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청명한 하늘을 끔찍한 고깃덩어리들이 가로지른다.
딱딱하게 굳은 사람의 그것은 마치 돌덩이와도 같았다.
퍽, 퍽! 콰직!
바르드 마을을 지키는 주민들은 그것에 맞아 팔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터져 나갔다.
“꺄아아악!”
“마물이다! 마물의 습격이다!”
대비를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물들이 수백 마리 단위로 들이닥치자 주민들은 금세 공포에 빠졌다.
베라카는 자신에게 꽃 모양 나무조각을 주었던 소년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샘…… 내가 복수해 줄게.”
그녀는 샘이 만든 화살까지 모두 챙기고 도망치기 바쁜 사람들과는 다르게 역방향으로 울타리 위로 올라갔다.
-크룩하!
콰광! 쾅!
나름대로 온갖 집기들로 울타리를 공고하게 한 덕분에 우락부락한 오크들의 몸통 박치기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 모습에 몇몇 청년들이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도망가지 마요! 돌을 더 줘요!”
“화살 다 가져와!”
울타리를 성벽처럼 두껍게 만들어 그 위에 올라가 있던 청년들은 그곳에 모아 둔 돌을 마물들에게 던지고 화살을 쐈다.
오크들 몇 마리가 묵직한 돌에 맞아 대가리가 터져 쓰러지는 모습을 보자 청년들은 더욱 용기를 내었다.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우리가 더 많아! 싸우자!”
“싸우자! 우아아아!”
“와아아아!”
머릿수가 조금 더 많은 것은 큰 의미는 없지만 주민들의 사기를 높이기에는 적절했다.
그들은 친구의 시체를 뒤로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울타리 위로 올라가 돌을 던지고 검을 휘둘렀다.
-카투르!
“으아악!”
오크 한 마리가 울타리 위로 올라와 한 청년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청년은 넘어져 오크에게 끌려가며 공포에 질린 비명을 내질렀다.
“사, 살려 줘!”
콰직!
그때 커다란 대검이 오크의 두꺼운 팔뚝을 단번에 잘라 버렸다.
대검의 주인은 근육질의 중년인으로 이 바르드 마을 수비대의 대장이었다.
“정신 차리고! 일어나! 다시 활시위를 당길 수 있겠지?”
“예, 예 옙!”
청년은 땀을 삐질 흘리면서도 대장의 그 넓은 등판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대장이 있으면 우린 막을 수 있어. 살 수 있어.’
대장은 대검을 들고 울타리 위를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올라오는 마물들을 처리했다.
십인대장 출신이었던 그가 없었다면 바르드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벽을 쌓고 지킬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퓽, 피융!
대장은 그 와중에 울타리 위에서 질긴 활시위를 야무지게 당겨 화살을 쏘고 있는 베라카를 발견했다.
쏘는 족족 오크와 고블린의 대가리를 꿰뚫는 것이 꽤 정확도가 높아 보였다.
“잘 쏘는구나. 배웠었니?”
베라카는 대답 대신 그쪽으로 활을 겨누고는 시위를 놓았다.
퓽!
그러자 화살이 대장을 스쳐 지나가며 그 뒤에 도끼를 막 휘두르려던 오크의 눈알에 꽂혔다.
베라카는 아무렇지도 않게 화살을 다시 먹이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여기 세상이 좀 험하잖아요. 앞이나 잘 보세요.”
“그래, 네 덕분에 우리가 막을 수-.”
콰직!
대장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저 멀리서 가공할 속도로 날아온 도끼가 그의 가슴팍에 꽂혔기 때문이다.
대장은 자신의 심장에 정확하게 박힌 도끼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도끼를 던진 마물을 확인하려 했지만 의식이 끊기며 쓰러졌다.
베라카는 도끼를 던진 마물이 심상치 않은 실력을 지녔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장은 큰 도끼는 물론 화살도 쳐 낼 수 있는 정도의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긴장하며 몸을 낮추고 도끼가 날아온 방향을 살폈다.
후웅- 콰직!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바로 트롤 한 마리가 5미터 울타리를 단숨에 올라섰다.
허리를 굽히고 있어도 3미터는 넘는 크기에 날렵해 보이는 근육, 신비로운 에메랄드 눈동자.
트롤의 강렬한 등장에 주변에 있는 청년들은 아무런 행동도 못 하고 얼어붙었다.
놈은 발로 쓰러져 있는 대장의 배를 밟고 도끼를 뽑아 위로 추켜들며 포효했다.
-크레카!
베라카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눈앞에 트롤은 보통이 아니다. 긴 시간 동안 전투와 살육의 경험을 쌓은 비범한 트롤이다.
트롤의 신비로운 눈동자에서,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위협적인 기운은 주변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베라카는 그 압도적인 기운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왔다.
그래도 움직여야 한다. 살기 위해 팔을 당겨야 한다. 이대로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납치를 당하고 끔찍한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한 경험은 그녀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기긱, 기긱.
날렵한 몸이라고 해도 덩치가 3미터가 넘는 트롤이다. 그가 베라카를 향해 발을 내딛자 나무 바닥이 불안한 비명을 내질렀다.
베라카는 떨리는 손으로 활시위를 천천히 당겼다.
트롤은 그녀의 화살촉을 정확하게 주시하고 있지만 움직임이 빨라지지 않았다.
그깟 화살 하나로 자신을 어쩌지 못한다는 강자의 여유다.
베라카와 트롤은 이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베라카는 트롤의 가슴에 화살을 겨눈 채 시위를 놓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트롤이 주는 위압감에 몸이 얼어붙은 것이리라.
주변에 있는 다른 주민들의 도움을 받을 상황은 아니었다.
이 트롤이 나타난 후로 전장이 급격히 변하여 다른 마물들의 공격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카두…….
트롤은 마치 사형선고를 내리듯이 피 묻은 도끼를 번쩍 들어올렸다.
도끼가 내려오는 순간, 얼어붙은 줄 알았던 베라카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활시위를 놓았다.
푹!
아무리 조악한 화살에 활시위를 당기는 힘이 약하더라도 그 목표 지점이 무르면 치명적인 상처를 낼 수 있다.
적절한 타이밍에 정확한 조준, 베라카의 화살은 트롤의 왼쪽 눈알에 명중했다.
-크으아아!
수련과 경험과 운으로 얻은 결과는 여기까지, 화살 한 방으로 강력한 트롤을 처리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다만 재생도 되지 않는 부위에 치명타를 남겼으니 다른 누군가가 조금 더 수월하게 트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베라카는 이 정도 결과에 만족하며 광기와 분노에 찬 트롤의 도끼를 받아들였다.
콰광!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베라카의 몸을 두 동강 내려던 트롤을 짓밟으며 착지했다.
사람이다. 한 남자가 트롤의 등 위에 올라서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중검을 트롤의 대가리에 깊숙이 박아 넣고 있었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데, 뒷머리를 묶고 있는 아폴로 잎으로 물들인 머리끈이 유독 눈에 띈다.
“아……!”
베라카는 다리의 힘이 풀려 두 무릎으로 나무 바닥을 쿵 찍었다.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남자, 가브가 천천히 뒤돌아서 베라카의 머리에 그 거친 손을 턱 올렸다.
“장하다.”
그의 한마디에 베라카는 그동안 수련하고 죽을 고비를 거치던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가브는 그녀가 들고 있는 활을 잡아 바닥에 내려놓고는 눈을 마주했다.
“이제 쉬어도 돼.”
가브는 그 말을 끝으로 울타리 아래로 뛰어내렸다.
“가브!”
그 거침없는 행동에 베라카는 다급히 울타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훙, 훙, 후웅!
신기한 광경이다. 허공에 검을 휘두르는데 한참 떨어진 마물들이 두 동강이 되어 쓰러졌다.
마치 검 끝에 보이지 않는 검신이 씌워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게다가 매우 예리하고 치명적이어서, 오크의 갑옷마저도 함께 잘라 버렸다.
가브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네다섯 마리씩 죽어 나가는 것이다.
순식간에 마물 수십 마리가 처리되었다. 이것은 사냥이 아닌 학살 수준이다.
“우으아아아!”
쾅, 콰광, 쾅! 쾅쾅!
그때 저 뒤에서 맹수의 포효와도 같은 외침이 들리며 마물들이 하늘 높이 붕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에 부딪혀 날아가는 것이다. 얼마나 강하게 부딪혔으면 아예 몸이 터져 나가 신체의 일부가 하늘로 떠오르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그 기괴한 현상은 뒤에서부터 점점 다가와 울타리에 붙어서 마물을 학살 중이던 가브에게 이어졌다.
베라카는 그제야 포효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덩치, 강철 같은 근육, 그 몸을 가릴 정도로 커다란 방패, 말도 안 되는 괴력을 보여 준 그는 잠시나마 다그 마을에 머물렀던 발튼이었다.
그는 가브에게 도착하자 방패를 거두며 숨을 몰아쉬었다.
“쥬군! 괜찮으심니까!”
“저리 비켜.”
“옙! 쥬군!”
발튼은 곧바로 뒤돌아서 방패를 휘두르며 가브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저긴 또 누구야…….”
스스슥, 스스스슥-.
누군가가 생김새도 제대로 식별할 수도 없이 빠르게 마물들 사이를 지나다닌다.
마치 바람이 지나쳐 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핏, 푸슉, 푸화악!
마물들은 정확히 급소가 잘려 진녹색 피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그 바람 같은 사람이 울타리에 다다라 멈춰 서자 그제야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언니는, 보좌관이라고 했던…….”
사람같지 않은 실력을 보여 주는 자가 자신이 예전에 대들려고 했던 세실리아임을 확인하고는 몸이 굳었다.
타다닥, 후-웅!
그때에 세실리아는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다가 반대로 돌아 마물들을 향해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거센 칼바람이 휘몰아치며 마물들을 수십 미터 멀리 날려보냈다.
그 마법에 베라카의 입이 쩍 벌어졌다.
가브가 괜히 활을 내려놓게 한 것이 아니었다.
펑, 펑, 펑.
다른 곳에는 갑옷 하나 제대로 걸치지 않아 위태로워 보이는 은발의 여인이 손을 휘적거리고 있다.
그러자 희한하게도 그녀에게 다가가는 마물들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은발의 여인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고 마물들이 마치 왜 죽는지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쓰러지고 있다.
베라카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근 천 마리에 가까웠던 마물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르드 마을 사람들에게 지옥을 선사하던 놈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그들의 활약에 마을 사람들도 놀람을 금치 못하며 말을 더듬었다.
“저, 저 사람들 뭐야?”
“사람이…… 맞아? 어떻게 사람이 저래…….”
“사, 살았다! 살았다! 살았어!”
“와아아아! 살았어!”
어떤 이는 어리둥절해하며 그들의 신기 어린 활약을 지켜보았고, 어떤 이는 급격히 줄어드는 마물들을 보며 생존의 기쁨을 가족과 함께 만끽했다.
그렇게, 다섯 명밖에 되지 않는 가브 일행은 바르드 마을에 기적을 선사했다.
* * *
붉은 대지, 보라색 하늘 아래에 어떤 형상을 한 거대한 검은 불길이 일렁거리고 있다.
그것이 두려움을 자아내는 붉은 눈을 떴다.
이내 지축을 울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δεν ξέρω απόπούπροέρχεται η δύναμήσου.
(헬레드의 눈이여, 그대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구나.)
그 검은 존재는 마치 웃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