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243)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243화(243/250)
심사위원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표님과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눴다.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석 대표님이 웃으며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셨다.
“가기 전에 7층에 있는 주원 군 방도 보고 가요. 언제든 와서 작업도 하고 연습도 할 수 있게 만들어놨어요.”
“제 방이요?”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내게 대표님은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주원 군이 좋아할 만한 거 최대한 다 준비해봤는데 둘러보고 부족한 거 있으면 뭐든지 말해요.”
“정말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너무 궁금하네요. 바로 가볼게요.”
잠시 후.
[문주원]나는 내 이름이 적힌 7층의 방 문을 열었다.
방문은 이중문이었다.
두툼한 방음 시설이 된 사무실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뭐 합주해도 될 만큼 큰 연습실 수준이잖아? 스타인웨이 그랜드까지.’
넓은 방 한가운데엔 윤이 나는 검정색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오디오 시스템도 보였다.
커다란 책상에는 작곡 노트와 데스크탑 컴퓨터도 놓여 있었다.
그리고 벽면 한쪽 전체는 전부 책장이었다.
워낙 큰 규모의 책장이라 아직 빈칸이 많았지만 이미 꽂혀 있는 악보와 책도 상당수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작곡가별로 악보가 꽂혀있었다.
몇몇 악보를 꺼내 보았다.
헨레판 베토벤, 파데레프스키판 쇼팽, 부지앤훅스판 라흐마니노프, 출판된 파가니니의 모든 악보들.
고전 악보부터 시작해서 최근 현대 작곡가들의 악보까지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구래츠키? 패르트? 메시앙? 리게티?”
심지어 내가 아직 모르는 작곡가의 이름들까지 잔뜩 있었다.
그러다가 책장의 한 섹션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널따란 책장에서 가장 큰 섹션을 차지하는 작곡가.
지금까지 출판된 모든 악보와 레코딩한 음반 그리고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다큐멘터리 블루레이까지.
그 섹션엔 바로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쓰윽 둘러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직 작품 수가 위대한 작곡가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더 열심히 해야겠네.’
경쟁심을 불태우며 위대한 음악가들의 음악이 이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이 새삼 행복했다.
책장에서 악보를 잔뜩 꺼냈다.
올리비에 메시앙, 죄르지 리게티.
처음 보는 두 작곡가들의 악보를 꺼내며 설레는 마음으로 스타인웨이 피아노에 앉았다.
꺼내 온 악보를 피아노 보면대에 놓으려고 하는데, 그 자리에 악보 크기의 커다란 태블릿 PC가 하나 놓여 있었다.
‘태블릿 사이즈가 꼭 악보처럼 크잖아.’
태블릿을 치우고 악보를 놓으려고 하는데, 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석 대표님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맘에 드나요? 안 그래도 다른 건 다 보면 알 것 같은데, 피아노 위에 놓인 건 설명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태블릿이요?”
“네, 일단 책장에 작곡가별로 악보를 구매해서 놔둔 건 봤죠?”
“네, 정말 마음에 들어요. 처음 보는 작곡가 악보도 많고요.”
석 대표님은 피아노 앞으로 와서 보면대 위에 놓여 있던 태블릿을 마치 책처럼 펼쳐서 열면서 말을 이어갔다.
“폴더블 태블릿이군요!”
“네, 미래전자와 제휴한 건데 곧 출시될 예정이죠. 주원 군이 준 아이디어로 소프트웨어 개발을 좀 해 봤어요.”
“소프트웨어 개발이요?”
“네, 이 태블릿을 한 번 봐요.”
그러면서 석 대표님이 가리킨 태블릿 화면으로 눈을 옮기자, 거기엔 내가 책장에서 꺼낸 올리비에 메시앙의 악보가 좌우로 펼쳐진 것처럼 바로 뜨는 것이 아닌가?
“와! 이게 어떻게 된 거죠?”
“하하. 요즘 기술이 좀 좋아서, 이 방 책장에 꽂힌 악보에는 모두 RFID라는 전자 태그를 붙여 두었어요. 법적인 문제는 악보 출판사와 모두 업무제휴를 마쳤고요.”
“아, 제가 책장에서 꺼내면 서버로 정보가 전송되고, 책장에서 꺼낸 악보는 이 스크린에서 그대로 볼 수 있다는 말인 거죠?”
“맞아요. 그리고 당연히, 책장에서 직접 악보 책을 꺼내지 않아도 음성 인식이나 태블릿 자체의 검색으로도 악보를 찾아 불러올 수 있어요.”
“제가 예전에 대표님께 지나가듯 말한 아이디어를 기술로 구현시키신 거네요. 종이 악보만 구매해도 디지털 악보까지 같이 볼 수 있게 되는 거잖아요.”
“정확해요. 그리고 조금 더 발전을 시켜 봤어요. 한 번 연주해 볼래요?”
나는 궁금한 마음에 스크린에 떠 있는 올리비에 메시앙의 곡을 천천히 피아노로 쳐 보기 시작했다.
깔끔한 태블릿이 책을 펼쳐 놓은 것처럼 좌우로 악보를 원래 크기로 보여주고 화면도 아주 선명해서 연주하는데 너무 좋았다.
그런데, 한 마디 한 마디 연주하다가 악보의 첫 페이지 맨 마지막 마디에 다다르자, 오른쪽에 있던 악보가 왼쪽으로 움직이고 오른쪽 화면에는 그 다음 페이지의 악보가 뜨는 것이 아닌가!
“와, 이거 어떻게 된 건가요?”
“이 악보 태블릿은 연주자의 소리를 인식해서 악보와 맞춰 봐요. 그래서 악보를 넘길 시점이 왔다고 판단되면 악보를 자동으로 넘겨주는 기능이 있어요. 물론 그 기능은 끄고 쳐도 상관없지만요.”
“정말 좋은데요? 페이지 터너 역할까지 자동으로 있는 거잖아요.”
“주원 군이 좋아하니 저도 너무 뿌듯하네요. 그리고 아마 짐작하셨겠지만 이 시스템은 주원 군이 써 보고 만족하면 바로 대중들에게 판매할 우리 KM 클래식의 상품과 서비스가 될 겁니다. 수익의 일부는 지금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환원할 예정이고요.”
“너무 좋아서 여기서 오늘 자고 갈 지도 몰라요.”
“옷장 열어보면 이불도 있어요. 왠지 그렇게 말할 것 같아서….”
누가 와서 날 꺼내 가지 않으면 그냥 365일 방에만 틀어박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너무 행복했다.
대표님이 설명을 마치고 나간 후, 난 아까 꺼내왔던 두 개의 악보 중 하나를 펼쳤다.
작곡가의 이름은 죄르지 리게티.
제목부터 굉장히 흥미로웠다.
악마의 계단이란 이름을 가진 에튀드.
악보를 훑어보니 쳐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György Ligeti: Étude No. 13: L’escalier du diable(악마의 계단)
나는 몇 시간 동안 리게티의 음악에 탐닉하며 끝이 없는 악마의 계단을 올라갔다.
피아노의 가장 낮은 건반부터 가장 높은 건반까지 강하게 타건하며 오묘한 리케티의 음악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음악이 주는 느낌은 강렬했다.
“와! 이런 음악이 있었어?”
한참 동안 정신없이 음악에 빠져 있는데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던 핸드폰이 ‘지잉’ 하고 계속 울렸다.
진동이 계속되자 나는 연습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전화의 주인공은 바로 지환이였다.
‘앗.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시계를 보니 가족들과 집에서 저녁 먹기로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악보를 그대로 펼쳐 놓은 채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챙겨 방에서 나왔다.
그리곤 택시를 타며 전화했다.
-미안, 지금 가고 있어.
-형! 다들 기다리고 있다고. 빨리 와. 우리 안 보고 싶어?
잠시 후, 집에서 그리운 가족들과 재회했다.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안긴 지환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는 할아버지.
그리고 아빠.
나는 가족들과 포옹하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석 대표님이 회사에 제 방을 만들어 주셨는데 거기 현존하는 모든 작곡가의 악보가 있고 그랜드 피아노도 있다 보니까요. 리게티의 악보를 꺼내서 연습하다가 몇 시인지 깜빡하고….”
“여전하구나. 말 안 해도 어떤 상황인지 알겠다. 괜찮아. 얼른 밥 먹자꾸나.”
집밥이 그리웠던 나는 가족들과 함께 오랜만에 식탁에 앉았다.
도란도란 앉아 가족들과 얘기하며 먹는 밥은 6성급 호텔 식당의 밥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식사를 마치고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느라 오디오가 비는 순간은 단 일 초도 없었다.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있었지만 그 허전함이 채워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날 무렵 ‘띵동’ 벨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누구 올 사람 있어요?”
내 질문에 아빠가 배시시 웃었다.
말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안유리 교수님이 양손 가득 디저트를 사 가지고 오신 거였다.
“교수님, 오랜만에 봬요.”
내가 없는 사이 교수님은 할아버지와 지환이와도 굉장히 친밀해진 것 같았다.
같이 디저트를 준비하는 아빠와 교수님의 뒷모습을 보자 기분이 오묘했다.
낯설지만 기분 좋은 느낌.
교수님이 사 오신 달콤한 디저트처럼 우리 집 안엔 초콜릿 향기가 가득했다.
안유리 교수님은 오신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오늘 와서 정말 피곤할 텐데 쉬어. 나는 이만 갈게.”
“더 있다 가세요. 저야 올라가서 자면 되니까요.”
“아니야. 난 내일 아침 일찍 수업도 있고.”
나는 아빠에게 대신 교수님을 배웅하고 싶다고 말한 뒤 함께 나갔다.
시원한 저녁 바람이 나뭇잎을 간질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교수님. 저희 아빠 행복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랑 지환이 위해 평생 희생만 하셨는데 요즘 너무 보기 좋아요.”
내 말을 들은 안유리 교수님이 잠시 멈춰서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주원아. 혹시 말이야.”
교수님은 조금 머뭇거리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셨다.
“나 정말 문혁 선배 좋아해. 평생 곁에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싶을 만큼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내가 가족이 되어도 괜찮겠니?”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의 성격상 관계를 더 발전시키고 싶어도 교수님께 더 적극적으로 말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나는 교수님을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교수님, 전 무조건 좋아요. 아까 보니 지환이도 교수님 엄청 좋아하던 걸요?”
“지환이 너무 착하고 귀여워. 고마워, 주원아. 얼굴 보고 직접 꼭 물어보고 싶었어. 얼른 들어가서 쉬어.”
교수님은 나에게 인사를 하곤 차를 타고 떠나셨다.
보름달이 교수님이 가는 길을 그윽하게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집으로 들어온 나를 보며 아빠가 초조해했다.
“무슨 얘긴데 나가서 해?”
“교수님이 우리 가족이 되고 싶다고 하시던데? 난 무조건 찬성이라고 말했고.”
“나도 무조건 찬성! 교수님 너무 좋아.”
지환이가 큰 목소리로 찬성을 외치자 아빠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아빠의 당황한 모습을 지켜본 지환이가 아빠를 놀려댔다.
“아빠. 왜 얼굴이 그렇게 빨개졌어? 귀도? 와! 목까지 빨개지고 있다. 신기해.”
“허허.”
할아버지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한참을 웃으셨다.
편안하고 행복한 감정이 밀려옴과 동시에 잠이 쏟아졌다.
나는 오랜만에 내 방 침대에 누워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후 이틀 동안은 그동안 만나고 싶었던 친구들을 모두 만나며 한국에 있는 동안 함께할 일들을 계획했다.
대학생이 된 친구들은 여러 가지 문제로 고민이 많았고 난 함께 친구들의 고민을 듣고 해결책도 고심해 보았다.
수혁이와 우진이는 아시아 투어 관계로 당분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며칠 후, 나는 터미널에서 문화예고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 영월행 고속버스를 탔다.
내가 후원하는 학교에 갈 다녀올 계획이 있다고 하자 친구들이 함께 가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음악이 있는 학교’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곳.
프로젝트가 시작된 후 조금씩 학생들이 늘어나고 생기를 찾아간다는 산골 학교.
고속버스를 타고 몇 시간 간 뒤.
우리는 영월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다시 마을버스를 탄 뒤 한참을 걸어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
모자를 푹 눌러쓴 한 남자가 시골 마을의 학교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치익.
피렌체 연주 영상을 보며 한국에 주원의 실루엣을 남겨야겠다고 결심한 뱅크슈는 스텐실 도안을 완성해 한국으로 날아왔다.
강원도의 아름다운 산자락에 위치한 작은 초등학교.
처음 찾는 한국에서 홀로 버스를 타고 스텐실 도안과 도구까지 갖고 학교를 찾아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아름다운 한국의 산촌 마을과 학교에 매료되어 바로 힘을 내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얗게 칠해진 학교 담벼락에 스텐실 도안을 붙이고 검정 스프레이를 뿌리면서 그래피티를 완성하고 있는데, 나이든 노인 한 명이 다가왔다.
“거기 뭐 하는 거요? 어른이 돼 가지고 낙서나 하고. 그만 하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노인이 가까이 오자.
뱅크슈는 작업을 잠시 멈추고 모자를 벗은 후 핸드폰 어플을 통해 번역 문장을 노인에게 보여주었다.
-낙서 아니고 예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아주 좋아할 만한 그림이에요.
뱅크슈가 보여주는 핸드폰을 받아서 내용을 확인한 노인은 헛기침을 했다.
“이거 원. 멀쩡하게 생긴 외국인이 이제 학교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네. 근데 뭐 그림은 꽤 잘 그리는 사람인가 보네.”
노인은 ‘오케이’라고 말하고 헛기침을 하며 뒷짐을 지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모자를 다시 푹 눌러쓴 뱅크슈는 이내 피렌체의 서쪽 하늘로 지는 커다란 태양 아래 바이올린을 켜는 한 남자의 모습을 완성하였다.
‘음악이 있는 학교’란 프로젝트와도 잘 어울리는 그림.
완성된 그래피티를 뿌듯하게 바라보던 뱅크슈는 스프레이를 들어 그래피티 아래에 한 문장을 써 넣었다.
‘There is hope where music is.’
(음악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
문구가 마음에 든 뱅크슈가 그림 도구를 챙겨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또 말을 걸었다.
“멋진 그림이네요!”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