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55)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55화(55/250)
리카르도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문주원의 도움으로 새로운 공연을 준비하느라 결정할 사항들이 많았다.
그리고 문주원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적어도 프리뷰 공연은 올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게 문주원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본 가장 뛰어난 천재.’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에 함께 온 문주원은 놀라운 바이올린 실력에 준하는 작곡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 나이에 갖기 어려운 통찰력.
순간순간 떠오르는 영감을 표현하는 순발력.
타고난 예술성과 노력.
상황을 판단하는 분별력까지.
문주원은 적자에 허덕이는 모레티 재단의 음악 사업에 변화를 모색하게 해주었다.
그런 그가 안젤리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을 때.
‘너무 고마웠었지.’
사고 후, 피아노에 다가가지도 않던 안젤리카.
소중한 딸의 생일선물로 구매한 파지올리 피아노는 한낱 장식품으로 전락해버렸다.
언제나 웃음과 음악이 가득했던 집은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문주원은 안젤리카를 다시 피아노 앞에 앉게 만들었다.
처음 그 얘기를 아내에게 들었을 때, 리카르도는 뛸 듯이 기뻤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문주원에게 평생 빚을 진 기분이었다.
무기력한 딸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아빠였기에.
리카르도는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었다.
그래서 더욱 새로운 공연을 보란 듯이 성공해내고 싶었다.
이번 공연이 성공하면 잃었던 자신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주원에게 합당한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리카르도는 바쁜 와중에도 집에 8시 전에 도착했다.
‘삼십 분 정도 집에 있다가 갈 수 있겠군. 왜 굳이 8시까지 집에 꼭 오라고 한 걸까?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집에 도착한 리카르도는 예쁜 원피스를 입은 안젤리카의 모습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안젤리카의 모습은 몇 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단지 슬픔이 무뎌질 뿐이었다.
‘저렇게 예쁜 안젤리카인데.’
토비까지 모두 모인 거실에서, 안젤리카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오늘 저의 연주회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 연주회?”
안젤리카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며 기뻐하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이렇게나 빨리 가족들 앞에서 연주를 하다니.’
자신과 아내가 하지 못한 것을 해준 문주원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누구보다 힘들었을 안젤리카에게 고마웠다.
“안젤리카의 연주회라니 생각지도 못한 선물인데? 고맙구나, 안젤리카.”
리카르도는 아내와 그레타 부인, 그리고 문주원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런데 그 후 안젤리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욱 놀라웠다.
“오늘 연주할 곡은 제가 작곡한 곡입니다. 곡의 이름은 ‘토비 왈츠’입니다.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제 두 눈과도 같은 토비를 생각하며 만든 곡입니다.”
어안이 벙벙한 리카르도였다.
‘안젤리카가 작곡을?’
안젤리카는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고는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allegramente. 즐겁고도 쾌활하게.
미끄러지듯 경쾌하게 시작하는 4분의 3박자 왈츠였다.
경쾌하지만 지나치게 가볍지는 않은 느낌.
오른손의 멜로디는 사랑스러우면서 믿음직한 토비의 걸음걸이가 연상되었다.
마치 토비와 안젤리카가 드넓은 정원을 함께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는 듯했다.
‘어떻게 이렇게 느낌을 잘 살렸을까?’
piu mosso. 더욱 빠르게.
곡의 속도가 빨라졌다.
누구보다 환한 웃음을 짓는 안젤리카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경쾌한 타건이 분위기를 점점 고조시켰다.
사랑스런 토비를 위한 왈츠가 대저택의 고풍스러운 거실에 울려 퍼졌다.
희망의 씨앗이 싹을 틔우는 순간이었다.
* * *
그동안 틈틈이 안젤리카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가르쳐 준 것은 정말 보람된 일이었다.
안젤리카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연 것도.
우정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음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안젤리카가 작곡한 ‘토비 왈츠’는 발랄하고 경쾌했다.
아마도 토비와 있을 때 그녀가 느끼는 마음일 것이다.
4분의 3박자의 춤곡답게 리듬감이 느껴졌으며.
큰 강아지의 다정한 느낌이 연상되었다.
포근하고 귀여운 토비와의 왈츠.
정원에서 토비와 안젤리카가 웃으며 춤을 추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토비도 이 곡이 좋은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즐거워한다.
드디어 연주를 끝낸 안젤리카가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 다소곳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곤 천천히 피아노 위에 놓인 작곡 노트를 들었다.
“엄마, 아빠. 이거 받아.”
“이게 뭐지, 안젤리카?”
“내가 주원 오빠 도움을 받아 만든 첫 악보야. 작곡가 안젤리카 모레티라고 써달라고 했어.”
리카르도 부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날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인가? 안젤리카가 작곡을 했다고?”
리카르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안젤리카가 작곡한 ‘토비왈츠’예요. 저는 대신 그리기만 한 겁니다. 전부 안젤리카가 작곡한 거예요. 기초적인 작곡 수업은 제가 해줬지만요.”
“맞아, 주원 오빠가 나한테 작곡하는 법도 가르쳐 주고, 피아노도 더 잘 칠 수 있게 알려줬어.”
“그랬었구나.”
“눈이 안 보여도 얼마든지 피아노 칠 수 있다면서 격려해줬어.”
“안젤리카. 고맙다. 정말 고마워.”
리카르도 부부는 더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저 어깨만 들썩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가까스로 울음을 참은 리카르도는 안젤리카가 건넨 작곡 노트를 펼쳤다.
“정말 써 있네? 우리 딸 이름이. 언제 이렇게 멋진 곡을 작곡했을까?”
그러자 안젤리카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나랑 주원 오빠의 비밀 프로젝트였어. 아! 그레타 아줌마도 토비도 같이 비밀을 지켜줬어.”
“감쪽같이 몰랐구나. 비밀 대 성공이네. 토비까지 비밀을 지켜줬다니.”
“하하.”
“엄마한테는 이 세상 최고의 작품이었어.”
“주원 오빠 덕분에 뭔가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겼어.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웠어.”
리카르도 부부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그건 온전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기뻐하는 리카르도 부부의 모습을 보니 나도 괜시리 울컥했다.
그리고 암흑 속에서도 빛을 보려고 노력한 작은 소녀, 안젤리카에게 고마웠다.
나라면 안젤리카처럼 노력할 수 있었을까?
끝도 없는 암흑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의연할 수 있었을까?
나 역시 이 모든 상황이 감사했다.
“고맙네, 고마워.”
“고마워요. 정말.”
울먹이는 그들은 나에게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좋은 날 왜 그러세요. 안젤리카가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이룬 날이잖아요.”
“엄마, 아빠. 내가 ‘토비 왈츠’ 한 번 더 칠 테니까 둘이 춤춰줘. 로마의 휴일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그래, 우리 공주님.”
“주원 오빠는 토비랑 춤춰줘.”
“…어, 토비랑? 노력해볼게.”
“하하.”
안젤리카는 성취감에 뿌듯한 얼굴이었다.
‘토비 왈츠’가 다시 한번 거실을 가득 채웠다.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모두의 얼굴엔 미소가 만연했다.
가슴 가득 온기가 퍼지고 있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마음먹은 순간. 행복은 성큼 모두에게 다가왔다.
먼저 한 걸음 다가가는 용기.
그거면 충분했다.
한바탕 가족 연주회가 끝난 뒤 안젤리카에게 말했다.
“토비도 마음에 쏙 들어 하는 거 같더라.”
“그렇지? 토비가 역시 뭘 좀 알아.”
안젤리카는 아이답게 배시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찾아온 고요한 순간.
안젤리카가 리카르도를 불렀다.
“아빠, 할 얘기가 있어.”
“뭐지? 우리 공주님?”
“주원 오빠가 말해줬어. 떼아뜨로 로마 극장에서 열리는 프리뷰 공연에 대해서 말이야.”
“그래. 주원 군이 로시니의 오페라 아리아를 훌륭하게 연주곡으로 편곡했단다. 재밌는 오페라 해설도 곁들어질 예정이지.”
“어. 그래서 말인데.”
뜸을 들이는 안젤리카가 입을 뗐다.
“나도 연주회 들으러 가고 싶어. 떼아뜨로 로마에 갈래. 이제 조금씩 밖에도 나가고 싶어. 병원 말고.”
안젤리카의 말에 나도 하나 덧붙였다.
“얼마 전에 안젤리카가 저한테 말해줬는데요.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안젤리카가 나에게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한 이유.
안젤리카는 아픔을 피하지 않고 용기 내어 직면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제는 나에게만이 아닌, 모두에게 밝히는 안젤리카의 고백.
“맞아.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걸 찾아볼래.”
“오! 안젤리카. 사랑스러운 내 딸. 다시 용기 내줘서 고맙구나. 학교도 가고 싶다니…….”
큰 변화의 시작도 한 걸음부터였다.
한걸음 발자국을 떼는 순간.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려움을 함께 견뎌내고 극복하는 이들에게 축복이 있길.
절망이 희망으로.
슬픔이 작은 기쁨으로.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 어떤 이에겐 평생의 소원이라던 흔하디 흔한 문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 * *
드디어 떼아뜨로 로마 극장에서 프리뷰 공연이 열리는 날이 되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도착한 나는 외출 준비를 했다.
집을 나서기 전 안젤리카에게 말했다.
“나는 먼저 가야 할 일이 있어. 이따 떼아뜨로 로마에서 보자.”
“근데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안젤리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제 옷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런 안젤리카의 옷매무새를 정돈해주며 싱긋 웃었다.
“만약 안젤리카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안젤리카의 귀여운 모습에 눈이 가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알았어!”
안젤리카는 밝은 표정과 함께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기사님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떼아뜨로 로마 극장에 도착했다.
극장 주변은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고, 그들의 대화 소리와 웃음소리가 도시의 소음과 어우러졌다.
음악 감독 피에르 칸의 요청으로 마지막 리허설이 진행됐다.
리허설을 점검하는 중, 한 곡에서 아쉬운 부분이 발견되었다.
원곡이 가진 매력을 바이올린 한 대로만 표현하다 보니 강도가 약해 보인다고나 할까?
조금 더 극적인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더 관객의 호응을 더 얻고 교감할 수 있을까?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는 시범 공연이니까 좀 색다르게 해도 괜찮을 거야.’
고민 끝에 음악 감독 피에르에게 의견을 말했다.
“오늘이 프리뷰 공연 당일인데 수정을 해도 될까요?”
“연주자 입장에선 부담이겠지. 하지만 정식 공연을 올리기 전에 관객의 반응을 보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
“연주자 분이 부담스럽다면 오늘은 수정된 방향으로 그 곡만 제가 연주를 하도록 하죠.”
감독은 처음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내 말을 듣곤 표정이 밝아졌다.
“헉, 정말인가? 고맙네. 사실 자네가 연주해주길 바랐지만, 염치가 없어서 말을 못 했다네.”
나는 일단 수정했으면 하는 부분을 연주로 보여주었다.
“음악과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군. 그리고 재밌어.”
“아마도 오늘이 피에르를 보는 마지막 날이 될 겁니다. 제가 떠나기 전에 할 수 있는 전부를 하고 갈게요.”
“이렇게까지 해주니 고맙네. 진심이야. 처음에 까칠하게 대해서 미안했네. 로마를 떠난다니 아쉽군.”
“또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음악 감독으로서 합리적인 의심이었다고 생각해요.”
최종 리허설이 끝났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나는 객석이 얼마나 채워졌는지 궁금했다.
무료 공연이라도 관객이 많이 올수록 좋기 때문이었다.
프리뷰 공연 자체가 대중의 반응을 보기 위함이니까.
객석을 둘러보니 산타 체칠리아 예고 학생들과 음대생들이 잔뜩 보였다.
작곡 선생님은 물론이고 낯이 익은 선생님들도 많이 보였다.
그리고 VIP 석에 앉은 안젤리카의 가족들과 그레타 부인도 보였다.
드디어 공연의 막이 올랐다.
‘세비야의 이발사’ 오페라.
프랑스의 극작가인 보마르셰의 희곡을 바탕으로 로시니가 음악을 완성한 오페라의 고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아름다운 로지나를 본 알마비바 백작.
백작은 그녀와의 만남을 위해 세비야까지 따라온다.
하지만 그곳엔, 로지나와 결혼하려는 나이든 의사이자 후견인인 바르톨로가 버티고 있었다.
백작은 세비야에서, 한때 자신의 하인이었던 피가로와 우연히 만난다.
그때 피가로가 부르는 오페라의 유명한 아리아.
나는 마을의 만능일꾼.
(Il barbiere di Siviglia – Largo al factotum)
남녀 해설자의 재밌는 해설에 맞춰 무대 위 화면에 영상이 흐르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남부 도시 세비야의 한 골목길.
골목길을 빼곡하게 수놓은 발코니에 사랑하는 여인이 나타나면 세레나데를 부르던 청년들.
이국적 정취와 낭만이 가득한 세비야의 아름다운 골목길이 화면에 펼쳐졌다.
그때, 객석 맨 뒷줄에 조용히 앉아 있던 나에게 조명이 밝혀졌다.
내 주변에 앉아 있던 관객들이 살짝 웅성거리는 듯하더니 이내 조용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불빛을 받은 나는 객석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곤 미리 준비한 바이올린을 어깨에 얹었다.
관객과의 교감을 위한 일종의 장치.
과감하게 청중 속으로 뛰어든 클래식.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순간이었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