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216)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216화(216/250)
‘왜 이리 길게 생각하는 거지?’
스승 빅토르의 침묵이 길어졌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블라디미르는 스승에게 조심스레 한 번 더 재촉했다.
“그 녀석 연주가 꽤 괜찮았던 거예요? 뭐라고 말 좀 해 주세요.”
빅토르의 파란색 눈빛이 더욱 짙어지며 차분해졌다.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뭐라고요?”
블라디미르의 짙은 회색 눈썹이 꿈틀거렸고, 빅토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특별한 아이더군. 하도 이상한 행보를 보이길래 더 이상 클래식엔 자신이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결론만 말씀해 주세요. 녀석의 어떤 점이 특별했는지는 듣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빅토르의 안색도 붉게 변하고 눈동자에 힘이 들어갔다.
“블라디미르. 너의 연주는 가히 세계 최고다. 그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게다. 하지만….”
“하지만 뭐란 말씀이에요?”
“이미 그려진 악보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오선지에 악보를 그린다고 생각하고 연주해 볼 수 있을까? 그것만 더해진다면 너에게 승산이 있어.”
블라디미르는 빅토르가 자신의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아 답답함을 느꼈다.
“주원의 연주를 듣고 오시더니 이상한 말씀만 계속하시네요. 알겠어요. 제가 주원보다 못한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돌려서 얘기하시는 거죠?”
자신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부터는 늘 자신에게 최고라고 칭찬하고 현재의 상태만을 유지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던 스승 빅토르.
하지만 주원의 무대를 보고 난 뒤, 스승 빅토르의 표정은 어딘가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스승이 제자 앞에서 불안해하다니.’
블라디미르는 망가진 스승 빅토르의 모습에 화가 났다.
그보다 블라디미르는 이런 상황을 만든 주원이 더 짜증나고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감정이 들끓는 블라디미르의 모습을 보며 빅토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왁스만의 카르멘 판타지를 한 번 다시 연주해 보자.”
“네. 하지만 그 곡은 차이코프스키 때도 연주해서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요.”
블라디미르의 눈에는 회의감이 짙게 서렸다.
빅토르는 블라디미르의 눈을 보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 완벽이라. 기존의 연습방법대로 하되 네가 이 곡의 한 음 한 음을 새로 쓴다는 느낌을 가져 봐. 그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거야.”
스승 빅토르의 표정과 대답을 들은 블라디미르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우리 아버지한테 받는 돈이 얼만데 지금 콩쿠르 전날 나한테 이렇게 하는 거야? 뭐? 오선지에 새로 그리는 것처럼 하라고?’
어처구니없었지만 지금으로선 어쩔 방법이 없었다.
빅토르를 내치는 건 우승 후에 하는 게 맞다.
‘노인네, 내가 퀸엘리자베스 1등만 하면 당신보다 더 대단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거라고.’
블라디미르는 표정을 갈무리하며 빅토르의 화를 풀었다.
“당연히 연습해야죠. 바로 하겠습니다. 오선지에 새로 그린다는 느낌만 추가하라는 거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이제야 내 제자 블라디미르답다.”
블라디미르의 연습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플라제의 스튜디오 4 무대 위에 오른 블라디미르가 첫 곡인 글렌 캠프의 Scherzo Bagatelle을 연주했다.
수 없이 연습하고 피아니스트와 합을 맞춘 곡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유난히 곡이 낯설게 다가왔다.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다행인 것은 글렌 캠프의 곡은 암보를 하지 않고 악보를 보며 연주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만약 암보로 연주해야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 블라디미르는 이내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곤 좀전의 동요는 전혀 없었던 듯이 자신 있게 연주했다.
약간의 실수는 있었지만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지가 관건이다.
블라디미르는 아주 능숙하게 첫 번째 난관을 지나갔다.
그리고 이어서 연주한 모든 곡들을 깔끔하게, 연습한 대로 모두 소화해냈다.
‘완벽했어. 누가 뭐래도 완벽했다고.’
자신의 연주에 만족감을 드러내며 블라디미르는 심사위원과 청중을 향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 * *
대기실에서 연습을 하다가 자신의 앞 무대인 블라디미르의 연주를 본 브래들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도 저렇게 자신감 넘치게 연주하고 싶어.’
브래들리는 무대 위에 설 때면 항상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그러면 활을 쥔 오른손도 떨렸고 음정을 짚는 왼손도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건 섬세한 악기인 바이올린을 다루는 연주자에겐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오늘은 절대 안 돼.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연주는 절대 안 돼.’
휴가를 내고 영국에서 브뤼셀까지 와준 여자친구 애슐리.
친분도 없는 자신을 도와준 주원에게 고마워서라도 이번 무대에서 꼭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주원은 특히나 무대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신에게 진심 어린 조언도 해 주었다.
-무대 위에서 떨리는 건 저도 그래요.
-정말로 주원 씨도 떨려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던걸요.
-아. 그게 청중이 두려워서 떨리는건 아니에요.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것이 설레서 떨리는 거죠.
-아아. 그럴 줄 알았어요.
-결국 같은 단어라고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도, 설레는 것도요. 마음먹기 나름 아니겠어요?
말장난 같기도 한 그 덤덤한 말이 이상하게 와닿았다.
이유는 달랐지만, 주원 역시 무대에서 떨린다는 말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됐다.
브래들리는 굳게 마음을 다잡고 무대 위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객석 한가운데서 누구보다 크게 자신을 응원하는 애슐리를 발견했다.
‘오늘은 정말 내 인생 최고의 연주를 하고 싶어. 애슐리를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각오를 다지자 무대에만 서면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던 손이 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던 오른손도 안정을 찾았다.
여전히 떨리긴 했지만 두려움의 떨림은 결코 아니었다.
브래들리는 바이올린 조율을 한 뒤, 피아니스트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주원의 도움으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글렌 캠프의 Scherzo – Bagatelle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 * *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심사위원단장을 맡은 앙리 뒤트와는 다른 어떤 해보다 뛰어난 참가자들의 실력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각종 언론매체에서 라이벌 구도로 자리매김한 주원과 블라디미르는 물론, 다른 뛰어난 연주자의 활약도 대단했다.
물론 지금까지 보여준 주원의 연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압도적이었다.
그 점이 모든 심사위원들이 그가 연주하는 현대곡을 기다리는 이유였다.
넷째 날 첫 번째 순서였던 블라디미르는 사소한 실수를 하긴 했지만, 크게 음악이란 관점을 놓고 봤을 때는 아주 미미한 수준의 실수였다.
그는 특유의 강단으로 시원시원하게 연주를 끝마쳤다.
그리고 지금 무대에 오른 두 번째 참가자인 브래들리 짐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출전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인 30세.
게다가 주요 콩쿠르에 입상한 경험이 전무한 참가자.
하지만 사전심사와 1라운드에서 보여준 그의 실력으로 짐작하기엔 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앙리 뒤트와는 브래들리가 굉장히 과소평가된 참가자란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조율을 마친 브래들리가 다소 긴장한 듯한 표정을 한 채 청중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안한 건가? 혹시 무대 공포증? 그런 이유라면 그동안의 입상경력이 이해가 되긴 하는데.’
그의 부산스러운 행동을 보니 그를 지켜보는 앙리 뒤트와의 마음까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브래들리 짐머는 이내 차분히 눈을 감았다.
그리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눈을 뜬 그가 피아니스트와 눈을 맞추고 글렌 캠프의 스케르초 바가텔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 곡에 대한 그림을 제대로 그렸군. 쉽지 않았을 텐데.’
이번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세미파이널의 위촉 작곡가는 글렌 캠프였다.
그는 자연스러운 소리의 본질을 추구하는 작곡가였다.
처음 그의 악보를 접할 때 쉽게 곡의 형태가 이해가지 않을 정도로 난해한 곡이었다.
그런데도 브래들리의 해석은 과하지 않으며 큰 그림이 그려졌다.
‘이렇게 훌륭한 연주자가 왜 30살이 되도록 입상기록이 없는 거지?’
브래들리의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앙리 뒤트와의 의문도 깊어졌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브래들리의 과거를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과거에 수상 기록이 없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금, 무대 위의 연주가 훌륭하면 되는 거지.’
콩쿠르 최고령 참가자이자 참가자 중 가장 내세울 것 없는 프로필을 가진 브래들리 짐머.
그의 인생 최고의 연주가 지금 세미파이널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 *
콩쿠르 넷째 날이 모두 끝났다.
나는 마지막 날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남겨두고 있었다.
연습을 하다가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루이를 안아서 1층으로 내려갔다.
루이의 복슬복슬한 털의 감촉이 너무 좋아 얼굴을 비비니 루이는 작은 솜방망이로 내 얼굴을 밀어냈다.
거실에서는 마르타와 줄리안이 향이 좋은 차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었다.
“주원, 차 한잔 마셔요. 아주 향이 좋거든요.”
“고맙습니다.”
차를 들고 앉아 TV를 보니 마르타와 줄리안이 보고 있는 것은 바로 ‘퀸 엘리자베스 라이브’였다.
TV에선 낯익은 얼굴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브래들리 짐머. 오늘 멋지게 리사이틀을 끝내셨는데요. 어떠셨나요?
-제 인생 최고의 무대 연주를 했습니다.
화면 속 브래들리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기쁜 표정이 만연했다.
그의 밝은 모습을 보니 나까지 웃음이 전염될 지경이었다.
TV를 보던 마르타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맞죠? 며칠 전에 도움받으러 왔다던 사람이요.”
“네, 맞아요.”
“오늘 잘했나 보네요.”
우리는 TV 화면을 계속 지켜보았다.
사회자는 브래들리에게 활짝 웃으며 질문했다.
-최고의 무대 연주를 하셨다니. 그럼 스스로를 우승 후보로 생각하시나요?
-하하. 그런 꿈같은 일이 생긴다면 좋겠네요. 아! 그런데 정말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은 분이 있어요. 여기서 말해도 될까요?
-네, 그럼요.
-바이올리니스트 주원 씨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 그는 나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음악을 들려주고 제가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줬어요. 아마도 연습하시느라 못 보겠지만 정말 감사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이름의 등장에 진행자는 좀 더 자세히 질문했다.
-주원 씨에게 감사하다고요? 왜 그러신지 좀 자세히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브래들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나와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듣는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친구들이 들으면 또 위인전 어쩌구 하겠네. 브래들리 제발 그만!’
하지만 브래들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순간 부담스러운 존경을 담은 네 개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다들 왜 그러시는지….”
“주원 씨, 등 좀 보여줘요. 등 뒤에 날개 없나요?”
내가 파가니니였던 시절엔 모두 나에게 악마라고 했었는데.
요즘엔 내 등에서 날개를 찾는 사람이 많다.
“하핫. 그냥 제가 연습하는 거 브래들리가 본 게 전부예요. 브래들리가 저렇게 과장해서 칭찬하니 쑥스럽네요.”
마르타와 줄리안은 변명을 하는 나를 여전히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여전히 브래들리는 퀸엘리자베스 라이브에서 내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더 이상 못 듣겠네요. 저 그럼 다시 연습하러 갑니다.”
나는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서둘러 루이를 데리고 3층으로 올라갔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브래들리가 무대 위에서 최고의 연주를 선보였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기뻤다.
다음날.
나는 콩쿠르 운영위원회로부터 내가 연주할 리사이틀 프로그램 목록을 전달 받았다.
나와 같은 날 세미파이널 무대에 오르는 모든 연주자들의 프로그램도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다.
Juwon’s 리사이틀 프로그램
글렌 캠프 Scherzo – Bagatelle
외젠 이자이 Allegretto poco scherzoso | Finale con brio (Sonata in G minor op. 27. no.1)
차이코프스키 Valse-Scherzo in C major op. 34
프로코피예프 Violin sonata n. 2 in D major op. 94bis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들로 선택됐네. 그럼 프로코피예프 곡부터 한 번 연습해 볼까?’
* * *
세미파이널 마지막 날.
이미 세미파이널 연주를 끝마친 블라디미르는 연습 선생님인 이반과 쉬엄쉬엄 파이널 대비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늘 참가자들의 순서와 연주 프로그램에서 주원의 이름을 발견했다.
‘한 번 직접 보러 가봐?’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