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잘. 못. 들. 었. 습. 니. 다.”
세실리아는 가브의 눈을 뚫어지게 보며 한 자 한자 꾹꾹 눌러 말했다.
가브는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재빨리 뒤의 말에게 시선을 옮겼다.
“일단 저것부터 팔지.”
말을 데리고 사막을 건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스텐디 마을에는 말을 일정 기간 돌봐 주는 마구간이 활성화되어 있다.
한 달에 20실버, 약속한 날로부터 1년이 지날 때까지 찾아가지 않으면 맡긴 말은 마구간의 소유가 된다.
그러다 보니 아예 제국에서 살 생각으로 넘어가거나 맡기는 비용이 아까운 사람들은 말을 판다.
그 때문에 이곳은 말 매입 가격이 다른 마을에 비해 저렴하다.
매매상은 말들을 대충 훑어보곤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이놈은 특히 여위었네요. 얘는 7골드, 나머지 한 놈은 10, 합쳐서 17골드 드리겠습니다. 딴 마을에 가도 얼마 차이 안 나요.”
“주시오.”
마리당 3골드는 차이가 나지만 선택권은 없었다.
가브는 긍정의 의미로 매매상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원시원하시네. 후회하지 않을 거요.”
가브는 매매상에게 받은 주머니를 바로 발튼에게 넘기고 뒤돌아섰다.
“가자.”
“예, 옙.”
발튼은 17골드라는 목돈을 자신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맡기는 가브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대장은 나를 이렇게…….’
가브 일행은 아까 지나쳤던 무구점에 들러 경화 처리된 가죽갑옷과 사막에서 필수인 망토를 구매했다.
사막에는 두꺼운 갑각을 두른 마물이 많이 나오니 무기에 제한이 없는 발튼은 도끼 대신 철퇴를 골랐다.
속도가 생명인 세실리아는 불뱀 가죽으로 만든 스커트에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구매했다.
여성들은 가죽바지를 입으면 생리 현상을 해결할 때 불편함과 위험이 있어 스커트를 선호한다.
달릴 때 거슬리지 않기 위해 스커트는 항상 짧게 나오고 양옆이 살짝 트여 있다.
“와…….”
이유야 어찌 됐든 바지만 입던 세실리아가 짧은 스커트를 입으니 발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눈을 발견한 세실리아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리고 망토에 달린 후드를 눌러썼다.
“조장, 기사가 있다는 상인회는 어떻습니까?”
“거기로 가자.”
가브는 해롤 상인회를 가리키며 멍한 눈을 한 발튼의 어깨를 툭 밀었다.
“헙! 앗, 넵! 대장!”
용병은 넘쳐 나는데 아직 호위병을 구하고 있다면 둘 중 하나다. 가격이 맞지 않거나, 마음에 드는 용병이 없거나.
용병패가 어느 정도 실력을 입증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단순한 방법이 언제나 가장 잘 먹힌다.
저벅저벅.
상인 해롤은 갑자기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본능적으로 긴장하며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한참 올리고 나서야 발튼과 눈을 마주한 해롤이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무, 무슨 일이시오?”
“용병 구합니까?”
“구하지요! 구해요. 환영합니다! 몇 분…….”
해롤은 발튼에게 가려져 있던 세실리아를 보고는 살짝 얼굴을 굳혔다.
“아, 혹시 저 여성분도 가시는 거요?”
“왜, 문제 있소?”
발튼도 자신의 덩치가 주는 가치를 잘 알고 있기에 더욱 뻔뻔하게 물었다.
겉모습보다 더한 실력을 갖추었기에 내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아, 나야 괜찮지만 같이 가는 기사님이 좀 까탈스러워서…….”
해롤은 뒷말을 흐리며 세실리아의 허리춤에 달려 있는 세검에 시선을 두었다.
“여성분도 용병이시오?”
천성적인 이유로 여성 용병이나 기사는 드물었고, 그중에서도 실력자는 더욱 희박했다.
보통 파티에서는 모종의 이유로 좋아하지만, 한 명이라도 실력자로 꽉꽉 채워야 할 사막 횡단에 여성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세실리아는 가브와 눈을 마주하더니 둘이 동시에 안주머니에서 용병패를 꺼내어 들이밀었다.
제국을 나타내는 붉은 용과 그 아래로 작대기 두 개가 음각되어 있다. 제국 용병 길드의 십인대장급 용병패다.
“아, 오우…….”
해롤은 두 손을 펼치며 그들을 반겼다.
이틀이 지나 출발 당일이 되었다.
기사가 선택한 상인회답게 낙타와 식료품이 풍족했다.
낙타는 우스갯소리로 드래곤만큼이나 기억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한 번이라도 제국을 왕복한 낙타라면 실수 없이 사람들을 제국으로 인도한다.
게다가 발굽이 지면에 닿는 면적이 넓어 거대 개미나 불뱀의 기습을 미리 알아채기도 하여 사막 횡단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동물이다.
타각, 타각, 타각.
이 파티의 주인인 해롤도 낙타를 타지 않았는데, 판금갑옷을 입은 사내가 홀로 낙타에 올라 고삐를 잡고 있었다.
타 파티의 부러움을 사게 하는 유일한 기사 무닌이었다.
그는 가브 일행 옆을 가까이 지나가며 세실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가녀린 여인이 사막 횡단을 잘할 수 있겠소? 가벼워 보이니 앞자리에 타도 될 것 같은데.”
아무리 무게를 잘 견디는 낙타라고 해도 중갑을 입은 기사에 여인까지 태우는 것은 무리다.
사흘도 못 가 탈진할 것이 분명하다.
세실리아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어허, 아리따운 여인은 튕기는 게 미덕이라지만, 이럴 때는 기사의 도를 세워 주는 게-.”
그때 발튼이 그 앞을 가로막으며 인상을 팍 찌푸렸다.
“어이, 기사님. 내 동료는 걷는 게 편하답니다.”
“뭐? 어이, 기사님?”
무닌의 한마디에 주변 기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발튼은 기세에 지지 않고 그를 마주 노려보았다.
그 살얼음판을 헤치며 해롤이 나섰다.
“아이고, 무닌 경! 왜 그러십니까? 이제 막 출발하는데, 이거라도 드시면서 앞장서 주시지요.”
무닌은 해롤이 건넨 사과를 아그작 씹고는 발튼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덩치, 내 앞에 그 드러운 인상을 또 들이대면 가죽을 도려내 버린다. 어딜 용병 나부랭이가 감히…….”
살벌한 협박을 내뱉은 무닌은 아무 말도 못 하는 발튼을 보고 흡족해하며 낙타를 몰고 행렬 앞으로 나아갔다.
발튼은 그의 뒤통수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저 쪼끄만 새끼를 갑옷째로 눌러서 육포를…… 읏.”
따끔한 통증에 고개를 돌려 보니 옆구리를 깊게 찌른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이 보였다. 세실리아였다.
“나대지 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뭐? 내가, 하 참, 후…….”
발튼은 욕이 나오기 직전의 표정이었지만 차마 내뱉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그때, 해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다 오셨으니까 이제 출발하겠소! 네비아 여신의 가호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네비아 여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렇게 정원 열다섯 명을 꽉 채운 해롤의 파티는 낙타를 필두로 제국을 향해 출발했다.
* * *
망망대해처럼 굴곡진 모래밖에 보이지 않는 사막, 한 무리가 낙타를 앞세우며 모래언덕의 능선을 밟고 있다.
낙타 양옆과 뒤로 무기를 든 사내들이 줄을 지어 걷고 있다.
-키에엑!
성인 몸통만 한 검은 개미가 모래를 뚫고 튀어나왔다.
턱이 손바닥만 한 것이, 한 번 물리면 뼈까지 부러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탁, 탁!
창을 든 사내 한 명이 재빨리 놈의 턱과 입을 치며 거리를 벌리고, 그 옆의 사내가 옆으로 따라붙어 해머로 머리통을 바로 내려쳤다.
퍼석!
개미는 바닥에 축 처져 천천히 생기를 잃어 갔다.
이제 사막에 들어선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거대 개미는 스무 마리를 넘게 만났다.
사막 횡단은 잠시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롤은 슬금슬금 몸을 숨기는 태양을 바라보며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자~ 오늘 밤은 여기서 보냅시다! 다들 야영 준비해 주세요!”
“휘유.”
“후-.”
하루 종일 긴장하느라 지친 용병들이 저마다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스리시미어스 사막의 밤은 달빛도 비추지 않아, 마치 공중에 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의 완벽한 암흑이 찾아온다.
그래서 횃불이 있어도 마물의 습격에 훨씬 둔해지기 때문에 밤에는 이동이 불가능하다.
해롤의 하인들이 나눠 준 물로 목을 살짝 축인 용병들은 삼인 일조를 짜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방 100미터 이내의 마물들을 처리하여 보다 편하게 밤을 보내기 위해서다.
사막의 마물들은 시각보다는 청각과 촉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으면 덤벼드는 경우가 적다.
콰직!
발튼의 철퇴에 거대 개미의 머리통이 사정없이 깨부서졌다.
가브는 뒤돌아서 야영장에서 나오는 불빛을 확인했다.
“이제 돌아가자.”
“예! 대장.”
어느새 사막 한가운데에 그럴싸한 천막 하나가 쳐졌다.
천막 뒤와 양옆에는 작은 횃불이 박혀 있다.
경계는 횃불을 기준으로 두 명씩 총 여섯 명이 선다. 해롤과 기사 무닌을 제외하고 2교대로 서는 것이다.
가브 일행이 도착하자 정비를 하던 용병과 하인이 시선을 한 번씩 돌린다.
여인이 한 명밖에 없는 데다가 외모까지 출중하니 공통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세실리아 씨, 이거 드십시오.”
“저도 있습니다.”
“아, 어, 그…….”
“가서 드십시오.”
“아…… 넵.”
세실리아는 육포를 내민 젊은 용병의 목적 있는 호의를 칼같이 거절하고는 육포를 마저 뜯어 먹었다.
가브와 발튼은 익숙한 모습에 시선도 주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2교대이기 때문에 쉴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쉬어 둬야 긴 사막 횡단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
곧이어 해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경계하실 분 하시고, 나머지는 휴식하십시오~!”
“예이.”
“아음, 쉴 만하니까 경계 서야 되네.”
그때, 뺨에 긴 흉터가 있는 사내가 가브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어이, 경계 서러 가지.”
그 모습에 발튼이 발끈했지만 가브는 그가 반응하기 전에 먼저 일어섰다.
“알았다.”
가브 일행은 용병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그중에 세실리아는 정당성을 위해 해롤이 제국의 십인대장급 용병이라는 것을 밝혔고, 발튼은 위압적인 덩치에 그보다 더한 괴력을 몇 번 선보였기에 말할 것도 없이 이미 전체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앞으로 나설 기회가 거의 없었던 가브는 발튼과 세실리아에게 얹혀 가는 자라는 인식이 컸다.
가브와 흉터 사내는 천막 뒤쪽 경계를 섰다.
사내는 자리를 잡자마자 바로 철퍼덕 앉으며 말했다.
“어이, 난 좀 잘 테니까 경계 잘하라고.”
가브는 벌써 눈까지 감은 그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두 명이 경계를 서는 이유는 졸다가 실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사막에서 실수하면 누군가의 팔다리가 날아간다.
그러나 가브는 졸 일이 없으니 옆에서 쓸데없이 말을 거는 것보다 오히려 자는 게 편했다.
하지만 가브의 계획은 빗나갔다.
“그거…… 검집이 좀 두꺼운데, 혹시 중검인가?”
흉터 사내의 말에 가브는 허리춤에 달린 자신의 중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큭, 하여튼 멋모르고 폼 잡는 애들이 꼭……. 그거 쓰다 어디 병신 되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장검으로 바꾸쇼.”
“장검?”
사내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수 자신의 장검을 빼 들었다.
“그쪽이 한 번 휘두를 때 이 장검은 두 번 휘둘러. 그럼 누가 죽을까?”
가브가 말이 없자 사내는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내가 당신 같은 사람 잘 알지, 어쩌다 여자 따라서 용병 한답시고 검 들고 설치는 거 같은데, 고향 가서 농사나 지어. 이 세상은 칼 든 사람한테 더 엄격한 법이니까.”
가브는 다시 자리에 앉는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지?”
“나? 한스. 왜?”
대답 없이 고개를 돌리는 가브를 보며 한스는 코를 한 번 찡끗거렸다.
“뭐여, 싱겁게.”
그는 가브의 등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