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망망대해처럼 굴곡진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스리시미어스 사막, 모래언덕의 능선에 붉은 가죽갑옷을 입은 무리가 둥글게 서 있다.
용병대장은 위험을 감지하는 촉을 가진 덕에 이 바닥에서 15년 이상 버텨 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좋은 촉이 나이가 들었는지 이제야 발동됐다.
2미터가 넘는 키에 헐렁한 사제복이 꽉 낄 정도로 두꺼운 근육을 지닌 사제, 면사로 가렸음에도 가려지지 않는 화려한 얼굴과 매끈한 몸매에 정신이 팔려 몰랐던 여인의 팔근육과 가벼운 손놀림, 검은 후드를 눌러쓰고 항상 무리 뒤에 숨어 있어 생각도 하지 못했던 남자의…… 심상치 않은 기운.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일행이다. 이런 일행은 둘 중 하나다. 역으로 용병대의 물품을 빼앗기 위해 합류한 실력 있는 도적들, 또는 중죄를 저질러 신분을 숨기고 도주 중인 실력 있는 범죄자.
둘 다 붉은전갈 용병대에는 좋지 않은 상대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정말 늦은 거다.
용병대장은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잠…….”
“이야아아!”
“죽어라!”
그가 뒤늦게 중재하려 할 때, 명령을 목숨처럼 여기는 부하들이 동시에 무기를 추켜들고 가브 일행에게 덤벼들었다.
뒤에 물러나 있던 가브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헤딘.”
“예, 예!”
헤딘이 큰 소리로 대답하며 손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콰앙!
굉음과 함께 모랫바닥이 출렁이더니 이내 모래가 하늘로 솟구쳤다. 덤벼들던 대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 높이는 발튼의 키보다 더 높았다.
세실리아는 오른손을 검병에 가져가다가 멈칫했다. 한 대원의 그림자에서 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품에서 두 개의 단검을 꺼내 들며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사사사삭-.
그는 마치 헤딘과 짜고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공중에서 귀신같이 대원들의 몸을 훑으며 지나갔다.
쿠궁, 쿵쿵!
대원들의 몸이 바닥에 떨어질 때쯤, 렘은 마지막 대원의 심장에 단검을 꽂았다.
뿌득.
그는 검날을 비틀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중에 잠시 떠올랐다가 내려온 사이 열한 명이 시체가 되었다.
나머지 늦게 나가서 마기의 파동에 휩쓸리지 않은 대원 여덟과 용병대장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그, 저, 그, 목숨만은……!”
푹-.
용병대장이 두 손을 빌며 무릎을 꿇으려고 할 때, 세실리아의 세검이 그의 목젖을 파고들어 가 뒤통수의 머리 가죽을 경쾌하게 뚫고 나왔다.
“제발 살려…….”
퍼석!
“처자식이-.”
스걱.
나머지 여덟 명도 헤딘과 렘, 세실리아가 빠르게 처리했다. 발튼은 하얀 사제복에 피가 묻으면 안 된다며 뒤로 물러나 있었다.
사막에서 시체를 덮고 흔적을 없애는 것은 매우 쉽다. 그러나 가브 일행은 한쪽에 시체들을 모아 놓고 모래로 덮지 않았다. 사막 마물들이 피 냄새를 맡고 이곳에 모이는 동안 더 쉽게 멀리 나아가기 위함이다.
가브는 주인을 잃은 낙타 여덟 마리를 보고 입을 열었다.
“돈을 벌었구나.”
“스승님, 자, 잔인해.”
* * *
식량 외의 쓸데없는 짐을 버리면 낙타 한 마리에 한 명씩 탈 수 있건만, 가브 일행은 그러지 못했다.
일행이 스무 명이나 줄었지만 마물들의 공격이 전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전에는 붉은전갈 용병대원들이 알아서 처리했기에 괜히 죽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들이.’
힐 아슈는 마물이 나타날 때마다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나를 본다.’
힐 아슈는 마물들이 장거리에서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고 방향을 트는 것을 느꼈다. 강할수록 더 멀리서도 감각으로 알아챘다.
흠칫.
그녀는 두 손을 교차시켜 어깨를 감싸며 몸을 떨었다.
이엘이 뒤에서 그 모습을 발견하고 손으로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요? 걱정…….”
탁!
그 순간, 힐 아슈는 홱 돌아서 이엘의 손을 사납게 쳐 냈다. 이엘은 얼얼한 손을 붙잡고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힐은 뒤늦게 자신이 한 짓을 깨닫고는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죄송해요. 타인이 손에 몸을 대는 게 익숙지 않아서요.”
이엘은 그녀 앞에서 표정 관리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이해해요. 미안해요. 아무튼 너무 걱정 말아요. 여기 다 엄청 강한 사람들만 있으니까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예, 고마워요.”
이엘은 머쓱하게 돌아서 세실리아에게 쪼르르 달려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세실리아는 막냇동생 대하듯이 그녀를 토닥여 주었다.
힐 아슈는 자신의 요청으로 중앙에서 혼자 걷고 있고, 가브는 그 뒤를 바짝 따르고 있다. 에런이 이엘과 힐을 보고는 가브에게 가까이 다가와 중얼거렸다.
“저 공주는 제 목숨 구해 준 줄도 모르고 왜 이렇게 까칠…….”
“쉿.”
가브가 집중한 얼굴로 말하자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으며 장내가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마나량의 차이인지 마물 감지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능력을 보이는 가브였다.
가브는 검지를 입술에 댄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서쪽이었다.
에런은 가브를 따라 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평선 너머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내려 보니 모래가 자잘하게 떨리고 있었다.
스스스스-.
그 모습이 희한하여 에런은 두 무릎을 꿇고 가까이서 보았다. 모래가 떨리는 것을 넘어서 위로 한 뼘 정도 튕겨 오르고 있다. 이내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에런은 불안한 예감을 애써 밀어 넣으며 입술을 열었다.
“이거…….”
가브는 그녀의 팔뚝을 붙잡아 확 일으키고는 앞으로 밀었다.
“앞만 보고 달려라.”
쿠구구구구구-.
진동이 강해지며 지평선 너머로 희뿌연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자연이 일으킨 회오리가 아니었다. 그 어떤 절대적인 생명체가 움직일 때 생기는 후폭풍이었다.
가브는 힐 아슈를 거칠게 잡아끌고는 다른 일행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어서, 사해로!”
세실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소리쳤다.
“저도 주군과……!”
콰과아아아앙!
“가!”
가브는 외침과 동시에 힐을 어깨에 들쳐 메고 진동의 진원지의 반대편으로 달렸다.
팡팡팡, 팡!
그가 한 발짝씩 바닥을 딛고 튀어 나갈 때마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쇠공이 떨어진 것처럼 푹 파인 발자국은 간격이 4미터를 넘어섰다.
세실리아는 금세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가브를 보며 따라가기를 포기하고 남쪽으로 달렸다.
세실리아는 가브의 생각을 읽을 순 없었지만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지금 덮쳐 오는 그 거대한 생명체는 자신의 일행이 아니라 가브를 쫓아갈 것임을.
만약 이쪽으로 온다면 살 가능성은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기적이게도 조금이라도 살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가브 쪽으로 가기를 바라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럼에도 지나가는 후폭풍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
“쥬군은! 우리도 흐터져야 하나!”
“닥치고 빨리 따라오기나 해! 이 오크 새끼야!”
세실리아는 애꿎은 발튼에게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낙타를 버리고 이엘을 둘러메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쿠우우우웅!
뒤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굉음은 무시하며.
* * *
베헤모스, 사막의 신.
바다의 신이라 불리는 바하무트와 더불어 언제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현존하는 유이한 생명체.
학자들의 가설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태초부터 이 세상과 함께했다는 이론, 둘째는 마물이 생겨나면서부터였다.
힐 아슈는 이번 일로 후자가 진실임을 깨달았다.
콰과과과광!
귀청을 떨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모래가 하늘로 솟구치고 몸은 지면과 멀어진다.
터덕-.
자신을 마치 동물 가죽처럼 어깨에 들쳐 멘 이 남자는 갑작스러운 충격에도 공중에서 중심을 잡고 안정적으로 착지하여 다시 달렸다.
힐은 자신의 위치상 등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가브는 다리에 모든 마나를 집중시켜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신앙심이 생길 정도로 거대한 존재를 벗어날 순 없었다.
‘마기를 다룰 수 있나? 마법을 쓰면 어떡하지? 지금 속도가 최고인가?’
베헤모스의 정보는 극소수다. 몸은 하마를 닮고 머리는 원숭이 얼굴에 어금니는 코끼리처럼 길게 휘어진 뿔을 지녔다는 외형이 전설처럼 퍼지고 있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다시 들쳐 업고 달리는데 작고 가녀린 음색이 귓가에 들려왔다.
“저 내려 주고 가세요. 그러면 살 수 있어요.”
가브는 멈칫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녀가 마물들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그러나 마물이 그녀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그녀 말대로라면 둘 다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단기적으론.
가브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으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럴 생각 없다.”
힐은 피가 쏠리는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가브의 뒤통수를 보았다가 다시 축 늘어졌다.
그그그그그-.
먹구름인지 그림자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은 크기의 것이 움직인다. 지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면서 베헤모스의 방향을 그림자로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천운이었다.
그러나 천운이 도와도 소용없다는 듯이 빠르게 다가온다. 이카로네 장벽도 단숨에 무너트릴 듯이 거대한 뿔이 가까워진다. 놈에게서 풍기는 지독한 마기가 살갗을 스친다.
놈이 발을 구를 때마다 마기와 이 세상의 마나가 충돌하여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그것은 물리적인 힘으로 변환되기에 충분했다.
콰아아앙!
가브는 몸을 틀었지만 바로 옆에 찍히는 태산 같은 발에 몸이 붕 떠올랐다.
가브는 수십 미터 날아가면서 공중에서 힐 아슈를 감싸고 바닥을 굴렀다.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커진다.
퍼벅, 퍽-.
바닥이 온통 모래라고 하더라도 그 가속도와 높이로 인해 충격이 꽤 컸다.
가브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힐 아슈의 상태부터 살폈다. 이미 혼절하거나 피를 토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다행히 멀쩡했다.
가브가 다시 힐을 들려는데 그녀가 만류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금 어떻게 한 거예요?”
“뭐?”
이 순간에도 가까워진다. 가브는 일단 그녀를 들쳐 메고 달렸다. 작은 목소리가 귓가에 명확히 들려왔다.
“가브 씨가 방금 날 보호해 줬어요. 그거라면 사막의 신에게서 벗어날 수도 있어요.”
그녀의 말에 가브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방금 전에 행한 일을 되짚어 보았다.
충격으로 내장이 뒤틀릴까 하여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단전에 마나핵의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실드!’
마법은 마법서에 쓰여 있는 이론을 외우고 이해해야 펼칠 수 있다. 그러나 마법서가 나오기 전에 마법이 먼저 만들어졌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이론이 없을 때는 마법사들이 어떻게 마법을 부렸는가? 바로 직관적 마법이다.
이론 없이 직관적으로 마법을 부리는 데에는 놀랍게도 감정이 가장 큰 작용을 한다. 감정이 명확해지면 마나가 그것을 읽고 그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다.
가브는 지켜 줘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마음으로 힐 아슈에게 실드를 펼쳤던 것이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웠다. 아무리 돌발적으로 펼친 것이라고 해도 그 마나의 술식은 확실히 기억났다.
‘해 보자.’
실드는 속도와는 무관하다. 그렇다면 그녀가 말하는 벗어난다는 의미는 마물들이 그녀를 찾아오는 그 무언가를 없애 준다는 뜻이다.
내부의 마나를 외부로 사용할 수 없으니, 자연의 마나를 모아 실드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러나 속도로나 지구력으로나 베헤모스에게서 벗어날 순 없다.
아무리 단련되었어도 이미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방법을 찾아보자.
베헤모스는 수십 미터에 달하는 그 거대한 덩치만큼 방향을 꺾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워낙 속도가 빨라서 잠깐 멀어졌다 해도 금세 따라잡힐 뿐이다.
그 순간을 활용한다. 가브는 확 방향을 꺾어 저 끝의 모래언덕을 향해 달렸다.
-쿠후으아아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가브의 존재에 베헤모스가 포효하며 분노를 표했다. 포효는 물리력을 동반하여 모래폭풍을 만들었다.
그것이 가브에게는 오히려 기회였다. 시야를 가리고 등을 떠밀어 더욱 빨리 모래언덕을 올라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숨 참아.”
가브는 모래언덕을 넘어가자마자 바로 자신들의 몸에 실드를 두르고 망토로 힐 아슈의 머리를 감싼 뒤 바닥을 파고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