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이야~ 뭐야, 저 여자? 내 화살을 쳐 냈어?”
“에이. 잘못 본 거 아닙니까, 대장?”
“와우…….”
한 무리가 이죽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활을 들고 있는 자는 철갑옷을 입고 있고, 나머지는 가죽갑옷을 갖춰 입고 있다.
그들의 손에는 제대로 날이 선 무기와 견고한 방패가 들려 있었다.
이 정도 장비면 어중이떠중이 도적이 아닌 전쟁터를 오가는 용병대인 것이다.
가브는 도끼질을 멈추고 허리춤에 달린 중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발튼과 눈을 마주쳤다.
같이 벌목을 온 사내들은 용병들을 보았다가 자연스레 가브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때, 철갑옷을 입은 사내가 소리쳤다.
“뭐 하냐! 저거 빼고 다 쓸어버려!”
“예, 대장! 가자!”
“와아아아!”
“다 죽이자!”
도적과도 같은 용병들은 입가에 광기 어린 미소를 띠며 덤벼들었다. 그 수는 대략 스무 명, 가브는 바로 그들에게 도끼를 던지며 중검을 빼 들고 마주 달려갔다.
퍽!
가브의 도끼는 가장 앞에 달려오는 용병의 얼굴에 정확히 꽂혔다. 그 옆에 있던 용병이 동료가 바로 고꾸라지는 모습에 순간 놀랄 때, 서늘한 감각이 목젖을 스쳤다.
스걱, 치이익.
중검에 목이 반쯤 잘려 나간 용병은 두 손으로 그곳을 막으며 풀썩 쓰러졌다. 가브는 그의 죽음을 확인하지도 않고 다음 상대를 찾아 나서며 소리쳤다.
“발튼! 한 놈은 살려!”
“예! 대장!”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호칭이 바뀌었지만 가브는 신경 쓰지 않고 적의 겨드랑이에 검을 쑤셔 넣었다.
세실리아는 방금 밀친 베라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검지로 한 나무를 가리켰다.
“저 뒤로 숨어 있어!”
“아, 예!”
베라카는 방금 전에 아찔한 상황이었음에도 생각보다 차분하게 대답하며 나무 뒤로 숨었다.
그 모습을 본 용병 둘이 달려온다.
“어딜 숨어!”
“이년들아, 나랑 놀자!”
한 명은 세실리아에게 붙고 한 명은 베라카를 쫓았다. 세실리아는 순간의 고민도 없이 바로 베라카에게 가는 놈에게 세검을 던졌다.
푹.
세검은 마치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 놈의 관자놀이에 꽂혀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그사이 나머지 한 명이 세실리아를 덮쳤다.
생포하라는 명령대로 용병은 검 면으로 그녀의 머리를 후려치려고 했다. 맨손이 된 그녀를 공격하는 용병의 입가에는 여유가 보였다.
그때 세실리아가 그에게 바짝 붙어 휘두르는 힘을 상쇄시키고, 팔꿈치로 그의 얼굴을 찍었다.
콱.
“꺼윽!”
눈을 질끈 감으며 뒷걸음질을 치는 용병의 발목을 차 넘어트리고는 굽이 높은 신발로 얼굴을 밟았다.
콰직!
세실리아는 용병의 얼굴에 박힌 굽을 뽑아내었다. 얼굴에 뚫린 구멍에서는 뇌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잠깐 보고는 자신의 세검을 찾아 발을 떼었다.
챙! 퍽, 퍼석.
용병대장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처음 화살을 쳐 냈던 여자는 맨손으로도 손쉽게 자신의 부하를 죽이고 있고, 덩치가 오크만 한 사내는 오크보다 더한 힘으로 부하들의 머리통을 박살 내고 있다.
서걱, 서걱, 치이익, 슥.
그중에 중검을 든 자가 가장 눈에 띈다. 그에게서는 금속 마찰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를 인지하고 검을 휘두르기 직전에 이미 검에 목이 뚫렸다.
가끔 검과 검이 부딪쳐도 그다음 행동을 할 여유가 없다. 부딪치는 순간 검 끝이 돌아 목이나 옆구리에 파고들었다.
그의 몸놀림은 마치 삐죽삐죽 나온 돌 사이를 지나가는 물과 같았다. 그는 일정한 속도로 발을 옮겼고,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살아 있는 부하가 없었다.
척.
그렇게, 그는 순식간에 용병대장에게 도달했다.
챙, 철컥.
“살려 주십시오.”
용병대장은 바로 무기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으며 두 손을 들었다. 그의 행동을 본 다른 용병들도 무기를 내리고 목숨을 구걸했다.
가브는 건조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발튼, 다 죽여.”
“옙! 대장.”
“어, 아! 살려 줘!”
퍽, 퍽, 푸왁!
이미 절반이 금세 나가떨어졌을 때부터 전의를 상실했던 용병들은 몇 걸음 도망도 못 치고 발튼에게 머리통이 으깨어졌다.
무장한 용병 스무 명이 전멸하기까지는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용병대장은 10여 년간 전장을 오가면서 이 시골구석에서 나무나 패던 주민들에게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가브는 이제 주변이 완전히 조용해지자 용병대장에게 물었다.
“더 있나?”
“어, 없습니다! 이쪽으로 온 건 저희가 전부입니다.”
이쪽으로라는 말에 가브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하러 왔지?”
“마을을 약, 약, 약탈하려고…….”
마물에 이어서 약탈 용병까지, 게다가 그런 용병대가 한둘이 아닌 것으로 추측된다. 용병대의 출현과 엉망이 된 치안이 뜻하는 것은 하나다.
가브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그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베, 벨켄 남작님이 잔금을 절반만 치르는 대신 마을은 마음껏 약탈하라고…….”
“알았다. 가 봐.”
가브의 말에 용병대장의 표정이 자신도 모르게 환해졌다. 그는 가브에게 넙죽 절을 하고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
스걱.
입을 벌린 얼굴 그대로 용병대장의 머리통이 바닥에 떨어졌다. 가브는 심각한 표정으로 뒤돌아서 긴장한 얼굴의 주민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영지전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일단 마을로 돌아갑시다.”
* * *
슥슥, 삭삭, 첨벙첨벙.
한쪽에서는 무구에 묻은 피딱지를 닦아 내고, 한쪽에서는 시체를 바다에 던지고 있다.
촌장과 가브는 그 중앙에서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그들에게로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약탈 용병이 여기까지 들어온 것을 보면 거짓은 아닌 것 같소. 전쟁이 났어.”
“전쟁이라니. 아이고, 이거 어떡한대.”
“엄마, 나 무서워…….”
“그럼 어떡해야 합니까? 큰 마을로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큰 마을은 이미 점령당했으면 어쩌려고? 개죽음당하긴 싫어.”
촌장은 두려움에 떠는 주민들을 지그시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가브와 얘기를 해 봤는데……. 음, 직접 말하는 게 좋겠군.”
“예.”
가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와 고저 없는 말투로 툭 내뱉었다.
“제가 케리에드성에 다녀오겠습니다.”
“뭐, 뭐? 가브 없으면 더 불안한데.”
“맞아, 이번에도…….”
가브는 예상된 반응에 발튼과 세실리아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저 혼자 갈 겁니다.”
가브의 말에 주민들이 반발하기 전에 바로 촌장이 끼어들었다.
“위험할 거요. 다 같이 마을을 지키는 게 더 나을 수 있소. 하지만…… 케리에드 남작이 패배한다면 모두 노예로 끌려가거나 죽는다는 게 가브의 예측이오.”
촌장은 끔찍한 발언에 놀란 주민들을 가만히 보다가 조금은 비장하게 말을 이었다.
“가브가 다녀오는 동안 전쟁을 대비할 것이오. 필요하다면 늙은 몸이라도 가족을 위해 불살라야 할 것이오.”
그의 마지막 말에 그제야 상황이 실감이 난 듯한 자들도 많이 보였다. 가브는 촌장과 눈을 마주하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전쟁을 대비해야 할지 의견을 나누는 것을 기다릴 수는 없다.
가브와 세실리아, 발튼이 말을 가져온 덕분에 마을에는 마구간이 생겼다. 가브가 머무는 닭장 바로 옆이다.
마구간으로 가는 길에 세실리아와 발튼이 따라붙었다.
“조장, 제가 왜 이 마을 사람들을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장을 따르겠습니다.”
가브는 묵묵히 말을 꺼내어 안장을 장착시키고는 올라타기 전에 그녀와 눈을 맞췄다.
“나는, 이 마을 사람들을 지켜 주고 싶다.”
가브의 말은 세실리아의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그에게서 감정이 꽤 깊게 밴 대답을 듣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가브는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발튼을 보았다가 다시 세실리아를 보며 말을 이었다.
“다녀오마.”
“…….”
“걱정 말고 다녀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대장!”
가브는 말을 몰고 빠르게 사라졌다. 세실리아는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당차게 보낸 발튼을 째려보았다.
“무, 뭐, 왜요?”
며칠 동안 말도 한번 제대로 섞어 보지 못한 세실리아, 발튼은 그녀가 1급 해수였다고 들었지만 가녀린 외모에서 오는 괴리감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세실리아는 말없이 휙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 * *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 마을에서 케리에드성으로 가려면 두 개 마을을 지나야 한다. 그중 먼저 나오는 마을은 사무겟이라는 소규모 마을로 벌목장이 많다.
목제 가공품이 거리에 멋들어지게 배치되어 있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불에 타고 잿더미와 죽음의 기운만이 가득한 마을로 변해 있다.
“흐읍, 흐윽…….”
“세렌, 세렌 일어나…….”
길거리에는 시체들과 집기들이 널브러져 있고, 눈을 뜨지 못하는 아이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 어미도 있다.
병사들의 시체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마을은 아예 한바탕 전쟁이 일어났던 것으로 추측된다.
결과는 보이듯이 케리에드군의 패배다. 벨켄군은 이곳을 지나 케리에드성으로 갔을 것이다.
히이잉!
가브는 발의 배를 누르며 다시 속도를 내었다. 그렇게 마을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길 근처에서 한 무리를 발견했다.
“흐카카! 잘 뛰네? 또 한 번 뛰어 봐!”
“아 씨, 그만하고 후딱 처리하자니까.”
“흐, 흐으,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옷이 찢겨 한쪽 어깨를 훤히 내놓은 여인이 사내들 다섯 명에게 둘러싸여 있다. 사내들의 복장을 보니 벨켄군의 병사인 듯했다.
“왜, 왜? 아까는 여기, 여기 발로 차고 잘만 도망가드만. 또 도망가 보라니까!”
병사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밧줄로 여인의 목을 휘감고 뒤로 확 당겼다.
“켁, 켁, 사, 살…….”
여인의 얼굴이 새빨개지고 눈이 점점 뒤집히자 다른 병사가 투덜댔다.
“아, 왜, 바로 죽일라고?”
“내 거 찬 년이야. 시발, 찢어 죽-.”
푹.
말하던 병사의 입에서 검날이 튀어나왔다. 가브가 놈의 뒤통수에 단검을 쑤셔 넣은 것이다.
“뭐, 뭐야!”
“한 놈이다! 죽여!”
병사들은 여인에게 집중하느라 가브가 지척에 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뒤늦게 한 명이 죽고 나서야 부랴부랴 무기를 드는 동안에 또 한 명의 목에 혈선이 생겨났다.
“죽어!”
한 병사가 여인을 상관하지 않고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가브는 단검으로 막으려다가 멈칫하더니 손바닥을 펴고 위로 올려쳤다.
터엉!
손바닥이 검 면을 강타하자 검은 병사의 손아귀를 찢으며 하늘로 붕 떠올랐다.
병사가 하늘로 뜬 자신의 검을 보는 사이 가브의 단검이 목을 스쳤다.
치이익.
그사이 다른 병사가 검을 수직으로 내리친다. 가브는 몸을 틀어 검을 피하고 한 번 더 돌면서 그에게 바짝 붙어 옆구리와 겨드랑이, 목뒤에 단검을 찍었다.
엉덩이로 이미 죽음이 확정된 병사를 뒤로 밀치자 마지막 남은 병사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오는 것이 보였다.
후웅, 턱.
가브는 때마침 공중에서 돌다가 내려오는 병사의 검을 잡아채어 창대를 내려치고 한 발짝 가까이 붙어 심장을 찔렀다.
푹.
“컥.”
마지막 병사가 심장을 꿰뚫은 동료의 검을 쥐고 쓰러졌다.
가브는 매서운 눈으로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기절한 여인에게 다가갔다.
“이봐, 정신 차려.”
숨은 쉬고 있으니 단순한 기절이다. 이대로 버려둘까 생각하던 가브는 구해 준 게 아까워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서슴없이 뺨을 후려쳤다.
철썩.
가냘픈 고개가 휙 돌아갔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가브는 다시 한번 휘둘렀다.
퍽!
“꺼헉!”
여인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 진갈색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갑자기 가브의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
-헉헉, 흡, 허억.
여인이 가쁜 숨을 헐떡이며 달리고 있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오로지 시체들뿐이다. 수백 명의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다.
-어어, 저기 아직 살아 있네.
-잠깐, 이번엔 내가 할래.
여인의 시선 끝에는 새까맣게 그을린 성벽이 보인다. 그녀는 방향을 꺾어 성문 쪽으로 달렸다. 활짝 열린 성문 가운데에는 무언가가 덜렁거리고 있다.
퓽, 퍽.
-꺄악!
여인의 옆구리에 화살촉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 울음을 터트리면서도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성문이 가까워진다. 덜렁거리는 것이 무엇인지 보인다. 누군가의 시체다.
붉은 휘장에 백은 갑옷,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흐윽!
영주의 죽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 여인의 절망감도 배가되어 눈물이 터져 나왔다.
피융.
그때, 다시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환상이 걷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