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41)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41화(41/250)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피아노 옆에 설치된 스탠드 마이크 앞으로 걸어 나갔다.
먼저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인사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리곤 바로 이어서 한국말로 얘기하자 참석한 귀빈들이 꽤 놀라는 반응이었다.
안유리 교수님과 이기환 교수님도 마찬가지였다.
“리카르도 교장 선생님이 저한테 며칠 전에 부탁하셨습니다. 짧은 소품 연주를 해도 된다고 아무 부담 갖지 말라고요. 그런데 저런 소개를 하시다니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그런데 솔직히 저는 파가니니를 뛰어넘는 음악가가 되고 싶네요. 여기 오신 분들이 앞으로 저의 미래를 응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당돌한 나의 발언에 사람들은 열띤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사람들의 박수가 멈추자, 피아노 반주를 하게 된 안유리 교수님을 소개했다.
“원래는 저 혼자 연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운 좋게 연희대 음대 안유리 교수님과 함께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박수 속에, 안유리 교수님은 우아하게 나와 그랜드 피아노에 앉았다.
Cantabile by Niccolo Paganini.
고즈넉한 한옥에서 피아노의 맑은 소리와 바이올린의 애절한 음색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옛날.
내가 작곡한 사랑의 멜로디.
오페라의 아리아처럼 우아한 선율.
더할 나위 없이 몽글몽글한 사랑의 멜로디가 한옥의 잔디밭 위를 수놓기 시작했다.
칸타빌레 Cantabile.
행복한 사랑의 시작을 노래하듯이.
바이올린의 밀도 있는 소리는 점점 더 깊은 감상을 쏟아냈다.
새로 시작하는 연인들의 두근거리는 설렘을 느끼듯.
바람에 나부끼는 꽃향기를 머금은 사랑의 선율.
나는 나지막이 활을 내리그었다.
풀냄새, 꽃냄새, 나무의 정취.
들릴 듯 말듯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
사각사각 풀 밟는 소리.
밤하늘 아래 켜진 조용한 불빛 하나.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음악이 된다.
내 손끝에서 음악이 흐르고 있다.
Cantabile.
노래하듯이.
유려한 선율이 오페라의 아리아처럼 그려졌다.
나는 깊은 호흡을 가다듬고 감은 눈을 떴다.
사람들의 환호와 따뜻한 박수가 어우러졌다.
안유리 교수님도 피아노에서 일어나 함께 인사했다.
리카르도는 누구보다도 열렬히 박수를 치며 이탈리아어 감탄사를 내뱉었다.
“Fantastico, il migliore.”
-멋져, 최고야.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곡을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이 행복하다.
행사가 끝난 뒤,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에프터 파티가 시작되었다.
한껏 기분 좋아 보이는 리카르도 교장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왔다.
“역시, 주원군.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줘서 너무 고맙네. 파가니니의 칸타빌레라니.”
“이 곡 좋아하세요?”
“물론이지, 어쩌면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보다 더?”
“테크닉적으론 카프리스가 비교도 안 되게 복잡하죠. 사람들도 더 좋아하고요.”
“맞아, 파가니니를 폄하하는 사람들은 그를 기교만 뽐내는 사람이라고 했지. 하지만 칸타빌레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낭만적인 선율을 그리는 사람인지 알 수 있어.”
리카르도 교장 선생님은 오른손에 든 음료를 한 입 마셨다.
그리고는 정중한 어조로 부탁했다.
“우리 학교에 교환 학생으로 한 달만 와 주게나. 내 모든 경비며 숙식 제공, 장학금까지 최고의 대우를 제공하겠네.”
“제가 한 달 가는 게 이탈리아 학생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 학생들에게 엄청난 자극이 될 걸세. 지구 반대편에 같은 나이의 천재가 있다는 걸 깨닫는 거지. 영화나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말이야.”
“제가 얻는 건 뭔가요? 저한테 자극이 될 만한 친구도 있을까요?”
“자네는 그 나이에 얻기 힘든 경험을 얻는 거지.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 되거든. 장학금은 보너스고 말이야.”
이탈리아.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이 혼재된 그곳.
전생의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
내 음악의 뿌리가 있는 곳.
문득 이탈리아의 현재 모습이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교환 학생 프로그램이 필요한지 따져봐야 했다.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하네요.”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면 정말 고맙겠네.”
에프터 파티가 열리는 한옥의 야외 무대에선, 이제 이탈리아의 유명한 작곡가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나는 이 마을의 만능 재주꾼’이라는 노래가 들려왔다.
Largo al factotum.
경쾌한 분위기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등장한 굵직한 바리톤의 목소리.
마치 이탈리아의 정겨운 마을에 온 것처럼.
오랜만에 듣는 신나는 오페라의 아리아는 에프터 파티의 흥을 한껏 돋우었다.
어느새 내 옆에 와서 앉은 리카르도가 말했다.
“로마에 온다면 매일 이런 무대를 보여주지. 원한다면 무대에 설 수도 있고. 어떤가? 뭐든지 원하는 건 다 들어주겠네.”
* * *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학교 연습실에서 바이올린 연습과 작곡을 반복했다.
어제 들었던 로시니의 오페라 아리아를 중얼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런데 여지없이 황선욱 교장 선생님이 오셨다.
“교장 선생님 진짜 매번 찾아오시네요.”
조금은 퉁명스런 내 말에 교장 선생님은 짐짓 뻔뻔한 어조로 말했다.
“나중에 네가 유명해지면 돈 주고도 티켓을 못 살 수가 있어. 지금 여기서 듣는 건 나만의 특권이지.”
“그럼 제 연주 듣는 대신 부탁하나만 들어 주세요.”
“부탁?”
“저, 산타 체칠리아 예고로 교환 학생 다녀오고 싶습니다.”
내 말을 듣자 교장 선생님이 눈가에 짙은 주름이 잡힐 정도로 크게 웃었다.
“급하기도 하지. 안 그래도 리카르도가 끈질기게 부탁하고 있단다.”
“그럼 저 갈 수 있나요?”
“내가 바로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야. 오늘 2학년 선생님들과 회의에서 얘기해 볼 테니까 좀만 기다려 보렴.”
“네, 그럴게요.”
“근데 한 달 동안 가는 게 너한테 도움이 될 거 같아?”
“네, 확실히요.”
교장 선생님은 내가 교환 학생을 다녀오기로 결정한 이유들을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그러다 교장 선생님은 무언가 생각난 듯 나에게 물었다.
“혹시 석영진 대표랑은 만나볼 생각 있니?”
“아니요.”
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주 진지하게 너랑 계약하기를 원하더구나. 21세기에 진정한 음악 천재가 나타났다고 흥분하면서 말이야. 네가 자기한테 음악으로 말을 걸었다느니 횡설수설하더구나.”
“풉. 재밌는 분이시네요. 하지만 제가 지금 계약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래, 일단 교환 학생 건부터 해결해보자. 그럼 이제 연습 시작하겠니? 오늘은 무슨 곡이지?”
* * *
문화예고 교장실에 2학년 선생님들이 긴급호출 되었다.
교감까지 모이자 회의는 시작되었다.
황선욱 교장은 급히 호출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리카르도 교장이 이번 달에 교환 학생을 보내 달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갑자기 학생들을 보내는 건 학사일정 상 무리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번 해는 차근히 준비하고 다음 해부터 추진하면 어떨까요?”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이 교환 학생을 가려고 할까요? 지원자가 없을 겁니다.”
교감까지 반대의 의견을 표하자 황선욱 교장이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
“이 얘기를 빠뜨렸군요. 리카르도가 모든 경비를 제공하고 장학금까지 줄 테니, 문주원 학생을 한 달 동안 교환 학생으로 오게 해달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문주원 학생 혼자만요?”
“차차 교환 학생 프로그램이 자리 잡을 수 있겠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교감의 머릿속이 날짜 계산으로 복잡했다.
어쩌면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주원이 이탈리아로 간 동안 오케스트라 협연자 오디션을 진행한다면?
‘모든 게 해결이다. 손 쓸 필요도 없이 깔끔하게.’
교감은 찬성 노선으로 급히 선회했다.
“그렇게까지 좋은 제안을 한다면 안 갈 이유가 없네요.”
그러자 권태오 선생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럼 실기 시험은 어떻게 합니까? 당장 입시가 내년인데 실기 시험 기간이랑 겹치는 것 같네요.”
시창, 청음을 가르치는 조현정 선생의 의견도 권태오와 다르지 않았다.
“맞아요. 필기 시험이야 과제로 대체할 방법이 있다지만 실기는 곤란하죠. 이건 문주원한테도 엄청난 마이너스예요.”
“꼭 당장 가야 합니까? 실기 시험 끝나고 가면 되지 않을까요?”
“이탈리아의 학기제도가 우리랑 달라서 당장 가야 되나 보더군요.”
상황을 지켜보던 교감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실기 성적으로 정해지는 학년 오케스트라 자리 배치.
각 악기 1등으로 정해지는 오케스트라 수석.
바이올린 1등이 차지하게 되는 오케스트라의 악장.
‘만약 문주원이 실기 시험을 못 본다면?’
학교 규정들을 떠올려보아도 B이상의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 협연자 문제나 오케스트라 악장 문제도 전부 해결이다.’
선생님들이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자 황선욱 교장은 난처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리카르도가 너무 급히 제안했고, 문주원 본인마저 가고 싶다고 했으니.
천천히 살펴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교감이 상황을 정리하는 말을 꺼냈다.
“교장 선생님, 제가 문주원 학생을 만나겠습니다. 최선의 방향으로 결정되도록 잘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오늘 회의에서 나온 얘기들 빠짐없이 다 해 주고 조언해 주도록 하세요.”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수 없는 교감이었다.
교감은 어떻게 하면 감언이설로 문주원을 이탈리아로 보내버릴까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교감은 서둘러 문주원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몇 번의 전화 끝에 드디어 연락이 닿았다.
-여보세요?
-문주원 학생, 나 문화예고 교감인데 지금 잠깐 얘기 할 수 있겠나?
-지금요? 좀 있으면 전공 실기 수업 있는데요?
-잠깐이면 되니까 아직 학교에 있으면 빨리 교무실로 와. 중요한 일이니까.
* * *
교감 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후, 나는 서둘러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엔 잔업을 하는 몇 분의 선생님들이 보였다.
교무실 가장 구석 자리에 위치한 교감 선생님의 책상이 보였다.
차가운 인상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교감 선생님은 아주 마른 체형에 5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교감 선생님. 저를 무슨 일로…….”
“일단 앉아봐.”
내가 의자에 앉자 교감 선생님이 다짜고짜 물었다.
“이탈리아 교환 학생 말이야. 얘기 들었지?”
“네.”
“좋은 기회잖아. 갈 거지?”
“가고 싶긴 한데 교장 선생님께서 확답은 안 주셨습니다. 오늘 회의하고 알려 주신다고…….”
“그래서 나보고 너랑 얘기하라고 하신 거잖아.”
교감 선생님은 손에 쥔 몇 장의 종이를 훑어보며 얘기했다.
“이전에 편입한 고등학교 학업 성적을 보니까 공부를 아예 안 했네?”
“좋아하는 과목만 했습니다.”
“공부에 신경 안 쓰는 타입이지? 딱 각이 나오네.”
“그래도 문화예고 들어와선 이전보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공부 안 해도 엄마가 뭐라고 안 하시냐?”
“…엄마 없습니다.”
“그래? 왜? 사별 아니면 이혼?”
“교환 학생 관련 건만 얘기하시죠.”
교감은 안경을 고쳐 쓰며 나를 쳐다보았다.
불쾌한 눈초리였다.
“흠…….”
갑자기 나를 불러서 하늘고등학교 시절의 성적을 운운하더니 집안 사정까지 묻다니.
아무리 교감이래도 월권행위 아닌가?
그게 교환 학생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지?
“그냥 본론을 말해 주시죠. 하늘고 시절 성적이 낮아서 교환 학생 못가나요?”
“그럴 리가. 오히려 잘됐어.”
“왜요?”
“교환 학생 기간이 학교 시험 기간이랑 겹치는데 너는 불이익이 없을 것 같네. 병 때문에 시험 못 보는 애들 규칙에 준한다 해도 너한테는 이익일 거야.”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