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12
12화
산맥과 숲, 사막과 같은 사람의 손이 닿기 힘든 곳은 자연스럽게 마물들이 많이 서식지로 삼는다. 그래서 그 인근에 있는 마을들은 울타리가 높고 튼튼하다. 반대로 사람에 대한 경계는 적은 편이라 숨어들기가 쉽다.
작은 통나무집, 침실과 창고가 나뉘어 있어 더 아담하고 포근해 보인다.
“후-.”
이마에 살짝 주름이 진 중년인은 랜턴의 불을 끄고, 접시 위에 올린 작은 촛불 하나만 들고 침상에 다가갔다. 먼저 누워 있던 아이가 그를 보며 방긋 웃었다.
“아빠 아빠, 오늘은 디마 기사님 얘기해 줘요.”
“디마 기사님? 우리 딸 그 얘기가 재미있었구나. 알았어. 이것만 듣고 자는 거야.”
“네, 얼른…….”
철컥, 철컥, 끼이익.
그때, 낯선 소리에 아이가 입을 다물었다. 부녀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방문을 보았다.
쇠고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며 진한 피비린내가 풍겨 온다. 부녀는 순간 얼어붙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저벅저벅.
한 남자가 느린 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온다. 어두워도 그가 피투성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다. 번뜩이는 안광은 숲에서 호랑이를 마주한 것처럼 등골이 서늘해지게 만들었다.
중년인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구석에 세워 둔 쇠꼬챙이를 집었다.
스릉.
동시에 남자가 중년인에게 검을 겨누며 입을 떼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중년인은 그의 싸늘한 목소리에서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다.
남자, 가브는 그가 가만히 있자 식탁에 검을 기대고 의자에 쓰러지듯이 앉았다.
털썩.
“아, 아빠…….”
“괜찮아, 괜찮아…….”
중년인은 쇠꼬챙이를 든 채로 아이의 얼굴을 안았다.
가브는 아이를 힐끗 보았다가 시선을 거두고, 가죽옷과 너덜너덜해진 셔츠를 찢듯이 벗어 던졌다.
어깨가 길게 베였고, 옆구리에는 부러진 화살이 깊이 박혀 있다. 그 외에도 자잘한 상처가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가죽 주머니를 하나 꺼내어 하얀 가루를 단검에 묻히고는 화살이 박힌 부위에 찔렀다.
푹.
“후읍.”
꽤 깊이 찔러 넣었다가 뽑으니 싱싱한 피 냄새가 방 안에 훅 풍겼다.
그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시더니 이번에는 손가락을 상처 부위에 거침없이 쑤셔 넣었다.
끄득 끄드득.
한동안 소름이 돋는 기괴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는 이내 새빨간 화살촉을 배에서 꺼냈다.
“으윽, 징그러.”
“쉬…….”
순진한 아이보다는 아빠의 목소리에 떨림이 더 심하다.
가브는 화살촉을 잠시 바라보았다. 촉 폭이 넓고 끝에 돌기가 있는 화살, 이것을 뽑겠다고 무작정 화살대를 잡아당기면 장기가 찢기거나 심하면 같이 딸려 나온다.
화살촉 하나 잘못 제거하다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치이이익.
이번에는 약병을 꺼내어 얼마 남지 않은 트롤의 피를 상처 부위에 탈탈 털었다. 살이 타는 듯한 매캐한 냄새가 풍겼지만 그는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
흘러내린 초록 피를 손에 묻혀 어깨에 대충 바르고, 탄력 있는 붕대를 배에 칭칭 감았다.
그리고 가죽옷에서 금빛 동전 몇 개를 꺼내어 식탁에 놓고 고개를 들었다.
“셔츠 하나 얻을 수 있습니까.”
중년인은 경계하며 침상 근처에 있는 셔츠를 그에게 던졌다. 가브가 그것을 한 손으로 낚아채어 입으려다가 멈칫했다.
똑똑.
“들어가겠습니다.”
안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는 듯 단호한 목소리, 가브는 천천히 식탁에 기댄 중검을 들며 부녀에게 눈짓했다.
눈치 빠른 중년인은 아이를 안고 창고로 들어갔다. 거의 동시에 쇠고리가 올라가며 문이 열렸다.
저벅저벅저벅.
가벼운 발걸음, 잔잔한 호흡, 지금까지의 암살자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실력자들이다.
가브는 여유롭게 등장하는 두 남녀를 바라보았다. 그중 한 명은 낯익은 얼굴이었다.
“세실리아…….”
차가운 인상의 여인, 세실리아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가브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온몸이 피투성이에 눈 밑은 검고 기운은 가라앉아 있다. 아무리 봐도 검을 들 만한 상황이 아니다.
그녀는 가늘고 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도톰한 입술을 열었다.
“조장, 복귀하세요. 적어도 목숨은…….”
스릉.
그때, 옆에 있는 사내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 사내의 검신은 보통 단검의 두 배는 길어 단검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일하러 왔으면 일을 해야지, 무슨 개소리야?”
세실리아는 입술을 다물고 싸늘한 눈으로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그녀의 눈빛을 무시하며 가브에게 단검을 겨누었다.
가브는 반쯤 풀린 눈을 들어 세실리아를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후음…… 고작 둘이서…… 날 너무 퇴물 취급하는 거 아닌가?”
“다 죽어 가는 게 허세는!”
그의 말에 사내는 콧방귀를 뀌며 바로 검을 뻗었다.
쉭.
1급답게 빠르고 간결하다. 그 무서운 속도에 놀란 가브는 다급히 중검을 들어 미간에 닿기 직전에 검신의 허리를 쳐 냈다.
스걱.
사내의 검 끝이 가브의 눈썹 끝부터 관자놀이를 얇게 긁고 지나간다. 기습이 반쯤 성공했으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검을 더 깊이 찔러 넣은 것이다.
암살자에게 욕심은 치명적이라는 것을 이 후배에게 가르쳐 줘야겠다.
퍼억.
검이 깊이 들어왔으니 얼굴이 가까이 있는 건 당연한 일, 가브는 그의 턱 오른쪽에 주먹을 꽂았다.
턱뼈가 옆으로 밀리며 이가 뽑히고 살이 뒤틀린다. 생생하던 동공은 초점을 잃고 까맣게 퍼진다.
가브는 줄 끊어진 연처럼 쓰러지는 사내의 머리가 바닥에 닿기 전에 단검을 빼앗아 관자놀이에 꽂았다.
푹, 팍.
단검이 관자놀이에 먼저 꽂히고, 바로 바닥에 머리가 닿았다.
가브는 이제 얌전해진 사내의 머리통에 오른발을 올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아직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무모하군. 그렇지?”
“실력은 좋은 자였습니다.”
“방심도 실력이지. 계속할 건가?”
스르릉.
세실리아는 대답 대신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검폭이 좁고 가느다란 세검이었다.
“다시 한번 권하겠습니다. 복귀하시죠.”
“정말로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직 조장을 따르는 해수들이 많습니다. 제가 여기서부터 사해까지 함께 귀환하겠습니다.”
세실리아의 차가운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녀는 암살자가 어울리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태제와 나는…… 돌이킬 수 없어.”
가브는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중검을 들었다. 세실리아는 고개를 숙였다가 자신의 검 끝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군요. 저는 방심하지 않습니다.”
“알아, 누가 키웠는데.”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늘처럼 뾰족한 검이 가브에게 쇄도했다.
챙, 채앵!
찌르기와 속도에 특화된 세검, 방어에는 취약하지만 방어할 일이 없었다. 일방적인 공격만 있을 뿐.
채쟁, 챙챙챙.
특히 가브의 무거운 중검은 세검에 취약했다. 성질을 이용하여 강하게 쳐 내도 부드럽게 빠져 반대편으로 공격이 들어와 막는 데에만 급급했다.
선천적으로 낮은 완력 싸움을 피하기 위해 약점을 보완하기보다는 장점을 강화했다. 그녀는 자신이 사라진 이후에도 쭉 배운 대로 훈련해 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치이이익, 푸욱!
가브는 이번에는 쳐 내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려다가 팔뚝이 뚫렸다. 한 치만 더 옆이었으면 폐가 뚫렸을 것이다.
스윽.
“엇.”
가브가 그 상태로 공격을 하든지 뒤로 물러나 검을 빼야 하는데, 세검을 더 깊이 찔러 넣으며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당황한 세실리아였다.
턱.
세실리아가 검을 뽑으려고 할 때는 이미 가브가 한 손으로 세검의 검신을 잡은 상태였다.
그녀는 재빨리 검을 포기하고, 뒷걸음질을 치며 허리춤에서 또 다른 짧은 세검을 뽑았다.
방금과 같은 변수에 대처하는 방법, 차분하고 빨랐지만 가브에게 그 순간이면 충분했다.
푹.
“컥.”
어느새 날아간 단검이 세실리아의 가슴에 박혔다.
챙그랑.
가브는 금세 따라붙어 그녀의 손에 쥔 검을 맨손으로 쳐 내고, 단검을 깊이 쑤셔 넣었다.
“끄으읍.”
그는 단검을 비틀기 직전에 멈칫하고는 눈을 감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스윽.
세실리아는 가브가 멀어지는 기운을 느끼고 눈을 다시 떴다.
그는 상처투성이 등을 보이며 집주인에게 받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정도면 쫓지 못한 이유는 되겠지.”
그녀는 심장 바로 위에 꽂힌 단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출혈을 막기 위해 뽑지 않은 것이다.
“변했군요.”
“넌 좀 변해라.”
가브는 창고를 한 번 보았다가 돌아서서 문고리를 잡았다.
사해는 임무에 상관없는 일반인은 건드리지 않는 철칙이 있다.
“태제가.”
그때, 세실리아의 무거운 목소리가 가브의 발을 잡았다.
“조장의 동생을…… 데리고 있습니다.”
“뭐?”
가브는 바로 몸을 돌려 세실리아의 멱살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 가족은 20년 전에 모두 산 채로 타 죽었어.”
그녀는 가브의 살기 어린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술을 떼었다.
“4년 전에…… 제국에서 데리고 왔습니다, 제가 직접.”
그녀의 말에 가브의 눈은 더할 수 없이 커졌다.
* * *
콰장창!
고급 저택의 집무실, 금줄이 둘려 있는 쟁반들이 바닥에 무참히 깨져 있다.
베르 소엘은 눈을 부릅뜨며 맞은편에 서 있는 호위대장을 노려보았다.
“뭐? 한 명도 안 돌아와? 쥐새끼들이 붙어? 대체 뭔 개소리야!”
“죄송합니다. 그를 쫓는 무리와 충돌이 있었나 봅니다.”
“이런 시팔! 그 새끼들은 대체 뭐야? 뭐 하는 개새끼들이야! 후, 후웁, 후…….”
“죄송합니다.”
호위대장은 베르 소엘의 눈치를 한 번 살피다가 말을 이었다.
“잘나가는 용병대를 불러서…….”
“아니, 그러다 또 날리면? 후…… 그래, 그때 여자애 찾으러 간 놈들이 안 돌아왔다고 했지?”
“예.”
“그쪽 다 뒤져서 그 여자애 잡아 와. 그러면 또 지가 지발로 오겠지.”
“예, 마을 사람들은-.”
“싹 다 죽여.”
“알겠습니다.”
“빨리 꺼져.”
호위대장은 절도 있게 묵례를 하고는 문을 열었다. 동시에 그의 눈에 무언가가 반짝였다.
핏.
뾰족한 송곳이 그의 미간에 쑥 들어갔다가 빠져나왔다. 그는 미간에서 소변처럼 한 줄기 피를 뿜어내며 뒤로 넘어갔다.
저벅저벅.
그와 동시에 검은 복면에 검은색의 가죽옷을 입은 사내가 천천히 들어왔다.
베르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벽면에 꽂힌 장식용 검을 뽑아 들었다.
“너, 너 뭐야! 경비병! 경비병!”
사내는 발을 멈추더니 집무실 밖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가 다시 베르를 보았다.
“당신을 도울 경비는, 이제 없습니다.”
“네가, 네가 그놈이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베르 소엘이야, 소엘! 곧 남작이 된다고! 이 나라에서 귀족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저벅저벅.
사내는 말없이 몇 걸음 더 가서는 건조한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분을 건드렸습니다.”
“대체 뭐가! 아니, 도, 돈을 원하면 주겠다. 은행에 가면 아버지가 모아 둔 골드가-.”
푹.
사내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의 관자놀이에 송곳을 꽂았다. 반대편에 뾰족한 끝부분이 툭 튀어나왔다가 사라졌다.
사내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목과 심장에 한 번씩 송곳을 꽂고는 미련 없이 바로 뒤돌아섰다.
집무실 밖, 복도의 벽면에는 빨갛게 흩뿌려져 있는 피가 보인다. 바닥에는 병사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곳에는 사내와 같은 복장의 복면인 세 명이 꿈틀거리는 병사들을 찾아다니며 목에 단검을 쑤셔 넣고 있었다.
“갑시다.”
“예, 주군.”
“예, 주군.”
셀의 말에 복면인들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펴고 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