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28)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28화(28/250)
파가니니였던 과거를 떠올려도.
문주원인 지금의 삶을 떠올려도.
레슨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마지막 레슨은 엄마와 함께였으니.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요. 기억도 가물가물해요.”
뿔테 안경을 매만지며 선생님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오래됐네? 꽤 드문 케이스라 궁금하구나.”
선생님은 보면대 위에 펼쳐 놓은 악보를 바라보았다.
“이번 실기 곡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지? 연습 좀 해 봤니?”
“네, 음악 좀 들어보고 왔어요. 아직 제대로 된 연습은 안 했고요. 요즘 앙상블 연습하느라 시간이 없었네요.”
“앙상블을 벌써? 실내악 수업은 2학년에 없을 텐데?”
“특별히 생긴 행사라고 들었어요. 친구들이랑 팀 만들어서 나가기로 했어요.”
“좋은 경험이 되겠구나.”
“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그럼 실기 레슨도 시작해볼까? 한번 앞부분만 연주해 보겠니?”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Mendelssohn, Violin Concerto I E minor, Op. 64.
멘델스존이 주제 선율을 생각한 뒤, 6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완성한 아름다운 곡.
도입부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곡이다.
하이 포지션에서 시작하는 첫 음이 날카롭게 연주의 시작을 알렸다.
곧이어 도약이 심한 첫마디의 멜로디가 이어졌다.
그러곤 과감하고 거침없이 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인 음악이 고전적인 음색으로 펼쳐졌다.
왼손은 지판 위를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오른손은 좁고 넓게 활의 보폭을 달리했다.
그렇게 1악장의 연주를 마쳤다.
아직 연습을 많이 하진 못해서 아쉬운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하지만 멘델스존의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 연주하는 내내 지어지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그때, 권태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된 연습을 안 했다더니 겸손이 지나쳤구나. 정말 훌륭한 연주였어. 이런 연주를 근래에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혼잣말을 한참 중얼거리던 선생님은 조금 정신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악보의 시작 부분을 짚었다.
“Allegro, molto appasionato 라고 쓰여있지? 이 부분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그렇게 나와 권태오 선생님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권위적이지 않았고 온화했다.
우리는 같은 악보를 보고 있지만, 악보 너머 음악의 해석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질문을 했고, 나는 음악으로 대답했다.
선생님은 나의 음악적 해석을 철저히 존중해주면서 감정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더 끌어내려고 애썼다.
배정된 시간이 모두 끝났음에도 선생님은 더 내 연주를 듣고 싶어 했다.
그렇게 숨 가빴던 첫 수업이 끝났다.
“문주원, 다음 시간엔 멘델스존 작곡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와봐.”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이요?”
“작곡가는 어떤 생각을 하며 이런 곡을 만드는 걸까? 그런 생각해본 적 없지?”
“아아!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올게요.”
“특히 멘델스존이 왜 주제 선율을 생각하고 나서 곡을 완성하기까지 6년이나 걸렸을까를 생각해 봐.”
* * *
바이올린 연주자 권태오.
문화예고 실기교사는 그의 수많은 타이틀 중 하나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유학까지 다녀온 그에게 찾아온 슬럼프.
음악 하는 사람 중에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공연만으로 생계가 해결되는 사람은 없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이 많은 클래식 음악계.
하지만 권태오의 부모님은 평범한 교사였다.
문화예고 황선욱 교장과 권태오의 아버지는 죽마고우였다.
어릴 때부터 권태오의 예술가적인 기질을 알아본 황선욱 교장.
그가 바이올린 전공을 결정했을 때 그 누구보다 기뻐해 주었다.
그런 권태오가 슬럼프에 빠져 음악을 멀리했을 때, 가장 먼저 손 내밀어 준 것도 황선욱이었다.
“슬럼프는 음악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찾아온단다. 그럴 땐 오히려 음악이 답인 경우가 많지.”
“악기는 쳐다보기도 싫은걸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생각이 정리될 거다. 문화예고 실기교사에 지원해.”
“원래 하던 레슨도 다 정리한 마당에 실기교사라니요.”
“몇 명 배정 안 할 테니 그 애들만 잘 가르쳐봐. 보람이 있을 거다.”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일단 이번 학기만 해봐.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묘한 힘이 있지. 거기에 음악이 더해지는 거야.”
그렇게 시작한 문화예고 실기교사였다.
첫 학기에는 실기 꼴등인 학생을 맡게 되었다.
꼴등이니 포기할 법하기도 한 상황이었는데, 그 학생은 부단한 노력 끝에 상위권에 안착했다.
그리고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조기 유학을 떠났다.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아무도 제 가능성을 인정해 주지 않았거든요.”
두 번째 해도 마찬가지였다.
실기 꼴찌에 가까운 하위권 학생이었다.
그 역시 각고의 노력 끝에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그 학생 역시. 문화예고를 졸업하지 않은 채.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권태오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포기했을 거예요. 가족조차도 제 실기 등수보고는 그만두라고 했었거든요.”
몇 차례 그런 경험을 하면서 권태오는 보람을 느꼈다.
올해가 문화예고에서 맞는 세 번째 해.
‘올해까지만 하자. 슬럼프는 이제 극복했으니 이제 나만의 음악에 매진해야지.’
권태오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문주원 학생의 실기 수업에 들어갔다.
독특한 학생이었다.
훤칠한 키에 아이돌 같은 외모.
연예인이라 해도 믿을만한 비주얼이었다.
그런 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참 놀라웠다.
“마지막 레슨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어요.”
‘올해 편입이 경쟁률 미달이었나? 아무리 그래도 수준이 안되면 떨어졌을 텐데.’
권태오는 여느 문화예고 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문주원이 신기했다.
‘이런 학생도 다 맡아보네. 레슨을 아예 안 받는 예고 편입생이라니.’
권태오는 문주원이 펴놓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악보를 살펴보았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단골 레파토리.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첫 마디부터 하이 포지션에서 이뤄지는 음표들.
바이올린의 E현.
수준 낮은 사람들이 연주했을 경우,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괴기스러운 소리가 나는 하이 포지션이었다.
‘그래도 문화예고 편입생인데 그 정도는 아니겠지?’
권태오는 살짝 긴장한 가운데 학생에게 말했다.
“그럼 1악장만 연주해 보자.”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받은 레슨이 마지막이었다는 놀라운 학생.
그는 편안한 얼굴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첫 음이 들려왔다.
‘이럴 수가.’
너무도 아름다운 음색이었다.
가늘지만 힘 있는 고음에 실린 미세한 비브라토.
오묘한 악상의 변화는 권태오의 귀를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고전과 낭만을 넘나드는 매혹적인 바이올린의 음색.
마치 파가니니가 살아 돌아온 것만 같았다.
학생에게 질문을 던지면.
그는 말로 대답하기보다는 음악으로 보여주었다.
레슨 시간이 끝났지만 끝내고 싶지 않았다.
‘더 듣고 싶네. 끝내고 싶지 않아.’
가까스로 실기 수업을 끝낸 권태오는 생각했다.
‘앞으로 문화예고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겠군.’
* * *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예술고등학교 교무실에서는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다음 주에 우리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교환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가는 거죠?”
“네, 맞습니다. 교장 선생님.”
“주(駐)한국 이탈리아 대사관 초청 연주회에 맞춰 저도 한국에 갈테니 곧 만나기로 하죠. 준비는 다 잘 되었습니까?”
“네. 저희 쪽에서 할 건 다 했습니다. 통역이 좀 문제이긴 한데 상황 봐서 해결하겠습니다.”
“음악 하는 아이들, 음악으로 소통하면 되죠.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그게 음악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산타 체칠리아 예술고등학교의 교장 리카르도.
첼로 전공이었던 그가 부친 소유 사립학교 재단의 고등학교의 교장이 된 지 어언 7년.
재단에는 예고와 예술대학이 있다.
그리고 재단은 대규모 극장 ‘떼아뜨로 로마’를 소유하고 있다.
영리법인인 ‘로마 오케스트라’의 운영까지 맡고 있는 리카르도.
그는 이번 한국에서 열리는 많은 행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 때, 음악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이제는 성악만 그 명맥을 유지할 뿐.
그 옛날 파가니니 시절, 이탈리아가 누렸던 명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운영하고 있는 ‘로마 오케스트라’도 간신히 유지만 할 뿐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도약해야 한다. 우리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세계로 나가야 한다.’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가 넘치는 유럽의 나라들.
이탈리아는 유럽에 있지만, 성악을 제외하고는 클래식의 변방 같은 느낌이 된 지 오래였다.
이번 한국 출장은 다시 한번 클래식을 부흥시키고 싶은 리카르도 교장에게 좋은 기회였다.
그런 리카르도 교장의 속마음도 모르고…….
이번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실무자 안토니오는 불만이 가득했다.
“지금 얘기해도 소용없는 얘기지만 말입니다. 학부모들은 원성이 자자합니다. 왜 하필이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한국에 가냐고요.”
안토니오의 불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게다가 문화예고는 한국에서 가장 좋은 예고도 아니라더군요. 어디 있는지 모를 한국도 모자라 제일 좋은 학교도 아니라니요.”
안토니오의 불만 섞인 목소리를 들은 교장 리카르도가 말했다.
“한국은 클래식 시장이 크지 않지만 충분히 잠재력이 있다네.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 한국 유학생을 대거 유치하고, 연주회를 수시로 열 계획이야. 그러니 안토니오가 잘 해줘야 한다네.”
“그럼 한국에서 제일 수준 높은 예고랑 교류를 하시던가요?”
“한국예고는 우리 제안을 거절하더군.”
“하. 참. 기가 막히네요.”
안토니오는 화가 나서 더운지 손동작이 과해졌다.
“말이나 통할까요? 학생들 시간 낭비만 하고 오는 거 아닌지 걱정입니다만.”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다른 이들의 음악을 들어보고 함께 연주해보는 것 이상의 좋은 수업이 있을까? 세상이 정말 좋아졌어. 나 어릴 때 만해도 이런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지 않았지.”
이번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실무를 맡게 된 안토니오.
성악 전공이며 예고에서 교편을 잡은 지 20년이 넘는 베테랑.
그런 그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너무나 생소한 나라였다.
물론 조수민처럼 걸출한 한국 출신의 성악가를 본 적은 있다.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마치 날개가 없는 천사가 지상에 내려와 노래하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클래식 음악 시장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한국 시장은 미미한 수준.
클래식의 본고장들을 지척에 두고 알 수 없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라니.
게다가 그 나라에서조차 가장 좋은 예고가 아닌 학생들.
클래식 시장의 규모를 놓고 봐서는 이번 교류는 전혀 얻을 게 없어 보이는 안토니오였다.
‘거기에 음악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나 있을까? 음식은 또 얼마나 형편없을까?’
이탈리아인답게 안토니오는 대단한 미식가였다.
‘가서 끼니 걱정이나 안 하면 좋겠군.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식재료나 잔뜩 가져가야겠다.’
‘우리 애들이 가서 배울 게 있을까? 아시아라면 일본으로 가면 얼마나 좋아.’
그나마 양측 대사관과 재단에서 경비를 전부 지원해주는 바람에 성사된 것이지, 자비가 들어간다면 절대 갈 일이 없었을 것이다.
산타 체칠리아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은 주 한국 이탈리아 대사관에서도 초청 연주가 잡혀있다.
게다가 프란체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
그 비공식 일정에도 이들의 연주 일정이 잡혀있었다.
* * *
내일은 문화예고에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오는 날이다.
내일은 오리엔테이션이라 교실에서 수업은 없고, 모레부터 학생들이 음악과에 배치된다고 했다.
그래서 음악과 반은 모두 분주했다. 부족한 책걸상도 옮기고 나름의 역할 분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 반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시작한 조례.
담임이 자원할 학생을 모집했다.
“우리 반에는 두 명이 배정되었는데, 도와줄 친구? 통역이나 학교생활 전반에 관해서 말이다.”
“이탈리아어 통역을 하라고요?”
“쌤, 농담이죠?”
“농담은 무슨. 성악 전공인 애들은 이탈리아어도 배우지 않니? 성악 전공이 자원해주면 좋겠네.”
“1학년 때 1년 배우는 게 전부였어요. 노래 가사나 외우는 거지 회화는 불가능해요.”
모두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열심히 회피하고 있었다.
“도와주면 뭐 있어요? 봉사 점수라도 주나요? 생기부에 반영되나요?”
“봉사 점수는 내가 학교에 건의해보마. 그리고 무엇보다 담임의 사랑을 얻을 수 있지.”
“으악.”
“아무도 없어? 다들 바쁘다 이거지?”
“콩쿠르 준비에 실기시험 준비에 중간고사에 앙상블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고요.”
아이들의 볼멘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누군가가 꼭 해야 한다면.
내가 한번 해볼까?
다들 하기 싫다는데.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