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86)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86화(86/250)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의 파이널 무대가 열리는 액트 시티의 그랜드홀에 도착한 크리스토퍼 김.
아침부터 액트 시티 주변은 활기가 넘쳤다.
음악의 도시답게 곳곳에 나부끼는 깃발과 거리의 연주자들.
크리스토퍼는 오늘 있을 파이널 무대를 모두 직관할 예정이었다.
줄리어드 음대의 괴짜 교수 크리스토퍼 김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랜드 홀의 중간 좌석에 앉은 크리스토퍼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곡목과 순서를 살펴보고 있었다.
‘장웨이가 첫 번째, 미사키가 두 번째로군. 어디 한 번 천재라는 그들의 실력 좀 들어볼까?’
줄리어드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보면 전 세계 수많은 천재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줄리어드 예비학교부터 시작해 줄리어드에 입학한다.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음대의 교수인 크리스토퍼 역시 그 루트를 밟아왔다.
짧게 불꽃처럼 튀다가 사그라드는 천재도 수없이 많이 봐왔다.
물론 천재성이 성인이 되어서도 유지되는 경우도 드문드문 있다.
그리고 그 중 또 극히 일부만 거장의 길을 걷게 된다.
‘장웨이와 미사키는 어느 쪽일까?’
며칠 동안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정신이 멀쩡하지 않았는데 오늘에서야 숙취가 해소된 크리스토퍼였다.
드디어 장웨이가 협연자로 나서는 상하이 예술 고등학교가 무대 위에 올랐다.
실시간으로 스트리밍을 하고 있는지 곳곳에 카메라들이 무대를 향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가 조율을 끝내고 협연자와 지휘자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눈, 코, 입 체격까지 다 큰 장웨이의 첫인상은 화려해 보였다.
성큼성큼 걸어 나오면서 관중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모습에서 그의 성격이 짐작되었다.
쇼맨십이 강해 보인다고나 할까?
중국인 관중으로부터 열띤 박수를 받은 그들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과장된 제스처와 함께 시작된 그의 연주는 보이는 것만큼이나 역동적이었다.
‘소문이 과장된 것이 아니었군. 지금 이 나이에 라흐마니노프를 이 정도로 치다니.’
라흐마니노프의 서정성 짙은 특유의 감성이 어린 친구의 손끝에서 매력적으로 펼쳐졌다.
‘테크닉은 물론 자신감이 엄청나군.’
상하이 예술 고등학교의 연주가 끝나고 다음은 도쿄 예술 고등학교의 순서였다.
‘첫 번째 연주부터 이렇다니 흥미진진하네.’
일본이 낳은 세기의 신동이라는 타나카 미사키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하는 무대가 곧 펼쳐질 예정이었다.
줄리어드 음대 교수 크리스토퍼는 도쿄 예술 고등학교의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라. 학생 오케스트라가 감당할 수 있으려나?’
도쿄 예술 고등학교 오케스트라가 착석하고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미사키와 지휘자가 무대에 등장했다.
파이널 무대를 직관하러 온 대다수의 관중이 일본인이었기에 호응은 실로 대단했다.
오케스트라의 기나긴 서주 후에 시작된 바이올린 솔로.
거침없는 그녀의 연주는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했다.
음악에 몰입해 고음을 쏟아내는 그녀의 연주는 노련함 그 자체였다.
‘고등학생의 연주라고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군.’
고난도의 테크닉을 구사해야 하는 파가니니의 곡인 만큼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그녀의 손가락은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음악에 몰입한 그녀가 순간순간 템포가 빨라지는 순간이 몇 차례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완성도에선 수준급이었다.
고등학생만으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했을 때 이건 실로 대단한 연주였다.
‘아주 치열한 접전이 되겠어.’
미사키의 무대에 이어 교토 오케스트라와 오사카 오케스트라의 무대가 연이어 펼쳐졌다.
미사키를 환호할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일본 관중들은 열띤 응원을 했다.
드디어 마지막 한국의 문화예술 고등학교 오케스트라의 연주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이군.’
교복을 입은 문화예고 학생들이 악기를 들고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학생들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으며 이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좋을 때야. 이 친구들은 정말 이 상황이 즐거운 듯 보이네.’
장웨이나 미사키처럼 무대 경험이 많은 협연자들은 본래 당당한 스타일이 많다.
어린 나이에 세계에서 이름을 떨칠 연주자가 되기에 무대에서 당당함은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그 누구도 솔리스트가 무대에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을 테니까.
반면 예고 오케스트라 학생들의 경우, 국제 무대는 처음인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표정에서 긴장이 엿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문화예고 학생들은 달랐다.
축제를 즐기기라도 하듯, 자신들의 연주를 바로 보여주고 싶기라도 하듯.
모두 들뜨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순수한 그들의 향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5번.
다른 학생 오케스트라의 선곡에 비해 난이도가 낮은 곡이기에 어쩌면 불리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그 간결성 때문에 많은 연주자들이 어려워하곤 한다.
연주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음표가 수십 배나 많은 곡들을 오히려 쉽게 생각하는 것이다.
현란한 연주는 생각 대신 그저 감탄하느라 시간이 흐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서 연주자들이 보통 콩쿠르에 출전할 때는 빠른 악장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들의 선곡은 그런 면에서 새로우면서 불리해 보였다.
특히나 독주 파트의 부분이 굉장히 간결한 것이 특징인데 이것이 다른 참가자들과 난이도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모짜르트가 이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에 만들었던 곡이지.’
드디어 학생들의 튜닝이 끝나고 협연자와 지휘자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크리스토퍼는 눈을 비볐다.
‘어? 낯이 익은데?’
어디선가 본듯한 협연자의 얼굴.
크리스토퍼는 며칠 전 자신이 주사를 부렸던 밤을 기억해냈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던 순간도 기억해냈다.
‘그때, 내가 악담을 퍼부었던 학생이로군. 이런. 최악의 모차르트 연주였었는데 말이지.’
순간 크리스토퍼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또 기대감이 사라졌다.
아무리 술에 취한 상태였지만 그의 음색만은 확실히 기억났다.
하지만 학생의 표정은 오케스트라 학생들의 표정만큼 밝고 당당했다.
장내가 고요해지고 드디어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Mozart Violin Concerto A Major No 5, K219.
첫 음부터 오케스트라와 협연자의 연주가 같이 시작되었다.
명랑하며 순수한 그들의 활기찬 연주가 빛났다.
곧이어 흐르는 솔로 바이올린의 감미로운 아다지오.
협연자인 문주원의 바이올린 음색은 며칠 전 마주한 답답하고 복잡한 느낌이 아니었다.
그의 연주는 단순하면서도 우아했으며 세련되었다.
허세를 부리지 않는 모차르트의 음악은 연주자의 진면모를 드러내게 한다.
그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딱 알맞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자신의 색깔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과 움직임이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기교 없이 순수한 음악이 이렇게 화려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마치 파가니니가 모차르트를 마주한 느낌이네.’
며칠 새 어떻게 이런 변화가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통통 튕기며 생기 넘치는 밝은 음악이 모차르트의 세계로 청중들을 인도했다.
담백한 선율은 더없이 순수했으며 카덴차를 연주하는 부분에선 파가니니처럼 비르투오소의 면모를 보였다.
순수와 열정을 넘나드는 그의 해석은 지나치지 않으며 모자람이 없는 그런 완벽한 연주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케스트라와 독주자의 완벽한 조화와 균형이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돋보였다.
그들은 서로의 선율에 선율을 쌓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음악은 그들의 표정처럼 생기와 활력이 넘쳤다.
무대 위에 마치 수십 명의 모차르트가 악기를 연주하는 듯했다.
‘젊은 감각이 넘치면서 풍부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보석 같은 연주로군.’
크리스토퍼는 문화예고 오케스트라 학생들의 연주를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협연을 하는 문주원이라는 학생이 궁금했다.
세기의 천재라던 장웨이랑 미사키보다도 더…….
그렇게 파이널에 진출한 다섯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모두 끝이 났다.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의 진행자가 모든 참가자들을 향해 결과 발표 시간을 안내했다.
“두 시간 후, 이곳 액트 시티 그랜드 홀에서 시상식이 있겠습니다. 참여하신 모든 연주자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참가자들의 무대가 모두 끝난 뒤, 심사위원들은 최종 결정을 위해 심사숙고를 시작했다.
그들은 1, 2, 3위를 결정해야 했으며 단 한 명의 최고의 협연자를 가려내야 했다.
취합된 채점 결과는 명확했다.
대회의 심사위원장인 도로시 딜레이는 몇 번이나 채점 결과를 확인했다.
“다시 논의할 필요도 없이 결과가 확실하네요.”
도로시는 다른 심사위원들에게 결과를 전달하였다.
채점표를 받은 드미트리 바실리예프 교수가 탄식을 내뱉었다.
“다들 나랑 생각이 같았다니. 이거 치열해지겠는데요?”
드미트리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독일의 필립 슈나이더 교수가 물었다.
“뭐가 치열해진단 말입니까?”
“최고의 협연자 상을 타게 될 이 친구 말입니다. 이 학생을 다들 자기 학교에 데려가고 싶을 것 아닙니까?”
교수들은 본심을 들킨 듯 서로 쳐다보고 웃을 뿐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에드워드 진코스키 교수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 학생의 음악을 듣고 난 깨달았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로 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의 음색에서 저는 모차르트를 느꼈습니다.”
그러자 프랑스의 피에르 블레즈 교수가 말했다.
“그럴 리가요. 나는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그의 음색에서 파가니니를 느꼈습니다. 그는 위대한 비르투오소가 될 인물이에요. 파리 국립 음악원으로 와야 합니다.”
주인공이 없는 자리에서 그를 차지하기 위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시상식의 순간이 다가왔다.
* * *
파이널 무대가 끝난 후.
기쁨과 아쉬움이 공존했다.
제법 마음에 드는 모차르트를 연주한 것이 기뻤고, 무대가 끝난 것이 아쉬웠다.
좀 더, 좀 더 연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수백 명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그들이 몰입하는 에너지를 느끼며 수백 년 전 모차르트를 만나는 순간.
그 순간이 너무 황홀했다.
문화예고 오케스트라와 합을 맞추며 선율을 쌓아갈 때 느꼈던 전율.
마에스트로 석현명의 손끝에서 움직이는 지휘봉에 흐름을 맡기며.
나는 순수한 음악의 결정체를 재현해 냈다.
반짝반짝 빛났던 모차르트의 악상.
시대를 초월한 천재의 내면을 들여다보듯이.
나는 그의 음악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
무대를 끝낸 후, 벅차오르는 감정에 코끝이 찡해졌다.
친구들과 함께 이런 완성도 높은 무대를 연주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나는 무대 뒤 대기실에 가서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평소엔 하지 못했을 낯간지러운 말들.
대단한 말은 아니었지만 짧은 진심을 전했다.
“고마워, 너희들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좋은 음악 완성하지 못했을 거야. 같이 연주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
“문주원, 닭살 돋게 왜 그래. 나도 엄청 좋았다고.”
“나도 진짜 오늘 행복했어.”
“무대 위에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주한 건 평생 처음이었어.”
친구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가 서로 다른 음악이었지만.
이 순간에는 비로소 우리 모두가 하나의 음악이 되어 있다는 것을.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