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220)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220화(220/250)
몇 대의 카메라가 파울로의 얼굴을 집중 촬영하자.
파울로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큰 목소리로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앗, 망했다. 이거 방송에 나갈까?”
“괜찮아. 못할 말도 아니지 뭐.”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어, 뭐 다 녹화되고 있긴 하지만 다큐멘터리에 이런 장면이 나오겠어?”
그때, 콩쿠르 관계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이제 인터뷰 잠깐 진행하고 사진 촬영을 할 겁니다. 삼십 분도 안 걸릴 테니 자리에 앉아주세요.”
“아, 네.”
나와 파울로는 각자의 이름이 적힌 자리에 앉았다.
모든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고 간단한 포부를 밝히는 짤막한 형식의 인터뷰였다.
그리고는 모두 함께 여러 번 사진을 찍었다.
사진 기사가 우리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자, 벨기에 신문 1면에 실릴 사진입니다. 스마일.”
사진 기사의 그 말이 우리의 표정을 더욱 부자연스럽게 했다.
인터뷰와 사진 촬영이 끝나고 방송국의 카메라가 모두 사라지자 열두 명의 파이널 리스트들이 드디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그제야 참가자 전부와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눴다.
블라디미르는 나를 의식해서인지 저쪽 끝에 있었고 나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12명의 파이널 리스트들은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며 그랜드 피아노와 소파가 있는 넓은 거실에 도착했다.
푹신한 소파에 모든 참가자들이 앉자, 나는 지난 며칠간 참가자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다.
“그동안 좀 친해졌어요? 같이 악보 보면서 해석도 좀 나눠보고요?”
그러자 파울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분위기 전혀 아니었어. 다들 각자 방에 틀어박혀서 자고 연습하고 나와서 대충 먹고. 그렇게 살았다고.”
“같은 곡을 처음 보는데 서로 얘기도 안 나눠본 거예요?”
“그럴 정신이 없었다니까.”
나는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지원하면서 가장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
세상에 아직 발표되지 않은 곡을 참가자들과 이야기하며 완성하는 모습을 상상했던 나에게.
서로 아무런 음악적 견해를 나누지 않고 지냈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당연히 개인 연습이 우선이지만요. 저는 이렇게 우리를 한곳에 모아놓고 생활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내 말을 듣고 있던 블라디미르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냥 주최 측에서 감시하기 쉬우려고 모아놓은 거지. 누가 경쟁자한테 자기 음악 해석의 팁을 나눠주겠어? 너 생각보다 멍청하구나.”
블라디미르의 거친 언행에 다른 참가자들이 놀라 보였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서로 해석을 나눈다고 해서 똑같은 연주가 되지 않을 거란 건 알아. 그리고 우리가 이번처럼 훌륭한 연주자들이랑 합숙할 기회가 없는 건 사실이잖아? 게다가 인터넷이랑 핸드폰도 없이?”
그러자 윤가을 바이올리니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퀸엘리자베스 아니었으면 있을 수 없는 상황이죠.”
그러자 브래들리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주원 씨는 어떤 걸 제안하는 거죠?”
“음, 각자 열심히 개인 연습을 하다가요. 밤에 만나는 거죠. 번갈아 연주도 해보고 서로의 해석도 들어보고요.”
“아….”
하지만 열두 명이나 모인 곳에서 모두의 의견이 일치할 순 없었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나도 그럴 거라 짐작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음악을 하며 자라온 성인들.
나는 그저 나와 같이 음악에 대해 나눌 참가자가 한두 명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몇몇 참가자들이 서로 얘기를 하더니 자리에서 불쑥 일어났다.
“저는 먼저 들어가서 연습할게요. 미안하지만 함께 저녁에 연습하거나 해석을 나누는 것도 어려울 것 같고요.”
“저도 혼자 연습하는 게 좋아요.”
“저도 먼저 가보겠습니다.”
“저도 이만 실례합니다.”
“전혀 미안하실 것 없어요. 각자의 연습 방식을 존중해요. 저는 더 나은 연주를 위해 한 번 의견을 제시해 본 것뿐이니까요.”
그렇게 카즈야 우치다, 바스티앙 페르소나즈, 치샤오준, 올렉시 샤르딘이 소파에서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블라디미르가 자리를 뜨며 인상을 찡그렸다.
“여기까지 와서 잘난 척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그냥 솔직하게 남들처럼 경쟁해. 너도 우승하고 싶어서 온 거잖아. 왜 너만 고고한 척해?”
“당연히 나도 우승하면 좋지. 그거랑 다른 참가자들이랑 음악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게 무슨 상관이야?”
블라디미르는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한 마디를 뱉었다.
“그래, 호랑이 없는 굴에서 여우가 왕 노릇 해봐. 이런 콩쿠르 상황에서 과연 몇 명이나 바보같이 네 의견에 동의할지 궁금하네.”
블라디미르는 그 말을 남기고 거실에서 떠났다.
거실에는 무거운 적막이 짙게 내려앉았다.
* * *
똑똑똑.
“들어오세요.”
샤펠에서 모든 책임을 맡고 있는 루크는 사무실에서 참가자들의 스케줄을 확인하던 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파이널 리스트 네 명이었다.
카즈야 우치다, 바스티앙 페르소나즈, 치샤오준, 올렉시 샤르딘이 문 앞에 서서 멀뚱멀뚱 루크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본의 바이올리니스트 카즈야 우치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루크, 저희가 콩쿠르 처음 신청할 때 사인한 건 알지만요. 앞으로 개인 인터뷰는 안 했으면 해서요.”
“아! 연습 시간을 뺐길까 봐 그러시군요.”
“네, 더 이상 시간을 뺏기는 건 곤란할 것 같아서요.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점이니까요.”
“알겠습니다. 네 분 다 생각이 같으신 거죠?”
네 명의 연주자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크는 네 명의 연주자의 이름을 확인하며 친절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원래는 이미 촬영에 동의하고 오신 거지만 여러분이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네 명 연주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확 밝아졌다.
“그럼 저희 넷은 앞으로 개인 인터뷰는 전부 안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공용 공간에 카메라 달려 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개인 카메라도 저희 연습을 찍지 않았으면 해요.”
“아. 인터뷰 뿐만 아니라 개인 카메라도 모두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촬영팀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루크는 네 명 참가자의 이름을 적어 촬영팀 감독인 패트릭에게 전화를 걸었다.
-패트릭. 참가자 중 네 명이나 촬영을 거부하네요. 앞으로 개인 인터뷰나 촬영하는 거 전부 안 했으면 한다고요.
-네 명이나요? 아니, 다들 스스로 동의하고 서명했잖아요.
-파이널 리스트가 될지 모를 때는 어디에든 사인 못 하겠습니까?
-원칙상으로는 이미 사인하고 동의했기 때문에 촬영은 해도 되는데요. 어차피 연습장면 밖에 안 나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다들 예민해져서 그래요. 우리가 이해해야죠.
-휴. 알겠습니다. 그래도 네 명이나 거부한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게다가 개인 인터뷰는 몰라도 연습 장면 촬영도 안 된다니. 그때는 아무도 말도 안 거는데 말이죠.
패트릭은 루크가 말해주는 네 명 참가자의 이름을 메모했다.
그래도 네 명 중에 주원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다큐멘터리 촬영팀 역시 파이널 기간 동안 샤펠에서 머물렀지만 파이널 리스트들과의 최소 접촉을 위해 다른 건물에서 지냈다.
그곳엔 공용 공간 카메라를 실시간으로 모니터하는 직원도 있었고.
파이널 리스트들이 지휘자와 만나서 오케스트라와의 합주에 관해 토론하는 장면을 편집하는 직원도 있었다.
그때, 공용 공간 카메라를 모니터하던 직원이 패트릭을 불렀다.
“패트릭, 여기 와 보세요. 지금 재밌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네 명의 참가자나 촬영거부를 한다는 말에 다큐멘터리 분량이 제대로 나올까 걱정하던 패트릭은 동료 직원의 말에 모니터 화면으로 다가갔다.
“뭔데 그래?”
직원은 조금 전까지 보던 화면을 앞으로 돌려서 패트릭에게 보여주었다.
“주원 씨가 참가자들에게 밤에 같이 지정곡에 대한 음악 해석을 나누자고 했던데요?”
“역시….”
주원은 특별한 참가자였다.
당연히 왕관의 주인을 가려야 하는 콩쿠르였지만.
참가자들이 이 순간을 즐기지 않고 고통스럽게만 생각한다면.
결코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참가자들이 함께 먹고 자며 미발표곡을 연습할 수 있는 기회?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오로지 그들의 음악적 해석만을 나누는 시간은 돈을 주고서도 살 수 없을 것이다.
패트릭은 주원의 제안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따 몇 명이나 모일까? 아까 더 이상 촬영 못 하겠다던 네 명은 당연히 안 올 테고.”
“글쎄요. 음. 지금까지 다들 서로 대화도 거의 안 하고 방에만 틀어박혀서 연습하다가 밥 먹을 때만 봤던 걸 생각하면…. 주원 씨 혼자 오지 않을까요?”
그러다가 직원이 무언가 생각난 듯이 손뼉을 쳤다.
“아! 브래들리 짐머는 올 것 같아요. 저 친구 지난번 퀸엘리자베스 라이브에서 거의 주원 씨를 생명의 은인처럼 표현했다니까요.”
“그랬었지. 기억 나. 그때도 정말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처음엔 주원이 음악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패트릭은 그랑플라스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연주하던 주원을 보면서 확실히 느꼈던 것이 있었다.
‘주원은 진정으로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야. 그리고 그 즐거움을 다른 참가자들도 느끼길 바라는 게 아닐까?’
콩쿠르에 출전하는 사람들은 경쟁 관계에 놓일 것을 알고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쟁 관계 속에서도 음악을 나누며 함께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지금껏 수많은 참가자들을 촬영해 온 패트릭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참 동안 생각에 빠진 패트릭에게 동료 직원이 대뜸 물었다.
“주원에게 긴급 인터뷰라도 요청할까요? 무슨 생각인지 알고 보면 더 재밌지 않을까요?”
“아니야.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자연스러운 장면이 안 나올 거야. 참가자들은 공용 공간 카메라는 의식 잘 안 하거든. 애초에 거기서 머무는 시간이 적으니까.”
“일리가 있네요. 그냥 자연스럽게 오늘 밤은 지켜보죠.”
* * *
소파에서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각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저녁 10시쯤 거실에서 가능한 사람만 만나자고 제안했다.
‘아무도 안 나오면 어쩔 수 없지.’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데 파울로가 내 옆으로 왔다.
“역시 네가 들어오니까 분위기가 좀 바뀌었어. 그동안은 데면데면 거의 말도 안 했거든. 해석을 함께 나눠?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
“분위기 보니까 아무도 원치 않는 것 같더라.”
“콩쿠르라는 압박 때문에 그런 거지.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네 제안을 들으니까 연습할 용기가 나더라. 뭔가 지금 답답한 상황에서 돌파구가 될 것 같기도 하고.”
“다행이네. 아까보다 얼굴색도 훨씬 좋아 보여.”
“난 열심히 연습하다가 이따가 나올게. 이번엔 너에게 나의 해석을 전수해주지. 기대해. 음하하!”
“그래, 이따가 보자.”
처음 봤을 때 퀭한 표정으로 힘들어하던 파울로의 얼굴에 어느새 생기가 돌았다.
‘그새 괜찮아졌네. 다행이야.’
나도 방으로 돌아가 한참 동안 집중해서 새로운 지정곡의 악보를 펼쳐놓고 연습했다.
그리고 저녁 열 시가 되어 악기와 악보를 들고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고 말았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