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22)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22화(22/250)
연희대 기악과 바이올린 전공 이기환 교수.
그는 며칠 전, 오랜만에 동창 문혁의 전화를 받고는 망설였었다.
레슨 부탁 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온다.
모두 승낙했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부탁하는 이들 대부분은 실력이 좋지 않았다.
많은 돈을 건네며 유혹하는 무리도 있었다.
하지만, 꽤나 유복한 가정환경 덕에 그런 유혹은 떨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비올라 전공 문혁은 좀 결이 다른 친구였다.
대학교 재학 시절, 엄청난 미모와 재력과 실력을 겸비한 한세아와 사귀고 결혼까지 골인한 동기.
처음엔 문혁이 그저 그런 야심가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상투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큰 부자가 아니면서도 돈이나 인맥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
그건 사실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클래식 세계만큼 좁고 인맥에 좌지우지되는 곳이 없다.
물론 세계에 명성을 떨칠 만큼 실력이 있는 천재의 경우는 다른 얘기다.
문혁은 정말 음악만 생각하는 순수한 친구였다.
잘 나가는 교수의 라인에 서려고 애쓰지 않았고.
항상 진중하게 본인의 음악을 하던 친구.
그런 문혁도 아들 앞에서는 별수 없나보다고 생각했다.
-무리해서 레슨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 아니야. 네가 교수법 쪽으로 박사도 받고 했으니, 늦게 전공하려는 우리 애 한 번 봐줬으면 해서.
-그래, 문혁 너까지 나한테 이런 부탁할 줄은 몰랐다.
-아들 일에 별수 있나? 가능성이 있는지 좀 봐줘. 내 아들이라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어.
지금 고1.
공부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경우 뒤늦게 예체능으로 돌리는 아이들이 많은 시기.
늦게 시작해도 충분히 가능한 전공이 있는가 하면.
바이올린은 그렇지가 않았다.
‘객관적으로 아니다 싶으면 냉정하게 말해 줘야지. 현실적으로 고2 올라가는데 바이올린을 시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어떻게 문혁과 그의 아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말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이기환 교수.
‘상처를 안 주려고 에둘러 말하는 것보단 아예 확실히 쐐기박아서 말하는 게 도움 될 거야. 솔직히 말해 줘야지.’
이기환은 안유리 교수와 함께 얘기를 나누다가 튜닝(악기의 음정을 맞추는 일)을 하는 문주원을 보고, 평가를 적어주기 위해 펜과 종이를 준비했다.
‘그래도 문혁 아들인데 도움이 되려면 어느 부분을 어떻게 고치라고 말은 해줘야지.’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
예고의 입시 단골 레파토리이다.
바흐의 음악은 연주자의 실력을 감출 수가 없다.
음악하는 사람의 기본기가 여실히 드러나 버리는 바흐의 음악.
숨을 곳도 감출 수도 없는 음악.
첫마디만 들어도 연주자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이 곧 시작될 터였다.
“준비됐습니다.”
문주원의 말에 이기환 교수는 몸을 돌려 자세를 고정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 Adagio와 Fuga.
첫 음을 듣는 순간.
이기환의 몸이 저절로 앞으로 숙여졌다.
더 자세히. 더 가까이 듣기 위함이었다.
불과 고1 학생의 바흐 무반주 소나타 연주일뿐인데.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마치 거장의 음악 같았다.
평생 음악을 한 이들에게도 숙제와 같은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순례자와 같은 마음으로 평생을 갈고 닦아도 미흡하게 느껴지는 바흐의 음악.
어떤 연주자는 죽기 전까지 바흐의 음악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그런데 예고에 편입하려는 고1 학생이 이렇게 연주하다니…….
눈을 감으니 더욱더 선명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깊은 음색이 가능하지? 요즘 젊은 연주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통 바로크적인 해석까지…….’
* * *
연주를 마친 후, 나는 이기환 교수님과 안유리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이기환 교수님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이 곡으로 예고 편입 시험을 친다고?”
“네.”
“편입을 위해 따로 레슨 받을 필요가 없는 것 같구나.”
“그런가요?”
“지금 당장 나보고 연주하라고 해도 너보다 잘할 자신이 없을 정도야.”
“감사합니다. 연습 정말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하면 더 바흐의 음악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도 많이 했죠.”
“그런 고민까지도 음악에 다 녹아있더구나. 정말 대단한 연주였어.”
교수님이 한참 어린 학생한테 이런 말을 하기 쉽지 않을 텐데.
새삼 교수님의 인품이 느껴졌다.
이기환 교수님은 나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해석이 요즘 연주자들과 많이 다르던데 참고한 연주자가 있었나? 어떤 음반을 주로 들었지?”
“딱히 그런 건 없었어요.”
“바흐 음악은 특히나 해석이 많이 갈리지. 요즘 연주자들은 모던한 해석으로 연주하는 사람도 많거든.”
“저에겐 이게 자연스러운 연주입니다. 제가 해석한 바흐죠. 누구를 참고한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의 해석이에요.”
“너만의 해석이라니 참 멋진 말이구나.”
입가에 미소를 띤 이기환 교수님이 말했다.
“사실 정말 놀랐어. 거장의 연주 같았거든. 예고 입학은 전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안유리 교수님도 한마디 거들었다.
“우연히 만나서 여기 안 들어왔으면 이 훌륭한 연주를 놓치는 거였잖아요? 나 오늘 진짜 운이 좋은 날이네.”
* * *
문주원이 떠난 뒤.
이기환은 친구 문혁에게 다급히 전화했다.
“지금 통화 가능하니? 방금 네 아들 연주하고 갔다.”
“어땠어?”
“문혁, 너도 음악하니까 알잖아. 비올라랑 바이올린이랑 다르긴 하지만 말이야.”
“뭐를?”
“네 아들 엄청난 재능이 있는 아이야. 보통 사람이 아니다.”
“나도 최근에 깨달았어. 그런데 확신이 필요했어. 자식 일이니까 객관적으로 못 본다고 생각했지.”
이기환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섣불리 아무한테나 레슨 받으면 안 될 거 같아. 스스로 만들어 온 바흐의 음악이 그 정도인데. 그 애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럴까? 하지만 음악 쉰 지 정말 오래됐거든. 레파토리가 한정적인 게 걱정이 되네.”
“그게 문제라면. 예고 입학 전에 음악 최대 많이 듣게 해. 선생님은 본인이 필요하다고 할 때 찾아도 늦지 않을 거 같다. 연습만 꾸준히 한다면.”
“곧 고2인데 괜찮을까?”
“내가 들은 그 누구의 바흐보다 감동적이었어. 아들을 믿어봐. 그리고 내 귀도 믿어보고.”
* * *
그날 밤.
집에 늦게 들어온 아빠가 내 방에 들어왔다.
“기환이 말이 네 연주는 레슨이 필요없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하더구나.”
아빠의 말에 나는 씨익 웃었다.
“역시 아빠 아들이지?”
“하하, 그래. 아빠보다 훨씬 낫지.”
“그럼 일단 레슨 안 받고 그냥 시험 볼게.”
“예고 들어가서 커리큘럼 따라가기 어려울 텐데 괜찮을까?”
“도움이 필요하면 꼭 말할게.”
“그래. 사실 아빠도 너 연주 들으면서 정말 놀랐어. 너무 잘해서. 아니 잘한다는 말로도 부족해서…….”
아빠가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방문을 닫고 나갔다.
당장은 레슨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교수님의 말 덕분에 나는 다행히 혼자 예고 편입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내가 원하던 바였으니까.
일단 예고에 입학하면 실기 수업도 있다고 했으니 그때 가서 레슨 선생님을 구할지 판단하면 될 듯했다.
그렇게 나는 예고 편입시험을 혼자 준비하며 바흐의 음악에 푹 빠졌다.
오랜만에 제대로 마주한 바흐의 음악은 여전히 고귀하고 아름다웠다.
한평생 독일의 작은 도시들에서 교육과 작곡에 매진했던 바흐.
신앙심이 투철했던 바흐에게 음악은 언제나 신성한 영역이었다.
지금도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
그가 뿌린 씨앗이 널리 널리 퍼져 전 세계에 뻗기까지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다.
편입을 준비하는 내내 나는 바흐의 신성한 음악의 세계로 가차 없이 빠져들었다.
시간이 흘러 문화예고 편입 시험 당일이 되었다.
윤하준의 어머니가 윤하준과 나를 문화예고에 데려다주시기로 했다.
“고맙다, 주원아. 덕분에 우리 하준이가 예고 편입 시험도 보게 되고.”
“아니에요. 하준이 녀석 연습을 누구보다 열심히 했잖아요.”
“그래도 고마워.”
“저도 오늘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다소 긴장한 표정의 윤하준이 말했다.
“문주원, 너는 안 떨려? 나는 지금 엄청 긴장돼.”
“마음 편하게 가지고 같이 시험 잘 보자. 둘 다 붙어야 학교 같이 다녀야지.”
“그러자고.”
윤하준은 결의에 가득 찬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운전석에 앉은 윤하준의 어머니가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편입 시험 전형은 나처럼 예고 시험 봤다가 떨어졌거나, 재외국민 전형으로 외국에서 온 애들이 대부분이야.”
“그럼 나는? 나는 둘 다 아닌데?”
“그치, 너는 아니지. 너 같은 애는 없다고 보면 돼.”
문화예고에 도착한 나와 윤하준은 안내 표지판을 따라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대기실에 앉은 우리는 진행자의 호명에 따라 차례대로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블라인드로 이뤄지는 편입 시험.
심사위원의 얼굴은 전혀 볼 수 없었다.
“준비되면 시작하세요.”
“네.”
평소에 연습했던 대로 마음을 담아 활을 내리그었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는 것.
알 수 없는 불편함에 차라리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나는 그 옛날 파가니니가 된 듯했다.
악기와 활은 마치 내 몸의 일부분 같았다.
물 흐르듯 숨 쉬듯 자연스럽게 바이올린에 내 몸을 맡겼다.
곧이어 바흐의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걸작을 재현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문화예고 편입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윤하준은 어떻게 됐을까?
먼저 물어보기도 그렇고. 연락이 오겠지?
이렇게 생각하던 도중.
띠리링.
윤하준에게 메시지가 왔다.
-문주원! 나 문화예고 합격했다. 네 덕분이야. 진짜 고마워. 넌 내 은인이야.
-축하해! 윤하준. 너랑 같이 학교 가니까 나도 좋네. 네가 열심히 해서 붙은 거야!
-너 아니었으면 시도도 못 해봤을 거야. 진짜 고맙다.
윤하준과 문자를 주고받다 보니 괜히 마음이 뿌듯했다.
새롭게 시작될 문화예고에서의 시간이 기대되는 날이었다.
* * *
시간이 흘러 문화예고 첫 등교 날이 되었다.
학교가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탓에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도착한 문화예고.
시험 보러 왔을 때도 생각했지만.
고풍스러운 느낌의 학교가 참 마음에 들었다.
널따란 교정에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었다.
하늘고등학교가 두 개의 건물로 이뤄졌던 것과 다르게 문화예고엔 건물이 여러 개였다.
흰색의 대리석으로 된 석조 건물과 붉은색 벽돌로 이뤄진 건물이 섞여 있었다.
음악과, 미술과, 무용과가 있는 학교라 실기실이나 홀이 여러 개 있는 듯 보였다.
건물 사이사이로 오래된 나무들이 즐비했고 벤치도 정감있게 놓여있었다.
서울 도심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자연 친화적인 정경이었다.
나는 교문에 붙어 있는 교실 위치를 확인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학교 앞은 새 학기를 맞이한 학생들의 들뜬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새 학기니까 아직 자리는 안 정해졌을 테지?
교실 뒷문을 열고 일단 비어있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서로 같은 반이 되었다고 좋아하는 학생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었다.
어떤 학생들은 나처럼 낯선지 조용히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애는 엎어져서 자고 있었다.
친근한 모습이었다.
예고나 일반고나 이런 모습은 똑같구나.
곧 교실에 학생들이 가득 차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나는 올해 2학년 3반의 담임을 맡게 된 장성태다. 국어담당이고. 다들 작년에 봐서 알지?”
“네.”
“우리 반에 편입생이 두 명 있다. 문주원, 마이클 앞에 나와서 인사해보자.”
선생님의 큰 목소리에 내 옆에 엎드려 있던 애가 벌떡 일어났다.
나랑 같은 편입생이라는 마이클의 행동은 굉장히 자유분방했다.
교복 위에 후드티를 입고 서글서글 웃는 마이클은 딱 봐도 유쾌해 보이는 인상의 소유자였다.
“어, 둘이 같이 앉아 있었어? 자리는 자기소개하고 나서 바꿔야겠다.”
선생님은 교실을 두리번거리더니.
“편입생끼리 앉으면 서로 도와줄 수가 없으니 한 명은 김빛나 옆에 앉고, 한 명은 성혜원 옆에 앉자.”
“네.”
내 이름이 호명되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나를 흘끗 쳐다봤다.
그러곤 교실 한쪽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오디션 프로그램 나왔던 애 아니야?”
“이름 맞는 거 같은데?”
“콩쿠르가 아니라 연예인 뽑는 오디션?”
“어, 채널 M에서 했던 거.”
“대박 사건. 근데 외모 완전 아이돌인데?”
“3등인가 하지 않았어?”
“연예인 뽑는 오디션이니까 3등 했겠지. 클래식 콩쿠르면 본선도 못 올랐을지도 몰라.”
“박수호한테 이겼잖아. 박수호 문화예고 실기 최상위거든?”
“실력으로 이겼겠냐? 아이돌 같은 외모로 이겼겠지. 인기 좀 끌거 같으니까 편집 유리하게 해주고. 그림 안 그려져?”
“진짜 실력 있는 애라면 이 좁은 바닥에서 이미 알고도 남았지.”
교실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지자 담임이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하지만 소음은 그다지 사그라들지 않았다.
시간이 좀 흘러서 대중에게서 잊혔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3등을 한 뒤, 그 어떤 프로그램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내 실력이 편집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건 좀 억울한데?
편집한다고 못 하는 사람의 악기 실력이 좋아지나?
이곳에서 나를 증명해야겠군.
다른 사람의 인정이 나한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내 실력이 가짜라고 믿는 것 그냥 넘어가기 어렵지.
내 실력을 증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진심을 담은 연주.
한 번이면 차고 넘칠 테니까.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