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90)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90화(90/250)
시작은 고요했다.
Lento. 느리게.
장웨이가 느릿느릿 건반을 타건했다.
그랜드 피아노의 소프트페달을 밟았는지 아주 여리고도 여린 선율이었다.
고요한 페르마타.
그리고 점점 느려지며 리타르단도.
숨죽이듯 작았던 앞의 멜로디와 대비되게 갑자기 휘몰아치는 음표의 바다.
강렬하게 하강하는 음표의 향연 속에 청중들은 그저 침을 꼴깍 삼킬 뿐이었다.
몰아치는 오른손의 하강에도 왼손의 주제 선율은 또렷하고 선명했다.
바삐 움직이는 오른손을 신경 쓰다 흔히들 소홀히 하는 왼손.
장웨이의 길고 커다란 손은 한순간도 왼손의 멜로디를 놓치지 않았다.
끊임없는 아르페지오가 하강하고 상승하며 숨 가쁘게 매서운 겨울바람을 쏟아냈다.
더더더.
바람은 그칠 줄 모르고 폭풍의 소용돌이로 청중을 몰아붙였다.
‘역시, 장웨이의 명성은 다 이유가 있었네.’
순식간에 겨울바람이 호텔 로비 안을 휩쓸고 지나가 버렸다.
장웨이의 자신감 넘치는 연주가 끝나자 카페 안과 로비를 가득 채운 학생, 손님들은 모두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흡사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가 다시 시작된 것 같았다.
커다란 미소와 함께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난 장웨이.
짧은 영어로 다음 순서를 소개했다.
“이제 문주원 군의 연주가 있겠습니다.”
석영진 대표는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KM 클래식의 콘텐츠였으면 수백 명의 사람 정도는 더 클래식의 팬이 되었을 텐데.
그 생각에 조금 아쉬운 석영진이었다.
석영진은 영상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진 몰라도 일단 다 핸드폰 영상에 담아두고 있었다.
혹시라도 장웨이가 허락해준다면 채널에 올릴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그때, 같은 테이블에 앉은 문화예고 학생들이 동요했다.
“문주원 잘 하겠지?”
“당연하지. 문주원 바이올린 소리보다 더 좋은 사람 들어본 적 없어.”
“맞아, 말로 표현도 어렵지. 이런 광경을 직관하다니. 떨려.”
“근데 무슨 곡 연주할까?”
석영진 대표 역시 문주원이 어떤 곡을 연주할지 궁금했다.
한편 문화예고 학생들보단 걱정되기도 했다.
누구보다 이번 음악제에 많은 신경을 쓰고 또 파이널 협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걸 알고 있는 석영진이었기에.
마에스트로 석현명에게 문주원이 모차르트의 곡을 연습하면서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석영진이었다.
‘부담없이 즐길 수 있길.’
그저 진심을 담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석영진이었다.
문주원이 피아노 앞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눈빛은 밝게 빛났고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잠도 잘 못 잤다고 들었는데 피곤한 기색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먹이를 눈앞에 둔 맹수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한 그런 생기있는 눈빛이었다.
문주원이 튜닝을 시작하자 로비 카페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문주원은 당당하게 한국말로 말했다.
“제가 연주할 곡은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입니다.”
“와우. 지고이네르바이젠.”
“무반주로 괜찮겠어?”
문화예고 학생들의 걱정 어린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자 문주원이 씨익 웃었다.
“걱정하지 마. 나 혼자서도 충분해.”
“오오. 역시.”
“문주원, 파이팅.”
문화예고 학생들의 열띤 응원을 받으며 문주원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스페인의 작곡가 사라사테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런 그가 작곡했던 지고이네르바이젠.
‘집시의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곡이기에 사라사테가 살아있을 당시 아무도 완전히 연주하지 못했다던 곡.
자유분방한 집시의 몸짓이 문주원의 현을 타고 흘러나왔다.
도입부의 애잔한 선율.
풍부한 비브라토로 G현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불꽃이 튄다.
눈앞에서 정열적인 집시가 춤을 추듯이.
문주원의 손가락이 지판 위를 춤추기 시작했다.
긴박감이 넘치며 피가 끓기 시작했다.
변화무쌍한 기교는 사람들의 넋을 놓게 했고.
깊이 있는 음색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들어도 들어도 듣고 싶은 갈증을 느끼며 문주원이 부리는 마법의 세계로 모두 빠져들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석영진은 다시 한번 느꼈다.
매번 들을 때마다 느꼈던 것이지만 오늘의 연주는 그때보다도 더 성장해있었다.
점점 각성하는 초월적 존재처럼.
그의 연주에는 청중의 감성을 건드리는 어마어마한 흡입력이 있었다.
한 음악가의 일생일대의 연주를 듣는 것처럼.
자리를 차지한 모든 이들의 입이 벌린 채 다물지 않고 있었다.
한 번 연주를 보면 당대의 거장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파가니니.
파가니니의 향기가 문주원에게 다시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집시의 노래에 애수가 짙어지고.
4개의 현을 넘나들며 피치카토(현을 손가락으로 튕겨 연주하는 주법)와 레가토를 변화무쌍하게 이어가는 문주원의 연주.
마지막 피치카토를 끝으로 그 놀라운 연주가 끝이 났다.
호텔 로비 전체가 숨죽은 듯 고요했다.
어느새 호텔 로비 전체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기립한 채 쉬지 않고 박수를 치는 이들.
사람들이 연호하기 시작했다.
“앵콜.”
“앵콜.”
사람들의 흥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고, 박수는 한동안 멈춰지지 않았다.
문주원이 거듭 인사를 하고 악기를 케이스에 집어넣는 순간까지.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석영진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 모습을 다 핸드폰 영상에 담았다.
* * *
연주하는 내내 느꼈던 자유로움.
나는 마치 집시가 되어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나를 위해 마련된 연주회도 아니었고 공들여 준비한 무대도 아니었지만.
나는 자유로운 집시처럼 거리낌이 없었다.
네 개의 현을 넘나들며 저음과 고음을 춤추듯이 노래했다.
현을 뜯으며 활을 움직이며 나의 한계를 시험했다.
원래라면 피아노가 같이 연주했어야 했지만, 지금은 나 혼자뿐.
‘관객들이 피아노의 공백 따윈 느끼지도 못하게 해주겠어.’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우수에 찬 연주로 관객들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렇게 나는 집시가 되어 애수에 가득 찬 선율을 노래했다.
마지막 피치카토를 끝으로 지고이네르바이젠 연주를 마쳤다.
사람들의 열띤 환호.
그치지 않는 박수 소리.
온몸으로 받은 감동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눈빛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음악은 함께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클래식이 수백 년간 이어져 올 수 있었겠지.
때로는 외롭고 힘들어도 언제나 나를 무대로 이끌었던 원동력.
내 음악을 듣고 공감해주는 사람들.
호텔 로비에서 갑자기 이뤄진 무대라도 좋았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았다.
옷을 차려입고 점잔 빼며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더 좋았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내는 이들.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 좋았다.
그리고 나의 음악은 그들의 그런 마음을 이끌어 냈다.
이번 음악제를 통해 나는 또 한번 성장했다.
장웨이와 함께 환호해주는 사람들을 향해 인사했다.
호텔 로비는 또 다른 클래식 축제의 향연이 펼쳐지는 듯했다.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에 장웨이와 함께 앉았다.
반나절을 채 함께 보내지 않았지만 그새 장웨이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윤하준과 표예은 그리고 에밀리와 함께 하마마츠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음악으로 가득 찬 하루였다.
우연히 만난 장웨이와도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유쾌한 친구.
자신감이 가득한 친구.
‘언젠간 장웨이와 만날 날이 있겠지.’
녀석도 내 마음과 같았나 보다.
“문주원, 오늘 저녁도 잘 먹었고 연주도 좋았어. 언젠가 또 볼 수 있길 바란다.”
“장웨이, 그 때는 네가 밥 사라.”
마지막까지도 번역기를 이용해야 하는 우리의 대화였지만.
음악에 관해서 만큼은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나와 동갑인 친구 중에 이렇게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기쁜 일이다.
저쪽 테이블에 핸드폰을 들고 앉아있는 석영진 대표님이 보였다.
나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장웨이에게 석영진 대표님이 다가갔다.
‘뭐지? 대표님이랑 장웨이랑 아는 사이인가?’
그리곤 둘이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석영진 대표의 얼굴에 다양한 표정 변화가 생겼다.
장웨이가 우리를 돌아보며 인사를 하고 가고, 그 빈자리를 석영진 대표가 채웠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러게요.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라서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입가엔 미소를 가득 담았다.
“오늘 영상 두 개가 KM 클래식 채널에 업로드될 겁니다.”
“왜 두 개예요?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 영상 말고 또 뭐가 있나요?”
“지금 장웨이한테 허락 받았습니다. 호텔 로비 카페에서 연주한 영상 올려도 된다고요.”
“좀 전에 연주한 영상이요? 아!”
대표님 일 처리 한번 빠르시네.
석영진 대표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정말 빅뉴스가 하나 있는데 그건 내일 한국에 돌아가서 얘기하도록 하죠.”
“좋아요. 오늘은 피곤해서 이제 방에 가면 곯아떨어질 것 같아요. 정말 긴긴 하루였거든요.”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요. 좀 전에 연주도 환상적이었고요.”
아까 인사를 하고 떠났던 장웨이는 중국 팬들에게 붙잡혀 몇 발자국 못 간 모양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연주를 감상했던 사람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며 몰려들었다.
그들은 내 이름을 묻고 또 물었다.
나는 내 이름도 알려주고 친절하게 KM 클래식 채널 주소도 말해 주었다.
오늘 연주 영상이 그곳에 업로드 될 거란 사실과 함께 말이다.
조금 후, 윤하준과 방에 돌아온 나는 씻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로 뛰어들어 잠이 들어버렸다.
어제 잠을 거의 못 잔 탓도 있었고, 긴장이 모두 풀어졌기 때문이었다.
윤하준이 뭐라고 뭐라고 잔소리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가뿐히 무시해주었다.
잠을 이루지 못했던 전날과는 달리 나는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았다.
부스스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아침.
밤새 문화예고 오케스트라 단톡방은 폭발한 상태였다.
안 읽은 메시지가 얼마나 많은지 읽을 엄두가 안 날 정도였다.
‘도대체 이게 몇 개야?’
그냥 읽지 말고 넘겨버릴까?
하지만 친구들의 대화 속 주인공은 바로 나와 장웨이였다.
-문주원! 호텔 로비에서 장웨이랑 연주한 거 KM 클래식 채널에 올라왔어.
-벌써? 그거 그럼 세팅된 상태로 연주한 거였어?
-섭외력 무엇? 세팅이건 컨셉이건 암튼 대단해.
-장웨이 겨울바람도 대단했지만 역시 문주원 지고이네르바이젠 완전 소름!
그리고 톡 방에 남겨진 링크.
바로 어제 KM 클래식 채널에 올라간 두 개의 영상이었다.
친구들이 걸어준 링크를 클릭했다.
첫 영상은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 시상식과 학생들의 비하인드 인터뷰가 담겨있었다.
영상에는 문화예고 오케스트라가 3위에 입상하고 환호하는 모습이 가감 없이 펼쳐졌다.
그 모습이 얼마나 기쁜지 다시 보는 나에게도 감동이 전해졌다.
영상을 본 구독자들의 반응도 칭찬 일색이었다.
구독자들은 문화예고가 역사상 처음으로 파이널에 진출하고 3위로 입상한 사실을 함께 축하해 주었다.
-문화예고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 3위 입상 축하해!
-문주원 최고의 협연자 상 축하해!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