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234)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234화(234/250)
상트페테르부르크 집으로 돌아온 블라디미르.
그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측의 요구에 따라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아버지 회사 직원이 가져다 준 진단서와 진료기록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공황장애 (우발적 발작성 불안)
-상기자는 위와 같은 증상으로 약물치료 및 정신치료 유지 중이며 정신건강의학적 관찰 및 전문치료 필요하다고 사료됨.
의사를 매수해 가짜 진단서와 진료기록 그리고 처방전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손 하나 까딱할 필요도 없고 병원에 갈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일이 꼬여서 좀 짜증은 나지만 깔끔하게 마무리는 해야지.’
잠시 봉투와 천장을 번갈아 바라보던 블라디미르는 진단서와 두툼한 진료기록을 접어 봉투에 넣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붉은색 왁스를 녹여 떨어뜨린 후 인장을 눌러 봉인까지 마쳤다.
“가장 빠른 DHL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조사위원회에 보내주세요.”
“네, 내일이면 도착할 겁니다.”
직원에게 봉투를 건넨 그는 서류까지 모두 제출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재학 중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가끔가다 공황장애인 척 연기만 하면 될 거라 생각하니 부담스러울 것도 없었다.
‘러시아 내에선 걱정할 일이 없지.’
아버지의 재력으로 언론을 매수하는 일은 쉬운 일이었으니까.
내수용 바이올리니스트로 만족할 생각이 없기에 이번 퀸엘리자베스에서 일으킨 물의는 빨리 깔끔하게 해결돼야만 했다.
‘병을 입증했으니 이제 트로피를 보내주겠지.’
3등 트로피인 것이 짜증나긴 했지만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임은 분명했다.
요 며칠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주원의 소식은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주원의 갈라쇼 영상과 너튜브에 올라온 음악 여행 영상을 보니.
블라디미르의 마음에 끓어오르는 분노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일단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문제 해결만 생각하자. 저 녀석만 얽히면 내가 이성을 잃으니까. 차분해야 해.’
러시아에 도착해서 아직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도 못했다.
블라디미르는 그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 자신이 저지른 문제만 해결하면 이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자신감을 내뱉는 말과는 다르게 블라디미르의 마음 한구석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음날.
특송 우편으로 블라디미르의 소명 자료를 받은 브뤼셀의 콩쿠르 위원회 측은 긴급회의에 돌입했다.
기다란 테이블엔 블라디미르 측이 제출한 진단서와 두툼한 의료기록 뭉치가 놓여있었다.
그 바스락거리는 종이를 보며 심사위원장 앙리 뒤트와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블라디미르가 러시아 권력자의 아들이라죠. 그렇다고 이따위 서류로 우리 콩쿠르의 권위를 떨어뜨릴 수 있답니까? 돈만 있으면 이런 가짜 진단서 만드는 거야 러시아에서 일도 아닐 테죠.”
“차라리 그때 블라디미르가 바로 사과하고 갈라쇼에 참석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창피하기는 하고 일은 수습해야겠고. 복잡한 머리에서 벌어진 일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수 없습니다. 수십 년 콩쿠르의 권위가 무너질 테니까요.”
“심사위원장님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러시아에 있는 측근을 통해 이 병원에 당장 가게 해보죠.”
“그렇게 해봅시다. 만약 진단서와 처방전이 가짜라면 3등 수상은 박탈해야 할 테니까요.”
“아뇨. 병원에 간다고 밝혀낼 수 있을까요? 순순히 가짜 진단서를 썼다고 할 의사가 어디 있을까요.”
회의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심사위원들은 몇 마디 주장을 더 주고받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때, 논쟁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진단서와 진료기록을 하나하나 넘기며 살펴보던 심사위원 알베르토가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이거 보세요.”
모든 심사위원들의 눈이 알베르토를 향했다.
“블라디미르가 샤펠에 있었던 기간이 언제죠? 이 날짜, 그 기간하고 겹치는 것 같은데요.”
알베르토가 심사위원들에게 들어 보인 것은 진료기록 뭉치의 한 부분.
진료일과 증상, 시술 내용이 차례차례 적혀 있는 진료기록 중 하나를 손으로 짚고 있던 알베르토의 얼굴은 이미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맞네요. 그날은 블라디미르가 샤펠에 들어가 있었던 날이기 때문에 의사가 진료를 할 수 없어요.”
“만약 화상 진료로 했다고 해도 전혀 불가능한 기간이죠. 샤펠에 갈 때는 휴대폰도 반납하고 완전 격리되는 거니까요!”
“허위 자료를 제출했네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기만하고 모욕한 겁니다.”
흥분한 심사위원들의 언성이 점점 높아져 갔고, 그들의 눈은 위원장 앙리 뒤트와에게 향했다.
앙리 뒤트와가 천천히 진료기록 앞으로 걸어가 쓰고 있던 돋보기 안경을 머리로 올리고 날짜를 확인했다.
“그렇군요. 정확합니다. 이사벨! 방으로 잠시 들어와 주세요.”
더 이상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왁스로 봉인되어 도착한 진료기록 사본의 진료일이 허위임이 명백한 이상 진단서도 믿을 수 없는 것.
이사벨은 앙리 뒤트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앙리 뒤트와는 심사위원들을 돌아보았고, 모두 무거운 표정으로 말없이 동의를 표했다.
곧, 심사위원장 앙리 뒤트와의 굵고 묵직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블라디미르 페트로프의 3등 수상을 취소합니다.”
“위원장님, 그러면 콩쿠르 규칙에 의해 다른 수상자들은 한 단계식 상이 올라갑니다.”
사무국장 이사벨은 잠시 밖으로 나가 심사위원들의 점수표를 확인한 후 다시 회의실로 들어왔다.
“일곱 번째로 평점이 높은 파이널 참가자는 한국인 연주자 가을 윤입니다.”
“좋아요. 가을 윤에게 6등 시상을 하는데 혹시 이의 있으신 위원님들 있으십니까?”
“점수대로인데 이의가 어딨겠습니까? 동의합니다.”
아무도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위원회 측은 블라디미르에게 수상 박탈 사실을 통보했다.
그리고 새롭게 바뀐 순위를 각종 언론을 통해 공표했다.
그리고 언론은 실시간으로 속보를 띄웠다.
그렇게 모든 것이 일단락된 뒤, 앙리 뒤트와는 콩쿠르 사무국장인 이사벨과 이야기를 나눴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우승자가 탄생했다고 기뻐했는데, 허허 살다 보니 정말 별일이 다 있군요.”
“경쟁이 있다 보면 시기와 질투도 생기는 법이죠. 이렇게까지 커지는 일은 드물지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실을 알았을 때 빨리 행동하는 것뿐이었네요.”
앙리 뒤트와는 이사벨이 나간 뒤, 주원의 연주 영상을 들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브뤼셀 모든 언론은 이 일을 대서특필했고 이 소식은 인터넷을 타고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
마에스트로 베르크만과 전화를 끊은 뒤.
우리는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 분수에서 공연을 한 뒤,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내일 연주할 장소를 미리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야외에서 하는 연주이니만큼 좀 더 고려할 요소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 생각이 다시 한번 일치한 곳.
그곳은 바로 마카르트 다리, 일명 자물쇠 다리 주변이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에메랄드빛 강물 위 다리.
다리엔 셀 수 없이 많은 형형색색의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자물쇠를 보자마자 우리는 다리 위로 뛰어 올라갔다.
“도대체 자물쇠가 몇 개나 걸린 거야?”
“왜 이렇게 많은 건데? 이 다리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자물쇠를 건 커플 중에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다양한 색깔의 자물쇠마다 쓰여있는 이름을 보며 감탄과 질문이 뒤섞였다.
때마침 내 옆으로 한 노부부가 다가왔다.
노인은 나에게 한 자물쇠를 가리키며 말했다.
“학생, 학생 앞에 있는 자물쇠가 우리가 좀 전에 걸고 간 자물쇠인데. 그 앞에서 사진 하나 찍어주겠나?”
“어르신도 여기 자물쇠 거셨어요? 그럼요, 당연히 찍어드릴게요.”
두 분은 호엔잘츠부르크 성이 보이는 다리 위에 섰다.
그리곤 자신들이 걸어놓은 자물쇠를 손으로 가리키며 포즈를 취하셨다.
찰칵.
“낭만적이시네요.”
“그런가? 오늘이 우리가 결혼한 지 50년이 되는 날이라네.”
그 말을 남기고 함께 걸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여기 걸린 모든 자물쇠에 저런 이야기가 숨어있겠지?’
자물쇠 한 개마다 담긴 사연.
자물쇠 한 개마다 담긴 사랑.
나는 그 다리에 걸린 수많은 자물쇠를 보며 ‘사랑’을 떠올렸다.
자물쇠로 순간의 감정을 채워 영원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
‘가장 순수한 시간이 아닐까?’
각자 흩어져 다리와 자물쇠를 한참 동안 살피던 동료들이 하나씩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풍경에 연주가 절로 될 것만 같은 느낌이요.”
“그럼 ‘사랑’에 관련된 음악을 연주하면 어때요?”
브래들리의 말에 펠릭스와 발레리도 찬성했다.
“오! 좋은 생각.”
“그럼 같이 합주하는 곡은 뭐가 좋으려나?”
그때 브래들리가 우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만 나 저 앞 가게에서 자물쇠 하나만 사올게요. 금방 다녀올게요.”
“브래들리 같이 가요.”
“아니에요. 5분이면 되니까요.”
정말로 브래들리는 쏜살같이 뛰어서 빨간색 자물쇠를 사왔다.
그리곤 다리에 여자친구 애슐리와 자신의 이름을 적어 걸고는 흡족해했다.
사진까지 찍은 브래들리는 애슐리에게 메시지까지 전송했다.
“오! 브래들리 사랑꾼이네요.”
“아! 애슐리랑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딱 이 사람이다 그런 느낌은 어떻게 받아요? 처음 만난 순간 느꼈어요?”
“그건 좀 말로 설명이 어려운데….”
“그러지 말고 좀 가르쳐 달라고요.”
파울로의 집요한 물음에 브래들리는 도망 다녔다.
잘츠부르크 시내를 휘젓고 다니는 우리의 여행은 음악이 흐르지 않는 순간도 즐거웠다.
내일 연주할 장소를 미리 정해놓은 우리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고 숙소로 가는 내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숙소에 도착하고 모두 집에 들어가고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저, 저기요.”
마침 한 여자가 나를 불렀다.
***
애슐리 왓슨은 브뤼셀에서 남자친구 브래들리의 퀸 엘리자베스 파이널 무대를 보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당당히 무대 공포증을 극복한 그가 자랑스러웠고 고마웠다.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고 노력한 브래들리의 인생을 알았기에.
애슐리는 꿈을 포기하라는 대신 항상 응원했었다.
현실의 벽 때문에 음악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마지막 콩쿠르 후 취직을 하기로 한 브래들리.
그는 진심으로 행복해했고 성취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동료들과 한 달 동안 연주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을 때.
애슐리는 이번에도 그의 결정을 응원했다.
-이런 여행은 처음이잖아. 제대로 경험하고 돌아와.
-애슐리. 런던으로 돌아가면 나랑…. 아니다. 6위에 입상했을 뿐 난 아직 가진 게 없어. 모아둔 것도 하나도 없고.
흐지부지 삼킨 말.
그녀는 그 말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이젠 내가 해야겠어.’
애슐리는 매일 브래들리와 통화하며 그의 스케줄을 파악했고, 그가 머물고 있는 숙소의 위치를 알아냈다.
브래들리는 숙소의 사진을 보내주고 도로 사진도 찍어 보내주었다.
애슐리는 런던의 주얼리샵에서 심플한 반지 두 개를 샀다.
그리곤 작은 가방을 챙겨 잘츠부르크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비행기는 잘츠부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때마침 브래들리에게서 사진과 문자가 왔다.
-사랑하는 애슐리. 이곳에 오니까 더 네 생각이 나. 마카르트 다리에 우리의 이름을 적어서 자물쇠를 걸었어. 나중에 꼭 같이 오자.
애슐리는 미소를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
-숙소론 언제 돌아가?
-이제 곧. 내일 이 로맨틱한 다리 근처에서 연주하기로 정했거든.
-나도 어떤 곳인지 보고 싶어.
-나중에 꼭 같이 오자. 너튜브에 올라오는 영상 먼저 봐!
애슐리는 브래들리의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에 짐을 놓고 바로 브래들리의 숙소 쪽으로 걸어갔다.
구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단독주택.
‘여기다!’
브래들리가 보내준 사진과 정확히 주소와 모습이 일치했다.
숙소 주변을 서성이며 언제 브래들리가 오나 기다리던 애슐리.
드디어 왁자지껄한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멀리서도 연인 브래들리의 목소리는 확실히 구분이 갔다.
“바로 가서 연습해야겠어요.”
“연습도 한 번 야외에서 해볼까요?”
“그거 신박한 생각인데요?”
집 뒤에 몸을 숨겨 안 보이게 서 있던 애슐리는 일행이 모두 집에 들어가고 마지막 멤버가 들어가려는 찰나.
그를 붙잡았다.
“저, 저기요.”
“네?”
애슐리는 그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미 영상에서 수없이 봤고 브래들리가 수없이 말했던 위대한 음악가, 주원.
브래들리가 주원에 대한 고마움을 무수히 말했기에 애슐리 역시 주원에게 감사했다.
“안녕하세요, 주원 씨.”
“절 아세요?”
“저 브래들리 짐머 여자친구 애슐리예요.”
“아! 안녕하세요.”
주원이 애슐리 앞으로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했다.
“브래들리 지금 불러드려요? 아! 그냥 들어오세요. 여기 엄청 넓어서 같이 지내셔도 좋아요.”
“그건 아니고요. 저 잠깐만 부탁드릴 일이 있어요.”
애슐리는 주원에게 이곳으로 온 이유를 설명했다.
8년 넘게 브래들리를 만났고 늘 그와 함께 걷는 미래를 꿈꾸지만.
브래들리는 준비되지 않은 자신의 모습 때문에 미안해서 함께하자는 말을 못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제가 말하려고요. 준비는 살면서 같이 하면 된다고요. 다른 건 필요 없다고요.”
그러자 주원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온 힘을 다해서 도와줄게요. 우리 내일 연주 장소가 정말 로맨틱하거든요. 거기서 ….”
주원의 얘기를 듣는 내내 애슐리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주원이 궁금한 듯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방송 나가도 괜찮아요? 우리 영상 항상 찍어서 올리거든요.”
“당연히 대 찬성이죠. 어쩌면 생애 가장 멋진 순간일지도 모르잖아요.”
애슐리는 눈을 감고 마치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떠올리며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