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대륙 최대의 정보 단체 밤까마귀.
밤까마귀는 설립된 목적 자체가 정보를 사고팔며 상업적 이익을 얻는 것이다. 누구든 가입할 수 있고 언제든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직업을 가진 사람이 부업으로 드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철저하게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결속력이 부족하다. 지젤리드 왕국에 있는 본단이나 왕국별로 있는 본부와의 연결이 끊겨도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는 것이 가능했다.
지젤리드 왕국에 있는 본단과는 왕국별로 굵직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퍼트리는 상업적 이익과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서만 연결되어 있어, 밤까마귀의 규모에 비해 본단의 경비나 전력은 허술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애초에 철저히 중립을 지키고, 해를 끼칠 경우에는 에런의 경우처럼 책임을 물고 꼬리를 자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공격받을 일 자체가 없었다.
꼬리 자르기의 생존자가 있기 전까지는.
에런은 까마귀들이 무자비하게 창녀들을 베어 버리던 때를 떠올리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당했으면 갚아 줘야지. 그게 이 세계의 방식이지.”
가브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피해를 입고 살아남았다면 적어도 다시 맞복수를 할 수 없게 갚아 줘야 한다.
후한이 남지 않게 모두 없애 버리든지, 복수를 생각할 수 없게 철저히 짓밟아야 한다.
지젤리드 왕국 국경에 다다르자 에런이 내릴 준비를 하며 말했다.
“다 같이 갈 필요 없고, 이 둘만 빌려줘요.”
그녀는 헤딘과 렘을 가리켰다.
항상 같이 다니다 보니 말은 하지 않아도 꽤 친숙해진 렘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이 전보다 많이 부족해진 헤딘은 평소에 에런이 자신과 의견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 중에 자신을 콕 집어 필요로 한다고 하니 더욱 가치를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헤딘은 에런이 좋았다.
“스, 스승님. 저 비, 빌려주세요. 이, 이거 가져가시고.”
죽은 후에도 나이를 먹은 것으로 쳐도 스물이 넘지 않은 소년에게 큰 짐을 지워 주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곳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웠다.
헤딘은 가브의 갑옷이 들어 있는 보따리를 건네고는 마차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빠르게 결정되고 마차 문을 닫기 전, 에런은 가브에게 손을 뻗었다.
“나 돈 더 줘요, 예쁜 옷 좀 사 입게.”
가브는 미간을 좁히며 가죽 주머니에서 골드를 한 움큼 꺼냈다. 그리고 그중 두 개를 골라서 주었다.
“아잇.”
에런은 마치 훈련된 해수를 보듯이 빠르게 남은 골드를 낚아채 갔다.
“투자라고 생각해요, 투자. 히스에서 봐요~.”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에런을 가만히 바라보던 세실리아가 작게 말했다.
“주군, 명만 내리시면 바로 서큐버스의 손목을 잘라 오겠습니다.”
“됐다. 가자.”
* * *
히스는 삼면이 바다로 둘려 있고, 유일하게 남동쪽만이 대륙과 이어져 있다.
여러 왕국에서 중죄를 저질러 도주하던 범죄자들이 그곳까지 몰렸다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 목숨을 걸고 싸우니 명예와 이득을 저울질하던 왕국들이 잡기를 포기한 곳이 히스였다.
히스는 판테르 대륙에서 쓰레기통 취급을 당한다. 처리하기 난감한 마물들이 있으면 그쪽으로 유인하여 보내고, 젊은 왕들이 새로이 등극하면 힘을 과시하며 명성을 높이기 위해 심심치 않게 토벌을 나선다.
그렇기 때문에 초토화된 적도 많고, 도시 자체가 기본적으로 황량하고 피폐하다. 그곳은 살인과 강간, 도적질이 난무하는 도시로 밤이 지나면 길거리에 시체가 몇 구씩 늘어났다.
모험가들이 히스를 지나는 길에 식량이 없어도 굶어 죽으면 죽었지 그곳에는 들르지 않는다.
그래서 히스에서 용병 생활을 하다 왔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독종’, ‘지옥에서 살아남은 놈’ 정도로 해석되는 것이다.
히스는 인구가 1만을 넘지 않는 소도시지만, 당연하게도 칼밥을 먹는 사람의 비율이 다른 도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다.
저 멀리 울타리도 없고 경비도 없고 바로 허술한 흙집과 천막들이 보이는 마을이 나왔다.
“오랜만에 옵니다.”
“그러게. 10년 만인가?”
“9년입니다.”
“거의 10년이 다 되었군.”
“정확히는 8년 11개월 만입니다.”
“창문 닫아.”
“예, 주군.”
세실리아는 바깥을 슥 훑어보곤 창문을 닫았다. 원래 번갈아 가면서 마차를 몰았지만, 히스의 입구가 보일 때부터는 발튼이 마차를 몰고 있다.
거대한 덩치에 강철 같은 근육, 오크 창자도 생으로 씹어 먹을 인상을 지닌 발튼의 겉모습은 귀찮은 일들을 상당수 걸러 줄 것이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히스에 들어서자 풍겨 오는 기운이 바뀌었다. 가브는 지그시 눈을 감았고, 세실리아는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리온느는 세실리아의 행동을 보고 살짝 긴장하였다. 그녀는 주로 크레아 왕국 인근에서만 활동하기에 히스에는 처음 온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히스는 마치 머리 세 개 달린 괴물들이 서로 물어뜯는 지옥 같은 도시였다.
스슥, 스스슥.
건물 사이사이, 지붕 위, 저 멀리 창문 너머에서 낯선 자들의 방문을 반기고 있다. 따라붙는 그림자가 열이 넘어갈 즈음에 한 무리가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히잉!
발튼은 일단 마차를 멈춰 세우고 몸을 일으켜 무리를 훑어보았다. 어깨에는 번쩍이는 도끼를 걸치고, 새파란 머리를 사자 갈기처럼 기른 사내와 그의 부하 네 명이다.
그 사내는 심상치 않은 인상에 덩치도 오크만 한 발튼을 보고도 눈썹 한번 꿈틀거리지 않았다.
“이방인이구나! 가진 돈과 여자를 내놓으면 나머지는 고통 없이 죽여 주마!”
어이없는 요구 조건에 발튼은 바로 마부석에서 내려와 손목을 돌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발튼은 가까이서 볼수록 더 커 보인다. 사내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다급히 말을 이었다.
“잠깐! 농담이다! 통행료 1골드만 주면 바로 10구역을 통과하게 해 주겠다!”
“1골드? 못 주겠다면?”
“못 줘?”
발튼의 말에 사내의 눈빛이 돌연 반짝였다.
훙-!
어느새 도끼가 반원을 그리며 쇄도했다. 발튼은 심상치 않은 기세에 몸을 틀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콰광!
도끼가 바닥에 찍히자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뿌옇게 올라왔다. 사내는 더 공격하지 않고 도끼를 뽑으며 이죽거렸다.
“팔 하나만 잘라서 겁주려고 했는데, 제법…….”
사내는 말하는 중에 흙먼지를 뚫고 날아오는 주먹에 도끼 면으로 다급히 방어했다.
쩌정!
사내는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났다가 부하에게 등을 내주며 간신히 멈춰 섰다. 분명 주먹인데 마치 거대한 쇠구슬을 맞이한 듯한 충격이 일었다.
사내는 씨익 웃으며 어깨를 털고 본격적으로 싸울 자세를 취했다.
끼이익-.
그때 마차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내려섰다. 흙먼지가 아직 다 가라앉지 않았는데도 그 실루엣만으로도 사내의 몸이 얼어붙었다.
신기한 것은, 그의 등장에 주변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그림자들이 잽싸게 사라졌다는 것이다.
저벅저벅.
흙먼지가 가라앉자 남자, 가브는 사자 갈기 사내의 코앞에 서 있었다. 사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가브를 올려다보며 눈동자를 떨었다.
“가……츠.”
“오랜만이구나, 빌헬트. 지금도 케레스 밑에 있나?”
빌헬트는 가브의 건조한 눈을 마주한 순간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예.”
슥.
가브는 검지로 그의 턱을 들어 올려 강제로 눈을 마주했다. 빌헬트의 눈동자가 감당할 수 없는 공포로 심하게 떨리며 눈물이 맺힌다.
“제국에서 건 현상금은 알겠지?”
그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가브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오늘 히스 전체에 퍼트려라, 내가 여기에 왔다고.”
가브의 발언에 빌헬트의 눈동자가 더할 수 없이 커졌다. 가브는 히스를 상대로 선전포고한 것이다.
가브가 그의 턱에서 검지를 떼고 뒤돌아섰다.
빌헬트는 가브가 무기도 빼지 않았고 근접 거리에서 등을 보이고 있는데도 두려움에 발이 움직이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가 마차에 오르고 문이 닫히고 나서야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마차가 사라지고 나서 빌헬트의 부하가 그에게 물었다.
“대장! 저놈이 뭐 하는 놈이길래 쩔쩔매시는 겁니까?”
빌헬트는 두려움의 잔향에 몸을 떨며 중얼거렸다.
“내 가문……을 몰살시킨 암살자.”
빌헬트는 지금도 종종 그날 밤의 악몽을 꾸었다.
피로 물든 저택, 숨소리가 천둥처럼 울리는 적막한 밤, 침대 아래에서 마주쳤던 그 싸늘한 눈빛.
[살고 싶으면, 히스로 가라.]빌헬트는 열다섯 나이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히스로 향했다. 약속대로 그의 추적은 없었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본래부터 지옥 같았던 가문에서 벗어난 것은 환영할 일이었지만 그날의 기억이 뇌리에 깊게 새겨져 밤마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를 이길 정도로 강해진다면 이 정신 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오늘 만남으로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손가락을 댄 것만으로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더 괴물이 되었어, 내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빌헬트는 가브가 타고 있는 마차가 점처럼 작아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
“케레스 님에게 가자.”
그날 밤, 히스의 모든 이들이 2만 골드라는 초유의 현상금이 걸린 가브의 등장을 알게 되었고, 난다 긴다 하는 범죄자들이 검을 갈고 밤거리로 나섰다.
* * *
지젤리드 왕국 변방, 건물이 낮고 후미진 길거리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손잡이가 까마귀 모양인 송곳으로 진보라색 머리를 틀어 올리고, 가슴이 깊게 파인 보라색 블라우스에 허리를 잘록하게 잡아 주는 코르셋, 매끈한 각선미를 관능적으로 보여 주는 옆트임 뱀 가죽 스커트, 굽이 높은 가죽 구두를 신은 그녀의 등장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그녀의 양옆에는 녹색 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 맹한 얼굴의 헤딘과 언데드보다 무감정해 보이는 렘이 서 있었다.
에런은 끝에 검은 깃털이 꽂힌 부채를 앞으로 쭉 뻗었다.
“복수는 화끈해야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튀어나오는 잡것들을 전부 없애면 돼.”
“예.”
“아! 마, 마음껏 주, 죽여도 된다!”
“그래. 마음껏, 시작해.”
에런은 위험한 기운을 풍기며 도도하게 걸음을 옮겼다.
헤딘은 반보 뒤에서 그녀를 따라가며 손을 열심히 휘적거렸다.
찌지직! 촤악!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의 표적이 되면 갈기갈기 몸이 찢겼다.
슥, 츄아악!
렘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전혀 다른 곳에서 튀어나와 소리 없이 상대의 목을 잘랐다. 마치 궁극의 마법 순간 이동을 하는 것 같았다. 렘에게 당한 이들은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에런은 시원하게 걷기만 하는데 지나간 자리가 모두 피로 물들고 있었다.
밤까마귀의 정보 판매자를 보호하거나 꼬리를 자를 때 동원되는 까마귀단 중에는 해수급의 실력이 좋은 자도 있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보편적인 해수를 말했다.
1급 중에도 상위권 실력을 지닌 렘이나 사기적인 능력을 지닌 소년 앞에서는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
에런은 자신의 새하얀 얼굴에 뿌려지는 누군가의 붉은 피를 그대로 맞으며 카타르시스를 만끽했다.
“하……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