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213)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213화(213/250)
브래들리 짐머는 어제 꿈같은 하루를 보냈다.
호스트 패밀리의 집에 들어가기 전, 런던에 있는 여자 친구와 통화를 했다.
언제나 그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던 그녀.
그녀는 전화를 받자마자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브래들리. 나 기절할 뻔했어. 너무 축하해!
-고마워, 애슐리. 나도 믿기지가 않았다고.
-그렇게 노력해도 번번이 탈락했었는데. 무려 퀸 엘리자베스에서 1라운드를 통과하다니! 지난 8년 동안의 시간을 보상 받는 것 같아.
마지막 순간 일어난 기적 같은 일에 자신보다 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는 애슐리의 마음이 고마웠다.
기나긴 연애 기간 동안 언제나 한결같이 자신을 응원해주던 그녀.
애슐리는 잔뜩 하이톤이 된 목소리로 브래들리에게 소리쳤다.
-나, 브뤼셀 가는 비행기 티켓 샀어. 오지 말래서 1라운드는 못 갔지만 이번엔 못 막아.
-떨어질까 봐 그랬지. 고마워 애슐리.
애슐리는 브래들리가 세미파이널 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브래들리에게 긍정의 응원만 보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줘버려. 브래들리 짐머의 음악을 말이야. 할 수 있지?
-어, 해 볼게.
-긴장하지 말고 무대 위에서도 내 앞에서 연주하던 것처럼 하는 거야. 알았지?
여자 친구와의 통화가 끝난 후, 브래들리는 차분히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준비가 잘 되어있지 않은 글렌 캠프의 Scherzo Bagatelle.
도무지 머릿속에 음악이 그려지지 않아 헤맸던 그 곡.
주원은 전혀 친분이 없는 자신의 요청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브래들리에게 누군가 그런 부탁을 했다면 들어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원은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와 동시대에 산다는 것이 행복할 정도로.
그의 음악은 훌륭했고 그의 행보는 자랑스러웠다.
또 다른 우승 후보자로 꼽히는 블라디미르나 다른 유력한 우승 후보 연주자들에게는 상상도 못 할 부탁이었다.
하지만 주원에게는 말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웰컴 파티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원과 어울리고 싶어 했고.
주원 주변에 몰려들어 인사하고자 했다.
하지만 주원은 유명 연주자라고 해서 특별대우하지 않았고 자신처럼 무명의 최고령 참가자에게도 진솔하고 예의 바르게 대해주었다.
무대 위에선 누구보다 카리스마 넘치고 열정적이던 그.
TV 화면에서 보면 거칠 것 없던 주원.
그와 얘기를 나눈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주원이 자신을 음악가로 존중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주원과 같은 훌륭한 음악가와 퀸엘리자베스에 함께 출전한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뻤다.
더군다나 주원은 어떻게 생각하면 무례할 수 있는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나라면 그럴 수 없었을 텐데. 혹 내가 실력에 자신이 있었어도 이런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을까?’
하지만 브래들리에겐 깊게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세미파이널 곡을 완성해야 했으니까.
게다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 글렌 캠프의 Scherzo Bagatelle을 제대로 익힐 수 있는 기회였다.
이제 눈앞에서 주원이 그 곡을 연습하려 했다.
세기의 천재라 불리는 주원은 이런 곡을 어떻게 연주할까?
주원은 이런 악보를 마주하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브래들리는 바이올린을 꺼내는 주원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아. 이 곡 악보 처음 받았을 때요. 이걸 어떻게 연주해야 하나 혼란스러웠어요. 주원 씨는 어땠어요? 연습할 때 재밌었어요?”
“저도 이런 현대곡은 익숙치 않아요. 그래서 처음 악보 볼 때 굉장히 힘들었어요.”
“주원 씨도 사람이었네요. 너무 마음이 놓이는데요?”
그러자 주원이 장난기 있는 웃음을 씨익 지었다.
“아. 근데 처음에만 그랬다는 건데요.”
“와, 저는 정말 아직까지 몰입이 안 되던데. 몇 번 연습은 했는데 어떤 감정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이 곡을 보면 베토벤도, 바흐도 깜짝 놀랐을걸요? 그런 위대한 음악가들도 익히는데 한 참 걸렸을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주원 씨도 쉽게 연습하지 않았다니 위안이 되는걸요?”
주원은 어깨 받침을 악기에 끼우고 튜닝을 했다.
“자, 이제 시작할게요.”
드디어 그의 연습이 시작되었다.
Scherzo Bagatelle by Glen Camp
주원은 눈을 지그시 감고 이 난해한 곡의 첫 음을 부드럽게 울렸다.
현을 휘젓듯이 오고 가는 불협화음들.
무질서함의 극치라고 여겨졌던 곡.
역시 언제 들어도 구성이 난해하고 까다로운 곡이라고 생각하며 주원의 연주를 듣고 있던 중.
‘엇.’
문득 브래들리는 주원의 표정이 너무나 편안하고 또 섬세하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원은 이 음악을 즐기고 있어.’
피치카토 뒤에 이어지는 날카로운 아르코.
불규칙적으로 보이는 더블스탑의 향연까지.
주원은 곡을 이해하고 정확히 연주하는 것을 넘어, 섬세하게 그 악상을 조절하며 새로운 세계를 펼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아가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음악을 조형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섬세한 악상의 표현으로 감정을 드러냈고.
때로는 익살스러우며, 때로는 변덕스럽게 곡을 풀어나갔다.
주원은 그 음악 자체를 탐닉하고 있었다.
‘어떻게 주원은 이런 곡을 연주하면서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고 감정 표현도 풍부할 수 있을까?’
브래들리는 주원의 연주를 보며 정신없이 악보에 메모했다.
당연히 똑같이 해서도 안 되고.
똑같이 할 수도 없겠지만.
곡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복잡하던 머릿속이 점차 비 온 뒤 개어가는 날씨처럼 맑아졌다.
방안을 가득 채운 불협화음이 오늘따라 유독 정겹게 느껴졌다.
힘찬 마지막 보잉과 함께 연주가 끝이 났다.
“Jesus!”
브래들리는 자신도 모르게 또 큰 소리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눈을 계속 지그시 감은 채 연주의 여운을 느끼고 있던 주원이 브래들리의 외마디 소리에 순간 눈을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브래들리는 이 곡을 연주하면서 주원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너무 궁금했다.
“이렇게 난해한 곡을 연주하면서 어떻게 몰입할 수 있는 거죠? 나는 악보를 정확하게 읽는 데만 초점을 맞췄던 것 같아요.”
주원은 바이올린을 피아노 위에 내려놓았다.
“저를 추상화를 그리는 화가라고 생각했어요. 추상화에도 작가의 의도와 감정이 다 드러나잖아요? 현대 음악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어떤 구체적인 광경을 떠올린 건 아니란 말이에요?”
“정물화처럼 딱 대상을 구체화할 수는 없지만 매번 음악의 색깔을 이미지화하려고 노력해요.”
“어렵네요.”
“작곡가가 독창적인 방법으로 새롭게 그려낸 곡의 이면에 숨겨진 예술성을 찾아보는 거죠. 그래야만 곡을 조금 더 소화할 수 있었어요.”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해요.”
브래들리는 주원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악보에 적었다.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 대가의 마스터 클래스를 경험한 것 같아요. 주원과 콩쿠르에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영광입니다.”
“저도 브래들리의 음악에 대한 진심과 간절함이 존경스러워요.”
“그럼 이제 돌아가서 열심히 연습해볼게요.”
“벌써요?”
“그럼요. 지금 얻은 깨달음으로 이제 저만의 음악을 만들어 봐야죠.”
* * *
“더 강하게. 더, 더 감정을 실어서.”
블라디미르의 활이 힘차게 현에 부딪혔다.
스승의 가르침은 끝이 없었고 블라디미르는 모든 프로그램의 곡을 완벽히 준비했다.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있는 블라디미르를 보며 스승, 빅토르는 어깨를 두드렸다.
“이대로만 하면 우승은 네 것이야. 다른 사람이 어떤 음악을 하건 관계없어. 네 음악에만 집중해.”
“1라운드가 끝났는데도 언론에선 여전히 저와 주원의 양자 대결 구도로 보나요?”
블라디미르는 여론의 관심이 주원보다 자신에게 쏠리기를 바랐다.
“음, 그런 기조는 맞지만. 또 다른 몇몇 연주자들도 거론하더구나. 최연소 참가자랑 최고령 참가자 그리고 현대 음악에 특화된 연주자라고 평을 받는 발레리까지. 그 뿐이 아니야.”
“발레리 뒤켄이요? 자크 뒤켄 교수님의 딸이잖아요?”
“그치. 자크 뒤켄은 현대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이지. 아마도 위촉 작곡가 중 그의 제자가 아닌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야.”
“그럼 혹시 발레리는 파이널 곡도 미리 봤을 수가 있을까요?”
블라디미르의 질문에 스승, 빅토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설마. 그런 일이 가능하겠니? 그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네 음악에만 집중해.”
“네.”
“글렌 캠프의 곡을 한 번 다시 연주해 보겠니?”
러시아의 거장 빅토르의 개인 레슨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브뤼셀 최고급 호텔 스타이겐에는 블라디미르의 스승 빅토르와 블라디미르의 연습을 돕기 위한 선생들이 투숙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거장인 빅토르는 블라디미르의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돈을 받고 매일 그를 지도하고 있었으며.
따라온 몇몇 선생들은 블라디미르가 연습하는 동안 지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도록 완벽한 환경을 조성했다.
의사는 블라디미르의 심신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블라디미르의 선생들은 파이널 작곡가를 예측해 예상 작곡가들의 곡들을 블라디미르 대신 분석하고 정리하는 작업도 겸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블라디미르이지만.
절대 이변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없는 이들의 합작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 * *
24명의 세미 파이널 리스트들이 결정되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심사위원들은 분주해졌다.
그들은 24명 참가자들이 신청서에 적어낸 여러 곡을 가지고 2개의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다.
모든 참가자의 구성이 끝나고 이제 마지막 한 참가자의 리사이틀 프로그램만 구성하면 끝이었다.
한 심사위원이 마지막 남은 지원자의 곡목 리스트를 보며 말했다.
“이제 마지막 참가자의 프로그램만 구성하면 되겠어요. 바이올리니스트 주원이군요.”
“어떤 곡들을 레파토리로 적어냈나요?”
“다양하네요.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곡은 한 곡도 없네요.”
“그렇게 대외적으로 바쁘게 활동하고도 이렇게 레파토리를 넓혀놨다니. 다 들어보고 싶군요.”
하지만 그들은 곧 주원이 적어낸 레파토리를 토대로 두 개의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구성해냈다.
JuwonMoon (Korea)
리사이틀 프로그램 1
글렌 캠프 Scherzo – Bagatelle
외젠 이자이 Allegretto poco scherzoso | Finale con brio (Sonata in G minor op. 27. no.1)
벨라 바르톡 Rhapsody no. 1
비에니아프스키 Fantaisie brillante sur des thèmes de Faust op. 20
리사이틀 프로그램 2
글렌 캠프 Scherzo – Bagatelle
외젠 이자이 Allegretto poco scherzoso | Finale con brio (Sonata in G minor op. 27. no.1)
차이코프스키 Valse-Scherzo in C major op. 34
프로코피예프 Violin sonata No. 2 in D major op. 94bis
* * *
나는 세미 파이널에서 연주할 곡들을 하나씩 심도 깊게 연습했다.
세미 파이널에선 독주회처럼 리사이틀을 하게 되고 오케스트라와 협주곡을 연주하게 된다.
나는 세미파이널을 위해 지정곡 2곡을 포함한 6개의 리사이틀 곡과 1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해야 했다.
이미 많은 연습을 하고 왔지만 연습할수록 아쉬운 점이 느껴지는 곡들도 더러 나타났다.
‘마음에 안 들면 될 때까지 하면 되지.’
시간의 제약이 있지만 아직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콩쿠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다양한 작곡가와 시대의 곡을 집중적으로 몰입해서 소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브래들리는 나에게 극찬을 했지만 여전히 글렌 캠프의 곡은 나에게 도전 의식을 안겨주었다.
나도 아직 살아있는 현대의 음악가들이 추구하는 방식으로 작곡을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여전히 선율이 있는 음악을 추구하는 나에게 이런 현대 작곡가들의 음악은 새로운 도전이며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파가니니 시절엔 절대 알 수 없었을 시대의 변화.
파가니니 콩쿠르에서는 절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음악의 변화.
나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경험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5월 6일, 6일에 걸친 세미파이널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첫날의 첫 번째 연주자는 바로 블라디미르 페트로프였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