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34)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34화(34/250)
문성주는 열악한 국내 환경에도 불구하고 크레모나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현악기 메이커로서의 사명도 중요했지만 혼자된 자식과 손주들이 눈에 밟혀서였다.
‘나는 꺼져가는 불꽃이니까. 소중한 사람들 옆에서 사그라들고 싶다.’
그렇게 정리하고 온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의 삶.
손주 주원이가 오랜 상처를 극복하고 자신이 만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본 순간.
문성주는 그동안 자신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알았다.
그 옛날 파가니니가 쓰던 과르네리 캐논.
그 수백 년 된 명기를 수도 없이 보면서 정성스레 만들었던 악기.
문성주가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악기는 손주의 손끝에서 믿을 수 없이 환상적인 음악을 선사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손주의 상처도 치유된 듯싶었다.
인생의 동반자가 된 악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우정을 나눌 터.
하지만 여자 작가는 문성주가 혼자 오랜 상념에 빠지게 두지 않았다.
“선생님,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한, 이런 장인 정신이 깃든 현악기를 미래에는 볼 수 없을지 모릅니다. 다시 한번 출연을 재고해 주세요.”
문성주는 생각이 빠르게 정리되지 않았다.
‘이 공방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국내에선 고가의 악기를 수리하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한민국에 몇 되지 않는 명장인 문성주.
한국에서 현악기 전공자를 둔 부모들은 한국 메이커(악기를 만드는 사람)의 악기 구매를 주저했다.
아니 그들의 선생님이 꺼리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사람들은 악기를 오랜 시간 동안 연주 해보고 결정하기보다는, 외국 악기가 최고라는 선입견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가짜 올드 악기가 판치는지도 모르고.’
그럴듯한 가짜 올드 악기가 세상에 퍼진지 오래.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올드 악기의 수는 제한되어 있는 법.
사람들의 뿌리 깊은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외국 악기가 최고라는 선입견은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악기를 만든다는 것은 외롭고 고단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무를 고르고, 재단하고, 칠하고, 말리는 기다림의 연속.
최상의 소리를 내기 위한 인고의 시간.
기계가 아닌 손으로 만들어내는 악기의 가치를 누가 계승해줄까 싶었다.
‘점점 사라지겠지.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정성스레 만든 자식 같은 악기들을 바라보며 문성주는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공방 문이 또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 주원이였다.
“주원아, 토요일에 무슨 일이냐?”
“연습하다가 할아버지랑 맛있는 거 먹으려고 왔어요.”
“그래, 손님들하고 얘기 중이니까 좀만 기다려라.”
그러자 여자 손님이 말했다.
“손자분인가 봐요. 어머! 너무 잘생겼다. 연예인 같아요. 혹시 어디 연습생은 아닌가요?”
“아니에요. 하던 말씀 나누세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요.”
나는 할아버지의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멀찌감치 서서 할아버지의 악기들을 하나씩 구경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바이올린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대화의 내용이 조금 이상했다.
두 남녀는 악기를 보러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자, 내 귀는 어느덧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악기를 만들어온 건 맞지만 말이오. 내가 바라는 건 명예나 돈이 아니란 말입니다. 내가 만든 악기가 최고의 친구를 만나서 음악이 끊임없이 흐르길 바라는 것뿐입니다.”
그러자 공방에 있던 여자가 말했다.
“선생님, 이 소중한 악기들이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연주되길 바란다고 하셨죠?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공방을 이어받을 후계자는 있으신가요?”
“참 난감한 질문이군요. 가슴 아픈 질문이기도 하지요.”
할아버지가 난처해하는 모습에 나는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할아버지, 제가 도와드릴까요?”
* * *
며칠 후, 문화예고 2학년 3반 교실.
어느덧 학교 생활에 익숙해진 카트리나와 루카는 반 애들하고도 제법 잘 어울렸다.
어설픈 한국말도 익히고 반 친구들에게 이탈리아어도 가르쳐줬다.
특히 성악 전공 아이들이 노래 가사를 읊으면 루카와 카트리나가 발음을 교정해주곤 했다.
“아니 좀 더 굴러가듯이 발음을 해야 해.”
“더 굴려봐. 부끄러워하지 말고.”
애들은 뭐가 좋은지 발음을 교정하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참 화기애애한 교실의 풍경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일이 있었다.
사실 김빛나가 좀 까칠하다는 건 원래 알고 있긴 했는데, 이제 얘는 좀 다른 쪽으로 이상해졌다.
어느 날부터, 아니 정확하게 ‘작은 음악회’가 있었던 날부터 김빛나의 행동이 이상했다.
틈만 나면 나한테 질문을 했다.
“너 바이올린 연습 어떻게 해?”
“문주원, 너 바이올린 어디서 연습해?”
“너 레슨 누구한테 받아?”
레슨을 안 받는다고 대답하면 언제부터 안 받았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게다가 바이올린 주법에 관한 심도 깊은 질문도 다반사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실기 곡은 뭘로 할건지, 앙상블 팀에 빈자리는 없는지 하물며 내가 연습하는 걸 보러와도 되냐고까지 물었다.
김빛나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처음엔 얘가 날 좋아하나 싶었다.
평소에 나에게 하지 않던 질문들과 달라진 태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 오해였다.
김빛나의 질문은 오로지 바이올린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순수한 호기심?
아니 어찌 보면 존경의 눈빛 같기도 했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눈빛이었으니까.
얘가 도대체 왜 이러지?
뭐 잘못 먹었나?
나로서는 김빛나의 이상행동이 적응되지 않았다.
대충 대답할 건 해 주고, 대답하기 어려운 건 그냥 얼버무려 넘어갔다.
그런데 김빛나는 내 대답을 핸드폰 메모장에 막 적는 게 아닌가?
이상한 애다. 진짜 적응 안 되는 애야.
* * *
산타 체칠리아 예고의 교장 리카르도.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땅을 밟았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현대적이고 세련된 도시.
수천 년 된 유적지가 가득한 로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숙소에 짐을 풀고 리카르도는 학생들이 교환 학생 프로그램으로 참여하고 있는 문화예고로 향했다.
인솔교사인 안토니오가 통역관을 대동하고 학교로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리카르도는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꽤 일찍 문화예고에 도착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문화예고 학생들은 이미 수업이 끝나 보였다.
이탈리아에서나 한국에서나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은 리카르도였다.
‘저맘때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지. 학생들은 알까? 얼마나 빛나는 시기인지.’
리카르도 역시 학생 시절에는, 가업을 물려받아 본인이 고군분투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런 건 형과 누나가 대신하리라 생각했다.
첼리스트의 꿈을 꾸던 리카르도는 이제 학생들이 꿈을 이루게 도와주는 교육자이자, 가업을 잇는 사업가가 되었다.
재단 산하의 예고와 예술대학의 명성은 아직 꺾이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클래식은 사라지고 있었다.
급변하는 세계.
물려받은 가업은 하향세를 띤 지 오래되었다.
다시 상승세를 타려면?
‘클래식의 부흥 없이는 힘든 일이지.’
그런데 저 멀리서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탈리아에서처럼 밝은 얼굴로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학생 무리였다.
리카르도 교장은 반가운 마음에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리 중 한 명이 교장의 얼굴을 알아봤다.
“리카르도 교장 선생님.”
학생들이 활짝 웃는 얼굴로 우르르 뛰어왔다.
학교 생활은 할 만한지, 음식은 입에 맞는지 그동안의 일에 대해 학생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 중, 한 명의 학생이 대답했다.
“처음엔 좀 힘들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적응했어요. 여기서 공부하고 졸업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로요.”
“벌써? 벌써 우리 학교를 잊으면 어떡하냐? 그건 안돼!”
리카르도 교장이 웃으며 말했다.
“얼굴을 보니 정말 그동안 즐겁게 지냈던 것 같구나. 근데 말은 잘 통했니? 통역 선생님은 공식 일정만 함께 하시잖아.”
그러자 한 학생이 대답했다.
“이 학교에 이탈리아어 완전 우리처럼 하는 학생이 있어요.”
“그래?”
“걔가 이탈리아어만 잘하는 게 아니고 바이올린도 엄청나게 잘하는데요. 세상에 루카가 손을 다쳐서…….”
학생들은 ‘작은 음악회’에서 있던 일을 숨도 쉬지 않고 교장에게 얘기해줬다.
“그런 일이 있었어? 루카가 많이 놀랐겠구나. 손은 이제 괜찮니?”
“이제 괜찮아요. 바이올린 연주도 할 수 있고요.”
“다행이구나.”
“네.”
“그 학생은 어딨니? 문화예고 교장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 통역해 주시는 분이 안 오셨구나.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됐는데 말이야.”
루카와 카트리나는 리카르도 교장을 데리고 교내 연습실로 향했다.
* * *
“나보고 두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통역해 달라고? 지금은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왜?”
“나 막 연습 시작하려고 했단 말이야.”
그러자 연습실 바깥에 있어 안 보였던 한 인물이 나타났다.
세련된 옷차림에 영화에서 본듯한 느낌의 중년 외국인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역시 이탈리아어였다.
“학생, 나는 산타 체칠리아 예술고등학교 교장 리카르도라네. 우리 학생들 생활을 많이 도와줬다면서?”
“아, 네.”
저분이 교장 선생님이라니. 스타일이 정말 남다르시네.
“학생만 괜찮다면 우리 통역관이 오기 전에 황선욱 교장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역해 줄 수 있겠나?”
교장 선생님이 젠틀하게 부탁하시는데 차마 거절하기 어려웠다.
“알겠어요. 그럼 지금 교장실로 가면 되나요?”
사실 나도 교장실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학교에 붙은 교실 배치도를 보고 교장실에 찾아갔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내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자.
황선욱 교장 선생님이 놀란 표정으로 반가워하셨다.
“아니, 내 연습실 친구가 무슨 일로 교장실에 왔지?”
“연습실 친구요?”
“그래, 네가 연습하는 그 연습실. 나도 학창시절에 매일 같이 연습했던 곳이야.”
“아아! 지금 손님 모시고 왔어요.”
“손님을?”
나는 뒤에 서 계신 리카르도 교장 선생님을 교장실 안으로 들어오시게 했다.
“리카르도.”
황선욱 교장 선생님은 리카르도 교장의 얼굴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인사했다.
“어떻게 리카르도랑 같이 온 거지, 문주원?”
“저한테 통역을 부탁하셨어요.”
“통역을?”
눈을 동그랗게 뜬 교장 선생님께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로 내 역할을 수행했다.
지금 교장 선생님께 자세히 말해봤자 시간만 길어질 뿐이다.
나는 바로 리카르도 교장 선생님을 보고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말했다.
“리카르도 교장 선생님. 여기 앉으시죠. 지금부터 바로 통역해 드릴게요.”
리카르도는 유창한 나의 이탈리아어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두 분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는 교환 학생으로 온 이탈리아 학생들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생각보다 리카르도 교장의 포부는 컸고, 그 계획이 꽤 많이 진행된 상황이었다.
통역을 하면서 나는 많은 사실을 알았다.
리카르도 교장이 말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다음 학기엔 문화예고 학생들이 우리 학교로 와서 한 달 수업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