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61)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61화(61/250)
김빛나의 담임인 장성태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김빛나가 부유한 집의 아이긴 했지만 특이한 사고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거만하지도 않았고 굉장히 성실했다.
돈만 가지고 뻐기는 그런 부류의 학생도 아니었다.
언제나 누구보다 수업도 열심히 준비했으며, 학업과 실기를 둘 다 놓치지 않으려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자퇴를 한다고?’
서둘러 교장실에 도착한 장성태 선생은 문을 두드렸다.
교장실 안에서는 큰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똑똑.
노크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간 장성태 선생은 드디어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왜 김빛나가 자퇴를 하려는지.
왜 교감의 얼굴이 굳어있는지.
성난 김빛나의 엄마는 목소리를 높여갔고 무표정한 김빛나의 얼굴에선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황선욱 교장이 굳은 표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며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 감이 오는군요. 자체 감사를 일단 실시하겠습니다. 그리고 빛나 학생은 학생의 의지대로 자퇴 처리를 해주겠습니다.”
“자퇴라니요? 우리 빛나가 왜 자퇴를 해요?”
성난 김빛나의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추태를 부렸고, 감정이 격앙되어 폭언의 강도가 높아졌다.
교감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져 갔다.
뒤늦게 장성태 선생의 존재를 깨달은 김빛나는 그에게 말했다.
“쌤. 저 우리 반 애들한테 작별인사하고 가게 해주세요. 내용은 비밀로 부탁드려요.”
“그래, 빛나야. 네가 원하는 대로 하자.”
한참 동안 김빛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러더니 급기야 자리에 주저앉았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운 김빛나의 망연자실한 눈빛은 흐리고 초점이 없었다.
축 처진 어깨로 교실로 가는 길.
장성태 선생은 성실했고 바이올린을 정말 사랑했던 학생이 학교를 떠난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그 생각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김빛나에게 말했다.
“빛나야. 선생님은 네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거 안다.”
“제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면 누가 믿어줄까요?”
“누군가의 믿음보단 네가 떳떳하면 될 거 같구나.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니?”
“바이올린은 이제 그만하려고요. 진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했거든요. 후회 없어요. 이렇게 끝내서 아쉽지만요.”
최선을 다해서 더는 후회가 없다는 말.
장성태 선생은 김빛나가 자퇴를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않았음을 그 말에서 느꼈다.
김빛나는 최선을 다했기에 적어도 자신은 탓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려운 결정을 한 김빛나에게 장성태 선생이 할 수 있는 건 응원과 지지뿐이었다.
“그래, 네 선택을 존중한다. 언제든 고민 있으면 전화해라. 자퇴해도 넌 내 제자니까.”
“고마워요. 선생님. 제 자존심 때문에 반 친구들에게는 거짓말하는 건 이해해주세요.”
“그럼, 이해한다. 마음이 아프구나.”
드르륵.
교실문을 열었다.
“김빛나. 수업 다 끝났는데 지금 온 거야?”
“많이 아팠어?”
“표정 왜 그리 심각해?”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아이들은 시끄럽게 떠들었다.
당연했다.
장성태 선생은 반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얘들아, 빛나가 문화예고 오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네에?”
“쌤이 뭐라고 하시는 거야?”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김빛나는 교탁 앞에서 친구들을 바라보며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얘들아. 갑자기 이런 소식 전해서 미안.”
“뭐야? 진짜야?”
김빛나는 의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바이올린 그만두기로 결정했어.”
“뭐라고?”
“오늘 만우절이야? 그걸 누가 믿어?”
반 친구들의 반응에 김빛나는 덤덤한 어조로 대답했다.
“고심 끝에 결정한 거야. 너희들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고 싶었어.”
“장난치지 마. 왜 그래?”
김빛나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김빛나가 나간 뒤.
한참 동안이나 소란이 이어졌다.
* * *
“유학가는 경우는 있어도 이런 일은 없었지.”
“게다가 김빛나가 바이올린을 그만둔다고? 아니 왜?”
“설마 문주원한테 바이올린 1등 밀려서?”
“말이 되냐? 김빛나 실기 좀 밀려도 내신 전교 1등인데.”
주인공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대화들은 갈 곳을 잃었다.
아무도 결론을 내지 못한 상황에서 온 혼란.
‘자퇴’라는 단어의 무게는 파장이 컸다.
담임쌤이 가까스로 상황을 수습한 뒤, 종례가 끝났다.
나는 교문 밖으로 나가 서둘러 김빛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 전 밤에 전화해서 이상한 질문을 하고 울었던 김빛나.
느낌이 좋지 않았었는데.
설마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면 이렇게 파격적인 선택을 했을까?
김빛나의 체념한 눈빛에서 보였던 극도의 우울함.
최악의 경우가 상상되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신호가 세 번이 울리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너 어디냐?
-학교에서 나와서 쭉 그냥 걸었어. 어딘지 몰라.
-앞에 보이는 카페 없어?
-있어.
-거기 들어가 있어. 이름 알려줘. 내가 바로 갈게.
-네가 왜?
-그렇게 나갔는데 걱정이 안 되겠냐?
김빛나는 순순히 카페 이름을 문자로 보내줬고, 나는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다.
카페 아이리스에 도착했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창가에 앉아서 음료수를 홀짝이는 김빛나 옆으로 다가갔다.
“뜬금없이 웬 자퇴야? 이유나 좀 알자.”
“알 거 없어. 말하기 싫어.”
“왜? 우리 친구잖아.”
김빛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친구?”
“난 그런 줄 알았는데. 우리 반에 연락처 아는 사람 몇 명 없는데, 그중 하나가 너야.”
“맞네. 우리 친구.”
희미한 미소가 입에 걸린 김빛나에게 물었다.
“친구면 자퇴 이유정돈 알아도 되지 않냐?”
“지금은 자세히 말 못 해. 내가 하진 않은 일인데 내가 책임지고 싶은 일이라서.”
“수수께끼야? 어렵다. 뭔진 몰라도.”
“나도 내 인생 이렇게 풀릴 줄 몰랐어.”
“그래도 멋있어. 책임을 진다는 거. 아무나 못 하는 거잖아?”
내 대답을 들은 김빛나의 얼굴에 순간이나마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김빛나가 어렵게 결정한 일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난 정말 중요한 질문을 해야만 했다.
“근데 너, 정말 음악 그만둬도 되겠어? 진심으로 좋아하잖아.”
“적어도 지금은 하지 못할 거 같아. 그게 내 결론이야.”
좋아하는 음악을 그만둔다는 것.
그것도 자의에 의해서가 아닌 경우.
경험해 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나의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김빛나에게 말해 주었다.
“한동안 힘들 거야. 엄청 아플 수도 있어. 그동안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해온 거잖아.”
“그럴까? 차라리 엄청 아팠으면 좋겠어. 그럼 훌훌 털 수 있을 테니까.”
“얘기하고 싶을 때 언제든 연락해. 바이올린 켜고 싶을 때도 좋고.”
“그럼 나랑 이중주도 해주는 거야?”
“물론, 그게 뭐 어렵겠어.”
내 대답을 들으며 미소짓는 그녀의 모습이 한없이 슬퍼 보였다.
쓸쓸한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 더 이상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이 상처가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수 있기만을.
지나치게 괴롭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김빛나의 자퇴는 학교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한동안 학교가 떠들썩했다.
김빛나에 대한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다.
“진짜 김빛나 무슨 일이야? 아무리 실기 등수 떨어졌다고 해도 자퇴는 오버 아님?”
“무슨 일이 단단히 있으니까 자퇴를 하지. 그날 눈도 퉁퉁 부어있던데.”
하지만 당사자가 없으니 그녀의 진의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떠들썩했던 사건도 시간이 흐르면서 금세 잊혔다.
처음부터 그런 학생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학교는 여느 때처럼 입시에 맞춘 시계가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었다.
사건의 중심에 있던 교감은 얼마 후 문화예고를 그만두었다.
경찰에 의해 연행돼 가는 걸 봤다는 애들이 많았다.
그리고 바로, 공석이었던 교감을 대신해 새로운 교감 선생님이 부임했다.
그렇게 학교는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학교 수업이 다 끝나고 책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손성혁이 우리 반으로 들어왔다.
심각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게다가 녀석은 오른손에 검정색 손목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손성혁, 너 오른손 무슨 일이야?”
“이게…….”
손성혁은 자신의 오른손을 허탈하게 쳐다봤다.
“연습을 너무 과하게 했는지 오른손에 건초염이 생겼다.”
“며칠 전에도 멀쩡했잖아.”
“증상이 있었는데 내가 무시했거든. 조금 지나면 괜찮겠지 하면서.”
“병원은 가 봤어?”
“응, 어제 건초염 진단받았어. 초기에 와서 다행이라더라. 당분간 오른손은 절대 쓰면 안 된대.”
한숨이 나왔다.
아직 고등학생밖에 안 된 녀석이 얼마나 무식하게 연습했으면 건초염이 생긴단 말인가?
기억을 더듬어 보면 손성혁이 피아노 칠 때, 무게 중심이 오른쪽으로 쏠려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릴렉스가 되지 않고 오른손을 타건할 때 느껴졌던 묵직함.
그래서였을까?
“손성혁, 무조건 오래 한다고 좋은 건 아니야. 가끔은 머릿속으로 음악을 그려보고 이미지화하는 것도 좋아.”
“그러게. 가끔 긴장이 돼서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곤 했어.”
손성혁은 그 점을 알면서도 릴렉스 할 수 없었다며 픽, 하고 웃어버렸다.
눈에 근심이 가득 담겨 있는 걸 보니 나는 손성혁이 걱정스러웠다.
이 녀석에게 부담을 주고 싶은 건 아니지만 나는 연주회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손성혁, 실기우수자 연주회 서고 싶지 않아? 아쉬움은 없어?”
손성혁은 잠시 머뭇거렸다.
“실은 정말 아쉬워. 이번 연주회에 고마운 선생님이랑 할머니랑 동생이 오기로 했었거든.”
“원래는 연주회 보러 잘 못 오셨던 거야?”
“그랬지. 할머니랑 동생은 내 연주 본 적이 없어. 선생님도 일하시느라 바쁘셨고. 처음으로 모두 다 오기로 했는데…….”
손성혁의 표정이 못내 아쉬워 보였다.
처음으로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주를 보여주는 자리.
자신의 부상으로 그 연주회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이 손성혁에게 얼마나 큰 아쉬움일지 이해가 갔다.
나는 손성혁이 연주회에 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문득 그 방법이 떠올랐다.
“그럼 와서 보셔야지.”
“뭐? 나 오른손 당분간 못 쓴다니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나 한 번 믿어 봐.”
“정말? 그게 뭔데?”
“시간이 좀 필요해. 궁금하면 따라와 보든지.”
학교 연습실로 뛰어가는 나의 뒤를 손성혁이 바짝 쫓아왔다.
나는 비어있는 연습실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곤 우리가 연주하기로 했던 악보를 피아노 위에 폈다.
손성혁은 뒤에서 서서 멀뚱멀뚱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있었다.
잠깐 악보를 보며 생각하던 나는 곧 왼손을 움직여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왼손을 피아노 검은 건반과 하얀 건반 위로 폭넓게 움직여 보았다.
오른손을 못 쓰는 손성혁을 위해 음의 범위와 화성을 고려한 편곡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가는 눈으로 내 행동을 유심히 살피던 손성혁의 눈이 부릅 뜨였다.
‘녀석 눈치챘나 보네.’
난 왼손으로 한 번에 도약 가능한 범위를 확인한 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음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입을 쩍 벌린 채 놀란 손성혁은 악보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이, 이게 가능한 일이야?”
“자 봐봐. 완벽하게 똑같은 음으로 치는 게 아니야. 악보는 내가 다시 그릴 테니 걱정 말고.”
“그러니까 이게 원래 곡처럼 가능하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아노도 쳐보고 바이올린도 같이 켜보면 부족한 소리 더 확실히 메꿀 수 있어.”
가방에서 오선지를 꺼내며 손성혁에게 강조했다.
“페달을 잘 써야 해. 페달이 한 음을 지속하면서 다른 음을 쳐야 하는 경우가 많을 거야. 할 수 있지?”
손성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방금 전까지 가득했던 아쉬움은 어디 가고 다른 감정들이 손성혁의 얼굴을 채웠다.
“이제는 네가 피아노에 앉아봐. 바이올린이랑 맞춰보자. 소리가 어색하진 않는지. 음이 빈 곳은 없는지.”
“아직도 안 믿겨져. 눈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당연히 이번 연주는 못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처음 해보는 거야. 뭐든지 처음은 다 있는 거잖아?”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