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71)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71화(71/250)
거의 모든 솔로 악기 연주자들이 협연자 오디션에 도전한 만큼 꽤나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었다.
처음 오디션을 보는 학생은 첼로 수석인 표예은이었다.
긴장을 잔뜩 한 채 반주자와 함께 들어온 표예은은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다.
자그마한 체구의 굉장히 긴장한 듯 보였던 학생.
보통의 첼로보다 다소 작은 사이즈의 악기를 사용하는 학생이었다.
석현명 지휘자는 표예은의 연주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저렇게 떠는 학생이 협연을?’
하지만 연주가 시작되자 표예은의 얼굴에선 긴장이 사라졌다.
자신의 몸보다 커다란 첼로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학생.
첼로의 소리는 따뜻했고 풍부한 저음의 소리가 매력적이었다.
표예은의 연주를 보던 석현명은 생각했다.
‘이 학생, 아직 협연은 무리지만 발전 가능성이 다분히 있어 보이는군. 작은 악기로 이 정도 소리를 내는 것도 대단한데? 아주 섬세한 감정 표현이야.’
그 순간 실기교사 한 명이 돌발 상황을 연출했지만 표예은은 본인의 연주에 심취해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곤 완성도 있게 무대를 마무리했다.
다음 참가자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학생의 오디션 곡목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 장조 op 35였다.
‘이제 시작이로군. 바이올린 15명 정도가 이 곡으로 오디션을 보던데.’
평범한 연주가 흘러가던 중.
선생님 한 명이 일부러 재채기를 크게 했다.
화들짝 놀란 학생은 순간 바이올린 연주를 중단해 버렸다.
하지만 피아노 반주자는 연주를 중단하지 않았다.
피아노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어쩔 줄 모르고 미세하게 몸을 떠는 학생.
학생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당황하며 심사를 하는 선생님들을 쳐다보았다.
학생의 아랫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학생을 보며, 마에스트로 석현명은 피아노 반주자의 연주를 중단시켰다.
그리곤 울먹거리는 학생에게 말했다.
“협연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중간에 연주를 멈춰서는 안 되네. 하지만 만에 하나 멈췄다면 바로 다시 시작해야지 않겠나?”
“죄, 죄송합니다. 마에스트로.”
“나한테 죄송할 일은 없지. 이번 일을 기회로 다음에 잘하면 되는 거라네.”
“감사합니다. 마에스트로.”
학생은 너무 속상했는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속상해서 우는 것 역시 나쁜 건 아니지. 나이가 들면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에 급급하거든. 지금 학생의 속상한 마음을 꼭 기억하게.”
학생은 고개를 끄덕인 채 뒷걸음치듯이 오디션 장소를 빠져나갔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 뒤로도 호른, 피아노, 플롯, 오보에,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비올라 등의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학생들의 오디션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수시로 학생들에게 돌발 상황이 던져졌고.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대부분의 콩쿠르나 실기 시험에서 연주자는 초반의 2~3분가량의 연주를 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
시간관계상 앞부분만 듣다가 어느 정도 연주자의 역량이 파악되면 심사위원들이 종을 쳐서 그들의 연주를 중단시키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번 협연자 오디션에선, 드물게 몇몇 학생에게는 초반의 2~3분가량의 연주 대신 후반부의 연주를 하게 했다.
그런 요구를 받은 학생들은 굉장히 당황했다.
“마에스트로. 그 부분은 제가 암보가 안 돼 있어서요. 앞부분 하면 안 될까요?”
“분명 한 악장 전체가 오디션 범위였을 텐데?”
“그, 그거야 그렇지만요. 시간이 부족해서 앞부분이라도 제대로 연습해서 연주하고 싶었어요. 다른 콩쿠르도 모두 앞부분만 연주하잖아요?”
“핑계가 좋군. 협연자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초반 3분만 연습했다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고개를 숙인 학생은 본인의 발끝만 쳐다볼 뿐이었다.
“자네라면 앞에 3~4분만 연주할 수 있는 협연자를 뽑겠나?”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숙연한 분위기에서 협연자 오디션이 지속되었다.
학생들의 멘탈은 굉장히 약했고, 거듭되는 실수에 심사를 보는 선생님들은 지쳐만 갔다.
협연자가 되기 위해 학생들은 훌륭한 음악성은 물론 강한 정신력까지 갖춰야 하는 법.
이제는 거의 협연자 오디션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바이올린 협연자 중 마지막 순서로 문주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뒤따라 들어온 반주자 선생님이 피아노에 앉았다.
* * *
협연자 오디션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졌던 공기.
상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장시간 심사로 인해 지쳐 보이는 선생님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심한 피로감에 눈마저 퀭해 보였다.
그나마 황선욱 교장 쌤과 마에스트로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다들 지쳐 보이시는데 제대로 끝내고 가야겠는걸?’
반주자 선생님이 피아노에 앉자 나는 간단히 내 소개를 하며 인사했다.
“2학년 바이올린 전공 문주원 입니다. 오늘 오디션 곡목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 장조 op 35번입니다.”
“그래, 준비되면 시작하도록 하지.”
나는 반주자 선생님이 쳐주는 A 소리에 맞춰 튜닝을 했다.
여러 차례 겹음을 그어 음정을 맞춘 뒤.
반주자 선생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차이코프스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 불가능한 작품이라는 오명을 쓰고 세상에 나올 수 없었던 작품.
그런 작품이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협주곡이 되기까지 무수한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나의 어릴 적 동경의 대상이었던 곡이자.
동시에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었던 멜로디.
아무도 모를 나의 과거를 뒤로 하고 나는 활을 들어 올렸다.
희망으로 가득 찼던 어린 시절의 한때를 회상하듯.
따뜻하고 깊이 있는 바이올린의 저음이 울려 퍼졌다.
구부러지듯 휘어지는 아름다운 멜로디는 파도를 타고 노니는 한 마리의 돌고래처럼.
나의 지난날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현의 생생한 감촉.
유년 시절의 꿈을 이루고.
음악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순간이었다.
* * *
마지막 바이올린 협연자 오디션대상자가 문주원임을 알고, 심사하는 선생님들은 여러 가지 돌발 상황을 준비한 상태였다.
음악적 역량으로는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문주원이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협연자로 적합한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지휘봉을 떨어뜨리기로 하지.”
“저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겠어요.”
“저는 재채기를 연거푸 세 번 하겠습니다.”
“후반부 연주를 시켜봐야겠네.”
“아예 1악장 전체를 연주시키면 어떨까요?”
“20분은 될 텐데 그건 곤란하죠. 하루 종일 오디션 심사하느라 지쳤는걸요.”
선생님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각자의 역할을 정했다.
모든 선생님의 발언을 가만히 듣고 있던 황선욱 교장이 기가 막힌 듯 웃었다.
“아니 어째. 주원이한테만 이렇게 하나? 원, 무슨 올림픽 장애물 경기도 아니고.”
“하하하. 좀 심했나? 보통 녀석이 아니라서요.”
황선욱 교장은 한 선생님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온갖 경우는 다 집어넣고 괴롭히면 연주에 집중할 수 있을까? 철저한 검증도 좋지만 이건 너무 과하지 않나.”
“그런가요?”
“조금 심했나요?”
“그래도 문주원인데 좀 더 철저히 검증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다퉈 의견을 냈던 선생님들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마에스트로 석현명이 호탕하게 웃었다.
“올림픽 장애물 경기 그거 표현 한번 좋네. 이렇게 해도 무사히 연주한다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끄떡없을 거 아닌가?”
그러자 한 실기교사가 황당한 경험을 토로했다.
“협연자가 연주하는데 앞자리에 앉은 관객이 코 골고 재채기하고 소음 내는 건 정말 다반사에요.”
“애들은 그런 경험이 전무 하니까. 의미 없는 테스트는 아니에요.”
“맞아요. 그게 한 번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암보한 악보까지도 잊어버릴 수 있다고요. 협연자에게 강한 정신력은 필수 요소예요.”
“게다가 오케스트라 협연은 정말 드물게 얻을 수 있는 기회잖아요. 철저하게 검증하는 게 맞다고 봐요.”
선생님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가운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똑똑.
실기교사들은 하던 말을 멈췄다.
그리곤 반주자와 걸어들어온 문주원을 바라보았다.
인사를 한 문주원이 조율을 한 뒤, 반주자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실기교사들과 마에스트로 석현명은 각자 단계에 맞춘 돌발 상황을 생각하며.
또 음악적 완성도를 체크하는 심사지를 살피며 심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문주원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 1악장.
Allegro moderato.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었다.
반주자의 타건과 동시에 문주원은 이미 음악에 몰입한 듯 보였다.
이어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G 현의 울림.
매혹적인 첫 음색은 앞선 학생들의 연주와는 차원이 달랐다.
‘너무 고혹적이군.’
애수에 찬 아름다운 선율이 부드럽고 질감 있게 그려지는 듯하더니.
궂은 날씨를 뚫고 독수리가 하늘 높이 비상하듯이 힘찬 선율이 뿜어져 나왔다.
포지션을 이동하며 겹음을 그을 때마다 느껴지는 거친 바이올린의 음색에 온몸이 짜릿할 정도였다.
거대한 물결이 파도가 되어 밀려오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처럼 신들린듯한 속주가 이어졌다.
강추위도 녹여버릴 듯한 뜨거운 열정이 얼어붙은 심장마저 녹일 기세였다.
고난도의 테크닉을 선보이는 곳으로 음악이 흐를수록.
문주원의 연주는 더욱 대범해지고 표정은 여유로워졌다.
‘이럴 수가.’
소리에 숨결을 불어넣은 마법사처럼.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
공간을 채운 모든 교사들은 문주원의 음악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선율을 덧입힐수록 음악의 농도는 진해졌다.
보이지 않는 음악의 형상이 손에 잡힐 듯 말 듯.
문주원의 바이올린은 모두의 마음을 앗아가 버렸다.
기교의 문제를 논할 이유도.
감정의 문제를 거론할 필요도 없었다.
‘실로 음악을 들으면서 압도당해 본 게 얼마 만인가? 그저 가슴이 벅차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게 얼마 만이지.’
석현명은 피아노를 치는 반주자 선생을 일어나게 하고 당장이라도 자신이 대신 연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문주원은 어떤 선생을 사사한 거지? 고전과 낭만을 넘나드는 이 음악의 정체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요정이 장난을 치듯 사랑스러운 멜로디가 이어지는 듯하더니.
날카로운 고음으로 향해 가는 음은 카덴차로 이어졌다.
지휘봉을 떨어뜨리기로 했던 마에스트로도.
핸드폰 카메라의 소음을 만들기로 했던 실기교사도.
재채기를 연거푸 하겠다던 교사도.
모두 자신의 역할을 잊었다.
그 순간 모두는 청중 그 자체였다.
1악장이 끝나는 19분 동안 그 누구도 종을 치지 않았다.
연주를 마친 문주원이 활을 내리는 순간.
모두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하아.”
“후우.”
심사를 맡은 교사들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문주원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실기교사들과 황선욱 교장 그리고 마에스트로 석현명 모두의 심사표는 백지 상태였다.
넋 놓고 연주를 감상한 그들은 그제야 허둥지둥 심사표에 만점을 표시했다.
침묵을 끊고 마에스트로 석현명이 말했다.
“협연자는 정해진 것 같군.”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