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222)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222화(222/250)
샤펠에 들어온 지 며칠이 지나고 파이널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첫날 순서였던 카즈야 우치다와 바스티앙 페르소나즈는 샤펠을 떠났다.
나는 그 두 참가자와는 거의 대화를 나눠볼 시간이 없었다.
그들은 1분 1초가 아깝다며 식사도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했고 다른 파이널리스트와 얘기를 나눌 생각도 하지 않던 참가자들이었다.
나는 가볍게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을 먹은 뒤, 몇몇 참가자들과 함께 샤펠의 정원을 산책했다.
푸르른 정원과 초록의 울창한 숲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정원에는 초록의 잔디가 풍성했다.
그리고 고개를 올려 본 하늘은 티없이 맑고 깨끗했다.
그리고 하늘엔 구름이 솜사탕처럼 둥실둥실 떠 있었다.
‘이렇게 해 볼까?’
윤가을과 발레리 그리고 파울로가 연못의 물고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사이.
난 풀이 가장 무성한 풀밭에 드러누워 버렸다.
풀밭에 누워 하늘을 수놓은 구름을 보는 마음은 신기했다.
“구름보다 희미한….”
지정곡의 제목을 되뇌면서 작곡가의 마음을 떠올려 보았다.
선명한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결코 그 존재감이 희미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에 손깍지를 끼운 채 한참 동안 하늘과 구름을 바라다보니 어느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계속 보다 보니 하늘과 구름의 경계가 희미하다는 생각이 드네. 그런 얘기였을까?’
음악을 연주하다 보면 마디의 구분도, 악상의 변화도, 박자의 구분도 무의미하게 느껴졌으니까.
하늘을 바라보며 깊게 생각에 빠졌을 때,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요?”
“앗, 지휘자님?”
고개를 돌려 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마리안 윌슨 지휘자였다.
나는 주섬주섬 누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리안 윌슨은 그런 나를 만류했다.
“그냥 원래대로 누워있어요.”
“그래도 될까요? 구름을 보면서 마이크 자렐의 곡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주원은 정말 신기한 사람이네요. 풀밭에 누워서 구름을 보면 좀 다른가요?”
“완전 달라요. 시야에 하늘과 구름만 가득 차니까요.”
“그래요? 그럼 어디 나도 해 봐야겠어요. 어디 도움이 되나 봅시다.”
“지휘자님도 풀밭에 누우시게요?”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그녀는 씨익 웃었다.
“난 안되나요? 나도 음악가예요. 영감이 떠오른다면 못 할 일은 없지요. 기껏해야 옷에 풀이나 흙밖에 더 묻겠어요?”
“맞아요. 누워서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게 바뀌거든요. 세상을 보는 관점도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내 시야도 넓어져요.”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마리안 윌슨 지휘자.
그녀가 나랑 조금 거리를 두고 풀밭에 누웠다.
그런 그녀의 격이 없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나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그저 한 명의 음악가로서의 마리안 윌슨.
그녀 자체로 참 멋있어 보였다.
그때, 연못의 물고기를 보러 갔다가 뒤늦게 우리를 발견한 파울로와 윤가을, 발레리가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마리안 윌슨 지휘자가 눈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누워서 구름 보는 거예요. 주원 군이 지정곡을 생각하면서 구름을 보길래 내가 따라해 보는 거죠.”
“그래요? 그럼 저도 해 볼래요.”
“저도요.”
“나도 한 번 느껴봐야겠어요.”
졸지에 다섯 명이나 되는 음악가들이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풀밭에 누웠다.
산들바람에 새하얀 구름이 유유히 흘러갔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마리안 윌슨 지휘자가 일어나며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좋군요. 앞으로 이런 시간을 좀 더 가져야겠어요. 콩쿠르 일정 중에 이런 즐거움을 알게 해줘서 고마워요, 주원 군.”
“벌써 가시려고요?”
“나도 더 누워서 음악을 그려보고 싶지만 지금 브래들리 짐머와 연습이 있어서 말이죠. 오늘 나와 맞춰볼 사람들은 또 좀 이따 봐요.”
“네, 이따 뵐게요.”
“젊음도 좋고 이렇게 자유롭게 사고하는 주원의 세계가 부럽네요.”
그 말을 남긴 채 마리안 윌슨 지휘자는 샤펠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휘자님, 머리랑 옷에 풀이 많이 묻었어요.”
“털어버리면 되죠.”
파울로의 말에 그녀는 숏커트에 가까운 단발머리를 훌훌 털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발레리도 몸에 붙은 풀을 뜯어내며 말했다.
“콩쿠르 중이긴 하지만 꽤 낭만적이네. 주원 덕분에 콩쿠르 중에 오로지 음악에 더 집중하게 된 것 같아 고마워요.”
“나도 인정.”
“저도요.”
“그럼 지금 느꼈던 감정을 살려서 연습하다 저녁에 만나요.”
시간과 공간의 압박 속에 있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고 함께 음악으로 어우러지는 법을 터득해갔다.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져 개인 연습에 몰두했다.
한참을 연습하다 시간을 확인했다.
‘마리안 윌슨 지휘자랑 연습할 시간이 다 됐네.’
나는 악기와 악보들을 챙겨 연습 장소로 이동했다.
내가 도착하자 마침 브래들리가 바이올린을 들고 연습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브래들리, 지휘자님과 연습은 잘 됐어요?”
“네, 지난번보다 훨씬 좋았어요. 밤에 함께 해석을 나누고 연습한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고마워요, 정말.”
“저도 고마워요. 저한테도 뜻깊은 시간이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갑자기 브래들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날 한 사람의 음악가로 존중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주원처럼 유명한 사람이 아무 격이 없이 존중해주고 나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 솔직히 너무 도움 됐어요. 무대에 서면 두렵던 마음이 설레는 떨림으로까지 바뀌었다니까요.”
나는 브래들리의 말에 활짝 웃었다.
“퀸 엘리자베스 라이브에서 계속 제 얘기 하는 거 봤어요. 얼마나 민망했던지요.”
“그랬어요? 그날 무슨 얘기했는지 저도 잘 기억이 안나요. 기분이 너무 좋아서요.”
“정말요? 아무튼 누가 우승할지 몰라요. 우리 끝까지 최선을 다 해 봐요.”
내 말에 브래들리는 고개를 젖히며 껄껄 웃었다.
브래들리와 인사를 한 후, 난 연습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마리안 윌슨은 나를 보자마자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머리랑 옷에 붙은 풀은 잘 떼어 냈나요?”
“네, 뭐 대충 털어냈어요.”
“어디 봅시다. 지정곡을 어떻게 연주할 생각인지요.”
“그림은 다 그려졌어요. 특히 아까 풀밭에 누워서 본 구름 때문에 해석이 더 풍성해졌어요.”
“흥미롭군요. 그럼 한 번 들어볼까요?”
마이크 자렐의 악보를 펴고 연주를 시작했다.
그녀와 연습한 이유는 바로 오케스트라 리허설 때문이었다.
모든 파이널리스트들이 오케스트라와 리허설 할 수 있는 기회는 단 두 번.
한정된 시간에 연주자 개인의 특성을 미리 파악해서 오케스트라와 연습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내 이름이 적힌 악보를 펼쳤고 거기에 나의 해석을 적었다.
“오케스트라 총보를 보면 4페이지 8분의 5박자에서 4분의 2박자로 바뀌는 부분이요.”
“네, 찾았어요.”
“그 부분 제가 저음부터 피아노로 트레몰로를 하다가 상승하면서 fff로 가잖아요? 그때 모든 현악기가 저랑 같이 트레몰로로 만나고요. 그때 정말 강렬한 대비를 주고 싶어요.”
“알겠어요. 메모해두죠. 오케스트라 숫자가 훨씬 많은데 충분히 강하게 해달라는 거죠?”
“맞아요. 한 마디 안에서 박자와 셈여림이 극도로 변하는 부분이잖아요. 가장 강렬한 대비를 보이고 싶거든요.”
어떤 부분은 내가 연주를 하며 보여주기도 했고 또 어떤 부분은 노래를 부르며 나의 해석을 전했다.
한 부분은 오케스트라 부분을 그랜드 피아노로 치며 요구 사항을 전했다.
“이제 다 얘기한 것 같아요.”
“와, 주원 군은 오케스트라 총보까지 완벽히 파악했네요? 어쩌면 나보다도 이해가 완벽할지 몰라요.”
“과찬이세요.”
“혹시 지휘에는 관심 없나요? 아주 훌륭한 지휘자의 재질을 갖고 있어요. 다른 솔리스트들에게는 볼 수 없는 모습이죠.”
“앗. 지휘도 재밌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바이올린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죠.”
“총보를 보면서 어떤 악기가 함께 나오고 어떤 멜로디와 리듬으로 나오는지 파악하고 연주하는 것과, 그냥 자신의 솔로 부분만 연주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예요. 요즘 젊은 연주자들은 테크닉은 기가 막히지만 그런 큰 그림을 그리지 않던데. 주원 군은 역시 대단하네요. 기대됩니다.”
마리안 윌슨 지휘자와의 시간 이 끝난 뒤 내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늘은 치샤오준과 펠릭스 숄츠가 파이널 무대를 펼치는 날.
나는 마침 짐을 챙겨 나가는 펠릭스 숄츠와 마주쳤다.
“펠릭스, 지금 나가는 거예요?”
“맞아요. 샤펠에서의 시간이 힘들기만 하지 않았던 건 다 주원 씨 덕분이었어요. 밤에 함께 연습하고 얘기한 시간들 너무 좋았어요. 즉흥 연주했던 순간들도 물론이고요. 잊지 못 할 겁니다.”
“저도요. 그럼 파이널 결과 발표 때 봐요.”
“좋아요, 다 끝나고 봅시다.”
짐을 챙겨 나가는 펠릭스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자르 홀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아무런 매체가 없다는 것이 문득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은 접어두고 이번엔 방에 들어가서 자유곡 연습에 돌입했다.
한참을 연습하다 보니 벌써 저녁 8시가 지나 있었다.
‘보자르 홀에선 파이널 무대가 시작했겠네.’
* * *
그날 밤.
Palais des Beaux-Arts(보자르 홀)에서는 파이널 둘째 날 무대가 막 끝이 났다.
퀸 엘리자베스 라이브의 진행자는 오늘도 연주가 끝난 두 명의 연주자들과 잠깐씩 인터뷰를 진행했다.
첫 번째는 바로 중국의 떠오르는 샛별로 불리는 바이올리니스트 치샤오준이었다.
“안녕하세요, 치샤오준 군. 이제 파이널 무대를 완전히 끝내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아쉬움이 남지만 홀가분합니다.”
“특별히 어떤 점이 아쉬우셨나요?”
“마이크 자렐의 ‘구름보다 희미한’ 연주가 많이 아쉬웠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완벽하게 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요. 그리고….”
“네,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다른 연주자들과 음악적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 조금 후회됩니다.”
그렇게 후회가 섞인 치샤오준과의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그 다음은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펠릭스 숄츠 차례였다.
“안녕하세요, 펠릭스. 이제 모든 무대가 끝났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펠릭스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 콩쿠르를 통해 참 좋은 음악가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경쟁이 난무하는 세계에서도 서로 음악의 꽃을 피우기를 격려하는 그런 사람이었죠.”
“오, 샤펠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보네요. 나중에 시청자분들도 다큐멘터리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요. 조금 힌트 주실 수 있을까요?”
“네, 몇몇 연주자들은 힘들지만 정말 즐겁게 연주했습니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엔 주원 씨가 있었고요.”
“네? 또 주원 씨요? 정말 궁금하네요.”
펠릭스는 주원이 다른 참가자들과 모여 악보와 연주에 대해 토론했던 이야기를 한참 동안 했다.
그리고 이어진 펠릭스의 말에 진행자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같이 지정곡을 연습하다가 쉬는 시간에 주원 씨가 즉흥 연주를 했다고요?”
“맞아요. 주원 씨가 즉흥 연주를 하면 또 제가 이어서 하고 또 파울로가 이어서 하고. 얼마나 재밌었는지 몰라요.”
“이거 제가 샤펠에서 일어난 일 듣는 거 맞나요? 퀸 엘리자베스 라이브 진행한 이래 이런 에피소드는 처음 듣네요. 콩쿠르 곡이 아닌 다른 곡을 연주했다니….”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주원이 그러더라고요. 너무 막히거나 안될 때 그냥 아예 머리를 비우고 잠시 다른 음악을 하다가 돌아가면 또 길이 보인다고요.”
펠릭스의 말을 들은 진행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가네요. 어쩌면 음악도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에요. 우리도 그럴 때 있잖아요. 너무 한가지 생각만 몰두하다 보면 오히려 안 풀리는 경우요. 펠릭스, 소중한 경험 나눠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파이널 무대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