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228)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228화(228/250)
주원의 바이올린 협주곡 ‘여행’을 듣던 자크 뒤켄.
그도 오랜만에 주원의 음악과 함께 시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음악밖에 모르던 어린 시절.
과거의 위대한 음악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던 학창 시절.
위대한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감탄하면서도 그들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같은 곡을 들으면서도 모두 다른 과거를 여행하겠지.’
후회스러운 과거도.
아쉬움이 남는 순간도 있었다.
주원의 바이올린 선율을 들으며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굳이 기억 속에서 애써 지우려고 하지 않아도 차차 흐려질 거야.’
음악에 빠져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작곡과 연주에 심취했던 어린 자크 뒤켄의 과거가 주원의 연주 속에 흐르고 있었다.
바이올린 선율은 보드라운 천처럼 자크의 마음을 매만지기도 했으며.
날카로운 송곳처럼 기억의 편린을 건드리기도 했다.
단조 조성을 통해 불안감을 더욱 드러냈다가도.
장조로 조바꿈하며 분위기를 완화시키기도 했다.
강렬하게 도약했다가 급격히 추락하는 선율의 곡선은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었다.
자크 뒤켄은 1악장이 끝난 후, 음악에 흠뻑 빠진 딸, 발레리를 바라보았다.
‘발레리, 너의 여행은 어땠었니? 외롭고 힘들진 않았었니?’
평생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소홀했던 가족.
언제나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야 한다는 마음에, 새로운 영감을 찾기 위해 떠나곤 했던 여행.
집에 돌아오면 발레리는 언제나 자크가 만든 음악을 들으며 악보를 보고 있었다.
과거의 후회와 딸에 대한 미안함이 섞인 채.
주원의 2악장 연주가 시작되었다.
자유로운 재즈의 화성이 뒤엉킨 2악장은 생동감 그 자체였다.
‘주원은 지금 현재를 여행하고 있는 거야. 현재의 삶 속에서 기쁨을 찾아내는 거지. 샤펠에서 연주자들과 음악을 나눴던 순간처럼.’
현대 음악을 작곡하면서 새로움을 추구했던 자크 뒤켄.
이 세상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음악을 찾아 헤매던 그의 여정.
‘이제 조금은 그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주원의 음악을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추구해 온 음악의 길도 당연히 의미가 있지만.
새로운 미래만 추구하다가 현재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싶다는 마음.
그런 작은 다짐을 하게 해주는 음악이었다.
딸 발레리는 자크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
“음악이 눈앞에 그려져. 앞으로 누가 가장 좋아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이 뭐냐고 물으면 주원의 곡을 말할 정도야.”
“그렇게 대답할 사람이 너 혼자는 아닐 것 같구나.”
흘끗 주위 청중의 감탄 어린 눈을 보았을 때.
자크 뒤켄은 오랜만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자유자재로 활을 움직이며 피어나는 바이올린의 신비한 음색.
특히 3악장은 분명 현대곡이라고 불릴 만한 새로운 시도와 처음 접하는 다양한 기법이 눈에 띄었지만.
주원의 음악은 심오한 철학이 담겨있다기보단 사람들의 삶에 가까웠다.
너무 난해해서 전문가들만 분석하고 향유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라.
누구나 들으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선율과 음악성을 지닌 곡이었다.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곡이라니.’
연주는 어느덧 3악장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깊은 심연으로부터 시작해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모습처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설렘일까.
주원의 활이 현에 맞닿을 때마다
듣는 이들의 마음을 한껏 흔들어 놓았다.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며 주원의 음악과 하나가 되었다.
홀에 있는 모든 청중과 심사위원 그리고 연주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원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그 끝을 달리고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담긴 긍정적인 시선.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선율을 품고 있는 협주곡이었다.
자크 뒤켄은 주원의 협주곡과 함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자크 뒤켄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후의 주원의 미래가 무척 궁금했다.
‘주원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홀의 천장을 찌르듯 치솟는 마리안 윌슨 지휘자의 은색 지휘봉과 함께.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와 주원의 바이올린이 동시에 끝을 맺었다.
찰나의 침묵이 지나고.
마치 불꽃 축제의 클라이막스에 엄청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이.
2천여 청중들이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엄청난 환호를 내질렀다.
“우와와!”
“브라보!”
“C’était incroyable.”(믿을 수 없어)
“Unglaublich.”(대단해)
쏟아지는 여러 언어의 찬사와 함께 홀 안의 모든 청중이 일시에 기립했다.
자크 뒤켄도 물론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막 지휘를 마친 마리안 윌슨 지휘자가 주원을 향해 돌아서서 고개를 살짝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크는 그녀가 환호하는 관객들을 바라보다 오른손을 얼굴로 들어 무언가를 살짝 닦는 것 같은 모습을 보았다.
자크 뒤켄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리에서 일어나 끝도 모를 박수를 치고 있는 자크 뒤켄의 눈시울에도 감동으로 가득 찬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홀이 터져 나갈 것 같은 박수갈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손수건을 꺼내어 붉어지는 눈을 닦고 있었다.
자크 뒤켄처럼.
마리아 윌슨처럼.
* * *
연주가 끝남과 동시에 기립한 수천 명의 청중들.
마리안 윌슨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려놓고 눈물을 살짝 닦아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나 역시 울컥했다.
포디움 위에 선 그녀가 내 어깨를 다독이며 몸을 구부려 말했다.
“내 인생 최고의 연주였어요.”
“지휘자님 덕분이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청중의 환호는 거세져 갔고 기립한 사람들은 자리에 다시 앉을 줄 몰랐다.
파도처럼 거센 박수 소리에 귀가 얼얼해질 지경이었다.
거듭 인사를 한 뒤, 대기실로 돌아간 나는 악기를 내려놓은 채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나도 모르게 긴장했었나 보네.’
조금의 휴식을 취하고, 몇 개의 인터뷰를 한 뒤.
나는 앙리 르 뵈프 홀에서 파이널리스트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샤펠에서 함께 연습하며 해석을 나눴던 발레리, 펠릭스, 브래들리, 윤가을 그리고 파울로까지.
샤펠에서 헤어지고 며칠 만에 보는 그들의 모습은 참 반가웠다.
나는 허그를 하기도 악수를 하기도 하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다들 연주 잘 했어요? 오늘 샤펠에서 나왔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연주했는지 전혀 모르겠네요.”
내 질문에 발레리가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아빠는 지정곡에 대한 내 해석이 지나치게 밝다고 했지만요. 난 스스로 만족했어요. 그리고 다음엔 더 잘할 거란 확신이 생겼어요.”
“나도 아주 만족해. 가장 맘에 드는 연주였다고.”
파울로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처음 샤펠에서 마주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에 자연스러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리는 모두 준비된 의자에 주루룩 앉았다.
윤가을이 우리를 돌아보며 얘기했다.
“퀸엘리자베스는 특이하게 대상부터 발표하죠? 다른 곳은 모두 대상은 제일 마지막에 발표하는데 말이에요.”
무대 위에는 3미터 정도의 기다란 테이블에 붉은색 천이 깔려있었다.
그 위엔 심사위원 열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모두 착석했고 2층 VIP석엔 벨기에 국왕과 왕비 내외가 자리했다.
테이블 가운데 앉은 심사위원장 앙리 뒤트와가 마이크를 들고 일어났다.
수군대던 청중이 모두 조용해졌다.
바로 발표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콩쿠르는 그 어느 해보다 수준 높은 연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앙리 뒤트와의 시선이 열두 명의 파이널리스트를 바라보았다.
다른 콩쿠르와 다르게 대상부터 발표하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였기에.
긴장감은 극도에 달했다.
“존경하는 폐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의 관례에 따라 대상인 ‘퀸 마틸드’ 상부터 발표하겠습니다….”
앙리 뒤트와 심사위원장의 말을 들으며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여러 상황 속에서 새롭게 인연을 맺었던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리고 마치 영혼이 몸을 떠나 온 지구를 돌며 창밖에서 그리운 이들의 얼굴을 쳐다보듯이.
각자의 공간에서 이 순간을 보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아빠와 할아버지 그리고 지환이가 마음 졸이며 나를 응원하고 있을 모습.
홀 어딘가에 앉아서 발표를 기다릴 석영진 대표님과 이로운 실장님, 그리고 뉴욕에서 나를 응원하고 있을 윌.
항상 고마운 우진이와 수혁이.
하준이와 표예은, 마이클과 에밀리 그리고 성혁이.
리카르도 부부와 안젤리카.
뉴욕예고 친구들인 알렉스와 왈리드 그리고 로즈와 필립.
그리고 헤일리까지.
나를 응원하며 맘졸이고 있을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샤펠에서 나와 핸드폰을 켰을 때 쏟아졌던 응원의 메시지들.
-새벽부터 일어나서 파이널 꼭 지켜볼게! 파이팅!
내가 하는 모든 음악에 깃든 신뢰와 사랑.
이건 모두 나를 아껴준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마음 속에 담으며 앙리 뒤트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앙리 뒤트와는 다시 한 번 파이널리스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대상 수상자를 위해 특별히 마틸드 왕비께서 시상을 하시겠습니다.”
우아한 기품이 흐르는 마틸드 왕비께서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걸어 나오셨다.
앙리 뒤트와는 손에 든 봉투를 열어 드디어 결과를 발표했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올해의 대상 수상자는 바로 한국의 주원 문입니다.”
쏟아지는 함성과 박수갈채.
곳곳에서 터지는 플래시들에 홀 안이 가득 반짝였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동료들과 가벼운 포옹을 한 뒤, 무대로 걸어 나갔다.
나에게 환호하는 청중들의 얼굴이 마치 내가 그리던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어 그들의 잔상을 눈앞에서 사라지게 했다.
마틸드 왕비는 나에게 상과 부상을 수여하며 말했다.
“주원의 바이올린 콘체르토가 우리 콩쿠르에서 초연된 것.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곡을 들으면서 우리 벨기에 국기가 떠올랐어요.”
옆에 서 있던 앙리 뒤트와의 눈이 궁금하다는 듯 왕비에게 향했다.
“1악장은 차분하게 자신을 낮추는 검정색의 느낌이었고, 화려하고 다양하게 듣는 즐거움을 주었던 노란색 같았던 2악장, 그리고 3악장은 무언가 새롭게 타오르는 붉은색 태양 같았어요.”
“극찬 감사합니다. Your majesty.”
“이 곡은 앞으로 우리 콩쿠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유곡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청중 속에서 종이를 흔들며 큰소리로 나를 응원하는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호스트 패밀리였던 마르타와 줄리안이었다.
둘은 헤어질 때 나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나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종이를 흔들며 환호했다.
-주원!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세계의 보석.
조금 민망한 내용이었지만 난 환하게 웃으며 줄리안, 마르타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곤 오른손 엄지를 둘이 알아볼 수 있게 세웠다.
관객들의 환호가 수그러들지 않자 심사위원장인 앙리 뒤트와가 마이크를 잡았다.
“자, 이제 2등 상을 발표할 수 있게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
앙리 뒤트와의 말에 청중들이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벨기에 과학 정책부가 수여하는 2등, 외젠 이자이 상의 주인은. 축하합니다. 이탈리아의 파울로 만치니.”
“브라보.”
“Congratulation.”
파울로는 붉은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빠른 걸음으로 단상 앞에 섰다.
“3등 상인 Count de Launoit Prize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페트로프입니다.”
이름이 호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파이널리스트 자리에 앉아있는 블라디미르.
무대 위에서도 그의 얼굴이 벌게짐을 느낄 수 있었다.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블라디미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블라디미르는 단상 앞으로 오는 대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객석은 들끓었고 많은 취재진이 밖으로 나간 그를 쫓았다.
상황 파악을 위해 스태프들 역시 블라디미르의 뒤를 따라 나갔다.
당황한 앙리 뒤트와는 마이크를 잡고 장내를 진정시켰다.
“자, 여러분. 저희 관계자들이 어떤 일 때문인지 사실 확인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심사위원장의 말에도 장내가 어수선하고 수군거림이 잦아들지 않자 앙리 뒤트와는 큰소리로 발표를 이어갔다.
“여러분, 조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어서 계속 수상을 하겠습니다. 4등, 벨기에 정부가 수여하는 상의 주인공은 벨기에의 발레리 뒤켄.”
계속된 시상이 있음에도 청중들은 수상을 거부하고 뛰쳐나간 블라디미르에 대해 얘기하느라 집중하지 못했다.
5등, Brussels-Capital Region Prize(브뤼셀-수도 지역 상) 펠릭스 숄츠.
6등, City of Brussels Priz(브뤼셀 도시 상) 브래들리 짐머.
이로써 여섯 명의 수상자가 모두 정해졌다.
수상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꽃다발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왔지만.
블라디미르는 나머지 다섯 명 수상자 모두가 기념 사진을 찍을 때까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