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철컥, 츠즈즈, 철컥, 츠즈즈.
갑옷 이음새가 부딪히는 소리, 검 끝이 땅에 끌리는 소리가 귓가를 기분 나쁘게 자극한다.
전신 갑주를 입은 기사는 내성 문 앞까지 왔음에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지저분한 행색에 문지기 두 명은 서로 눈을 마주하고는 창을 뻗어 그의 앞을 막았다.
“멈추시오. 투구를 벗고 신분을 밝히시오.”
문지기의 행동에 기사는 두 팔을 아래로 축 늘어트린 채 작게 중얼거렸다.
“뭐요? 뭐라는 거야?”
문지기는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그제야 작지만 섬뜩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카르마였으면 내 길을 막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 말과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자신이 감히 누구의 길을 막았는지 알아챈 문지기는 화들짝 놀랐다.
“모, 못 알아봬서 죄-.”
퍼석.
문지기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 기사의 주먹에 머리통이 터졌다.
또 다른 문지기가 흠칫하는 틈에 기사의 커다란 대검이 가볍게 사선을 그었다.
스걱-.
문지기는 체인 갑옷을 입었음에도 깔끔하게 상하체가 분리되었다.
철컥, 츠즈즈, 철컥, 츠즈즈.
붉은 깃의 기사, 디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문지기의 시체를 밟고 내성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갑옷이 진흙과 피로 얼룩져 있다는 이유로 우매한 문지기만 못 알아봤을 뿐이지, 면갑에 달린 붉은 깃을 못 알아보는 이는 내성에 거의 없었다.
모르더라도 그 거대한 대검을 한 손으로 끌고 다니는 괴력이나, 그에게서 풍기는 섬뜩한 기운에 사람들은 그의 앞길을 막지 못했다.
쾅!
대전 문이 거칠게 열렸다. 디마의 움직임이 매우 느려 그곳에는 이미 호루스의 친위대들과 호루스 공작, 그리고 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호루스는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압도적인 기운에 얼굴을 확인하지 않고도 디마임을 확신했다.
“디마 후작, 어찌 검을 들고 이곳을 찾아온 것이오? 혹시 그 늙은이가 시킨 것이오?”
철컥, 스르르, 철컥, 스르르.
디마는 대답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호루스의 친위대가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후작, 자네가 아무리 제국제일검이었다고 한들, 그 몸으로 나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보는가? 공작의 자리는 결코 가볍지 않…….”
호루스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디마가 한 손으로 그 육중한 대검을 들어 자신에게 정확히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스릉, 스릉, 스르르릉.
그와 동시에 기사들도 다급히 무기를 빼 들었다.
디마의 면갑 사이로 메마른 대지처럼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네가…… 네가 그때 카르마로 왔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오크 로드와 마물 군단이 카르마 북문에 다다랐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호루스는 자신을 겨누고 있는 검 끝을 기분 나쁘게 쳐다보다가, 디마의 갑옷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디마의 상처는 그가 보기에도 치명적이었다. 펜릴이 발견했을 때는 내장이 튀어나와 있었다고 했으니 아직 나을 수가 없었다. 지금 보니 덧난 것이 분명하다.
정신도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호루스는 냉소를 흘리며 이죽거렸다.
“허, 지금 보니 완전히 미쳐 버렸구나. 안타깝도다. 한때는 제국제일검이었다는 자가 저런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할 줄이야.”
호루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에서 자신의 검을 뽑으며 외쳤다.
“충성스러운 기사들이여! 저 미친 자의 두 팔을 잘라 내 앞에 무릎을 꿇려라!”
기사들이 대답하기 직전, 디마의 대검이 먼저 움직였다.
슥, 서걱-.
단단한 중갑을 입은 기사들의 몸통이 마치 두부가 잘리듯이 손쉽게 잘려 나간다.
방패로 막건, 검으로 막건, 어떠한 두꺼운 갑옷을 입었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챙!
마나를 검에 두를 수 있는 친위대장만이 간신히 그 검을 막아 냈다.
그러나 뒤로 볼썽사납게 엎어지며 방어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이, 디마의 검이 그의 입을 관통했다.
“어…….”
호루스는 그 기괴한 현상을 한 번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검을 휘둘러 검기를 날리는 경지에 들었다고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금 보니 디마의 검 끝에 피가 묻어 있지 않다. 검면에는 묻어 있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피가 튄 것이지 벨 때 묻은 것이 아니다.
검에 무형의 기운을 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쇠도 가볍게 자르도록 예리함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주고 있다.
“꺄악!”
“커헉-.”
“아아악!”
분석에 성공했다고 한들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친위대와 귀족들이 디마의 검에 썰려 나가고 있다.
척-.
대검이 대리석 바닥에 닿는 소리와 함께 적막이 찾아왔다.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대전에 있는 모든 실력자가 주검이 되었다.
이제 호루스와 디마 사이에는 계단 열 개만이 존재했다.
검을 들지 않고 바닥에 내렸다는 행위에 희망을 엿본 호루스는 비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제가…… 컥!”
그때 디마가 왼손을 쭉 뻗었다. 그러자 호루스는 무형의 기운이 목을 강하게 옥죄는 것을 느꼈다.
호루스의 몸은 디마의 의지에 따라 점점 공중에 띄워졌다.
디마는 눈을 까뒤집고 있는 호루스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곤 뻗고 있는 손을 꽉 쥐었다.
푸확-!
그러자 호루스의 몸이 대전 중앙에서 갈기갈기 찢기며 피분수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그 아래에 있던 디마는 온몸에 그의 피를 뒤집어썼다. 마치 지옥에서 방금 온 기사와도 같았다.
스윽-.
디마는 천천히 면갑을 벗었다. 현기가 어려 있던 그의 눈동자에는 이제 혼란만이 가득했다.
그것은 점점 검게 변하더니 이내 흰자도 가득 채웠다.
그는 뒤돌아서 피로 물든 대전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이 세상은…… 정화되어야 해, 정화가…….”
* * *
아이드 왕국으로 돌아가는 길, 가브 일행은 황량한 초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앞장서서 가고 있던 가브는 돌연 말을 멈춰 세웠다.
뒤따라오던 세실리아가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가브는 대답 없이 미간을 좁히며 한쪽에 숲이 시작되는 곳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세실리아와 다른 일행은 혹여나 방해가 될까 거리를 두고 그의 뒤를 쫓았다.
가브는 꺾여 있는 나뭇가지와 키가 큰 수풀을 유심히 살폈다. 세실리아가 먼저 그의 행위를 보고 눈치챘다.
“마물이 지나갔군요.”
가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서 내려 나무가 긁힌 자국을 보다가 숲 안쪽을 보았다.
나뭇잎들 사이로 짧은 숲 너머에 해안가가 보인다. 마물들이 해안가로 갔다는 것은 사람 냄새를 맡았다는 것이다.
가브가 뜸을 들이자 세실리아가 말을 이었다.
“대부분 처리했으니 몇 마리 가지 않았을 겁니다.”
“어촌에서…… 카난도 감당할 수 있을까?”
카난이라는 말에 세실리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 * *
할라크는 지젤리드 왕국 북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오십 가구가 넘지 않는 작은 어촌이다.
울타리도 수십 년 전에 지어 놓은 썩은 나무들이 대부분이었고, 젊은 청년들도 다섯 명을 넘지 않았다.
방어 능력이 바닥을 기는 그들에게 고블린이건 오크건 마물의 습격은 재앙이었다.
“꺄아아악!”
“사, 살려 줘!”
오크 다섯 마리에 고블린 열 마리, 용감한 청년 스무 명만 있다면 처리할 수 있는 마릿수였지만 마을에는 지옥도가 그려졌다.
“이야아!”
한 소년이 고블린에게 달려 나가며 낚싯대를 휘둘렀다.
아무리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고블린이지만 목숨을 건 전투만 수차례, 느리고 엉성한 소년의 낚싯대는 놈의 방패에 막혔다.
-킥, 키헥!
고블린은 비웃음을 아끼지 않으며 그 소년에게 녹슨 검을 휘둘렀다.
“이치로!”
이치로라 불린 소년이 고블린의 검에 가슴이 베이기 직전, 검은 천옷을 입은 남자가 재빨리 달려와 그를 끌어안았다.
스걱-.
덕분에 이치로는 다치지 않았지만 남자의 등에 녹슨 검이 길게 그어졌다.
“죽어!”
그때 맞춰 나타난 이치로의 누나 센이 달려와 고블린의 머리통에 작살을 꽂았다.
뇌를 제대로 관통당한 고블린은 그대로 즉사했다.
센은 곧바로 작살을 내려놓으며 남자의 몸을 살폈다.
“아저씨! 괜찮아?”
“아저씨…… 나 때문에…… 죽지 마.”
이치로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감싸 안은 남자를 보았다.
고개를 드는 남자의 눈은 싸늘해 보일 정도로 건조하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아.”
“뭐가 괜찮아! 이렇게 옷이 찢어졌는…… 어?”
이치로의 누나 센이 남자의 등을 확인하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천옷은 찢어졌지만 등에는 살짝 긁힌 상처 정도밖에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저씨, 살가죽이 두껍구나?”
센이 바로 해맑게 웃자 남자도 그 표정을 따라 웃어 보이려 애를 썼다.
그러나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을 하는 듯이 매우 어색했다.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센이다.
“아저씨! 이치로! 이러지 말고 빨리 도망쳐야 해! 이치로! 아까처럼 마물한테 덤비지 말고!”
“우, 웅!”
그들이 마물들을 피해 도망칠 장소를 물색하는 동안, 이치로의 작은 용기는 마을에 기적을 주었다.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의 용기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마물들에게 덤벼들기 시작한 것이다.
대여섯 명의 노인들이 오크 한 마리를 넘어트려 몸을 난자하고 있고, 고블린들은 대부분 처리되었다.
이제 희망이 보이려던 때, 돌연 오크의 심장 어름에 작살을 꽂으려던 노인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푸확!
새빨간 피와 뇌수는 그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흩뿌려졌고, 그것은 용기라는 콩깍지를 다시 벗기기 충분했다.
“뭐, 뭐지?”
“꺄아아악!”
“저건 뭐야?”
아수라장이 된 마을 한가운데, 진갈색 피부에 키는 2미터가 조금 넘는 날렵한 체형의 마물이 우뚝 서 있다.
강철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손톱은 길게 튀어나와 있고, 촘촘히 박혀 있는 비늘은 창칼을 허용하지 않을 듯이 견고하다.
그것을 알아본 한 노인이 다리를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카, 카, 카난……!”
마물과 접촉이 거의 없는 마을이라고 해도 마물의 왕이라고 불리는 카난의 존재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 이름을 듣자 사람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도, 도망쳐!”
“아아악!”
한 청년의 외침과 동시에 카난이 발을 뗐다.
퍽! 퍼석! 촤악!
일반인들에게 카난의 움직임은 눈으로 잡아내기가 힘들 정도였다.
카난은 마치 사냥하듯이 멀리 있는 사람들부터 한 명 한 명씩 확실하게 처리했다.
놈이 지나가면 사람의 머리통이 하나씩 터져 나간다. 누군가는 심장이 뽑히고, 어떤 여인은 높이 들어 올려 몸을 세로로 찢었다.
그 끔찍한 행위는 사람들이 더욱 공포에 질려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고작 열 살이 조금 넘는 센과 이치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치로는 카난이 등장함과 동시에 노인의 머리통을 터트리는 장면을 본 순간부터 다리가 풀려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센은 이치로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아저씨를 챙기려 옷자락을 꽈악 쥐고 있지만, 손발이 떨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퍽, 푸확!
그 공포의 사신이 마을 사람들을 하나둘씩 처리하다가, 센과 이치로의 차례가 되었다.
센은 덜덜 떨리는 손을 간신히 움직이며 남자에게 말했다.
“아, 아저씨, 아저씨. 우리 이치로, 이치로 좀 데리고 가. 지금, 지금 당장……. 내, 내가 저 괴물을 어떻게든 막을…….”
“아…… 알았다.”
아저씨라 불린 남자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치로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었다.
이치로는 그제야 공포에 잠식되었던 정신을 차리고 발버둥 쳤다.
“뭐, 뭐야! 이거 놔! 놔 이 바보야! 누나가 저 괴물을 어떻게…….”
척-.
그때, 센이 아닌 이치로에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 뼘은 될 법한 길고 날카로운 손톱, 붉게 빛나는 눈동자는 절대자의 그것처럼 고요하다.
이치로는 물론 뒤에 있는 센도 카난의 위압적인 기운에 몸이 얼어붙었다.
-키르르…….
마치 둘의 우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놈은 낮게 울음소리를 내곤, 서슴없이 이치로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쉭-!
서슬 퍼런 손톱이 이치로의 얼굴을 뚫어 버리기 직전.
콰직.
카난의 손톱이 통째로 누군가의 손에 꽉 잡혔다.
“어……?”
손의 주인은 이치로 바로 뒤에 있는 검은 천 옷의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