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3)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3화(3/250)
할아버지가 몇 년 동안이나 나를 생각하며 만든 소중한 바이올린.
할아버지가 악기를 만들며 흘린 시간을 떠올려 보았다.
짙은 갈색에 고운 결을 가진 바이올린을 한참 만지작거렸다.
할아버지의 이마에 깊게 팬 주름과 굳은살 투성이인 손을 보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 감사해요, 할아버지.”
“음악이 없는 삶은 쓸쓸해. 나는 네가 다시 음악이랑 가까워지면 좋겠구나. 음악은 정말 좋은 친구거든.”
“…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나에게도 음악뿐이었다.
음악은 가장 좋은 친구였다.
작은 손가락이 짚는 대로 울리는 신비한 소리.
그때는 내가 소리의 마법사라도 된 것 같았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시간이 왜 이렇게 많이 지나 버린 걸까?
“이제라도 네게 이 악기를 줄 수 있어서 할애비는 죽어도 소원이 없단다.”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세요. 죄송해요. 제가 너무 오랜 시간 꿍하고 있어서요. 이제는 정말 괜찮아요.”
“그런 것 같구나.”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으셨다.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어찌 보면 별거 아닌 말.
다시 음악을 한다는 말.
할아버지께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음악도 다시 듣고 바이올린도 연주할게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저 학교 축제에도 나가요. 친구들이랑 밴드하는데, 제가 보컬이거든요.”
“그래? 할애비 닮아서 노래도 잘하는구나. 허허”
“그런가 봐요.”
“녀석, 할애비도 축제 구경 가도 되냐?”
“아, 그건 좀…. 고등학교 축제에 할아버지가 보러오는 애는 없을걸요? 제 친구들이 엄청 놀릴 거예요. 짓궂거든요.”
내 대답에 할아버지가 크게 웃으셨다.
“허허, 그래. 지환이 학교에는 아직까지 가도 괜찮던데.”
“걔는 초딩이잖아요. 제가 대신 동영상 찍어서 보여드릴게요.”
“그래, 노래도 좋지만. 나는 네가 할애비가 만들어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게 더 듣고 싶구나.”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너무 나이 들어버린 할아버지.
아빠가 바쁠 때면 언제고 나랑 지환이의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할아버지.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 나는 아빠와 할아버지를 이렇게 오랫동안 마음 쓰이게 했을까?
할아버지가 오랜 시간 나를 생각하며 만들었을 바이올린을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이제라도 다행이야.’
문득 매일 밤 꿈에 나오는 파가니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꿈이 아니었으면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못 열었을 테니까.
“연습 좀 해서 들려드릴게요. 아까 켜보니 엄청 어색하더라고요.”
“그래, 천천히 하려무나.”
할아버지는 자신보다 한 뼘이나 더 커버린 내 머리를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어 주셨다.
“녀석, 어느새 이렇게 컸구나. 핏덩이 같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할아버지, 저 맛있는 거 사주세요. 배고파요.”
“그래, 나가서 같이 밥 먹자꾸나.”
* * *
쉬는 시간에 옆 반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문주원, 이나리 쌤이 너 오늘 수업 끝나고 음악실로 좀 오래.”
“어, 알았어.”
그때 뭔가에 홀린 듯이 악보를 그려 선생님 책상에 놔뒀었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나는 수업이 끝난 후, 음악실에 갔다.
아직 선생님은 도착하지 않으셨다.
순간 선생님의 책상 위에 잔뜩 어질러진 악보가 눈에 띄었다.
그중 하나를 골라 펼쳐보았다.
어? 이건?
익숙한 멜로디였다. 익숙하다 못해 선명한 멜로디였다.
내 머릿속에 새겨진 선율.
그 선율은 나를 과거의 어느 날로 이끌었다.
* * *
1798년, 이탈리아 제노바.
“니콜로, 오늘 안에 이 악보 다 외우지 못하면 밥은 없어.”
아빠가 악보를 던진다. 처음 보는 악보다.
“이번에 그 유명한 슈테판 공작이 친히 너의 연주를 보러 오신다.”
“그럼 그냥 제가 작곡한 곡으로 연주하면 안 돼요?”
“슈테판 공작이 특별히 이 곡을 요청하셨어. 그분 마음에 들기만 하면 엄청난 돈을 후원하신다고. 그러니까 연습 제대로 해.”
술 냄새를 풍기며 말하는 아빠는 또 도박을 하러 나갔다.
아빠가 나가자 나는 바이올린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아빠의 강요에 의해서 연습하는 건 재미없다.
아빠가 오기 전에만 완성하면 되지 뭐.
피아노 앞에 앉았다. 요즘은 피아노 치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떤 귀족의 집에서 새 피아노를 샀다면서 쓰던 피아노를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
피아노가 생긴 이후에는 아빠가 집을 비울 때마다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피아노를 치다 보면 더욱더 영감이 떠올랐다.
바이올린과는 다르게 복잡한 화성도 혼자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한참 피아노를 치다 보니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엄마, 오늘은 엄마 따라가고 싶어. 방에서 연습만 하는 거 지겹거든. 아빠한테는 비밀이야.”
“니콜로, 그럼 얌전히 있어야 해. 아빠가 알면 가만히 안 둘 거야.”
엄마는 가끔 귀족 부인 집에 직접 만든 음식을 팔고는 했다.
엄마의 음식 솜씨는 유명해서, 귀족 부인들이 부탁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늘 가는 집엔 나와 나이가 비슷한 엘리사라는 여자애가 있었다.
고귀한 가문의 딸.
그 애는 비싼 돈을 내고 갖가지 수업을 받았다.
재능이 털끝만큼도 없는데 볼 때마다 배우는 악기가 바뀌어 있었다.
오늘은 엘리사가 윤기가 흐르는 멋진 피아노 앞에서 낑낑대고 있었다.
“아, 진짜 뭐가 이렇게 어려워. 악보가 뭐 이래. 천재 작곡가라더니 다 거짓말이야. 천재면 사람이 보기 쉽게 악보를 그려야지.”
한참 그녀가 투덜대며 연주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곡의 실체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뚱땅뚱땅. 뚱땅뚱땅.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피아노가 아까울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곡일까?
고개를 돌려 눈치를 보니, 마르타 부인이 엄마가 만든 판소티가 너무 맛있다며 흥분한 상태였다.
어린 채소를 다져 볶고 계란과 치즈로 속을 만들어 제노바 전통 호두 소스와 함께 찍어 먹는 엄마의 판소티는 귀족 부인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였다.
마르타 부인의 감탄사가 뚱땅거리는 엘리사의 피아노 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이때다 싶었다.
“내가 좀 가르쳐줄까?”
“네가?”
엘리사가 가늘게 눈을 뜬다.
“너 바이올린만 잘하는 거 아니었어? 다들 너 바이올린 천재라고 하던데.”
“난 음악이라면 다 잘해. 물론 바이올린을 제일 잘하지만 말이야. 결국 음악은 모두 비슷하거든.”
“거짓말, 음악이 뭐가 다 비슷해? 다 싫어. 음악 따위.”
아주 복에 겨운 팔자로군.
저렇게 좋은 피아노가 있으면 나는 방 안에서 하루 종일 안 나올 수도 있을 텐데.
“이 피아노 처음 보는 거다?”
“이거 엄청나게 비싼 거야. 우리 아빠가 이번에 영국에서 특별 주문해서 가져온 거라고. 이 악보도 잉크도 마르기 전에 가져온 거야.”
“그래? 엄청 비싼 피아노에 귀한 악보까지 가진 애가 피아노 실력은 형편없구나.”
엘리사가 입을 삐쭉거린다.
“치, 피아노는 바이올린이랑 다르다고. 건반 개수를 봐봐. 그렇게 자신 있으면 네가 쳐보던지.”
엘리사가 선심 쓰듯이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는 털썩 피아노 앞에 앉았다. 처음 보는 악보였다.
출판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따끈따끈한 악보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아버지가 수도 없이 말했던 이름.
나보다 열 몇 살 많다던 천재 음악가의 이름을 되뇌었다.
엘리사가 치던 곡이 그 유명한 베토벤의 곡이었다고?
악보로나마 천재의 음악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Pathetique(비창) 2악장.
Adagio cantabile
(느리고 노래하듯이)
평온해 보이던 악보는 예상과 다르게 핑거링이 제법 까다로웠다.
낮은음자리의 윗성부를 오른손으로 쳐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프레이즈가 끊겨서 들리면 안된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곡이었다.
느릿느릿.
평온한 감정을 노래한다.
맑은 선율이 방안을 감싸 안았다.
베토벤.
그의 음악은 정말 아름답구나.
그의 음악은 따뜻한 위로였다.
뒤를 돌아보니 양손에 판소티를 든 마르타 부인이 입안에 가득한 음식을 미처 삼키지 못한 채 오물거렸다.
“아들이 바이올린 천재라더니 피아노 천재였어?”
엘리사도 한마디 거들었다.
“지금 이게 내가 치던 곡이라고?”
* * *
그렇게 과거의 기억과 얽혀 비창 2악장의 연주가 끝났을 때.
나의 귓가엔 아직도 서정적인 선율이 맴돌고 있었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멜로디는 나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음악실의 문이 열렸다.
이나리 쌤이었다.
나의 손은 여전히 피아노 건반 위에 놓여 있었다.
미처 떼지 못한 손가락은, 비창 2악장의 마지막 음의 페르마타(곡의 표정 변화를 위해 박자를 늦추는 것)를 지속하고 있었다.
“문주원, 지금 피아노 네가 쳤던 거야?”
“…아, 네.”
“제대로 못 들어서 그런데 다시 한번 쳐줄래? 비창 2악장이었지? 내가 엄청 좋아하는 곡이야.”
“선생님, 저도 제가 지금 어떻게 쳤는지 모르겠어요. 정신이 좀 없어요.”
“그래? 에이 잠깐만 쳐 줘봐. 앞에 도입부라도. 악보도 있잖아.”
“지금 좀 머리가 아파서요. 다음에요.”
정말이었다.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가락을 댔다.
뒤섞인 과거와의 기억에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이나리 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정신이 돌아왔다.
“그런데 저 왜 보자고 하신 거예요?”
“지난번에 내 책상에 놓고 간 악보 때문에.”
“아, 그거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고 대답하면 선생님은 믿을 수 있을까?
둘러댈 말이 충분하지 않아 그냥 화제를 바꿔버렸다.
“그런데 오늘은 피아노 음정이 다 제대로예요. 지난번에 분명히 이상했는데.”
“조율사분이 왔었어. 진짜 너 말대로 피아노 건반이 전체가 다 음정이 낮아진 거 있지?”
“어쩐지. 오늘은 다 좋게 들리네요.”
“조율사분이 놀라시던걸? 이 정도 낮은 걸 누가 알아챘냐고. 신기해하시더라.”
“…….”
“그렇게 미세하게까지 다 구분하다니. 너 정말 완전 절대음감인가 봐.”
“그런가?”
그러고 보니 사고 후에 귀가 더 예민해진 것 같았다.
예전에도 음감은 좋은 편이었지만, 이제는 악기의 소리를 넘어 새소리, 물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까지 음(音)으로 들릴 지경이다.
“그리고 이 악보 도대체 뭐야? 손으로 직접 그린 거잖아. 카프리스 24번을! 설마 외운 건 아닐 테고……. 무슨 생각으로 그랬어?”
이나리 쌤이 내 노트를 펼쳐서 다시 찬찬히 살핀다.
나조차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는데 선생님께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음. 그날 수업시간에 곡이 너무 좋아서 반했다고나 할까요?”
선생님이 내 대답에 감동을 받았는지 큰 눈을 반짝거리며 묻는다.
“문주원, 너 음악 전공 진짜 안 할래?”
음악을 다시 하겠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전공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억지로 밀어내던 음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한 것뿐이었으니까.
“저 생각 없어요.”
“장래 희망은 뭐야?”
“없어요, 아직 그런 거.”
“아쉽다. 생각 바뀌면 꼭 말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그런 생각이 들면 꼭 말씀드릴게요. 오늘은 저 이만 가요. 친구들이 기다려서요.”
“그래. 내가 너무 흥분했나 봐. 너한테 뛰어난 음악 재능이 보여서.”
선생님께 공책을 받아들고 음악실을 나왔다.
머릿속에선 베토벤 비창 2악장의 멜로디와 그 옛날 엘리사의 뚱땅거리는 피아노 소리가 오버랩되고 있었다.
왠지 어디선가 고소한 판소티 향이 나는 것만도 같았다.
* * *
채널 M 방송국 회의실.
새로운 포맷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 한창 토론이 오가고 있었다.
“기획사 소속 연습생만 나오면 재미가 없어. 요즘은 시청자들이 더 귀신같이 안다니까.”
“그렇죠. 연습생들도 팬클럽 있는 애들도 많더라고요.”
“거기다 공중파 3사도 모자라서 케이블에 종편까지 모두 비슷한 시기에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온단 말이지.”
“그래서 우리는 다른 방송국이랑은 차별화해서 속도감 있게 7부작으로 기획된 거잖아요.”
회의에 참여한 직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프로그램 포맷도 제일 신선해요. 아이돌만 뽑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참가자들이 나올 수도 있고요.”
아이돌 오디션, 밴드 오디션, 국악 오디션, 성악 오디션, 게다가 트로트 오디션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시기다.
채널 M은 장르를 가리지 않기로 애초에 결정했다.
그래서 프로그램 제목도 가칭 ‘채널 M 스타발굴단’이다.
죽도 밥도 안될 수도 있지만, 다양한 참가자가 등장하면 여려 연령층을 공략할 수도 있다.
또한, 한가지 패턴에서 오는 지루함을 탈피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속도감있는 전개로 초반에 기세를 눌러버릴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스타성 있는 참가자.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굴려보던 예승석 PD에게 작가가 말했다.
“근처 고등학교 축제에 가서 괜찮은 애들 캐스팅 해보면 어떨까요? 작년에 YK에서 대어 하나 건졌다던데요.”
“이미 관심 있는 애들은 다 기획사 들어가 있지 않겠어?”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