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224)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224화(224/250)
자크 뒤켄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 자렐과 반갑게 악수했다.
“오늘에서야 만나는군. 자네도 알겠지만 내 딸이 어제 순서라 그 전에 볼 수가 없었네.”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크를 존경하죠. 참가자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첫째 날 곡이 공개되자마자 저랑 접촉하려는 참가자 측 선생도 있었거든요. 아마도 리허설 때 연주자한테 힌트를 주려는 거였겠죠.”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다니.”
그들은 종업원에게 식사를 주문한 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 훌륭한 곡이었어. 제목부터 심상치 않더군.”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자크가 그렇게 말해주니 영광이네요.”
“구름보다 희미하다는 의미가 뭔가? 어떤 의도로 쓴 곡이었어?”
“음, 저는 위원회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 스위스 알프스를 지나 이탈리아 쪽의 돌로미티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죠.”
마이크는 신난다는 듯 ‘구름보다 희미한’을 작곡한 스토리를 속사포처럼 계속 늘어놓았다.
“돌로미티는 하얗고 푸르른 스위스 알프스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요. 좀 척박하다고나 할까.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한참을 올라가니 산 아래로 구름이 가득 들어차 마치 바다처럼 보이는 곳이 나오더라고요. ‘운해’라고 하잖아요.”
“돌로미티, 아주 멋진 곳이지. 나도 가끔 친퀘토리(Cinque Torri)에 가서 영감을 얻곤 했네.”
“맞아요. 높은 산에서 아무도 없는 도로에 차를 세우고 구름이 바다처럼 깔려 있는 모습을 내려다보니 갑자기 그 속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더라고요.”
“허허, 이 사람 큰일 날 소리를.”
개성이 뚜렷한 현대 작곡가들 중에서도 마이크는 특별히 기인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북극해의 얼음물 속에 들어가 몇 시간 동안 악상을 떠올리기도 하고,
윙슈트(날다람쥐 모양의 공중활강슈트)를 입고 내려오면서 작곡했다는 첼로 협주곡 ‘자유’는 전 세계적인 호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었다.
그는 목소리를 바꿔 악상을 떠올린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구름에 뛰어내리지 못해서 조금은 허무한 마음으로 다시 차를 타고 길을 내려오니 차가 도로에 짙게 깔린 운해 안으로 들어갔어요. 구름 속은 아주 짙은 안개와 같아요. 운해 속의 풍경은 쨍쨍 내리쬈던 햇빛도 없어지고 한 치 앞조차 보이지 않더라고요.”
마이크 자렐은 그때의 감정을 회상하듯 미간이 찌푸려지면서 표정이 한껏 심각해졌다.
“불안, 그리고 공포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어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구름 속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던 나라는 사람이, 갑자기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니.”
“그거야 나약한 인간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맞아요. 자크. 인생이 정말 단 1분 뒤도 알 수 없는 불확실의 연속이더라고요. 구름 속을 걷는 것보다 더 뿌옇고 희미한 시간의 연속이었죠.”
악보에 적히지 않은 작곡자의 의도는 어쩌면, 악보를 보고 무수히 연습하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여느 연주자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나 아직 인생 경험이 적은 어린 콩쿠르 참가자들이라면….
자크 뒤켄은 마이크의 설명을 들을수록 궁금해졌다.
‘파이널리스트 대부분에게 영향을 준 주원의 연주는 과연 어떨까?’
과연 그 친구는 이 곡의 작곡가가 악보에 쓰고 싶었던 감정을 정확히 이해했을까.
그의 해석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순간 마이크 자렐의 기대감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파이널 마지막 날 무대를 기대하고 있어요. 과연 그 친구는 어떻게 제 곡을 해석했는지를요.”
* * *
파울로 만치니는 대기실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콩쿠르를 준비했던 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최근에 있었던 가장 아픈 기억은 아무래도 딥뮤직과의 계약 불발이었다.
‘사기 계약이라 안 한 게 잘한 거긴 하지만.’
자신이 훌륭한 연주자로 인정 받았다는 생각과 자신의 음반을 드디어 레코딩할 수 있다는 설렘이 부서진 날.
파울로는 다짐했었다.
‘파이널에서 후회없는 연주를 해서 많은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게 할 거야. 음반 관계자들! 똑똑히 봐요. 반드시 나랑 계약하고 싶게 만들 테니까.’
형 때문에 다시 시작했던 바이올린.
그리고 다소 삐뚤어졌던 과거 자신의 모습.
파울로의 음악을 누구보다 사랑해줬던 할아버지.
마음을 다잡고 낯선 환경에서 공부하고자 택했던 줄리어드 음대.
과거 삐뚤어진 자신의 모습 속에서 음악을 향한 자신의 열정을 알아봐 줬던 주원을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파울로는 주원의 음악적 경지를 좇아갔지만 그는 늘 저만치 앞서 나갔다.
파울로가 주원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는 오래였다.
하지만 주원은 자신이 닿을 수 없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모든 음악가의 다양한 음악을 존중하고 격려했다.
놀랍게도 주원은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발전하길 원했다.
무려 샤펠 안에서까지.
그건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샤펠 안에 들어와서 억눌렸던 답답한 마음도 주원을 비롯한 동료 음악가들과 연습하고 토론하며 풀렸다.
게다가 스스로 느낄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성장했다.
세계 최고는 아닐지라도 특별한,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다는 다짐을 수차례 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음악을 할 거야.’
할아버지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려던 파울로는 이름이 호명되자 무대 위로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자신에게 몰리는 집중된 시선을 느끼며.
파울로는 뜨거운 박수 소리와 함께 보자르 앙리 르 뵈프 홀의 정중앙에 섰다.
‘과거의 자신’이라는 둥지를 떠나, 파울로가 ‘미래’로의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다.
* * *
석영진은 주원의 파이널 무대 이틀 전날 아침 이로운 실장과 함께 브뤼셀에 도착했다.
그리고 파이널이 열리는 보자르 예술센터 근처 호텔에 투숙했다.
미국에서 연주 투어를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손성혁의 성공적인 무대를 본 뒤 이곳 브뤼셀로 날아왔다.
둘은 미리 예약해 둔 호텔 근처 음식점에 들어갔다.
워낙 인기 있는 식당이었는지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석영진과 이로운 옆 창가 쪽 테이블엔 두 명의 남자가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참 익숙한 얼굴이었다.
‘외국 사람은 다 비슷하게 생겼다니까? 내가 낯이 익다고 느낄 정도로 특이한 사람은 많지 않은데.’
이로운 실장과 이 레스토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음식을 주문한 뒤, 잠시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옆에 앉은 낯익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과장된 제스처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앗! 생각났어.’
옆 테이블 창가에 앉은 사람은 바로 파이널 지정곡을 작곡한 마이크 자렐이었다.
작곡가는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지는 않지만 파이널이 열리는 내내 파이널리스트들의 무대를 참관한다.
그리고 가장 자신의 마음에 들게 연주한 참가자의 연주를 콩쿠르 실황 앨범에 싣는다.
그렇기에 마이크 자렐의 얼굴은 파이널 생중계 도중 수시로 화면에 잡혔다.
‘저 덥수룩한 붉은 턱수염을 쉽게 잊을 수는 없지.’
그들의 대화 주제는 파이널 지정곡에 관한 얘기였고 꽤 흥미로웠다.
게다가 그들이 기대한다는 파이널 마지막 무대의 ‘그 친구’가 주원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역시 어딜 가도 화제의 중심이라니까.’
석영진은 이로운 실장이 말을 걸자 옆 테이블의 대화에서 관심을 돌렸다.
“대표님, 그나저나 주원 군은 정말 대단해요. 파이널 끝나고 소감을 말하는 연주자들 사이에서 이름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 줄 아세요? 국내 팬들뿐 아니라 세계 팬들까지 다 신기해 한다니까요. 도대체 샤펠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러게요, 다큐멘터리 판권을 미리 협상해두길 잘했네요.”
“역시 대표님이십니다.”
“주원 군이 나오는 다큐멘터리이니 당연히 KM 클래식이 나서야죠.”
그리고 그들은 향후 스케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번 출장의 목표 중 하나인 연주자 영입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회사 사업이 점점 확장되고 있는데 아직 소속 연주자는 주원 군과 손성혁 군뿐인 게 마음에 늘 걸렸어요. 그래서 이번 콩쿠르를 통해 잠재력 있는 연주자를 영입하고 싶어요.”
“우리 회사 오고 싶다는 연주자들은 많았잖아요. 주원 군이랑 함께 연주하고 싶다면서요. 대표님께서 모두 다 거절하셨잖아요.”
“문성주 장인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로 정신없을 때였으니까요. 이제는 자리가 많이 잡혔고 세계 곳곳에 우리 연주자가 있으면 음악은 더욱 풍성해지기 마련이죠.”
“하긴요. 한국에서 리틀 주원 꿈나무들이 쑥쑥 자라고 있으니까요.”
테이블에 먹음직스러운 새우요리와 스테이크가 나왔다.
스테이크를 썰어 한 입 베어 문 이로운 실장이 음식을 삼킨 후 말했다.
“주원 씨도 참 대단해요. 아무리 어린 나이에 돈을 번다고 해도 그렇게나 많은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지원하기 힘들 텐데요. 물론 대표님과 문성주 장인도 정말 멋지시고요.”
“우리 이로운 실장님. 사회생활이 많이 느셨단 말이죠. 예전에는 이러지 않으셨는데요.”
이로운 실장은 가볍게 소리 내어 웃은 뒤,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미국이랑 벨기에로 연달아 출장 오니 기분이 좋아서 말이죠. 회삿돈으로 비행기도 타고 연주도 보고.”
“하하. 그런 거였어요?”
맛있게 식사를 마친 그들은 업무상 미팅을 두 차례나 연달아 끝내고 호텔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보자르 홀의 무대 위에선 브래들리 짐머가 청중의 박수를 받으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무대 위에서 브래들리 짐머가 내려간 뒤, 석영진은 이로운 실장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이 파울로 만치니예요.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2위 했던.”
“그러게요. 이제는 줄리어드에서도 주원 군과 친하게 지내고, 세상이 참 좁아요.”
청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에 등장한 파울로.
잠시 후, 벨기에 국립오케스트라와 함께 파울로의 연주가 펼쳐졌다.
마이크 자렐의 ‘구름보다 희미한’.
석영진은 파울로의 연주를 들을수록 빠져들었다.
‘파가니니 콩쿠르 때보다 음악에 깊이가 생겼어.’
과거에는 기교가 훌륭하고 대가들의 연주도 떠오르는, 테크닉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연주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마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석영진은 깨달았다.
‘주원의 연주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 뭔가 알을 깨고 나오는 그런 신선함이 느껴져.’
석영진은 파울로의 연주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심 감탄했다.
꽤 난해한 현대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청중을 끌어당기는 에너지가 느껴졌던 파울로의 연주.
석영진은 파울로의 연주를 들으며 한 가지 결심을 했다.
* * *
이제 모두가 떠나고 나와 블라디미르만이 남은 샤펠.
동료 연주자들과 연습하다가 즉흥연주를 하고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순간이 떠올랐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개인 인터뷰를 하고 연습 과정을 찍던 순간도 떠올랐다.
‘이제 내일이면 샤펠에서 나가는구나.’
나는 샤펠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지막 연습을 했다.
각각의 장소가 머금고 있는 추억들을 음악에 담았다.
거실, 연습실, 인터뷰를 했던 스튜디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악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밤바람이 연습하느라 이마에 살짝 맺힌 땀을 식혀 주는 느낌이었고.
하늘에는 까맣고 둥근 보름달이 유난히 밝게 하늘 높이 떠 있었다.
불빛이 있는 도시의 정경과는 다른 샤펠의 풍경.
커다란 달을 보고 있으니 온몸이 녹아내리는 편안한 느낌이어서 연주 전날이라는 생각도 잊고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
또렷하게 빛을 내고 있던 달이 살짝 일그러지나 했더니 바람에 날리는 솜사탕처럼 길게 하늘에 뿌려지는 것이 아닌가.
‘엇 이게 뭐지? 아….’
자세히 보니, 보이지 않게 밤하늘을 지나가던 얇은 구름이 달을 가리면서 오히려 달빛이 구름 속으로 흩어져 더 밝게 빛났던 것이었다.
달빛에 물든 구름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문득 온몸을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바이올린을 들었다.
그리곤 무아지경으로 활을 내리그었다.
구름보다 희미한 삶 속에서 우리는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찬란한 빛이 있다면….’
분명 나의 두 손은 이전과 같은 음을 짚고, 같은 힘으로 활을 켜고 있었지만.
악기는 계속된 지난 연습과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연습은 계속 되었고, 초록의 숲은 나의 음악으로 더 짙게 물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드디어 파이널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로서 외부와의 단절은 끝이라는 생각과 파이널 무대에 대한 설렘이 가득했다.
짐을 모두 챙겨 샤펠을 떠나는 순간.
나와 블라디미르는 루크에게 제출했던 전자기기를 모두 돌려받았다.
우리를 각자 태워갈 검정색 세단이 속속 샤펠에 도착했다.
“블라디미르, 차 준비 됐습니다. 먼저 가시죠.”
“네, 루크, 샤펠에서 감사했습니다.”
루크에게 인사한 블라디미르는 나에게 짧은 눈인사를 한 뒤 차에 탔다.
바로 뒤이어 내가 탈 차도 도착했다.
“루크, 그동안 감사했어요. 샤펠에서 지낸 날들을 잊지 못할 겁니다.”
“주원 씨 덕분에 샤펠 어느 곳에서나 연주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정원에서도, 거실에서도, 복도에서도. 언제가 주원 씨가 지나가는 곳은 흔적이 남더군요. 그럼 생애 최고의 연주를 하길 응원하겠습니다.”
나는 샤펠에 들어왔을 때와 같은 기사님이 운전해 주시는 차를 탔다.
그리고 차는 유난히도 고요한 샤펠을 벗어나 브뤼셀 시내로 향했다.
잠시 후, 시간이 만들어 낸 고즈넉함과 운치가 느껴지는 회색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파이널이 열리는 Palais des Beaux-Arts(보자르 예술센터)
대리석으로 된 고풍스러운 건물 위엔 마치 음악 축제를 반기듯 전 세계의 깃발이 알록달록한 빛깔로 펄럭이고 있었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