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31)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31화(31/250)
낙심한 루카를 둘러싼 화가 난 친구들.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인솔교사도 그저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어쩌지?
내가 뭐 도울 수 없나?
나는 루카의 곁으로 다가갔다.
내가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얘기하자 잠시 루카의 친구들은 놀라는 듯했다.
하지만 화가 잔뜩 난 그들에게 내가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는 사실은 금세 관심 밖이 되었다.
그들은 그저 루카에게 원망만 쏟을 뿐이었다.
모두의 감정이 격앙되자 루카가 결심한 듯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원래대로 연주할게. 뭐 하다가 죽기라도 하겠냐?”
“그래, 잘 생각했어. 오늘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야.”
“역시, 루카. 네가 책임감 있게 그렇게 할 줄 알았어.”
루카의 연주팀 멤버들은 루카의 손이 어떻게 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 저러면 안 되는데…….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손은 생명과도 같은 것.
2주만 쉬면 원상회복될 수 있는 손을 지금 무리해서 혹사했다가는?
최악의 경우, 평생 음악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과거에도 부상이나 무리한 연습으로 손이 망가져 음악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 적이 있다.
루카가 섣불리 그런 결과를 초래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나는 루카에게 다가가 말했다.
“2주만 쉬면 낫는 손을 아예 못 쓰게 만들 거야? 바이올린 한다는 녀석이 손을 그렇게 막 대해?”
내 말을 들은 루카는 속상한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휴. 지금 상황이 어쩔 수가 없잖아.”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손은 생명과도 같아. 지금 무리했다가 정말 큰 일 날 수도 있다고.”
루카는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오늘 하는 곡 뭐야? 악보 좀 줘봐.”
“악보는 왜?”
“그냥 줘봐. 지금 시간도 없잖아.”
루카는 주섬주섬 악보를 찾아 건네주었다.
그건 바로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였다.
이전 생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곡이었다.
하지만 예고 편입 합격 후, 입학하기 전 몇 달 동안, 수많은 작곡가의 음악을 찾아 듣다가 이 곡을 접한 적이 있었다.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에 한동안 빠져서 무수히 반복해 들었던 음악.
바로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현악 4중주라는 악기 편성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연주해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영상을 틀어놓고 제1 바이올린 부분을 홀로 연주해 본 적이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으니까.
혼자 연주하는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그건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슈베르트의 음악은 나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이전 생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슈베르트가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런 곡을 작곡하는 사람이야. 내 음악이 자네가 듣기에는 어떤가?
파가니니였던 시절, 나는 슈베르트를 알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이런 훌륭한 음악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슈베르트를 몰랐는지 궁금해하던 나는 그에 관한 내용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슈베르트는 살아생전에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고, 사후에 더 유명해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한평생 슈베르트는 그의 고향 비엔나를 떠나본 적이 없다고 쓰여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살아생전 남긴 작품의 수는 대략 1000여 개.
그중 대부분은 가곡이었지만 관현악곡도 상당수였다.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슈베르트의 가족은 모두 몸이 건강하지 못했다.
14명의 형제, 자매 중 단 5명만이 살아남을 정도로 약했던 가족들.
늘 ‘죽음’과 공존했던 ‘삶’.
한 명씩 세상을 떠나는 가족들을 보며, 슈베르트에게 죽음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었다.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은 그의 작곡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가 스무 살에 작곡했던 가곡 ‘죽음과 소녀’에서 파생된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
그의 삶을 들여다보니 이 곡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이 곡을 만들면서 떠올렸을 생각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31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슈베르트.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긴 했지만, 그런 죽음조차도 예술로 승화했다.
그가 그려낸 죽음의 이미지는 슬프고 절망스럽기만 하지는 않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하게 될 죽음.
자신의 꺼져가는 생명을 느끼며 그는 삶에 대한 투지의 불꽃을 피웠다.
마치 죽음의 신과 사투를 벌이듯이.
그의 요동치는 감정이 곡의 구석구석 숨겨져 있었다.
루카가 건네준 슈베르트의 악보.
비록 현악 4중주로 연주해 본 적은 없었지만.
수없이 들으며 슈베르트와 교감했던 곡.
미치도록 연주하고 싶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루카와 친구들에게 말했다.
“내가 오늘 루카대신 연주한다. 루카 이 녀석, 지금 바이올린 켜면 안 돼.”
“당장 두 시간 뒤 연주를 같이하겠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말도 안 돼. 네가 뭐 천재라도 되냐?”
“널 뭘 믿고 같이 연주를 해? 루카가 못 한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
흥분한 그들에게 구차한 설명은 무의미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어차피 대안도 없는데 들어보고 결정해. 듣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던가.”
나를 못 미더운 눈으로 바라보는 여러 개의 눈동자.
불신의 공기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좋아. 대신 우리 기준에 못 미치면 같이 연주는 불가능해.”
“물론. 내가 바라는 바야. 반대로 내 기준에 너희 연주가 못 미치면 어쩔 거야?”
“그런 일이 정말 가능할 거라 생각해?”
“물론. 그래도 매정하게 내치지는 않을게.”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나는 루카에게 악기를 빌렸다.
“조심히 쓰고 돌려줄게.”
루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은 표정의 루카가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오늘 고맙다. 멀리 보지 못하고 급한 불만 끄려고 했네.”
“인사는 끝나고 제대로 해.”
내가 루카의 악기를 조율하는 내내 그 녀석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 녀석들이 어떤 눈빛을 보내던 나는 내 할 일을 했다.
비로소 오늘에야 제대로 된 편성으로 연주해 볼 수 있다니.
슈베르트와의 진정한 대화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생겼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템포는 알레그로. 모두 내 사인을 보고 같이 들어와야 할 거야. 내가 제1 바이올린을 연주하니까.”
“뭐야. 네가 리더라도 된 줄 아는 거야? 일단 연주나 하셔. 같이 할지 말지는 우리가 정할 거니까.”
첼로 연주자의 까칠한 소리.
그래, 연주 끝나고도 그런 소리를 할지는 두고 보자고.
String Quartet in D minor, d810, “Death and the Maiden”.
눈을 감고, 난생처음 보는 이들과 슈베르트의 작품 안에서 마주했다.
들이마시는 호흡과 함께.
네 명의 연주자가 강렬한 첫 음의 연주를 내딛었다.
거침없이 움직이는 활.
파워풀하면서도 격정적으로 치닫는 선율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그들의 불신이 사라지기까지 단 일 분도 걸리지 않았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둔 그들은 내가 리드하는 1st 바이올린과 함께 슈베르트의 음악을 완성해갔다.
눈 깜짝할 새에 1악장이 끝나고 모두의 활이 허공에 머물렀다.
거친 숨소리.
흔들리는 눈동자들.
그들의 눈빛에 불안함은 없었다.
그들의 눈빛엔 오로지 찬사만 가득했다.
첼로를 연주하던 이탈리아 학생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È incredibilmente fantastico.”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야.)
나는 같이 연주한 학생들과 루카를 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루카대신 연주하는 거다.”
“물, 물론이지.”
“당연히 좋아. 아, 아니 꼭 너랑 하고 싶어.”
순식간에 판도가 뒤집혔다.
루카는 이렇게 상황이 정리되자 인솔교사인 안토니오에게 나를 데리고 갔다.
그리곤 현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뒤에서 우리의 연주를 지켜봤던 안토니오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루카, 네 대신 저 학생이 연주하는 것 들었다. 연주 수준은 굉장히 높더구나.”
“그럼 이 친구가 저를 대신 해도 될까요?”
“그래, 크게 문제없을 것 같아. 다른 팀원들을 위해서라도 오히려 고마운 상황이지.”
“다행이에요.”
“그래, 문화예고 담당 선생님께는 내가 잘 전달하마.”
안토니오와 대화를 마치고 다시 루카의 앙상블 팀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비올라 연주자인 녀석이 나에게 대뜸 질문했다.
“이름이 뭐야?”
“문주원.”
“문주원, 한국에 대단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네.”
“우리랑 처음 맞춰 보는 건데도 전혀 어색함이 없어.”
“우리를 제대로 리드하는 건 둘째치고.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지?”
그렇게 작은 음악회를 앞두고, 나는 이탈리아 학생들과 함께 몇 번의 연습을 했다.
계속 우리의 연습을 지켜보던 루카가 언뜻 불안함을 내비쳤다.
“문주원, 애들이 너랑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다면 어쩌지? 내가 제1 바이올린이고 리더인데.”
“난 이탈리아에 안 가니까 걱정 마라.”
“사실은 나도 너랑 같이 연주 해보고 싶어. 앙상블 보면서 몸이 근질근질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더라니까.”
“왼손 깨끗이 나으면 같이 하면 되지.”
“그래, 빨리 낫고야 만다.”
루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2학년 3반 교실에 고정석 수학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문주원이 안 들어오자 김빛나는 신경이 쓰였다.
수학 쌤이 문주원에 대해 묻지 않았지만, 김빛나는 먼저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김빛나, 왜? 질문이라도 있니?”
“아니요, 제 짝인 문주원이 이탈리아 교환 학생들 행사 돕느라 이번 시간 못 들어 올 것 같아요.”
“그래, 알려 줘서 고맙다.”
수학 시간이 끝나고, 그다음 수업시간이 시작됐는데도 문주원은 교실에 돌아오지 않았다.
텅 빈 옆자리를 보며 김빛나는 생각했다.
‘하, 얘는 뭐야. 분명 애들 강당 건물에만 데려다주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신경 쓰이게.’
좀처럼 수업시간에 다른 생각에 잠길 일이 없는 김빛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하모니홀’로 달려갔다.
‘내가 강당까지 가는 건 절대 얘를 걱정해서가 아니야. 떠드느라 안 오는 거면, 다음 시간엔 감점당하든지 말든지 신경 안 쓸 거야.’
‘하모니홀’에 도착한 김빛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이탈리아 교환 학생들은 작은 음악회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성악의 발성을 연습하는 소리.
여러 악기들의 음정을 맞추는 소리.
그리고 들리는 소리 중에 대부분은 너무나 생소한 이탈리아어였다.
‘문주원은 도대체 어딨는 거야? 얘 그냥 수업 빼먹고 보건실 같은데 누워 있는 거 아니야?’
무대에선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무대가 멀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방금 막 성악 이중창이 끝난 듯 보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문주원이 보이지 않자 교실로 돌아가려는 찰나.
무대 위에 현악 4중주 편성의 의자와 보면대가 세팅되었다.
그리고는 연주자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바이올린을 하는 김빛나였기 때문에 현악 4중주의 무대에 눈길이 갔다.
곧이어 강렬한 연주가 시작되었다.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엄청 어려운 곡인데. 와! 근데 진짜 잘한다.’
몸을 돌려 나가려던 김빛나는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아직 쉬는 시간 남았으니까 조금만 보다 갈까?’
들려오는 환상적인 하모니에 김빛나의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이탈리아 예고생 실력이 이 정도라고? 1st 바이올린 진짜 미쳤어. 이렇게나 잘 해? 연주를 이끌어가는 힘이 마치 거장의 연주 같아.’
조금 더 가까이 그들의 연주가 보고 싶었던 김빛나는 조심스레 몇 칸 앞으로 이동했다.
‘가까이서 보고 싶어. 어떻게 활을 쓰는지. 어떻게 악상을 표현하는지 자세히 보고 싶어.’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