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57)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57화(57/250)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해서 나오자마자 그리운 얼굴들이 보였다.
“형.”
“주원아.”
내 동생 문지환과 아빠, 그리고 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총출동했다.
“우와! 할아버지도 오셨어요? 누가 보면 저 몇 년 유학 갔다 온 줄 알겠어요.”
“허허. 할애비가 안 반가운 게냐? 나는 한 달이 일 년 같았단다.”
“저도 보고 싶었어요.”
“형. 나는.”
자신도 신경써 달라는 듯이 지환이는 볼을 양껏 부풀렸다.
“너도 문지환.”
“선물 사 왔어?”
“공항에서 초콜렛하고 커피 사 왔어.”
“우와. 나는 초콜렛. 아빠랑 할아버지는 커피야?”
“맞아.”
가족들과 차로 이동하면서 나는 그간 로마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우와! 형. 한 달 동안 엄청 많은 일이 있었네?”
나는 지환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떼아뜨로 로마에서 공연을 했다는 게냐?”
“맞아요. 제가 편곡한 곡으로 정기 공연도 하고, 곧 돈도 받게 될 거예요. 관객 수에 대한 인센티브 계약도 맺었거든요.”
운전을 하던 아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빠한테 말도 안 했어?”
“와서 직접 놀래켜 주려고 했지.”
“우리 주원이 대단하네.”
그리곤 창작 오페라에 대한 얘기까지 나오자 아빠는 놀란 나머지 차를 급정거했다.
“으아악.”
“미안, 미안. 너무 놀라서.”
안젤리카와 토비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땐 슬픔의 눈물과 기쁨의 눈물이 공존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달 동안 못 나눈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차 안이 조용한 순간은 없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한 달 만에 문화예고에 등교하는 날이었다.
책가방과 바이올린을 챙겨 집을 나섰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도착한 문화예고.
복도에 들어서자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윤하준이었다.
“문주원.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거야? 반갑다!”
“어제 도착했어. 시차 적응 안 돼서 엄청 졸려. 그동안 별일 없었냐?”
“별일 많았지. 지난 주에 중간고사 끝나고 이번 주에 성적 나오고 있잖아.”
“너 실기 시험은 잘 봤고?”
“망하지는 않은 듯.”
“오. 나 없는 사이에 자신감 좀 붙었나 본데?”
“뭐래. 이따 오케스트라 수업 시간에 보자고.”
우리 반 교실에 들어섰다.
삼삼오오 모여 떠들던 애들 중 하나가 나를 발견했다.
“문주원 왔다!”
“오! 문주원.”
한 달 만에 봤는데 한 친구가 얼굴을 보자마자 손부터 내밀었다.
“선물은 없냐?”
“선물은 무슨. 너희가 날 보고 좋아했으니까 내가 선물인 셈이지 뭐.”
“으으윽, 뭐야 그게?”
“이탈리아에선 재밌었어?”
친구들의 질문에 하나씩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김빛나는 날 보자마자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김빛나, 잘 살았냐?”
“오랜만. 나야 뭐 바쁘게 살았지. 넌?”
“재밌었지. 상상도 못 할 많은 일이 있었단다.”
“뭔데?”
“그런 게 있어.”
“치. 산타 체칠리아 예고는 우리 학교랑 비슷해?”
“아니, 전혀 달라.”
“어떻게 다른데?”
“훨씬 자유로운 거? 걔네들은 입시만 향해서 달리진 않더라고.”
“부럽다. 경험해보질 않아서 상상도 못 하겠어.”
조례 시간에 담임 쌤이 교실에 들어왔다.
그리곤 나를 보고 반가워하셨다.
선생님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담임쌤은 시험과 관련된 사항들에 대해 안내해 주셨다.
“오늘부터 이틀 동안 중간고사 점수 이의제기 기간이다. 각자 점수 확인하고 이의제기는 과목 선생님께 가서 말씀드리도록.”
“네!”
“이 기간 끝나면 정정 안 되니까 반드시 꼼꼼하게 봐라.”
문득 나도 이탈리아에 가기 전 본 실기 시험 점수가 궁금해졌다.
교실을 나가기 전에 담임 쌤이 나를 보며 말했다.
“문주원, 한국 오자마자 바쁘겠어.”
“왜죠?”
“실기우수자 연주회 준비해야지. 문주원이 문화예고 2학년 실기 전체 1등이다.”
그러자 한 친구가 물었다.
“전체 2등은 누구예요?”
“손성혁이 전체 2등.”
“역시. 그냥 다 주루룩 밀리는구나.”
“바이올린이 전체 실기 1등한 건 우리 학년에서 처음인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이 나가자 반이 시끄러워졌다.
“우와 문주원 역시. 아무리 시험을 먼저 봐도 불리한 것도 없구나.”
“하긴 다들 예상하긴 했어.”
“그럼 김빛나 오케스트라 악장 아웃?”
“바로 아웃은 아니지. 자리 배치는 한 학기마다 바뀌는데.”
“그럼 문주원이 실기 1등인데도 오케스트라 맨 마지막 풀트에 앉는 거야? 말도 안 돼.”
“김빛나가 악장 자리 자진 반납해야 하는 거 아니야?”
수군대는 소리에 김빛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김빛나와는 하루 종일 아무 대화 없이 수업을 들으며 지냈다.
오케스트라 수업 시간에 김빛나는 몸이 안 좋다며 양해를 구하고는 보건실에 갔다.
신경이 조금 쓰이긴 했지만 내가 어쩔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의 수업이 끝났다.
나는 2학년 부장 선생님의 호출에 교무실로 가야했다.
실기우수자 연주회를 위한 자리라고 했다.
하지만 실기우수자 연주회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나는, 교무실로 향하기 전 친구들에게 물었다.
실기우수자 연주회란 각 학년 실기 최상위자들만 할 수 있는 연주회라고 했다.
아무나 설 수 없는 무대이기에 친구들의 부러움은 대단했다.
간단히 설명을 들은 나는 교무실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이미 박수호와 남학생 한 명이 더 있었다.
다소 마른 체격에 훤칠한 키, 차가운 눈빛을 가진 학생이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예전에 박수호에게 이름을 듣고 인터넷에서 영상을 찾아봤던 손성혁이라는 친구였다.
박수호와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손성혁과도 인사를 하려는 찰나.
부장 쌤이 흰 종이를 들고 오셨다.
“문주원, 손성혁, 박수호. 셋 다 왔네. 너네 실기 곡이랑 같은 곡으로 연주회 할거지?”
그러자 옆에 있던 박수호가 말했다.
“네, 저는 콩쿠르 준비 때문에 그냥 실기 곡으로 하겠습니다. 따로 준비할 시간이 없을 듯해요.”
“그래, 박수호는 실기 곡으로 여기다 적으면 된다.”
박수호는 선생님이 주신 종이에 곡명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레슨이 있어 가봐야 한다며 먼저 교무실을 떠났다.
2학년 부장 쌤이 나와 손성혁에게 말했다.
“이게 시간이 좀 촉박해서 보통 다 실기 시험 봤던 곡으로 하잖니. 둘은 어떻게 할지 잠깐 얘기하고 있어 봐.”
부장 쌤은 자리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제야 손성혁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나는 바이올린 전공 문주원이야.”
“나는 피아노 전공 손성혁이다.”
손성혁은 방어적이라고 느낄 만큼 무미건조했다.
그가 나를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그의 연주 영상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말을 걸어 보았다.
“박수호한테 네 이름을 듣고 예전에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적 있어. 피아노 천재라고.”
“갑자기 등장해서 실기 1등 해버리는 네가 할 소리는 아닌 듯?”
“그런가?”
부장 쌤이 전화를 끊고 돌아올 때까지 영양가 있는 대화는 오고 가지 않았다.
‘저 녀석 완전 까칠한 느낌인데?’
그래도 예전에 찾아봤던 그의 연주 영상은 정말 훌륭했었다.
과거의 어떤 연주자를 떠올려봐도 월등히 뛰어난 연주였다.
그리고 나와는 달리 뭔가 굉장히 섬세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연주였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 같다고나 할까?
문득 내가 손성혁과 같이 연주를 하면 어떨까 궁금해졌다.
나는 부장 쌤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둘이 같이 연주해도 되나요? 손성혁이랑 저랑요.”
“시간이 촉박해서 되겠어? 너네가 무대만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면 못 할 거야 없지.”
선생님의 대답을 들은 나는 손성혁에게 말했다.
그가 나한테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느꼈지만, 그래도 물어보고는 싶었다.
“나랑 같이 이중주 하자. 제대로 한번.”
“시간이 될까 모르겠다. 생각해둔 작품은 있어?”
“물론.”
“그래, 그럼. 해보지 뭐.”
까칠했던 손성혁은 예상외로 쉽게 내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피아노 천재라는 손성혁과 나의 이중주가 성사되었다.
* * *
“거지래요. 거지래요.”
“나 거지 아니거든?”
“고아래요. 고아래요.”
“나 할머니 있거든?”
손성혁이 어릴 때 가장 많이 듣던 말이었다.
서울에서 거의 남지 않은 달동네.
무려 9세대의 집이 하나의 화장실을 같이 쓰는 판잣집.
그곳이 손성혁의 집이었다.
손성혁은 한날한시에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여의어서 부모님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어린 손성혁과 동생을 홀로 키워내셨고 궂은일을 마다한 적이 없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바빴고 지긋지긋한 단칸방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네가 천지개벽하기 시작했다.
시장 앞에 새 아파트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성혁은 친구들에게 매일 놀림을 받았다.
“야! 너 냄새 나.”
“너는 옷이 한 벌이냐? 어떻게 매일 같은 옷을 입어?”
“우리 엄마가 너네 동네 애들이랑 놀지 말랬어. 거긴 거지가 사는 곳이라고.”
“화장실을 다른 집이랑 같이 쓰는 거 실화냐? 무슨 지하철 화장실이야?”
분했지만 대꾸할 수 없었다.
딱히 변명할 거리도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억울했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나쁜 줄 몰랐다.
몇몇 있는 동네 친구들은 자신과 처지가 비슷했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들어가 보니 자신 같은 처지의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경비실과 놀이터가 있는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
그들과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순간.
손성혁은 말수가 적어졌다.
필요한 말을 제외하곤 거의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화를 내는 것보단 그냥 삭히는 게 편했다.
놀리던 애들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제풀에 꺾여 더 빨리 그만둔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외톨이가 된 손성혁은 하굣길에도 항상 혼자였다.
몇 없던 판잣집 친구들도 동네를 다 떠나버렸다.
손성혁의 집은 횡단보도를 건너서 구불구불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작은 피아노 학원이 생겼다.
등굣길에 지나가던 아파트 앞 횡단보도, 건물 1층이었다.
신호등이 여러 번 바뀌어도 길을 건너지 않고 피아노 학원 주위를 맴돌았다.
인자한 인상의 선생님은 초등학교 하교 시간에 알록달록한 연필을 들고 아이들에게 나눠 주셨다.
선생님은 예쁜 연필을 손성혁에게도 주었다.
[쇼팽 피아노 학원]연필을 주던 선생님은 학원에 오라고 말씀하셨다.
“학교 끝나고 피아노 배우고 싶으면 와. 연필에 학원 전화번호 있어. 엄마한테 말씀드려 봐.”
엄마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곤 받은 연필을 소중하게 필통에 넣었다.
바닥에 친구들이 버린 몽당연필을 주워 쓰다가 망신당한 적이 있었기에, 새 연필은 너무 소중했다.
매일 서성거려도 선생님은 계속 웃으며 새 연필을 주셨다.
“오늘 또 왔네? 이름이 뭐니?”
“손성혁이요.”
참 좋은 선생님 같았다.
새 연필이 필통을 가득 채웠던 어느 날이었다.
피아노 학원에선 항상 예쁜 소리가 들렸다.
대로변이라 차 소리와 엉키긴 했지만 확실히 구별할 수 있었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피아노의 음은 아름다웠고 신비로웠다.
창문으로 빼꼼히 학원을 들여다보던 손성혁은 학원 문이 열리자 뒷걸음쳤다.
자신을 지독하게 놀리는 백찬영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성혁, 너 학원 다닐 돈 없잖아. 고아 주제에. 저리 가!”
뒷걸음치던 손성혁은 학원 앞 주차 고깔에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큰소리가 나서 밖에 나와본 피아노 선생님.
손성혁을 놀리는 백찬영의 말을 들은 선생님의 안색이 무섭게 굳어졌다.
‘나를 혼내려는 건가?’
하지만 선생님은 백찬영을 엄하게 꾸짖으셨다.
“백찬영. 친구한테 그런 말 쓰면 안 돼.”
“내가 왜요? 쟤 고아 맞다고요.”
“친구한테 사과해. 사과하지 않으면 피아노 배울 수 없어.”
“에이씨. 이딴 학원 엄마한테 끊어버리라고 할거에요. 피아노 학원이 뭐 여기뿐이에요? 저런 거지 편이나 들고. 돈 내고 다니는 사람은 나라고요.”
그 애는 막말을 쏟아붓고 커다란 아파트 속으로 뛰어가 버렸다.
손성혁은 선생님과 단둘이 길가에 덩그러니 남았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