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65)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65화(65/250)
황선욱은 뛸 듯이 기뻤다.
몇 달 동안 석현명 지휘자가 문화예고 오케스트라 수업을 맡아준다니.
게다니 2학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까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석현명이 물을 한 모금 들이마셨다.
“몇 년간 쉼 없이 일하다가 한가해지니까 좀이 쑤시던데 잘됐군.”
같이 밥을 먹던 친구들이 황선욱의 걱정이 덜어졌음에 기뻐해 주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일세. 문화예고 학부형들이랑 학생들이 놀라 자빠지는 거 아니야? 허허.”
“그러게나 말일세.”
점심 식사를 기분 좋게 마치고.
황선욱 교장은 문화예고에 황급히 돌아갔다.
‘가서 행정적인 절차를 최대 빨리 마무리해야 다음 수업에 차질이 없겠지.’
사립학교이기에 교장의 재량이 큰 만큼 어려울 일은 없었다.
게다가 시카고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와의 수업을 반대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테니까.
황선욱은 교무부장과 행정실 실장을 호출했다.
단기간 계약과 학부형들에게 나갈 공문을 작성하기 위함이었다.
일은 순식간에 진척되었다.
행정실장은 석현명 지휘자가 몇 달간 문화예고에 채용되었음을 알리는 공문을 게시했다.
문화예고 학교 홈페이지에 새로운 오케스트라 지도 교사에 대한 공고가 올라왔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그 공고문을 본 학부형들의 전화가 학교에 빗발쳤다.
-진짜 시카고 심포니의 석현명 지휘자가 애들 수업을 하신다고요?
-맞습니다. 마에스트로 석현명이 2학년 오케스트라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 때까지 함께 하십니다.
-왜 몇 달만 하시나요? 아예 애들 쭉 맡아주시면 안 되나요?
-그건 곤란합니다. 운 좋게 안식년이라 성사될 수 있었던 겁니다. 마에스트로가 고등학교 학생을 지도한다는 건 사실 일어나기 힘든 일이죠.
행정실을 비롯하여 교무실은 학부형들의 여러 질문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만큼 파급 효과가 큰 사건이었다.
* * *
다음날, 담임 쌤은 조례 시간에 한가지 공지를 전달하셨다.
“너희들, 오케스트라 수업 지휘자 선생님 바뀐 건 알고들 있지?”
“네.”
“오늘은 그분이 수업에 들어오지 못하셔서 악기별로 파트 연습을 한다고 하니까 그렇게 알도록.”
“에이. 오늘부터 볼 수 있는 거 아니었어요?”
친구들의 실망감이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워낙 바쁘신 분인데 급하게 결정된 거라 그런 듯해. 다음 주부터는 차질없이 수업할 수 있을 거다. 알겠지?”
“네에.”
“그럼 스스로 파트 연습 잘 하리라 믿는다.”
“걱정 마세요, 쌤.”
‘시카고 심포니의 지휘자는 어떤지 궁금했는데.’
조금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케스트라 수업 시간이 되어 나는 반 친구들과 수업 장소로 이동을 했다.
청소년 음악제 예선을 맞아 우리가 연주할 곡목은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이었다.
커다란 공간 이곳저곳에 악기들이 따로 모여 앉았다.
바이올린은 가장 숫자가 많았다.
3교시나 연달아 하는 오케스트라 수업인데.
지휘자가 안 오는 바람에 수업은 엉망이 되었다.
누구 하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파트 연습이다 보니 각 악기 수석이 잘 이끌어야 하는데 지켜보는 선생님이 없으니 엉망이었다.
특히 바이올린.
사람 숫자가 많은 만큼 집중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김빛나 대신 악장의 자리에 앉게 된 구영찬 역시 마찬가지였다.
본인의 부족한 부분만 수차례 연습할 뿐.
모두를 아우르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목관악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들이 징징이라고 부르는 클라리넷의 도진수.
도진수의 클라리넷 소리는 부드럽고 너무 좋았지만.
지금은 애들을 휘어잡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더니 급기야 혼자만 연습을 시작했다.
내 앞에 앉은 백찬영을 비롯해서 금관악기 몇몇 애들은 자리를 이탈하려고 했다.
그들은 지난번 손성혁을 뒷담화 하던 무리였다.
“백찬영, 파트 연습 시간인데 어딜 나가.”
“꺼져. 너나 연습 많이 해.”
나가는 백찬영을 쫓아가서 말해 봤지만 무리의 비웃음만 살뿐이었다.
몇몇 애들이 자리를 이탈하자 그나마 개인 연습이라도 하던 애들마저도 핸드폰을 하며 시끄러워졌다.
순간 이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려 시카고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라는 거장이 우리를 위해 오는데.
더 연습해도 모자란 데 이렇게 연습을 한다고?
‘거장이 눈치 못 챌 리가 없지.’
이러다가 그분이 우리가 수준 미달이라면서 그만두시기라도 하면?
‘절대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돼.’
끔찍한 상상이 되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앙상블을 같이했던 윤하준, 표예은 그리고 에밀리를 불러 말했다.
“파트 연습 우리가 주도하자. 각 수석들이 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 모두 손 놓고 있잖아?”
“그러게, 개인 연습하던 클라리넷 징징이까지 이제 대놓고 게임하네.”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핸드폰을 하는 애들.
악기는 모두 방치된 상태였다.
에밀리와 표예은 그리고 윤하준의 눈빛이 반짝였다.
“문주원 네가 우리 앙상블 했던 것처럼 리드해 준다면야. 나도 열심히 해볼게.”
“좋아. 비올라는 나한테 맡겨.”
“첼로는 내가 해볼게.”
우리는 다시 한번 의기투합했다.
“일단 같이 연주해보면서 보잉부터 맞추자.”
현악기의 경우 일단, 보잉 문제가 시급했다.
오케스트라에서 현악기들은 활을 이용해 연주를 한다.
올라가는 활, 내려가는 활. 이른바 업 보우, 다운 보우.
활의 보잉 표시가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연주라도 엉망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법.
모여앉아 보잉 표시를 하면서 우리끼리 연습을 시작했다.
목관과 금관악기가 없어서 비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슬러가 있는 부분, 스타카토가 있는 부분.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 때문에 적절한 보잉의 사용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연주하며 활 표시를 하는 모습을 보이자, 친구들이 하나 둘 구경하러 왔다.
“너네끼리 뭐해?”
“연습하잖아. 너도 같이 할래?”
물음에 잠시 망설이던 친구들은 우리가 계속 권유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몇몇은 악기를 들고 왔다.
“나도 같이 할래.”
“나도.”
“우리도 해도 되지?”
하나, 둘씩 늘어난 아이들은 어느새 엄청 많아졌다.
그리고 결국, 나간 몇몇 아이들을 빼고는 모두 자리에 앉아 자신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한 번의 연주를 모두 마친 나는 바이올린 파트 친구들에게 말했다.
“바이올린 보잉 표시는 끝났으니까 이따가 나랑 하준이 표시 보고 베끼면 될 거 같아.”
“우와, 벌써 보잉 표시를 끝낸 거야? 대단하다.”
그러자 에밀리가 손을 들었다.
“비올라도 완성.”
표예은도 마찬가지였다.
“첼로도 내 악보 보고 표시 해.”
편입생이라는 주변인 같은 위치에서 시작한 우리가 2학년 오케스트라를 주도하는 순간이었다.
잠깐 동안 친구들에게 악보에 활 표시를 하는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나도 모르게 지휘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지휘자의 단상에 선 내가 말했다.
“우리 나이에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거장을 만나는 거. 쉬운 일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지.”
“오늘은 내가 연습 지휘자라고 생각해라. 오늘 연습 안 했다가 다음 주에 마에스트로 왔다가 도망가시면 어떡하냐?”
내 말에 대부분이 동의했는지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몸서리를 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근데 문주원, 너는 지휘도 할 줄 아는 거야?”
“정식 무대에 서는 것 아니고 연습 지휘니까.”
아주 먼 옛날.
나의 전문 분야는 아니었지만, 지휘자로 활동한 적이 있긴 했다만.
하지만 기본적인 지휘법 같은 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음악의 밑그림을 그리는 정도야 가능하겠지.’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
어디 한 번 해볼까?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2학년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해보게 되었다.
서툴고 어색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내가 끌어가는 대로 움직이는 템포와 악상.
커다란 퍼즐을 함께 맞추는 것처럼, 서툰 음악이 조금씩 들어 줄만 해졌다.
세계적인 마에스트로를 대신해 내가 지휘를 하다 보니 아이들의 집중이 떨어졌다.
그냥 이대로 연습을 진행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너네 이 곡의 주인공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음을 불사하는 사랑을 하는 거 다들 알지?”
사랑 얘기가 나오자 멍하던 애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근데 얘네들 지금 우리보다 어린 나이였다?”
“정말?”
대부분 작품의 줄거리만 알고 있었고 디테일한 내용은 몰랐던 듯 친구들의 눈이 커졌다.
친구들의 반응을 살피며 난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한 기간이 얼마 동안인지 아는 사람?”
“1년?”
“6개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단 5일이었어.”
“말도 안 돼.”
“5일 동안 한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고?”
“찐 사랑은 그런 것인가?”
“그래도 5일은 너무 심한 거 아냐?”
친구들의 반응이 격해졌다.
더러는 금사빠들의 운명적인 만남이라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었다.
“생각해봐. 단 5일 동안의 불같은 사랑. 어떤 사랑을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지 말이야.”
하지만,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자 다들 진중해졌다.
내 물음의 의도를 파악하고 저마다 답을 낸 친구들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까보다는 연주에 좀 더 몰입하는 느낌이었다.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
그렇게 문화예고 2학년 오케스트라의 연습이 다시 시작되었다.
선율이 흐르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불같은 사랑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불같은 사랑의 끝.
그들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 * *
마에스트로 석현명은 갑자기 문화예고 오케스트라 수업을 수락한 바람에 안식년의 평화가 복잡해졌다.
너무 빨리 진행된 일.
하지만 친구인 황선욱 교장의 사정을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너무 중요한 일을 앞두고 그만둔 전임 지휘자.
촉박하게 뽑기에는 중대한 자리.
하지만 시간은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제안을 수락한 데 가장 큰 이유는 문주원 학생이었다.
먼저 잡힌 스케줄 때문에 오늘 문화예고 수업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대학교에서 초청한 마스터 클래스 역시 오늘이었으니까.
정확히 몇 시에 끝날지 몰라 오늘 수업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 터였다.
하지만 예상한 것보다 일찍 한국대에서의 일정이 끝났다.
시간을 보던 석현명은 생각했다.
‘5, 6, 7교시라고 했지? 지금 가면 한 시간은 가르칠 수 있겠네.’
석현명은 운전대의 방향을 문화예고로 돌렸다.
오늘 제대로 된 수업은 못하더라도 다음 주 수업을 위해 어떻게 연습하면 좋을지 가르쳐주기 위함이었다.
운전을 하던 중, 친구 황선욱 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통화가 연결되었다.
-나 지금 문화예고로 출발하려고.
-오늘은 시간이 안 된다며?
-가면 1교시는 수업할 수 있을 듯하네.
-그럼 좋지. 학생들 오늘은 악기별로 파트 연습하라고 했거든.
-그럼 수업 장소가 어딘지 나한테 문자 남겨 주게나.
-수업 끝나고 교장실 들렀다 가는 게 어때?
-오늘은 안될 것 같네. 다음 주 수업 끝나고 들르도록 하지.
그렇게 바삐 움직여 도착한 문화예고.
띠리릭.
방금 도착한 문자 메세지에서 수업 장소를 확인했다.
그리곤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