려면 바빠.”
파울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가 버렸다.
세미 파이널 라운드에서 모든 참가자는 두 가지 공연을 하게 된다.
하나는 40분 정도 소요되는 리사이틀, 다른 하나는 25분의 협주곡 연주이다.
리사이틀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프로그램에는 콩쿠르를 위해 만들어진 미발표곡과 이자이의 바이올린 소나타 in G minor, Op. 27 No. 1의 3악장과 4악장이 무조건 포함된다.
그리고 그 외에도 몇 개의 자유곡을 연주해야 했다.
하지만 나머지 프로그램은 내가 콩쿠르 신청서에 적어냈던 여러 곡 중에서 심사위원들이 연주회의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두 개로 구성한 뒤.
정확히 세미파이널 내 무대가 시작되기 29시간 전에 내가 어떤 프로그램을 연주할지 알려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내 무대 29시간 전까지는 내가 어떤 프로그램을 연주할지 모르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가지 프로그램 중에 더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기 마련이다.
직접 자신의 손으로 써낸 곡이라도 더 자신 있는 곡이 있을 테니까.
이런 퀸엘리자베스의 독특한 룰이 참가자에겐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지만 또 반대로 콩쿠르의 명성을 지켜주는 요소이기도 했다.
호수를 빙 둘러 정겨운 마르타의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마르타와 줄리안은 폭죽을 터뜨렸다.
“축하해요! 1라운드 통과 가지고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겠지만 너무 기뻐서 말이에요.”
터진 폭죽에서 나온 종이가 머리와 옷을 덮었다.
“앗. 축하 감사해요. 잘 챙겨주신 덕분이에요.”
“생중계로 발표를 보는데 얼마나 떨리던지. 루이를 꼭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니까요.”
마르타의 축하 덕분에 집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연습을 하기 전에 마르타와 줄리안에게 내일 아침 브래들리가 와도 되는지 물었다.
둘은 흔쾌히 허락했다.
나는 3층으로 올라가 세미파이널을 위한 연습을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두어 시간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렌 캠프의 Scherzo Bagatelle.
살아있는 젊은 작곡가의 현대곡이자 그동안 나의 레퍼토리와는 무관한 곡.
한 달째 이 곡을 연습하지만 매번 새롭게 다가오는 곡이었다.
처음엔 직관적으로 작곡가의 의도가 보이지 않았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작곡가의 의도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오로지 나 혼자만의 해석으로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곡을 만들어 가는 과정.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에 첫 발자국을 내딛는 심정으로.
그렇게 나는 나만의 음악을 완성해갔다.
그렇게 몇 시간의 연습을 한 뒤, 나는 포근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침 식사가 끝나 갈 무렵.
딩동.
벨이 울렸다.
브래들리 짐머가 마르타의 집에 도착한 것이었다.
다소 긴장한 표정의 브래들리는 활짝 웃으며 마르타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브래들리 짐머라고 합니다. 주원의 도움을 좀 받으러 왔습니다.”
“도움이요? 아, 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있다 가세요.”
도움을 받으러 왔다는 브래들리의 말에 마르타는 나와 브래들리를 번갈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브래들리와 함께 3층으로 올라갔다.
햇살이 유리창 안으로 비치고 갈색 업라이트 피아노 위엔 여러 장의 악보가 놓여있었다.
루이는 여느 때처럼 쿠션에 와서 꼬리를 말고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나는 무릎을 구부려 루이를 쓰다듬고는 브래들리를 쳐다보았다.
“귀엽죠? 이 녀석이 매일 제 음악을 들어주는 고마운 청중이에요.”
“운 좋은 고양이네요. 주원 씨의 연주를 매일 듣다니요.”
“하하. 그런가요? 아무튼 저는 이제 연습하겠습니다.”
나는 보면대 위에 악보를 펼치고.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글렌 캠프의 음악 세계로 성큼 걸어 들어갈 준비를 했다.
브래들리도 의자에 앉아 글렌 캠프의 악보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바이올린 조율을 하면서 그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니,
브래들리는 왜 그런지 모를 심각함과 기쁨과 걱정과 기대감이 뒤섞인 것 같은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