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217)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217화(217/250)
세미파이널이 열리는 플라제 스튜디오 4의 심사위원석.
심사위원장 앙리 뒤트와와 심사위원 실비아 마이어는 마지막 심사를 앞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첫 참가자가 주원이네요.”
“과연 글렌 캠프와 이자이의 곡을 어떻게 연주할지 궁금하네요. 자유곡은 뭐였죠?”
실비아 마이어는 참가자들의 프로그램을 쭉 훑어보며 앙리 뒤트와에게 대답했다.
“차이코프스키 왈츠 스케르초와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2번이네요.”
“오! 그것도 기대되네요. 생각해보니 파가니니 콩쿠르 때와 겹치는 곡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레파토리를 확장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노력하며 즐기는 천재는 아무도 못 따라가는 법이죠. 오늘 한 번 제대로 지켜봐요.”
* * *
주원의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살피던 블라디미르는 두 뺨을 타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잊었던 리사이틀에서의 작은 실수가 떠올랐다.
‘아 정말 이런 더러운 기분은 평생 처음이네. 다 빅토르 그 늙다리 때문이야.’
주원의 연주를 보고 온 빅토르의 말들이 더욱 또렷하게 귓가에 울렸다.
그리고 멋지게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연주 실수의 순간들이 계속 크게 떠오르는 이 기분.
‘정말 싫다.’
지금껏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평정심이 무너지는 감정에 블라디미르는 혼란스러웠다.
어찌할 줄 모르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아아!”
옆에서 연습을 도와주고 있던 이반은 가만히 앉아 있던 블라디미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자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야!”
“나, 가서 봐야겠어요.”
“뭘?”
“주원. 그놈 연주를 직접 보고 확인해야 할 것 같아요.”
“괜찮겠어? 굳이 흔들릴 거 같으면 보지 마.”
“흔들린다고요? 선생님까지 왜 그래요? 언제는 내가 최고라면서요. 선생님은 그 녀석 연주 직접 본 적 있어요?”
“나야 없지. 여기서 네 연습만 도왔잖아. 너랑 순서가 겹치는 날도 없었고. 파가니니 콩쿠르 영상 본 게 다야.”
“솔직히 어땠어요? 나도 그 영상은 다 봤거든요.”
이반은 팔짱을 끼고는 골똘히 생각했다.
“음, 영상만으로도 충격이었고 스스로 작곡한 곡도 너무 훌륭하다 생각했어. 나도 주원이 작곡한 곡 악보 사서 연습 중이거든.”
블라디미르는 이반의 말을 더 들어줄 수가 없었다.
자신은 그런 대답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놈이나 저놈이나 하나같이 전부 마음에 안 들어.’
블라디미르는 이반의 얼굴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저랑 그 녀석 연주만 보고 와요. 저는 세미파이널 끝났으니까요.”
“그러지 뭐. 너도 상대를 알아야 너의 장점을 끌어내던 하겠지.”
둘은 잠시 후, 세미파이널이 열리는 플라제 스튜디오 4 앞에 도착했다.
입구 앞에는 첫날보다 눈에 띄게 늘어난 방송 카메라와 기자들이 프로그램을 보며 저마다 웅성웅성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 뭐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
“오늘 주원 차례잖아.”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이렇게나 많이 모였다고요?”
블라디미르는 어이없다는 듯이 주변을 흘끗 쳐다보고는 한발 앞서 콘서트 홀 안으로 향했다.
좌석번호를 확인한 후, 연주자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객석의 가운데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홀의 분위기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연주 전 웅성웅성 잡담을 하는 관객들의 모습은 여느 콘서트나 콩쿠르와 다르지 않았지만.
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유독 오늘따라 더 신나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왜 이렇게 다들 방방 떠 있는 기분인 거지?’
냉정하게 연주 실력을 갈라야 하는 콩쿠르가 아니라 즐거운 파티처럼 들뜬 분위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여태껏 한 올의 떨림도 없이 연주해 온 나였는데.’
블라디미르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위축되는 자신이 느껴졌다.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블라디미르의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순간, 관객들의 커다란 박수와 함께 무대로 등장한 주원이 블라디미르의 눈에 들어왔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에 놀라기도 했지만.
블라디미르가 평생 경험하지 못했던 강한 질투심을 느끼게 한 것은 무대에 선 주원의 너무나도 편안한 표정이었다.
치열한 경쟁과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콩쿠르가 아니라 마치 자신의 독주회에 올라온 것 같은 표정.
이반이 멍한 표정으로 주원을 보던 블라디미르의 소매를 툭 치며 말했다.
“정신 차리고 잘 들어 봐. 네가 오자고 해서 왔으니.”
주원은 박수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다가 객석이 조용해지자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리고 조율을 마쳤다.
그리고 지긋이 눈을 감았다가 반쯤 눈을 뜨고 피아노 반주자에게 신호를 보내며 시작된 글렌 캠프의 Scherzo – Bagatelle 연주.
고전의 모든 박자와 화성을 무시하는 것 같은 편안하지 않은 곡.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모두가 힘들어하는 이 곡이 특히 자신 있었다.
그는 비현실적인 악보에서 지시한 음과 주법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현실로 옮길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 블라디미르였지만, 주원의 연주가 시작되자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엇, 표정에 변화가 없어.’
한편으로는 유머러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파격적인 이 곡.
작곡자의 의도가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나는 이 곡을 연주하는 연주자는 대부분 그 의도가 드러나게 피치카토나 빠른 속주에서 그에 맞는 표정을 짓는다.
블라디미르도 마찬가지.
그런데, 주원은 아무리 곡의 분위기가 급하게 바뀌어도 그 기본적 틀은 완벽히 지킨 채, 마치 왈츠를 연주하는 것 같은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편안하다.’
그런 주원의 표정을 보며 연주를 듣던 블라디미르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이 곡에 대한 편견이 봄날의 눈처럼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이틀 전 연주했던 바로 그 곡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새로운 어떤 곡을 듣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빅토르가 얘기한 것이 이런 건가?’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장난기 넘치는 주고받음을 지나, 주원이 활을 높이 올리며 곡의 엔딩을 알리자.
마치 군대의 포격 소리와 같은 엄청난 박수와 환호가 콘서트 홀을 가득 채웠다.
블라디미르는 박수를 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충격에 온몸이 굳어 버렸다.
머릿속이 하얗고 주변이 모두 어두워지면서 눈앞의 관객에게 인사하는 주원의 모습만 보였다.
‘뭐가 다른 거지. 음정과 주법이 완벽한 것은 나도 다르지 않아. 그런데 왜 내가 연주한 그 곡으로 느껴지지 않는 거지? 왜 이런 난해한 현대곡에 관객들이 흥분해서 환호하는 거지?’
박수갈채를 들으면서 블라디미르의 머릿속은 거의 다 짜다가 풀어서 뭉쳐버린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었다.
한편, 심사위원석에선.
“이 박수 뭐죠? 하하. 글렌 캠프가 지금까지 받은 박수 다 합쳐도 모자라겠어요.”
심사위원장 앙리 뒤트와가 아랫입술을 우스꽝스럽게 내밀면서 다른 심사위원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곡 해석이 정말 독특하네요. 어떻게 하면 더 파격적으로 보일까를 고민하는 현대곡인데, 오히려 갑자기 바뀌는 부분을 더 부드럽게 연결해서 곡 전체가 급해 보이거나 튀지 않고 예상 가능한 하모니가 되었어요.”
옆자리의 심사위원들도 앙리 뒤트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관객들도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곡을 받아들인 모양이네요.”
“맞아요. 보통 이런 곡이 끝나면 어색한 박수가 몇 번 나오고 나서 전체 관중으로 박수가 이어지는데, 주원의 연주가 끝나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엄청난 박수가 한꺼번에 쏟아졌잖아요.”
심사위원 실비아 마이어는 주원의 평화로운 표정을 따라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음 곡도 기대되네요.”
* * *
주원이 두 번째 곡인 외젠 이자이의 Sonata in G minor op. 27. no.1 중 3악장, 4악장 연주를 시작했지만 블라디미르의 귀에는 연주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작은 실수 하나도 없었던 완벽한 주원의 연주에 대한 경쟁심.
마치 모차르트나 파가니니를 연주한 후 나올법한 관객의 폭발적인 반응에 대한 질투심을 넘어.
작곡자의 지시를 무시하는 듯한 주원의 자유분방한 곡 해석에 대한 반발심이 강하게 올라왔다.
‘네가 도대체 뭔데 거장들의 작곡 의도를 깡그리 무시하고 네 맘대로 감정을 표현하는 거지?’
블라디미르는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 왔던 ‘작곡자의 의도’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악보에는 음표나 악상기호뿐만 아니라 ‘슬러’나 ‘스포르찬도’같이 꼭 지켜야 하는, 작곡자가 의도한 감정선이 있지. 작곡자가 파격과 새로움을 의도했다면 연주자는 그걸 최대한 정확히 현실로 옮겨야 해.
내로라하는 러시아의 모든 거장들에게 사사한 블라디미르는 글렌 캠프의 곡을 마치 자신의 곡처럼 해석하고 연주한 주원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글렌 캠프 곡에 대한 네 해석은 틀렸어. 선생님들의 해석이 맞아.’
그리고 블라디미르는 눈을 반쯤 감고 외젠 이자이 연주에 열중하고 있는 주원을 바라보며 마치 눈앞에서 주원에게 호통치듯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나는 집시처럼 자유분방한 너의 곡 해석은 틀렸다고 봐. 나는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 네 해석은 작곡가에 대한 모독이야.’
“가죠.”
블라디미르가 옆자리에서 멍하게 무대를 바라보는 이반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말했다.
이반은 흠칫 놀라고는 몰입이 깨져 원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블라디미르를 흘겨보았다.
“왜, 차이코프스키하고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남았는데. 안 들으려고?”
“네, 들을 가치도 없어요. 소문이 맞았네요. 저놈은 클래식 파괴자예요.”
“클래식 파괴자?”
“저놈은 수백 년 동안 쌓여 온 수많은 천재들의 능력과 노력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어요. 선생님들의 가르침과도 전혀 다르고요.”
“음. 난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주원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는 나가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어?”
이반의 말이 끝날 즈음, 주원이 외젠 이자이 연주를 마쳤는지 또다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콘서트 홀을 쩌렁쩌렁 울렸다.
블라디미르는 다시 한번 잔뜩 상기된 표정을 숨기지 못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혼자라도 나가죠.”
이반을 보며 한 마디 툭 던진 블라디미르는 박수를 치고 있는 관객들 사이를 비집고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자신의 것이 아닌 박수와 환호.
손 휘파람이 이어지는 객석 사이를 걸어가면서, 블라디미르의 마음은 미칠 듯이 흔들렸다.
‘지난 15년 동안 배워 온 것은 도대체 뭐지?’
최고의 선생님들, 최고의 악기, 최고의 환경에서 지난 수백 년 동안의 모든 이론과 기법을 완벽하게 습득했다고 자부하고 있던 블라디미르.
‘작곡가의 악보를 자신의 것인양 가로채는 사람에게 왜 사람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거야?’
통로의 끝에 이르러 박수갈채 소리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그때,
문득 그의 머릿속에는 최고가 아니면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블라디미르. 너는 우리 집안의 큰 자랑이지만 가업을 포기한 이단아라는 점도 잊으면 안 된다. 최고가 아니면 음악은 의미가 없어.
블라디미르는 가슴을 조여오는 듯한 괴로움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통로에 멈춰서 무대를 돌아보았다.
조금 잦아드는 박수 소리 저 너머 무대에 서 있는 주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간 중간 기립했던 관객들도 모두 자리에 앉고.
거의 조용해진 콘서트 홀을 나가는 통로 한가운데 서 있는 블라디미르.
그리고 무대 위에서 다음 곡인 차이코프스키 연주를 시작하기 위해 바이올린을 어깨 위에 올리면서 객석을 지긋이 바라보는 주원.
블라디미르는 마치 무대 위의 주원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평온한 표정으로 연주를 준비하는 주원을 보면서 블라디미르는 주먹을 불끈 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클래식의 거장들과, 역사와, 전통과, 그리고 아버지의 자존심을 걸고, 너는 반드시 이긴다.’
* * *
이자이 소나타 연주를 마친 나는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퀸엘리자베스라는 음악 축제에 모인 관객들이어서 그런지 연주 후의 반응도 훨씬 뜨거운 것 같았다.
몇몇은 기립해서 박수를 치고 손 휘파람까지 부는 열광적인 모습.
언제나 그렇지만 정말 행복하고 뿌듯한 순간이다.
뜨거운 환호의 시간이 지나고, 또다시 음악을 기다리는 설레는 침묵의 시간이 되었다.
세 번째 차이코프스키 연주를 위해 다시 바이올린을 들고 조율을 하고 있는데.
객석 중간 통로에 누가 아직 뻣뻣하게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엇.’
홀로 서 있는 그 사람이 의아해서 잠깐 쳐다보던 나는 흠칫 놀랐다.
창백한 피부에 굳은 표정을 한 채 내 쪽을 쳐다보고 있는 그 사람은 바로 블라디미르 페트로프였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도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다.
‘내 연주를 보러 온 것 같은데, 왜 아직 서 있는 거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블라디미르는 고개를 돌려 뒷문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가 버렸다.
‘알 수 없는 녀석이군.’
나는 블라디미르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고 마음을 가다듬고 앨런에게 신호를 보냈다.
차이코프스키의 시작을 알리는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는데 콘서트 홀 뒤쪽에서 ‘털컥’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으휴. 매너라도 좀 갖추지.’
나는 나도 모르게 양 입술을 꽉 다문 채 바이올린 파트의 연주를 시작했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