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검기.
검날에 담긴 예기를 마나로 형상화하여 쏘아 보내는 행위. 지금 들고 있는 검이 신체의 일부로 판정되어 마나가 깃들 때까지 무수한 시간을 정성들여 휘둘러야 가능한 경지다.
제국의 초대 왕 이카로네 외에는 그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 없었다. 검을 다루는 검사들에게는 무의 극인 것이다.
팡!
붉은 깃의 기사, 디마가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가 디딘 돌바닥은 으깨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가 공중에서 대검을 두 손으로 잡고 뒤로 한껏 젖히고 있다. 검기를 한 번 더 날릴 자세다.
타닥, 탁!
가브는 양쪽 벽을 차며 뛰어올랐다. 좁은 골목은 피할 곳이 한정된다.
훙-!
디마가 공중에서 검을 휘두르는 방향을 바꿨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으려다가 횡으로 그었다.
이대로는 발목이 걸린다. 가브는 빙글 돌며 오른손을 검기를 향해 휘둘렀다.
퍼엉!
가죽 주머니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검기의 일부가 상쇄되었다. 직접적으로 닿은 팔도 비늘만 살짝 뒤집혔을 뿐 안에서 피가 나지는 않았다.
그의 검기는 방어보다는 공격으로 맞부딪쳐야 피해가 덜하다.
턱, 턱.
가브가 지붕에 올라서자 디마도 금세 따라 올라왔다. 그와 제대로 마주하니 아이드성에서 오른팔이 잘렸을 때가 떠오른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해도 단숨에 제압하고 팔까지 깔끔하게 잘랐던 실력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쿵쿵쿵, 쿵!
디마는 거침없이 지붕을 박차며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가브는 그를 보니 진 카난을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길 수 있을까?’
확신이 흔들리던 때, 아래에서 어느새 튀어나와 전투에 합류하는 발튼과 세실리아가 보였다.
콰직!
가브는 오른발로 바닥을 강하게 찍고 몸을 낮추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
‘이겨야 한다.’
쩌정!
디마의 내리찍는 검과 가브의 올려 치는 검이 맞부딪혔다. 바닥을 지지하고 있는 발이 지붕을 부수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둘은 지붕 아래로 떨어진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바로 다시 검을 섞었다.
쾅! 쾅!
검이 맞부딪힐 때마다 마치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브는 디마가 휘두르는 검을 막으며 그 반탄력을 이용하여 거리를 벌리고, 자신의 중검을 오른손으로 바꿔 들었다. 왼손은 이미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장갑을 흠뻑 적셨다.
마기를 팔꿈치까지 밀어낸 지금, 왼손보다 오른손으로 손잡이의 윗부분을 잡는 것이 훨씬 더 폭발적인 힘을 쓰기에 유리하다.
디마는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쳤다.
쾅! 콰직!
둘의 검이 부딪힐 때마다 주변 집기가 흔들렸다. 유리창에는 금이 갔다.
가브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괴물 같은 공격을 방어하기에만 급급했다.
무기의 묵직함이 더해져서인지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은 힘에서 밀린다. 그렇다고 흘려보내며 반격을 가하기에는 속도도 빨라서 틈이 나지 않는다.
실력의 차이다. 현재로선 방어에 치중하며 버티는 수밖에는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
밖은 헤딘이 잡히지만 않는다면 초반에는 밀려도 기사들의 시체가 늘어날수록 상황이 역전될 것이다, 버티다 보면…….
챙그랑!
그때 디마가 돌연 창문을 깨부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데 그가 나가는 방향은 전투가 한창 치러지는 곳이 아니라 그 반대편이었다.
가브는 잠시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따라서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가 가는 건물은 헤딘이 숨어 있는 곳이었다.
헤딘은 마치 대놓고 자신이 술사라는 것을 알리듯이 4층짜리 건물의 꼭대기 층 창문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쾅- 쾅-.
디마는 바로 층마다 있는 턱을 밟고 헤딘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가브는 이를 악물며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속도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바닥을 박차고 뛰어 건물 외벽을 대각선으로 타고 올라갔다.
타다다닥!
마치 평지를 달리듯이 두 발로 벽을 타는 것이다.
턱.
그사이 디마는 헤딘이 있는 4층 창문의 틀을 한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검을 헤딘에게 휘두를 때였다.
콰광!
가브의 몸통 박치기가 디마를 덮쳤다. 둘은 외벽에서 밀려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검을 섞었다.
쿠궁, 쿵!
디마는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몸을 굴려 중심을 잡았다. 그의 면갑은 벗겨져 눈부신 금발을 드러낸 상태였다.
“……흑마법의 노예들은…… 멸살되어야 한다.”
가브는 미간을 찌푸리며 디마를 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순간 붉게 빛났다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세뇌, 전에 카로스가 가브에게 하려던 것처럼 세뇌되어 마모트의 수족이 된 것이다. 그 와중에도 흑마법을 경멸하는 말을 내뱉는 것을 보면 본래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마모트의 개에게 들을 말은 아니군.”
“마모트님을 모욕하지 마라!”
쾅!
디마는 발작적으로 소리치며 가브에게 검을 휘둘렀다. 평정심을 유지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의 검은 무겁고 빨랐다.
이처럼 지금까지 봐 왔던 기사들과는 격이 다른 실력의 디마가 같은 편에 선다면 환상에서 보았던 멸망을 막아 내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디마! 마모트는 악마다! 너의 왕이 아니다!”
“헛소리를 늘어놓는 그 입부터 찢어 주마!”
격한 반응을 보이며 더 거칠게 덤벼드는 디마의 눈동자는 아예 붉은색처럼 보였다. 조금만 더 건드리면 무언가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그때 밤하늘이 붉어졌다. 어린아이 머리만 한 화염구 두 개가 전투가 치러지고 있는 곳으로 날아간다. 그것을 바라보는 디마의 입술이 떨린다.
“아, 안 돼!”
콰광! 쾅!
하나는 건물에 부딪히고, 또 하나는 전장의 중앙에 떨어졌다.
“아악!”
“으악! 뜨거워!”
다행히 세실리아와 발튼은 미리 발견하고 범위 밖으로 피해 있었다.
불이 붙어 살이 녹아내리며 고통스러워하는 기사들과, 불에 타면서도 그들을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구울 기사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쿠구구구구구-.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화염구에 부딪힌 건물이 기사들 쪽으로 쓰러지려 했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건물에 깔려 시신도 못 찾게 될 위기에 처했다.
디마는 가브를 놔두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러곤 아무런 고민도 없이 불구덩이로 뛰어들어 살아 있는 기사들을 잡아채었다.
콰과과과광!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디마는 끝내 단원들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건물에 깔렸다.
가브는 그의 인상 깊은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멍하니 있다가 화염구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국의 왕을 알현하는 대전 입구에, 하얀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양손에 화염구를 하나씩 만들고 있었다.
가브는 마법사와 눈이 바로 마주쳤다. 그도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가브는 뒤로 피해 있는 세실리아와 발튼을 살짝 훑어보고는 대전으로 달렸다.
마법사는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가브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디마 저 어리석은 놈!”
그는 가브를 조준하여 화염구 두 개를 날리고는 결과도 보지 않고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펑! 퍼엉!
화염구는 가브가 달려오는 경로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나 가브는 다른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불 위를 달렸다.
속은 뼈에 겉에는 아디움이 발린 갑옷은 불에 강한 내성을 보였다. 겉은 그을릴지언정 안으로 열이 전달되지는 않았다.
콰광!
가브는 대전 문을 부술 듯이 열고 안쪽을 살폈다. 하얀 로브의 마법사가 왕좌 뒤쪽 제국의 휘장 너머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뒤를 따라가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수십 개의 계단을 내려가던 중, 가브는 싸늘한 기운에 멈춰 섰다. 어느새 만들어진 하얀 반투명의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실드.’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 마나를 깨닫게 되면서 보이는 듯했다.
앞을 가로막은 실드는 판판한 것이 아니라 뾰족한 가시가 수십 개 튀어나온 것이었다. 가브는 검 손잡이를 움켜쥐고 오른발로 바닥을 강하게 찍으며 실드에 검을 내리쳤다.
콰장창!
제법 튼튼한 실드였지만 가브의 일격을 버틸 수는 없었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니 반쯤 열려 있는 철문을 지나 거대한 공동이 나왔다. 양옆에 3미터는 될 법한 고대 전사의 석상 수십 개가 세워져 있고, 그곳의 중앙에는 하얀 로브의 마법사가 서 있었다.
가브는 인상을 찌푸렸다. 환상에서 보았던 여인은 보이지 않는다.
마법사는 가브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가츠 아이드 자작. 아니, 사해의 특급 해수 가브. 당신을 오랫동안 지켜보았어요.”
저벅저벅저벅.
가브는 그가 무슨 말을 하든지 상관없이 걸음을 옮겼다. 마법사의 말이 빨라진다.
“디마가 죽었으니 수석 기사의 자리가 빕니다. 당신에게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영광을 드리지요. 부와 명예, 권력 모든 것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가브는 검을 두 손으로 잡고 속도를 붙이며 외쳤다.
“개소리…… 집어치워라!”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법사에게서 강대한 마나와 마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환상에서 보았던 여인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눈앞의 마법사가 마모트교의 교주라는 확신이 들었다.
헤딘이 죽고 언데드 리치로 살아난 것, 동생 하렌이 고통받다가 죽은 것, 셀과 사해의 해수들이 기습받고 모두 불에 타 죽은 것, 그 모든 것의 원흉이다.
가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득 담아 그에게 검을 휘둘렀다.
“어리석군요.”
검 끝이 교주에게 닿기 직전, 교주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살아 있는 듯한 뱀의 문양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가브의 몸은 붕 떠올라 달려오던 것보다 더 빠르게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쾅!
카로스가 보였던, 마기로 밀어내는 기술이다. 벽에서 몸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가 손바닥으로 땅을 내리쳤다.
콰과과과광!
그러자 땅바닥이 사방으로 갈라지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동시에 고대 전사의 석상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교주는 오른손으로 우아하게 가슴을 감싸며 허리를 숙였다.
“마모트님의 기운을 받은 전사들입니다. 편히 가십시오.”
그 작별 인사와 함께 바닥을 박차자 마치 누가 민 것처럼 순식간에 20여 미터 뒤로 멀어졌다.
기긱, 기긱, 기기긱!
가브는 검을 왼손으로 잡고 덤벼드는 고대 전사 석상들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다시 교주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쯧쯧, 이리 학습이 안 돼서야…….”
그가 다시 손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가브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헤딘의 것보다 훨씬 농도가 짙고 새까만 마기가 가브를 덮쳤다. 가브는 이를 악물고 마기와 부딪히는 타이밍에 맞춰 뒤로 한껏 젖히고 있던 오른팔을 강하게 휘둘렀다.
촤아악!
거북한 소리와 함께 마기 일부가 찢어지자 교주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가브는 그 틈으로 검을 쭉 뻗었다.
“어떻……!”
푹-.
반뼘 두께의 중검이 교주의 미간에 꽂혀 뒤통수로 길게 튀어나왔다.
“껴…….”
쿵, 쿵, 쿵, 쿠구구궁!
동시에 가브를 덮치려던 수십 개의 고대 전사 석상이 무너져 내렸다. 그것으로 교주가 완전히 죽었음을 알 수 있었다.
카로스나 헤딘처럼 리치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바로 심장까지 뽑으려고 했건만 그저 마법과 흑마법을 익힌 인간이었던 것이다.
가브는 바로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환상에서 보았던 여인을 찾아야 한다. 그녀를 찾아서 처리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주르르륵-.
그사이, 교주의 피가 공동의 바닥에 난 작은 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 * *
대전 밖, 건물이 무너지고 불에 탄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전장.
콰앙!
주먹 하나가 벽돌을 뚫고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