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62)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62화(62/250)
기존 악보에 덧대어 그렸던 음표들을 오선지에 보기 좋게 옮기기 시작했다.
손성혁을 위한, 왼손만을 위한 피아노 악보.
왼손으로 도저히 커버가 안 되는 부분은 바이올린으로 커버할 수 있도록 수정했다.
얼마 후에 한 장의 악보가 완성되었다.
“네 왼손으로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은 내 바이올린이 메꿀 테니 걱정하지마. 왼손으로 이렇게 치는 거 아무나 못 하는 거다. 손성혁, 너니까 시도해 보는 거지.”
손성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그린 악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왼손을 들어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악보를 대략 연주해본 손성혁이 나에게 제안했다.
“이제 바이올린이랑 같이 맞춰 보자.”
나는 준비한 바이올린을 손성혁에게 들어 보이며 화답했다.
조금 후, 손성혁의 피아노와 나의 바이올린이 화음을 이루기 시작했다.
처음 맞춰 보는 것치고 나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왼손만으로 피아노를 치려니 버거워 보였다.
피아노의 건반은 88개.
‘오른손으로 쳐야 하는 건반을 왼손이 다 커버하려니 확실히 힘겨워 보이네.’
손성혁이 피아노 치는 자세를 유심히 살핀 나는 한 가지 해결책을 찾았다.
“잠깐. 왼손만으로 피아노를 치려면 몸의 가동범위가 넓어야 할 거야. 의자를 좀 더 피아노에서 멀리해서 공간을 만들자.”
내 조언에 손성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 의자의 위치를 조절했다.
“좀 더 몸을 과감하게 움직여야 할 거야. 원래 오른손이 치던 부분까지 왼손이 닿아야 하니까.”
“해볼게. 처음엔 어려웠는데 점점 할수록 괜찮긴 하네. 그리고 재밌어.”
“역시. 너라면 가능할 줄 알았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손성혁은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다.
녀석은 훌륭한 음악성을 뛰어넘는 끈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우리는 연주하고 악보를 수정하면서 연습에 몰두했다.
연습하는 중간중간 나는 손성혁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 부분 아예 글리산도로 미끄러지듯이 치면 어때? 손바닥의 넓은 면을 이용해도 좋고.”
“괜찮은 생각인데? 한번 그렇게 쳐 볼게.”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특별한 악보가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 * *
실기우수자 연주회 날이 다가왔다.
석영진 대표는 문주원과 손성혁의 이중주를 보러 문화예고에 도착했다.
‘여기 이렇게 또 올 줄이야.’
석영진은 문화예고에 오기 전 황선욱 교장과 통화를 했다.
설명을 들은 대로 ‘앙상블의 밤’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앙상블의 밤’은 자발적으로 신청만 하면 참여할 수 있는 연주회라고 했다.
‘그러니까 문주원이 편입생들하고 팀을 이뤄서 무대 위에 오를 수 있었겠지.’
하지만 ‘실기우수자 연주회’는 선택된 극소수의 학생만 참여할 수 있는 연주회라고 했다.
모든 악기를 통틀어 각 학년 실기우수자 3명씩만 참여할 수 있는 연주회.
문화예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최상위 학생들만 설 수 있는 무대라는 것이었다.
신축 강당 건물에 들어가니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소음과 엉켜 이런저런 대화들이 들려왔다.
대화를 하는 이들은 문화예고에 다니는 학생을 둔 학부형 같았다.
“이번 2학년 실기 1등이 편입생이라면서요? 이름이 문주원이라나?”
“손성혁이 그럼 2등이에요? 그런 일도 다 있네요.”
“실기 1등 올해 등장한 뉴페이스라니까요?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났잖아요.”
“앙상블의 밤 때도 대단했다던데 그때 못 봤지 뭐예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한 여자가 목소리를 한층 줄이곤 속삭이며 말했다.
“김빛나 자퇴도 그 편입생 때문이라고 소문이 파다하다니까요.”
“어디 봅시다. 오늘. 얼마나 대단한지.”
다들 문주원의 공연을 두고 보자는 한 학부형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데 그 소문 들었어요? 편입생은 엄마가 없고, 손성혁은 고아라던데.”
원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
석영진은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문주원이 손성혁을 꼭 영입하면 좋겠다고 한 이유가 방금 들은 사실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뛰어난 음악 실력을 드러내는 학생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학부형들까지 저런 말을 하는 거 보면.
‘본인들 귀에도 심심치 않게 들리겠지? 어른으로서 정말 부끄럽군. 그맘때는 큰 상처가 될 텐데.’
석영진 대표는 연주회가 열리는 홀 안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문화예고 실기우수자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각 학년 최고 실력자들답게 수준 높은 연주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검증된 레파토리에 안정적인 선곡.
‘학교 시험 곡이거나 콩쿠르 지정곡이겠지.’
듣기 좋았고 무난했다.
하지만 중복되는 곡이 비슷한 느낌의 연주로 이어지자 큰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석영진은 순서지를 살펴보았다.
곧 있으면 문주원과 손성혁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무대 위 세팅이 바뀌고 문주원과 손성혁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피아노를 칠 손성혁 학생의 오른손 전체를 휘감은 검정색 물체.
‘저게 뭐지?’
손등을 감은 모양새나 꽤 넓은 면적으로 봤을 때.
저건 손목 보호대가 분명했다.
‘아니 저런 손으로 어떻게 피아노를? 치면 안 될 텐데?’
손성혁 학생의 오른손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바이올린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 나온 문주원은 사회를 보는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문화예고 2학년 바이올린 전공 문주원입니다. 학생이 왜 마이크를 잡았나 싶으실 텐데요. 바로 제 친구 손성혁의 오른손 때문입니다.”
손성혁은 오른손을 높이 들어 보였고 모두 그의 오른손과 손목을 뒤덮은 검정색 보호대를 볼 수 있었다.
-아니 저런 손으로 어떻게 연주를 한다는 거야?
관객들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제 친구 손성혁이 현재 오른손에 건초염 초기진단을 받았습니다. 연주회 며칠 전에 알게 되어 보호대를 착용하고 나왔습니다.”
손성혁의 오른손이 온전치 못하다는 소식에 관객석이 소란스러워졌다.
문주원은 소란스러움에 연연하지 않고 싱긋 웃곤 무대를 둘러보며 말했다.
“저희가 연주할 곡은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카프리치오소 Op. 28 입니다. 연습 시간이 짧았기에 양해 부탁합니다.”
문주원의 연주곡 소개가 끝나자 관객들의 별의별 소리가 다 들렸다.
-도대체 어떻게 한다는 거야?
-아니 건초염이면 피아노를 치지 말아야지 바보 아니야?
-실기우수자 연주회가 뭐가 중요하다고 피아노 생명을 걸어?
-부모가 없다더니 그런 거 알려 주는 사람도 없나 봐.
-이래서 부모 없는 애들은 티가 난다니까.
문주원이 뒤이어 한 말이 자신들의 예상과 달랐는지 관객들은 여전히 수군댔고 조용해지지 않았다.
“여러분이 어떤 걸 걱정하시는 지 압니다. 저도 그래서 그 부분을 설명하려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관객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여기 계신 분들은 이 곡을 대부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꽤 고난도의 곡이죠. 친구의 피아노 실력을 알았기에 오늘 같은 시도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의아해 보이는 관객들에게 문주원은 마지막 설명을 덧붙였다.
“생상스의 곡을 제가 편곡했습니다. 오른손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기 위해 최선을 다한 친구 성혁이에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관객석에서 떨떠름한 박수가 나왔다.
박수를 치는 둥 마는 둥.
다들 어리둥절해 있었다.
석영진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문주원의 설명은 그다지 친절한 설명이 아니었다.
아니 설명이 되지 않았다.
문주원의 말에 따르면, 손성혁은 오른손에 건초염 증상이 있어서 피아노를 칠 수 없다.
그래서 문주원이 편곡을 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게 충분한 설명이 된다고 생각한 건가?’
도무지 어떤 연주를 할지 감이 안 오는 석영진은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선생님에게 마이크를 건네준 문주원이 무대 중앙으로 갔다.
오른손에 커다란 손목 보호대를 한 손성혁은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 암보가 안 된 상태인지 피아노 위에는 악보가 펴져 있었다.
손성혁의 악보를 넘겨주기 위한 페이지터너 역시 자리에 앉았다.
‘하긴 며칠 전 새로 편곡을 했다면 암보하긴 무리겠지.’
무대 위를 지켜보는 석영진 대표는 긴장한 나머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더 긴장이 되네. 피아니스트 오른손이 혹사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무대 위에 서 있는 문주원의 표정을 본 석영진 대표.
문주원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바이올린을 어깨 위에 올렸다.
프랑스 바로크 음악의 근간을 세웠던 카미유 생상스.
그의 작품 서주와 론도카프리치오소 Op 28.
오늘 문주원과 손성혁이 연주할 곡목이었다.
스페인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강렬한 곡이 그들의 손에서 어떻게 재탄생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드디어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처음은 가볍고 여린 피아노의 음색이 그 문을 열었다.
곧이어 문주원의 바이올린이 더해졌다.
애절한 바이올린의 음색이 캔버스 위에 유화처럼 질감 있게 흩뿌려졌다.
긴장감이 감도는 짧은 서주 부분을 지나 주제부에 들어간 연주.
스페인의 정열적인 분위기가 특유의 리듬을 통해 타오르는 듯하더니.
이내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변덕스러운 연주가 이어졌다.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부드럽게 장난치듯이.
때로는 활기차게.
긴장감과 생동감이 공존하는 연주였다.
광야를 달리는 경주마처럼 거친 바이올린의 속주가 피아노와 맞물리기 시작했다.
곡 전체를 관통하는 애절한 음색은 누군가의 아픈 사랑 같기도 했고.
어떤 사람의 굴곡 있는 인생 같기도 했다.
애달픈 바이올린의 음색이 고혹한 피아노 소리와 만나 펼쳐지는 그들의 앙상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완벽한 하모니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제야 석영진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손성혁은 처음부터 왼손만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어.’
손성혁의 오른손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석영진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견뎌낸 나무의 거친 표면처럼.
투박한 질감의 바이올린 음색이 점점 더 고음을 향해 날카롭게 뻗어갔다.
문주원의 바이올린이 뾰족한 칼날처럼 심장을 두드리고.
리드미컬한 활의 움직임이 거세어졌다.
거친 느낌의 카랑카랑한 바이올린과 대범한 피아노의 음색이 어우러졌다.
황홀한 귀와 심장은 그저 요동칠 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손성혁의 선명한 피아노 연주는 오른손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왼손만으로 연주했기에 몸의 움직임이 컸고 더욱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의 피아노 소리는 맑은 가을하늘처럼 청명했으며 생기가 넘쳤다.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것은 감히 그에게 어떤 핑계도 되지 못했다.
산꼭대기 정상을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딛듯이.
그렇게 둘의 연주는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주원 군이 와서 보라고 한 이유가 있었군. 정말 특별한 피아니스트야.’
하지만 모든 무대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건 역시 문주원이었다.
인간의 연주가 아닌 것 같은 그의 바이올린 연주.
게다가 실로 놀라운 편곡 능력.
피아노는 양손만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왼손만을 위한 편곡이라니.
왼손만으로 연주가 가능하도록 음의 범위를 구성한 것은 물론이고, 그 안에 화성은 빠짐없이 채워져 있었다.
도약이 심하긴 했지만, 충분히 가능한 범위 안에서의 편곡이었다.
‘놀라운 편곡이다. 오른손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편곡이라니. 이게 원곡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야.’
문주원의 바이올린은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내며 감정의 끝을 향해 달렸다.
집념을 향해 질주하는 그의 활.
문주원의 바이올린은 신의 경지에 도달한 듯했다.
손성혁의 피아노 연주는 집요한 문주원의 바이올린을 헤집고 들어가 조화를 이뤄냈다.
절묘한 어우러짐에 경탄이 저절로 나왔다.
‘문주원의 바이올린에 밀리지 않는 안정감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손성혁의 피아노는 대단했다.
둘의 연주가 끝나자 홀 안은 함성으로 뒤덮였다.
왼손만으로 누구보다 훌륭한 연주를 보여준 손성혁.
오른손을 못 쓰는 친구를 위해 왼손을 위한 피아노 편곡을 한 문주원.
둘의 연주는 문화예고 역사에 길이길이 회자 될 만큼 압도적인 무대였다.
청중들의 환호는 멈추지 않았고, 그들은 십 분이나 박수갈채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