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242)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242화(242/250)
오랜만에 도착한 인천 공항.
입국 수속을 마치고 여행용 캐리어를 찾은 후 입국 게이트로 막 나가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D단조로 울려 퍼지는 평화로운 호른의 음색과 튜바 소리.
‘엇, 이건.’
입국 게이트 밖에서 들리는 음악은 내가 작곡한 바이올린 콘체르토 ‘여행’ 아닌가?
‘왜 이 곡이 공항에서?’
머리에 물음표를 띄운 채 게이트를 막 나가는데, 눈을 뜰 수 없는 강렬한 빛이 덮쳐오면서 무언가 검은 물체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그 탓에 나도 모르게 팔을 들어 눈을 가리고 말았다.
‘아앗!’
그러면서 마치 폭풍처럼 공항을 뒤흔드는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우와아아아!”
“주원! 주원! 주원!”
눈을 찌른 강렬한 빛은 내가 입국 게이트를 나서는 순간 내 앞에서 터진 수많은 방송 카메라와 기자들의 플래시였다.
나를 덮쳐오는 줄 알았던 검은 물체는 무려 지미집에 걸려 있던 대형 방송 카메라 두 개였다.
사람들은 1층은 물론 2층 난간까지 가득 채웠다.
그들의 함성은 마치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 전체가 함께 하는 ‘여행’의 클라이막스같이 공항을 들썩였다.
너무 놀란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뒤에서 걸어오던 이로운 실장님을 돌아보았다.
“실장님, 미리 얘기 좀 해 주시죠.”
“나도 몰랐다고요.”
“정말요?”
나는 웃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장난스레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적어도 ‘여행’이 지금 공항에서 들리는데 KM 클래식에 얘기했을 거 아니에요.”
“와! 무슨 송곳같이 날카로운 지적인데요?”
나는 정신을 좀 차리고 아직 플래시가 터지고 있는 입국 게이트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2악장이 막 시작된 ‘여행’의 묵직하고 경쾌한 더블베이스 리듬 사이로 내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과 분주하게 사진을 찍는 기자들의 소란이 겹치는 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한국말로 귀에 하나하나 들려오는 이야기들, 여기저기 걸려 있는 현수막과 내 이름들.
높은 공항 천장까지 울리는 어수선함이지만 신기하게도 온몸이 녹아드는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러네. 이제 집에 온 건가.’
게다가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여행’의 음 하나하나가 너무 선명하게 잘 들려서 참 좋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너무 화들짝 놀라서 끌고 가던 여행용 캐리어를 놓칠 뻔했다.
입국 게이트 앞의 사람들을 지나 차를 타기 위해 오른쪽으로 막 방향을 바꾸는데.
눈앞에 20명 정도 규모의 챔버 오케스트라가 ‘여행’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우와. 이건 정말….’
나는 또다시 이로운 실장님에게 뭔가 말을 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는데, 실장님이 보이지 않았다.
“이로운 실장님! 어?”
어디 갔나 했더니 실장님은 어느새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혼자 신나게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유난히도 들뜬 기색이 역력한 실장님을 보자 나도 뿌듯했다.
퀸 엘리자베스 파이널부터 유럽 음악 여행까지 거의 5주 동안 고생 한 보람을 방송 카메라에 풀어 놓고 있는 실장님의 표정이 정말 즐거워 보였으니까.
나는 오케스트라가 누구인지 보려고 가까이 걸어갔다.
내가 다가가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중년의 남자가 살짝 뒤를 돌아 나에게 눈인사를 했다.
캐주얼한 반팔 셔츠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지휘자.
지휘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난 얼어붙어 버렸다.
“황선욱 교장 선생님?”
다시 곧바로 오케스트라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잠깐 보았던 그 얼굴은 분명 문화예고 교장, 황선욱 선생님이었다.
그제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검은 정장이 아닌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와. 문화예고 후배들이구나!’
어느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보다 더 뿌듯한 감정, 대견한 기분, 그리고 정말 집에 온 느낌이 들었다.
내가 숨길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입국장을 나가지 않고 오케스트라 앞에 서서 ‘여행’의 2악장을 듣고 있는 동안.
기자들은 나와 오케스트라가 있는 쪽으로 우르르 몰려와서 사진과 영상을 찍는 데 여념이 없었다.
문화예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도저히 고등학생들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히 훌륭했다.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웅장한 클라이막스.
그리고 공항이 터져나갈 것 같이 폭발하는 피날레와 함께 2악장의 연주가 끝났다.
어느새 함성이 아닌 숨소리만 내며 나와 오케스트라 지근거리에서 연주를 듣던 수백 명의 사람들과 기자들은 그제야 다시 박수갈채와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도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쳤고, 이윽고 지휘자 황선욱 교장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교장 선생님!”
“주원아, 정말 자랑스럽구나!”
이제 검은 머리에 희끗희끗한 머리가 드물게 보이는 교장 선생님이 다가와 나를 와락 안아주셨고, 나도 교장 선생님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교장 선생님의 제자라서 우승도 하고 음악 여행도 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마중 나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정말 감사 드려요!”
“내가 더 고맙다. 문화예고 후배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메일로 약속드린 것처럼 문화예고에 1일 교사로 꼭 한번 갈게요.”
“그래, 그러면 애들이 정말 좋아할 거다. 긴 여행하느라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마치 불꽃놀이처럼 엄청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면서 우리 둘을 대낮처럼 밝게 비추었고.
교장 선생님은 연주를 마치고 뒤에서 우리 둘을 보고 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소개했다.
“이 친구들은 주원이 너의 후배들, 문화예고 2학년생들이란다. 이번에 네가 작곡한 ‘여행’으로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에 출전하기로 했어. 기억나지?”
“반가워요. 선배님!”
“선배님 곡 너무 좋아요!”
“문화예고에 꼭 와 주세요.”
나는 다시 한번 뭉클한 기분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후배들에게 다가가 한 명 한 명 모두 악수를 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여행’을 연주해 줘서 너무 고마워! 음악제에서 좋은 결과 있기 바란다.”
자신과 악수한 손을 부르르 떠는 학생, 친구와 손을 맞잡고 방방 뛰는 학생 등, 기뻐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자 예전에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에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다시 지휘자의 자리로 돌아간 교장 선생님이 지휘봉을 올리자, 오케스트라는 다음 곡을 준비했다.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이로운 실장님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연주를 막 시작한 후배들에게 손을 흔들며 입국장 한편에 마련된, 아마도 인터뷰를 위해 만든 것 같은 작은 간이 무대로 움직였다.
“이거, 축구 경기 끝나고 인터뷰하는 그런 곳 같네요?”
간이 무대 뒤에 커다랗게 새겨져 있는 KM 클래식의 로고, 그리고 수많은 기업들의 이름들이 그곳에 적혀 있었다.
“다행히도 저희는 스포츠 기자들은 아닙니다. 하하.”
“오. 다행이에요. 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트로피를 들고 어색한 웃음 지으면서 사진 찍고 싶지는 않았어요.”
기자들은 곧바로 속사포같이 질문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퀸 엘리자베스에서 주원 씨의 우승은 예측된 것이었지만, 바이올린 콩쿠르 입상자들이 모여서 한 달 동안 음악 여행을 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지금 한국에서 엄청난 클래식 열풍이 불고 있는 것 아시나요? 다양한 음악 팬들이 엄청난 속도로 클래식으로 이동하고 있어요. 클래식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시죠?”
“라이벌 블라디미르 수상이 취소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에서는 어떤 일정을 소화하게 되시나요?”
기자들의 쇄도하는 질문에 난 차례로 대답했다.
그리고 마지막 일정에 관한 질문에선 이렇게 말했다.
“계획한 일들이 많습니다. 새로운 시도도 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
“새로운 시도라는 게 뭡니까? 한국에서도 대규모 버스킹을 하신다는 건가요?”
어느 기자의 질문에 난 씨익 웃었다.
“버스킹이야 예고 없이도 할 수 있는 거고요.”
“좀 더 자세히 얘기 부탁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공식적인 일정은 회사를 통해 발표하겠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친 나는 인파에 휩싸여 입국장을 빠져나와 이로운 실장님과 함께 KM 클래식에서 준비한 밴에 올랐다.
“주원 씨 오늘 행사 미리 얘기 안 해줘서 미안해요. 하하. 근데 이제 경호원 붙여야 할 것 같네요. 집으로 가면 되죠?”
“아뇨. KM 클래식 사무실로 가 주세요. 석 대표님 뵈려고요.”
“와, 워커홀릭. 가족들도 안 보고 바로 일하러 가나요?”
“그런 건 아니고요, 가족들은 저녁에 식사 같이 하기로 했어요.”
“오케이. 그럼 KM 클래식으로 갑니다.”
밴은 뻥뻥 뚫린 인천 공항 고속도로와 올림픽 대로를 거쳐 KM 클래식 사무실에 도착했다.
똑똑.
“대표님, 저 왔어요.”
KM 클래식 사무실에 앉아 바삐 업무를 보고 있던 석영진 대표님이 나를 반겨 주었다.
“어서 와요. 주원 군. 비행 시간이 길어서 피곤했죠?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올 줄은 몰랐네요. 그때 주원 군이 제안한 내용, 한국에 오면 기획서로 보자고 했잖아요. 그래서 오늘 막 마무리하고 있었는데요.”
석 대표님은 프린터에서 막 나오고 있는 종이들을 꺼내어 책상에 탁탁 쳐서 정리하더니 출력물을 집게로 슥 집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Project Paganini’
나는 흠칫 놀라 석 대표님에게 물었다.
“왜 프로젝트 이름이 파가니니예요?”
“잘 아시다시피 파가니니가 19세기 당시 바이올린을 극적으로 대중화시킨 연주자잖아요.”
석 대표님은 넓은 사무용 책상 뒤에서 나와 내 쪽으로 걸어오면서 말을 이어갔다.
“저는 주원 군의 제안을 들으면서, 그리고 평소 활동을 보면서, 클래식이라는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느꼈어요. 이번 프로젝트는 클래식 대중화를 위한 것, 그래서 파.가.니.니.입니다.”
나는 기획서의 첫 표지를 잠시 가만히 보고 있었다.
석 대표님은 아마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짝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테지만.
나는 이 기획서가 시간도 장소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나의 첫 번째 삶과 두 번째 삶을 잇는 붉은 실과 같다는 생각에 잠시 상념에 잠겨 있었다.
“얼른 넘겨 보세요.”
석 대표님의 재촉에 한 장을 넘기자 깔끔하게 정리된 프로젝트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기획 동기: 주체할 수 없이 커지는 주원의 인기가 클래식 자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폭발시켰고,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KM 클래식의 사업 확장 및 클래식 저변 확대의 중요한 계기로 삼음
-1단계: ‘음악이 있는 학교’ 사업.
어린이 및 학부모의 클래식에 대한 관심 유지 및 확대를 위해 폐교 위험에 있는 학교에 악기, 교사 및 장학금 지원. 현재 진행 중.
-2단계: TV-M 인수.
동 방송국은 현재 모호한 타겟 시청자 설정 및 정체성 상실로 수년째 적자 시현 중. 너튜브 이상의 홍보 수단 확보를 위해 인수 적극 고려.
-3단계: 전 국민 클래식 오디션.
TV-M 채널을 이용한 클래식 오디션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하여 클래식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고 TV-M의 기업가치 향상도 달성.
기획서를 꼼꼼히 읽는 나를 보면서 석 대표님은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을 이야기했다.
“우리 대주주님이 내신 오디션 아이디어 말이죠. 그런데 클래식으로 오디션을 한다면 그게 콩쿠르랑 다른 점이 있을까요?”
“오디션은 콩쿠르처럼 엄숙한 분위기에서 긴장 속에 진행하기보다는 위압감이 없고 연령도 제한이 없죠. 콩쿠르는 보통 30살 넘으면 참가할 수 없잖아요. 또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도전할 수 있어요. 예심이나 본선이나 모두 심사위원들과 짧게라도 참가자의 연주나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역시 생각이 깊네요. 좋아요. 그 내용도 기획서에 반영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석 대표님은 프로젝트 파가니니의 단계별 진행 상황도 간단히 알려 주셨다.
1단계는 나도 알다시피 예전부터 진행하고 있던 것인데 벌써 8개 학교에 지원이 되고 있다고 했고, 2단계도 벌써 마무리 되었다고 하셨다.
“와, TV-M 인수도 다 끝내신 거예요?”
“네. 주원 군이 유럽 음악 여행 하던 그때, 아마도 피렌체에 있을 때 즈음이려나? 그때 잔금 지급이 모두 끝났어요.”
“와우. 대단하세요.”
“저야 그냥 기계적으로 일하는 사람일 뿐인데요. 주원 군처럼 좋은 아이디어만 주신다면 몇 번도 더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동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대표님과 소통해왔다.
그러면 대표님은 내 생각이 현실적으로 구체화 될 수 있는 방안을 항상 모색하셨다.
석 대표님께서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셨기에 내 의견을 바탕으로 한 파가니니 프로젝트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석 대표님은 내 의견을 끊임없이 물으며 대답을 노트북에 바로바로 정리하셨다.
“그런데 클래식 오디션은 심사위원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요? 콩쿠르랑은 좀 차별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