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높고 견고한 건물이 많은 왕궁, 건물에 비해 사람이 적어 언제나 한적한 그곳이 지금은 분주하다.
“저쪽으로 갔다!”
철컹철컹철컹.
무거운 갑옷 이음새가 스치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린다. 기사들은 물론 중무장한 병사들도 창을 들고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다.
세실리아는 그들을 피해 달리며 말했다.
“각개격파. 넌 쟤랑 저기로 들어가.”
“그, 알아따.”
발튼은 목소리를 낮추며 좁은 틈으로 에런을 먼저 집어넣고 뒤이어 들어갔다. 세실리아는 추적자들에게 조금 더 노출되었다가 반대편으로 달렸다.
병사 다섯과 기사 둘이 세실리아를 쫓았다. 그녀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3층 건물을 타고 올라갔다.
“뭐 해! 쏴!”
“옙!”
병사들 중에 활을 가진 자들이 뒤늦게 화살을 쏘아 댔지만 세실리아는 금세 창문 안으로 들어갔다.
기사들은 거침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세실리아는 밖을 살피다가 다시금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다른 건물로 넘어갔다.
마치 고양이 같은 민첩함에 병사들은 놀람을 금치 못하며 쫓았다.
“무, 무기고로 넘어간다!”
병사들이 무기고 뒷길로 들어섰을 때, 가느다란 검이 가장 앞에 선 병사의 미간에 꽂혔다.
푹.
세실리아는 이미 생기가 빠져나가는 병사의 배를 발로 차고 세검을 뽑으면서 뒤에 있는 병사를 넘어트렸다.
쉭.
바로 창이 뻗어 온다. 그녀는 옆의 벽을 타고 올라가 창을 피하며 세검을 휘둘렀다.
검은 정확히 병사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공중에서 반바퀴 돌며 바닥에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동료의 시체에 깔려 있는 병사의 심장을 찌르고, 남은 두 명에게 쏜살같이 거리를 좁혀 목을 베었다.
털썩.
세실리아는 세검을 허공에 휘둘러 피를 털어 내고는 이제 막 다른 건물에서 나오고 있는 기사들에게 달려갔다.
같은 시각, 발튼은 세실리아를 쫓는 적들을 가만히 보다가 마지막 놈에게 손을 뻗었다.
콰직!
투구와 함께 머리가 으깨진다. 번쩍이는 플레이트갑옷을 입은 붉은달의 기사도 발튼의 괴력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그러나 각개격파 계획을 붉은달 기사단이 인지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병사들을 대부분 세실리아 쪽으로 보내고 기사들은 발튼과 정체불명의 침입자들을 찾아 나섰다.
발튼은 도주하다가 한두 명씩 처리하기를 반복했다.
에런은 발튼에게 손목을 잡혀 끌려가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헥, 헥, 헉, 젠장. 오늘 뭐 반란 예고라도 있었나?”
“반난? 몰라!”
“오크, 오크 씨. 오늘은 아니에요, 오늘은 아니야. 우리 나가자.”
발튼은 멈칫했다가 오른손에 든 도끼를 추켜올렸다.
콰앙!
동시에 묵직한 검이 내리찍혔다. 발튼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굽혀진 무릎을 펴며 검을 밀어내고 에런을 뒤로 보냈다.
“이게 누구야? 용케 살아 있었네?”
발튼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주변을 살폈다. 막다른 길이다. 정면 돌파밖에는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상대는 이를 염두에 두고 기습한 것이 분명했다.
제대로 싸울 생각을 하자 앞의 상대가 누군지 눈에 들어왔다. 전에 협회 본부에서의 지옥 같은 전투에서 마주쳤던 자, 척살자 라다프였다.
“반갑꾸나. 마팀 네놈 대가디 깨거 시펏는데…….”
발튼은 말끝을 흐렸다. 그 뒤로 기사 네 명이 더 온 것이었다. 그 모습에 라다프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이죽거렸다.
“꿈이 크구나, 그런데 여긴 왜 온 거지?”
발튼은 도끼를 강하게 움켜쥐고 앞으로 덤벼들며 소리쳤다.
“붕근다를 쓰더버디뎌고 와따!”
쾅!
라다프는 발튼의 힘을 가늠하기 위해 도끼를 정면으로 받았다. 그의 발이 한 뼘 밀리고 무릎이 접혔다. 손목까지 찌릿한 것을 느끼고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식한 것이……. 옆을 쳐라!”
“예! 조장!”
퓽!
발튼의 옆을 파고들려던 기사가 돌연 날아드는 화살에 고개를 돌렸다. 미간에 박힐 뻔한 것은 피했지만 콧잔등을 스쳤다.
치이이익.
“아악!”
작은 상처인 줄 알았으나 그곳을 중심으로 살이 천천히 썩어 들어갔다.
“사막 불뱀의 독이야. 환부 두 뼘 정도만 썩어 들어가는 게 특징인데, 넌 얼굴이 다 썩겠구나.”
발튼 뒤에서 들리는 농염한 목소리. 에런의 오른손에는 석궁이 들려 있었다.
“저년이!”
쾅!
얼굴이 천천히 썩고 있는 기사가 에런에게 다가가려다가 발튼의 발길질에 뒤로 날아갔다. 발튼은 전의를 다지며 으르렁거렸다.
“내가 주끼 전에는 저 디로 모깐다!”
“그래, 너부터 죽여 주마.”
라다프는 검을 두 손으로 쥐고 발튼에게 휘둘렀다. 다른 기사들도 에런의 화살을 견제하며 발튼의 빈틈을 찔렀다.
에런의 뜻밖의 활약과 발튼의 괴력이 더해져 붉은달 기사단원 두 명이 쓰러졌다. 그러나 발튼의 몸도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라다프는 발튼에 버금가는 힘과 기술로 생명력을 야금야금 빼앗았고, 발튼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특히 다리에는 하얀 뼈가 드러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젠, 젠장. 이놈을 세실리아에게 보낼 순 없는데…….’
“오래 버티는구나. 이제 끝을 내자.”
라다프는 기사 둘과 동시에 검을 찔러 왔다. 발튼은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무엇부터 방어해야 할지 몰랐다.
순간의 판단력으로 공격의 경중을 읽고 라다프의 검을 올려 쳤다. 다른 기사들의 검이 옆구리와 허벅지를 찔러 오지만 튕겨 낼 능력이 되지 않았다.
“흡.”
우지직-.
이를 악물며 고통을 버텨 낼 준비를 할 때, 돌연 그들의 팔이 뒤틀리는 것이 보였다.
“아악!”
“큽!”
기사들의 팔이 갑옷과 함께 마치 빨래 짜듯이 몇 바퀴나 돌아갔다.
득, 득, 드득, 득.
기사들의 얼굴이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일그러졌다가 당혹감에 물들었다.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목이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드득!
결국 둘의 목이 한 바퀴 돌아가며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졌다.
라다프는 그 불길한 기감을 느끼고 발튼과 거리를 벌리며 뒤로 검을 휘둘렀다.
터엉!
허공을 쳤는데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반탄력에 검이 튕겨 나갔다. 앞에는 후드를 깊게 눌러쓴 소년이 손을 뻗고 있었다.
“넌 뭐 하는…….”
그때 라다프의 세상이 빙글 돌았다.
콰앙!
어느새 발튼이 다가와 그의 발을 들어 올려 넘어트린 것이다. 발튼은 그를 내려다보며 도끼를 들어 올렸다.
“내 아페서 딴지타면 안 대지.”
콰직!
발튼의 도끼가 라다프의 머리통을 절반으로 쪼개었다. 그는 라다프의 가슴을 발로 밟고 도끼를 뽑고는 앞에 있는 소년을 보았다.
“헤딘…….”
“아, 안녕, 안녕하세요. 무, 무섭게 생긴 아저씨, 도와주기 성공. 이따가, 이따가 스승님한테 칭찬받을 일.”
헤딘의 말에 발튼은 눈을 부릅떴다. 그가 스승님이라고 칭하는 자는 한 명뿐이다.
* * *
잘그락잘그락.
움직일 때마다 돌기가 살을 파고든다. 발목이 시큰거리고 무겁다. 기동성을 완전히 잃었다.
“이제 끝이군. 도둑고양이도 다리가 잘리면 바닥을 기어야지.”
붉은달 기사단원 케빌은 자신의 조원들과 함께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그 앞에 선 세실리아의 발목에는 양쪽 끝에 무게추가 달린 밧줄이 엮여 있었다. 밧줄은 작은 돌기가 수십 개 박혀 있어 한 번 감기면 풀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었다.
‘제길…….’
슥.
세실리아는 세검을 앞으로 들고 왼발을 천천히 뒤로 뺐다. 그사이에도 돌기가 살을 파고들어 통증을 유발했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자 케빌이 이죽거렸다.
“근성은 좋군. 처리해.”
“예!”
케빌의 명령에 기사 둘이 달려들었다. 세실리아는 더 가까운 기사의 목에 세검을 뻗었다.
티딩-.
기사가 손쉽게 검을 쳐 냈으나 그 반탄력을 이용하여 옆구리 쪽 갑옷 틈새를 찔렀다. 그러나 그 안에도 내갑을 입었는지 검이 들어가지 않았다.
“칫.”
그사이 검이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이들의 손 속에 사정이란 없다. 목적도 확인하지 않고 오로지 살수만을 쓴다.
세실리아는 허리를 숙여 검을 피하고 기사에게 밀착하며 몸을 돌렸다. 등으로 기사와 완전히 밀착한 모양새다.
그리고 기사가 당황한 사이 검을 든 그의 팔을 겨드랑이에 끼고 뒷걸음질을 쳤다.
“어어.”
쿵.
벽까지 밀어붙인 사이에 다른 기사가 세실리아에게 덤벼들며 검을 휘둘렀다. 그녀는 몸을 돌려 팔을 잡은 기사의 품에서 빠져나가며 세검을 뻗었다.
텅, 푹!
기사의 검이 다른 기사의 어깨를 친 것과, 세실리아의 세검이 그의 눈에 꽂힌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녀는 재빨리 세검을 뽑아 남은 기사의 턱에 찔렀다. 세검은 그의 턱을 지나 정수리로 툭 튀어나와 투구를 반쯤 벗겼다.
“후.”
격한 움직임에 발목은 살가죽이 다 찢기고 피가 줄줄 흘렀다.
숨도 고르기 전, 살벌한 기운에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채앵!
묵직한 일격, 세실리아는 한쪽 발을 뒤로 뻗어 충격을 완화시키려고 했지만 발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뒤로 넘어졌다.
케빌은 그녀에게 검 끝을 겨누며 중얼거렸다.
“끈질긴 년이군. 이제 죽어라.”
케빌이 검을 추켜올렸을 때, 무언가가 빠르게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타닥.
발소리가 지면이 아니다. 지붕이다. 케빌은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검은 인영이 정확히 자신을 향해 빠르게 덮쳐 온다. 피할 시간은 되지 않으니 검으로 공격을 막아야 하는데-.
콰직!
케빌은 머리를 해머로 두들겨 맞은 충격과 함께 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그는 그 짧은 순간에 검은 인영이 자신의 검면을 쳐 내고 자신의 정수리를 내려치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그것은 분명 손이었다.
털썩.
세실리아는 눈앞의 기사를 깔아뭉개며 머리통을 터트린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정면에 십여 명의 병사들이 창과 활로 무장하고 있지만 긴장이 풀렸다. 안심이다.
검은 망토에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남자, 그가 나타남과 동시에 위압적인 기운이 전방위로 퍼져 나가 장내가 얼어붙었다.
그는 앞의 병사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이 뒤돌아서 세실리아에게 다가와 왼손을 어깨에 얹었다.
“수고했다. 이제 쉬어라.”
* * *
같은 시각, 왕궁 지하에 위치한 넓은 공동.
전신 철갑옷에 무기까지 갖추고 있는 전사상 수백 개가 진열된 그곳의 끝에 금으로 조각된 수십 마리의 뱀들이 부채꼴로 펼쳐진 왕좌가 놓여 있다.
그곳에는 순결해 보이는 비둘기처럼 새하얀 로브를 입은 자가 오연하게 앉아 있었다.
톡, 톡, 톡, 톡.
그는 중지로 팔걸이를 두드리다가 우뚝 멈추었다. 그러곤 검지로 위를 가리켰다.
“시끄럽네요. 직접 가서 조용히 시키세요. 곧 중요한 날이잖아요.”
공동을 밝히는 것은 왕좌 한쪽에 있는 촛대가 전부다. 그래서 그 앞에 누가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아, 마치 혼잣말을 한 것처럼 보였다.
스윽.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번쩍이는 은백색의 플레이트갑옷과 면갑에 꽂힌 붉은 깃이 유독 눈에 띈다.
척.
그는 교주를 향해 몸을 숙이며 오른손을 심장이 있는 가슴팍에 절도 있게 가져다 대고는 뒤돌아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