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225)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225화(225/250)
브뤼셀 파인아트호텔.
리허설 전까지 아직 시간이 있었기에, 곧장 보자르 예술센터로 가지 않고 이곳으로 왔다.
루크에게서 받은 핸드폰을 켜자마자 대표님께서 보낸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엔 이미 이틀 전부터 석 대표님과 이로운 실장님이 투숙하고 계셨다.
내가 머무를 곳도 같은 호텔에 예약해 놓으셨다고 하셨다.
대표님과 실장님이 식사도 같이하고 리허설에도 같이 가주시겠다고 했지만 난 공손하게 거절했다.
-한 달 동안 하던 대로 혼자서 차분하게 파이널 무대 준비하고 싶어요. 무대 다 끝나고 뵙죠.
-파이널 리허설 하는 연주자들 대부분 선생님들까지 와서 본다길래 저도 가려고 했죠. 내가 생각이 짧았네요.
-아니에요. 각자 마무리하는 방법이 있을 테니까요. 저는 차분하게 연습하며 마무리할게요.
오늘 나는 최종 리허설을 한 후 블라디미르의 다음 순서, 파이널 마지막 연주자로 무대에 설 예정이었다.
빠르게 체크인을 한 뒤 간단히 룸서비스로 식사를 주문하고 연습을 시작했다.
‘리허설 전까지 최선을 다해 봐야지.’
내가 원하는 음색이 더 풍성하게 표현될 때까지.
내가 그리고자 하는 음악이 더 완벽하게 될 때까지.
나의 연습은 그치지 않았다.
* * *
주원보다 조금 먼저 샤펠을 떠난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르 페트로프는 샤펠에서 나오자마자 루크에게 받은 핸드폰을 켰다.
그리곤 바로 연습 선생님인 이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지금 샤펠에서 나가요. 어디예요?”
“답답하진 않았어?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지. 차 옮겨 타면 돼. 나랑 안톤이랑 빅토르 선생님까지도 함께 와있어.”
“스승님도요?”
블라디미르는 기사에게 서둘러 말했다.
“저기요. 저 이 앞에 나가면 바로 내릴게요.”
“네?”
“이 차 타고 끝까지 가야하는 건 아니잖아요? 샤펠에서 나왔으니까 이제 절 더 이상 감시할 필요도 없고요. 맞죠?”
“그거야 그렇지만 이런 일은 처음인데요.”
“그냥 내려주세요. 제가 알아서 갈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뭐 연주자님이 원하시는 거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샤펠의 정문을 벗어나자마자 오른쪽에 커다란 하얀색 밴이 보였다.
검정색 세단에서 내린 블라디미르는 재빨리 밴으로 옮겨탔다.
그 안에는 스승 빅토르와 연습 선생 둘이 타고 있었다.
차 문이 닫히자마자 바로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블라디미르가 샤펠에 갇힌 일주일동안 연습 선생들은 파이널리스트들의 지정곡 연주를 분석했다.
그리고 첫째 날 연주를 마친 치샤오준의 측근에게 큰돈을 주고 악보를 빌려 복사했다.
본인 연주에 크게 만족하지 못한 치샤오준이었기에 측근도 큰 죄책감이 없었다.
치샤오준의 측근은 선생들이 제시하는 돈의 액수를 듣고 단번에 승낙했고 덕분에 그들은 아직 출판되지 않은 악보를 수월하게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명의 선생들이 곡을 분석하고 연주하고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도달해낸 결론을 이제 막 샤펠에서 나온 블라디미르에게 주입했다.
마이크 자렐의 다른 곡을 분석한 노트를 가지고 들어갔지만 같은 곡은 아니었기에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블라디미르는 선생들의 철저한 준비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리고 앞서 연주한 연주자들의 지정곡 연주 영상도 볼 수 있었다.
이반은 빠른 속도로 블라디미르에게 설명했다.
“자, 예상 목록에 있던 작곡가였고 바이올린 기법도 이미 충분히 연습했던 곡이었어. 어디를 어떻게 더 강조해야 하는지까지 얘기해 줬으니 자신 있지?”
“물론이죠. 제가 그 안에서 얼마나 연습에 몰두했는데요.”
“자, 지정곡 해석과 연주에 대한 언론과 평론가들의 평이 좋은 사람이 몇 명 있었어. 펠릭스, 발레리, 브래들리 짐머 그리고 파울로 만치니. 우리 생각은 파울로 만치니 연주가 가장 훌륭했어. 한번 보자.”
이반은 파울로 만치니의 지정곡 연주 영상을 재빨리 틀었다.
블라디미르는 파울로의 연주 영상을 보며 흠칫 놀랐다.
오로지 주원만을 라이벌로 의식했던 블라디미르에게 파울로의 연주 실력은 놀랍게 느껴졌다.
게다가 지금 선생들이 뽑은 연주자들 모두의 공통점이 있었다.
‘거실에서 함께 해석을 주고받던 녀석들이잖아. 뭐야, 단체로 실력이 업그레이드라도 된 거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다른 이들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주원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혹시 나를 견제하려고 그런 건가? 치졸한 녀석.’
블라디미르가 그런 생각에 빠진 줄도 모르고 이동하는 동안 세 선생의 가르침은 끝이 없었다.
“악보의 이 파트 있지. 가장 난해하고 템포도 빠른 패시지 말이야. 이 부분은 좀 단순화해도 괜찮아. 음표 개수를 세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오히려 템포를 놓치면 그게 큰일이야. 알지? 오케스트라랑 어긋나면 끝이라는 거.”
“그리고 이 부분. 악상의 대비를 더 강조해야 해. 활의 보폭도 더 섬세하게 생각해야 하고.”
“작곡가가 곡에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유념하면서. 그 감정을 불어넣어 봐.”
블라디미르는 선생들의 가르침을 통해 샤펠에서 조금 미흡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리허설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블라디미르는 이동하는 시간조차 허투루 쓰지 않고 스승의 분석자료를 모조리 흡수했다.
‘바보 같은 놈들. 경험도 없는 녀석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눠봤자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그리고 속으론 다들 우승하고 싶으면서 겉으로만 웃는 거 아니겠어?’
샤펠 안에서 함께 해석을 나누던 연주자들에게 조소를 날리며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쳐있는 블라디미르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리허설을 마친 후.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파이널 마지막 날.
Palais des Beaux-Arts / Salle Henry Le Boeuf
(보자르 예술센터 / 앙리 르 뵈프 홀)
블라디미르는 어깨를 곧게 펴고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로 무대 한가운데 섰다.
검정색 실키한 정장에 하얀색 셔츠를 입은 블라디미르는 특유의 거만한 미소를 장착한 채 지휘자 마리안 윌슨과 눈을 맞췄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블라디미르의 ‘구름보다 희미한’ 지정곡 연주가 시작되었다.
마리안 윌슨 지휘자의 지휘봉이 높게 올라가며 솔로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첫 박자부터 함께 등장했다.
32분음표를 쉴새 없이 연주하는 블라디미르의 활은 벌새의 날갯짓처럼 빨랐으며.
그와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거침없었다.
박자와 템포 그리고 악상이 수시로 변했지만 블라디미르는 조금도 어색함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당당함.
불규칙한 음들이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했다.
‘완벽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어.’
누구보다 자신감 넘치게 연주를 끝낸 블라디미르는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음표를 포르테시모로 마무리 했다.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 블라디미르는 굉장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진 자유곡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
‘나를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으로 만들어 줬던 곡. 그 누구보다 자신 있어.’
익숙한 오케스트라의 서정적인 연주가 홀에 흐르자 블라디미르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했다.
블라디미르는 과감한 보잉으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차이코프스키의 서정적인 선율이 아름답게 흘렀다.
활을 튀어오르 듯 연주하는 스피카토, 빈번하게 나오는 중음 주법을 완벽히 뽐내는 블라디미르.
기교 있는 테크닉을 선보이며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도취된 채.
러시아 특유의 서정적이면서 강렬한 분위기를 표현하며 불꽃이 튀는 듯한 격정적인 피날레를 그려냈다.
‘차이코프스키 때처럼 완벽했어.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어. 단 한 번도. 우승은 내 거야!’
절대적인 우승을 확신하며 블라디미르는 그 어느 때보다 거만한 미소로 청중에게 인사했다.
* * *
현대 음악의 거장 자크 뒤켄은 파이널 무대에서 연주를 펼치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옆에는 딸 발레리 뒤켄이 함께 연주를 감상하고 있었다.
기교적으로 완벽하지만 음악의 해석이 어딘지 모르게 인위적이란 느낌을 주는 연주자.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자아도취적인 음악이란 생각도 들고.’
작곡가의 의도를 알아챈 것 같으나 마치 학습에 의해 얻어진 감상인 듯.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마이크 자렐의 곡은 굉장히 난해하고 단기간에 완성하기 어려운 곡이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의 연주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그런데 마음에 남는 그 무언가가 없단 말이지. 마치 거장의 연주를 학습한 AI 같달까?’
왜 사람의 연주에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자크 뒤켄이었다.
러시아 연주자들에게 유리하다고 알려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우승자.
그런 어드밴티지가 존재한다 해도 차이코프스키의 우승자란 타이틀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름표다.
‘차이코프스키 곡도 테크닉적으로는 정말 훌륭했어. 하지만 라이브 연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CD를 틀어 놓은 것 같이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았지.’
완벽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블라디미르의 연주를 보며 자크 뒤켄은 씁쓸했다.
‘게다가 이 곡은 블라디미르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결선에서도 연주한 곡이란 말이지.’
연주자가 본인이 제일 잘하는 곡을 콩쿠르에 올리고 싶은 마음은 안다.
하지만 음악가라면 단순히 상을 위한 레파토리 선정보다는 대회를 통해 발전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게 바람직하다.
이미 마스터하고 무대에 올려 수상까지 한 곡으로 또 콩쿠르를 나간다?
긴 시간 동안 연주자는 그 곡만 연습하며 새로운 발전을 할 수 없다.
자크의 딸 발레리의 경우,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한 번도 무대에 올려본 적 없지만 콩쿠르 파이널 곡으로 선택했었다.
그때 발레리는 자크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아빠, 내가 이전 콩쿠르에서 우승한 곡을 이번 콩쿠르에서 또 연주하면 나한테 남는 게 뭐겠어? 음악적 발전은 없을 거 아니야.
-그래, 음악가로서 아주 훌륭한 선택이구나.
흠잡을 데 없는 블라디미르의 연주를 들으며 자크 뒤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대 위에서 인사하는 블라디미르에게 청중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때 옆에서 딸 발레리가 팔꿈치로 자크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빠, 주원 연주 직접 들은 적 없지?”
“없지. 동영상은 본 적 있단다.”
“주원은 파이널에 직접 작곡한 콘체르토를 연주해. 정말 멋지지 않아? 나도 다음 콩쿠르엔 이 곡 준비할 거야.”
“어디 얼마나 좋은지 들어봐야겠네.”
“직접 들으면 절대 헤어나올 수 없어. 나, 이번 콩쿠르에선 몇 등인지가 중요하지 않아. 샤펠에서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을 했으니까. 음악을 평생할 자신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자크는 딸의 모습을 보며 주원의 무대를 기다렸다.
현대 음악의 거장이라 불리는 자크 뒤켄이었지만 발레리의 음악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주원의 무대를 고대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쏟아지는 박수 속에서, 검정색 정장을 입은 주원이 미소를 지으며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 * *
관객의 박수가 잦아들고.
나는 지정곡 ‘구름보다 희미한’ 연주를 위해 눈을 지그시 감고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렸다.
지난 1주일이 메이킹 필름처럼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이, 뒤엉킨 선율이 어지럽게 적힌 악보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새로운 곡에 미친 듯이 몰입했지만, 산꼭대기로 향하는 안개 자욱한 꼬불꼬불한 길을 힘겹게 걸어 올라가는 사람의 마음과 같았다.
곡에서 느껴지는 막막함과 불안함, 앞이 보이지 않는 공포와 절망.
1주일 동안 이 곡을 연습하면서 작곡가의 마음이 느껴져 얼마나 힘들고 또 마음이 무거웠는지.
그리고 샤펠에서의 바로 그 마지막 밤이 떠올랐다.
달빛에 환하게 물들어가던 구름.
마리안 윌슨 지휘자가 지휘하는 벨기에 오케스트라와 함께.
그날 마지막 밤의 기분을 다시 떠올리며 힘차게 활을 그어 내리기 시작했다.
‘누구나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시간 속을 살아가지만 그 삶 안에서 빛을 잃지 않으면 결국에는 더욱 찬연히 빛나는 자신을 갖게 될 거야.’
나는 두 손, 그리고 온몸으로, 관객들, 그리고 작곡자를 향해 나의 모든 마음을 담아 위로와 희망의 목소리가 닿도록 혼신의 힘을 다했다.
‘불안함에 떨며 달려가는 복잡한 음표들 끝에는 영원한 어둠이 아닌 환한 빛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지금은 희뿌옇고 짙은 구름 같은 안개가 눈 앞을 가리고 있다고 해도.
그 안에 찬란한 빛이 있다면….
그 빛을 더 넓고 환하게 퍼뜨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구름이다.
눈부신 빛이 구름을 뚫고 나오는 것처럼.
지판을 짚은 손가락과 힘찬 보잉은 네 개의 현을 넘나들며 치열하게 청중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의 삶처럼.
나의 활은 구름을 집어삼킨 불꽃처럼 뜨겁게 타오르기도.
맹렬한 폭풍우처럼 쏟아지기도 했다.
구름보다 선명한 희망이 삶에 새겨지길 바라며….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