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임시 기지에 모인 사람들에게 가브가 요청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마모트의 시선을 끌어 주십시오.”
“시선을?”
“그것만 하면 됩니까?”
“주군.”
가브는 특유의 무미건조한 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세실리아, 발튼, 셀, 헤딘부터 펜릴까지, 한 명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말에 집중하고, 믿고,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가브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예.”
가브의 말에 중요한 것이 빠졌다. 그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가브가 직접 나선다는 것만은 확정적인 말이기에 다들 쉽게 물어보지 못했다.
“시간은 얼마나, 필요한가?”
펜릴의 물음에 가브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조금 뜸을 들이다가 눈을 치켜떴다. 그의 안광은 파랗게 번쩍이고 있었다.
“마신 마모트가, 죽을 때까지.”
가브의 결단이 보이는 대답이었다. 그 비장한 모습에 펜릴은 저도 모르게 지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알겠다.”
“일시는 오늘 새벽입니다. 그때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하십시오.”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나갈 때 세실리아가 아무 말도 없이 가까이 붙었다.
“왜?”
“왜 아무 말이 없으십니까?”
“무슨 말?”
세실리아는 다시 입을 다물고 반항하듯이 얼굴을 가까이 붙이기만 했다.
그 위험한 행동에 가브는 그녀를 밀며 입을 열었다.
“힐 아슈는 마모트가 사는 세계와 이곳을 연결할 수 있다. 내가 그곳으로 가면 마모트를 없앨 수 있다. 그뿐이다.”
“확실합니까?”
그 물음에 가브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래.”
“돌아올 수 있는 겁니까?”
가브는 세실리아의 진갈색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지난날이 떠오르며 마음이 복잡해진다.
가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약속한다.”
세실리아는 그렇게 약속을 받아 내고 나서야 천막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실리아가 다시 들어왔다.
“주군, 밖에.”
가브는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임시 기지 앞에는 의외의 인물들이 와 있었다.
“아히가르족이 숲을 나올 줄도 아는군.”
가브의 앞에는 아히가르족의 족장 푸티엘과 전투 엘프 스무 명, 그리고 그들에게 소식을 전하여 여기까지 데리고 온 에리얼이 있었다.
푸티엘은 살짝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아히가르족은 도움이 되고자 300년 만에 숲을 나왔소.”
가브는 엘프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세실리아의 말에 의하면 스무 명 모두가 에리얼과 비등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큰 힘이 될 것이다.
가브는 지난날의 좋지 않은 기억을 미뤄 두고 그들을 맞이했다.
“잘 왔소.”
* * *
다음 날 새벽, 가브는 테라 뼈갑옷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천막을 나섰다.
하늘은 여전히 까맣고 마나는 점점 본연의 기운을 잃고 있어 마법사들은 물론 마나로 단련된 기사들의 힘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사람들의 비명이 바람의 마나에 끊임없이 실려 온다.
세상은 점점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
하루, 한 시간 단위로 최악으로 향해 가는 것이 몸소 체감되어 다짐이 흔들리지 않게 만든다.
“갑시다.”
저벅, 저벅, 저벅.
가브가 앞장서서 걸어가자 이미 준비하고 있던 최후의 결사대가 그 뒤를 따랐다.
수백, 수천, 수억 명이 살고 있는 판테르 대륙이지만 이곳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결사대는 고작 백 명이 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능력만큼은 모두 일당백이라 말할 수 있었다.
그들의 걸음, 숨소리에는 비장함이 담겨 있었다.
부글 부글, 부글 부글.
죽음의 신 마모트가 있는 아이드 성에 가까워지자, 검은색으로 변색된 바닥이 눈에 띄었다.
바닥에는 반쯤 굳은 끈적한 기름 덩어리 같은 것들이 깔려 있었고, 군데군데 거품을 내며 끓고 있었다.
-키햐악.
-케헥!
-거어어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검은 바닥은 마치 마모트가 나온 균열처럼 마물들을 뽑아내고 있었다.
검은 물을 뒤집어쓴 마물들이 실시간으로 튀어나와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찰팍, 찰팍, 찰팍.
검은 땅을 밟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썩어 들어갈 것처럼 찝찝하지만, 결사대는 단 한 명도 주저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퓽, 퓽, 쐐액!
가브의 머리 위로 아히가르족의 화살이 날아간다.
그것은 정확히 방금 튀어나온 오크의 눈알을 파고들어 가 뒤통수를 뚫고 나와 그 뒤에 있는 오크의 관자놀이에 꽂혔다.
또 다른 화살은 세 발이 붙인 것처럼 연달아 날아가더니 오우거의 머리통에 깊이 박혔다.
쿠구궁!
고작 화살 세 방에 방금 막 튀어나온 오우거가 바닥에 쓰러졌다.
화살의 속도만큼이나 그 관통력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인 것이다.
-크르르르르르.
감탄할 겨를 없이 마모트의 모습이 보이는 곳까지 다다랐다.
마모트를 중심에 두고 마물들이 새까맣게 두르고 있다.
가브는 펜릴과 푸티엘, 셀과 발튼을 모아 놓고 다시금 계획을 강조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마모트의 시선을 빼앗으면 됩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마모트를 해치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명을 가장 중시하며 마모트의 시선을 잡아 두는 것이 중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셋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알고 있다. 가브가 가장 위험하고 힘든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가브는 다시 뒤돌아서 검을 뽑아 오른손으로 들고는 입을 열었다.
“갑시다. 여기, 우리를 위하여.”
“판테르 대륙을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이제부터 각자 흩어져서 삼면에서 마모트를 공격할 것이다.
가장 먼저 엘프 아히가르족이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빠르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 뒤로 펜릴과 마법사들이 화염구를 던지며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
셀과 발튼이 이끄는 병사들은 가브와 함께 움직였다. 두 집단에게 마모트의 시선이 향하면 이탈할 예정이다.
세실리아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힐 아슈를 업고 가브에게 바짝 붙어 있었다.
이 작전의 핵심은 힐 아슈다.
쐐애애액-!
곧이어 화살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길게 들려왔다.
하나의 화살이 아니라 수십, 수백 발의 화살이 끊이지 않고 쏘아지는 것이었다.
푸티엘이 쏜 화살은 마물들의 머리통을 뚫고도 피를 묻히지 않고 나아가 마모트의 보호막을 두드렸다.
그때 한쪽에서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쿠구구구구구-.
펜릴을 중심으로 마법사들이 함께 마나를 모아 초거대 화염구를 날리고 있었다.
화염구는 지금 상체를 드러낸 마모트의 몸통과 비견될 정도로 거대했다.
동상처럼 굳어 있던 마모트도 그것에는 위협을 느꼈는지 몸을 돌리곤 손을 뻗었다.
콰과과과광!
마기로 만든 보호막과 화염구의 충돌에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마모트 주변에 있던 마물들은 폭발의 후폭풍에 휩싸여 사지가 찢기고 몸이 녹아내렸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펜릴과 마법사들은 가브가 말했던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 주듯이 강력한 마법들을 숨 쉴 틈 없이 시전했다.
푸티엘과 엘프들도 지지 않고 마나를 담은 화살을 쏘며 바람의 정령 실프를 부려 화염이 더욱 거세지도록 보챘다.
쩌적, 쩌저적-.
마모트의 보호막이 순식간에 금이 가고 있다.
금세 다시 만들어질 테지만 마모트의 시선은 확실히 잡게 되었다.
‘환상에서보다 훨씬 빠르다.’
가브는 힐 아슈를 업고 있는 세실리아와 눈을 마주하고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답이 정해져 있으니 행하면 된다. 아주 쉬운 일이다. 빠르게 행할수록 환상과는 달리 희생도 적을 것이다.
가브가 세실리아와 함께 움직이니 발튼과 셀이 이끄는 병사들도 마모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은밀하게 마모트의 뒤쪽으로 간 가브는 대략 50미터를 남겨 놓고 힐을 내렸다.
그러곤 자신의 손 위에 힐의 손을 포개고 단검을 들어 올렸다.
단검을 내려찍기 전, 가브는 세실리아와 다시 눈을 마주했다.
“고마웠다.”
그 말에 세실리아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그녀가 뭐라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 가브가 단검을 내리찍었다.
단검은 얇디얇은 힐의 손을 꿰뚫고 가브의 손에 깊이 박혔다.
힐의 피가 단검을 타고 내려와 가브의 피와 섞이는 순간, 가브의 몸이 사라졌다.
세실리아는 가브의 마지막 말이 혼란스러웠지만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
[내가 사라지면 힐을 데리고 최대한 멀리 떨어져.]세실리아는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짓누르며 힐을 업고 그 자리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 * *
“헙, 헉.”
가브가 눈을 뜨며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공기의 희박함이었다. 몸도 마치 무게 추를 달아 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보라색 하늘과 피처럼 붉은 대지가 눈에 들어온다.
지평선까지 앙상한 나무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 곳, 황량하기 짝이 없다.
마모트가 왜 이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려는지 알 것만 같았다.
‘시간이 없어.’
가브는 상념을 접고 검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빨리 움직일수록 희생은 줄어들 것이다. 환상에서는 살아남은 이가 열 명을 넘지 않았다.
가브가 가는 방향에는 검은 균열에 끼어 있는 마모트의 하체가 있었다.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족 수십 명이 마모트를 둘러싸고 있었다.
피부만 회색이고 인간의 외형과 동일한 마족들은 가브의 등장에 황당해했다.
그중 한 명이 가브를 보고 알은체를 했다.
-Βρήκεςένα μέροςνα πεθάνεις.
‘네놈이 죽을 곳을 찾아왔구나.’
목소리를 들으니 전에 론 아슈의 형상을 했던 마족으로 추측되었다.
가브는 그의 말을 무시하며 검을 사선으로 들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하나하나 묵직한 힘을 지닌 마족들이 가브에게 몰려들었다.
환상에서는 탈출을 염려하여 이들을 하나하나 처리하고 마모트를 공격했었다.
“비켜라!”
가브는 마정석으로 증폭시킨 마기를 검에 둘러 10미터에 달하는 마기의 검을 넓게 휘둘렀다.
콰과과광!
강철은 물론 미스틸도 두부 자르듯이 손쉽게 잘라 버리는 절삭력을 지녔지만, 강력한 마기를 지닌 마족들답게 사지가 잘리는 이는 없었다.
그저 힘의 충돌로 인해 생겨난 반탄력으로 튕겨 나갈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길이 열리자 가브는 다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 폭발적으로 튀어 나갔다.
마모트에게 가까워지자 꼬리 밑에 가려진 보석처럼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마모트의 역린이다. 가브는 자신에게 벌 떼처럼 달려드는 마족들을 무시하며 그곳에 힘껏 검을 꽂았다.
캉! 캉! 퍼석!
검에 마기를 집중하고 마기가 빠져나간 오른팔의 자리에는 온 마나를 집중하였다.
가공할 힘이 그곳을 두드렸지만 도리어 검이 부서졌다.
그러나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검을 치워 보니 살짝 금이 간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브는 검을 내던지고 주먹으로 그곳을 내리찍었다.
퍽, 퍼석!
금강석 같은 부분이 주먹 모양으로 깨지고 안에 하얀 빛을 내는 공간이 드러났다.
가브가 그곳에 오른손을 넣는 순간이었다. 몸에 싸늘한 무언가가 쑥 들어왔다.
푹! 푹! 푸북!
마족들이 마기를 가득 머금은 검을 일제히 가브의 등에 쑤셔 넣은 것이다.
수십 자루의 검은 가브의 등으로 들어가 배로 튀어나왔다.
가브는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붙잡고 오른손의 손톱을 바짝 세웠다.
푹-.
그 끝에 무언가가 닿았다. 가브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목적을 이뤄 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