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30)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30화(30/250)
“문주원이 이탈리아어를 하는 거야?”
“장난 아니고 진짜?”
두 명의 이탈리아 학생들은 내가 이탈리아어로 말을 건네자 처음엔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반가운 기색이 가득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이탈리아어를 쏟아냈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연주 영상을 찾아서 시간을 보내던 나는 우연히 한 음악가의 연주 영상을 클릭했다.
이탈리아 연주자가 연주하면 진행자와 그 곡에 대해 함께 대화하는 방식의 영상이었다.
어떤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그 영상이 나에게 추천 영상으로 떴는지까지는 모른다.
하지만 무심코 재생시킨 그 영상을 보고 난 뒤.
나는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내가 이탈리아어를 완벽히 알아듣는다는 것!
파가니니 시절 나의 모든 기억에는 언어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연주 영상과 진행자의 이야기는 하나도 빠짐없이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은 잠깐 동안 신기한 헤프닝으로 나에게 기억됐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오늘,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는 게 이번에 도움이 될 거라는 것.
교환 학생들이 자신들을 소개했을 때.
여과 없이 전달되는 그들의 말.
반에서 혼자 알아듣고 웃는다는 것은 제법 유쾌한 경험이었다.
이탈리아 학생들은 아무도 못 알아들을 줄 알고 일종의 푸념 같은, 소개답지 않은 소개를 했었다.
하지만 갑자기 이탈리아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내가 나타나자, 학생들은 이번에 제대로 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금발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여학생과 갈색 머리에 에메랄드빛 눈을 가진 남학생.
나는 그들의 말을 반 친구들에게 재빨리 통역해 주었다.
이번엔 이름과 전공만 담백하게 소개했다.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예술고등학교에서 온 카트리나라고 해. 전공은 성악이야.”
“나는 바이올린 전공이고 이름은 루카.”
담임 쌤은 예상 밖 나의 활약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셨다.
“문주원, 이탈리아어를 왜 이리 잘하는 거야? 이렇게 잘하면서 선생님을 놀리면 어쩌냐?”
“그냥 잘난 척 같아서 말 안 했을 뿐이에요.”
“녀석. 겸손하기까지.”
“그럼 얘네들은 문주원 뒤에 앉는게 좋겠다. 둘이 같이.”
“네.”
나는 교환 학생 친구들에게 선생님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그들은 웃으며 교실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김빛나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문주원, 너 도대체 뭐야? 이탈리아어 잘하면 말을 하지.”
“굳이 뭐.”
“내가 충고한답시고 말했을 때 속으로 웃었겠다?”
혼자 말하고 지레짐작하던 김빛나는 궁금한 것이 많은 듯했다.
“너, 이탈리아에서 살다 오기라도 했어?”
그래! 오래 살았었지.
아주 옛날에.
하지만 여행 정도라고 해두자.
어찌 보면 나는 지금도 여행하고 있는 거일지도 모르니까.
“가본 적은 있지.”
김빛나의 눈에 아직도 궁금증이 남아있는 듯했지만.
더는 대답해 줄 생각이 없었다.
* * *
다음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이른 아침 학교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를 걸어 복도 끝 연습실로 가는 중이었다.
연습실에 불을 켜고 온기를 불어 넣은 후.
그 작은 공간을 음악으로 채우는 일은 매일 나를 성장시키고 변화시켰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복도 끝 연습실에 다가갈수록 들려오는 선명한 소리.
그건 바로 피아노 소리였다.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2악장.
그 아름다운 선율이 복도에 흐르고 있었다.
누가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구나.
내가 좋아하는 그 연습실인가?
누굴까?
알 수 없는 이의 피아노 음색은 더할 나위 없이 서정적이고 낭만적이었다.
어쩔 수 없지. 오늘은 다른 곳에서 연습해야지.
나보다 일찍 와서 자리를 점령한 사람은 연습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학교 연습실은 모두 방음이 되어 있긴 하지만.
문을 닫고 연습해도 내가 연주하지 않는 이상 옆 방의 소리가 들린다.
하물며 저렇게 활짝 열고 연습할 경우에는?
그 소리는 고스란히 다른 방에서 연습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문을 열어놓은 건가 본데. 내가 가서 말 해 줘야지.
그런 생각에 문이 열린 연습실에 다가갔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뒷모습은 학생의 모습이 아니었다.
다가갈수록 선명해지는 영롱한 피아노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그가 연주를 끝내기를 잠시 기다렸다.
놀랍게도 피아노 소리의 주인은 바로 황선욱 교장 선생님이었다.
“놀랐니?”
“아니 교장 선생님께서 아침부터 연습실에 계세요?”
“너를 보러 왔어.”
“네?”
“정확히 말하면 네가 연습하는 거 다시 보러 왔단다.”
피아노 위에서 손을 뗀 교장 선생님은 나의 오른손에 들린 바이올린 케이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바이올린 소리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더구나. 연습하는 동안 잠깐만 듣다 가도 되겠니?”
“네. 괜찮아요. 그런데 교장 선생님 피아노도 꽤 듣기 좋던걸요?”
내 말을 들은 교장 선생님이 박장대소했다.
“나도 문화예고 출신이지. 대학까지는 피아노 전공이었고. 국제 콩쿠르 입상 경험도 많단다. 그 뒤엔 지휘로 전향했지만.”
“오. 어쩐지, 음색이 남다르다 했어요. 그리고 왠지 이 곡에 개인적인 사연이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고요.”
“하. 너 참 재밌는 학생이구나. 왜 그런 생각이 들었지?”
“감정의 전환이 단순히 악상의 변화로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개인적인 감정의 기복이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그래서 더 좋았고요.”
교장 선생님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연습실 한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이제는 내가 감상할 차례구나. 조용히 듣다가 가마. 오늘 일정도 참 빡빡해서 말이지.”
* * *
연습이 끝나고 교실에 돌아왔다.
교실 앞에 이탈리아 교환 학생 두 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왔어? 내가 자리 안내해 줄게.”
“고마워, 너 이름이 뭐였지? 까먹었어.”
“문주원.”
이탈리아어 발음과 섞인 내 이름이 이상했지만, 루카와 카트리나는 열심히 내 이름을 연습했다.
친구들이 아직 오지 않은 교실에서 나는 루카와 카트리나와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루카가 물었다.
“너는 왜 이탈리아어를 잘해? 이탈리아에서 살아본 적 있어?”
“여행가 본 적 있어.”
“어디? 여행 정도로는 이렇게 완벽한 이탈리아어는 힘들 텐데?”
“제노바에서 꽤 길게 여행했어. 제노바 알아?”
“물론이지, 파가니니의 고향이잖아.”
그러자 옆에 있던 카트리나가 거들었다.
“유럽에서 바이올린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노바에 가.”
“왜?”
“왜긴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 때문이지. 2년에 한 번씩 열리잖아. 콩쿠르에 참가하건, 콩쿠르를 보러 가건 둘 중 하나야.”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
언젠가 할아버지가 악기를 주시면서 나에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옛날 파가니니가 쓰던 악기로 연주회를 한다는 게 정말이야?”
“그럼. 과르네리 캐논. 지금 제노바 시청에 보관돼 있잖아. 콩쿠르 우승자만이 연주하고 녹음할 수 있어.”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건 나의 유언이었다.
죽기 전 나의 진심이 담긴 말.
“나의 바이올린 캐논, 내 영혼을 이제부터 영원히 제노바에 기증하겠네.”
캐논을 직접 연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그 옛날. 대포처럼 소리가 커서 이름 붙여진 과르네리 캐논.
나 이외의 연주자는 다루기 힘들 정도로 캐논은 다이나믹을 표현하기 힘든 악기였다.
하지만 그 까다로운 악기가 나에게만은 마음을 열어주었다.
누구보다 소리가 큰 악기였지만.
나에게 있어서 캐논은 그 무엇보다 섬세하고 정교한 악기였다.
아니 악기 이상의 동반자였다.
한때 누구보다 명성을 얻고 부귀영화를 누렸던 나.
하지만 세상을 홀로 떠돌며 방랑자처럼 살았던 나.
그런 나에게 캐논은 악기 이상의 의미였다.
아무도 내 옆에 없을 때.
언제나 나와 함께였으니까.
그래, 조만간 너를 다시 만나고 싶구나.
너와 내가 만들었던 음악.
다시 한번 세상에 들려주고 싶다.
기나긴 상념에 잠겨있던 나는 루카와 카트리나가 종알대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둘의 대화는 꽤 심각해 보였다.
“새벽에 잠에 깼거든? 근데 불도 안 켜고 핸드폰 찾다가 발을 헛디딘 거야.”
“괜찮았어?”
“넘어지는데 왼손으로 바닥을 짚었어. 근데 좀 삐끗한 거 같아. 심한 건 아닌데 통증이 있어.”
“핸드폰을 왜 침대 옆에 안 두고.”
“식탁에 두고 잤거든.”
조금 아파 보이는 루카에게 내가 물었다.
“너 바이올린 한다면서 손을 다치면 어쩌려고. 병원 안 가봐도 되겠어? 아니면 급한 대로 학교 보건실에라도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그게 지금은 곤란해.”
“왜? 너희 무리할 거 없어. 수업 빠져도 괜찮아. 당장 보건실 가자.”
“…그럴까?”
루카를 설득해 보건실을 가려는데 담임이 들어왔다.
담임은 내 뒤에 앉은 루카와 카트리나를 보며 눈인사를 건넸다.
“오늘 이탈리아 교환 학생들은 신입생들 앞에서 작은 음악회를 한다.”
“2학년은 못 봐요?”
“너네는 수업해야지.”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여깄다.”
“아, 정말 저희도 볼래요. 궁금하단 말이에요.”
“공부하기 싫어서 아니고?”
“에휴.”
반 친구들의 실망한 소리가 교실에 가득 퍼졌다.
“문주원은 이탈리아 친구들 지금 강당 건물에 있는 ‘하모니 홀’로 좀 데려다줘. 그 친구들은 리허설할 거라서.”
“근데 선생님 루카가 아파서 제가 보건실 들렀다가 데려다줄게요.”
“그래, 김빛나는 1교시 선생님 수업 들어오시면 문주원 상황 잘 말씀드리고. 감점 없도록 부탁한다.”
“네.”
조례가 끝나자 나는 카트리나를 먼저 강당에 데려다주고는 루카와 함께 보건실로 갔다.
루카의 증상을 선생님께 설명하자 선생님은 루카의 손 이곳저곳을 조심스레 눌러보셨다.
“여기 이렇게 누르면 아프니?”
“아아.”
“여기는 어때?”
“으아아.”
선생님이 조금씩 누를 때마다 루카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타박상이야. 뼈에 이상은 없는 것 같지만. 통증이 꽤 있어서 손을 당분간 사용하지 말아야 해.”
큰일 났네. 당장 오늘 연주가 있는 모양이던데.
“선생님, 오늘 진통 소염제 먹고, 파스 뿌리고 연주하면 안 될까요? 얘 바이올린 하는 애거든요. 오늘 연주도 있다던데.”
“그건 안돼. 하다가 악기 떨어뜨리면 어쩌려고. 일상생활이야 조금 통증 있어도 가능하지만, 바이올린은 왼손을 계속 들고 있어야 하잖아.”
나는 루카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루카는 정말 난처한 기색이었다.
“얼마 정도면 괜찮아질까요?”
“병원에 가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빠르면 1주일? 오래 걸리면 2주일 정도. 그 정도만 쉬면 되는 거야.”
루카에게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말해주자 조금은 안심한 듯 보였다.
하지만 곧 걱정스러운 낯빛이 되살아났다.
“나 좀 ‘하모니홀’로 데려다줄래? 같이 연주하는 애들한테 빨리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 얼른 가보자.”
보건실을 나와 나는 루카를 서둘러 강당 건물의 홀로 인도했다.
그곳에는 교환 학생들과 그들의 지도교사가 있었고.
아이들은 저마다 악기를 꺼내 연습 중이었다.
카트리나를 비롯해 몇몇 성악 전공 학생들은 목소리를 풀고 있었다.
루카가 현악기를 든 무리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자신의 상황을 얘기하자 학생 무리가 크게 동요했다.
“한 달이나 연습했는데 오늘 못 한다고? 그럼 우리가 연습한 게 뭐가 돼?”
“루카, 너 이렇게 우리한테 피해를 줘도 되는 거야?”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