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40
40화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나리.”
하차프 자작은 아침이 돼서야 돌아왔다.
당연하게도 여인은 없이 혼자였다. 피 냄새는 조금도 나지 않았다.
“가자.”
“예, 이럇!”
히이잉!
가브는 출발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내렸다. 이곳이 어딘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밤새도록 마차에 매달려 있느라 팔다리가 마비된 듯이 저려 와 한참을 구석에서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날 밤, 어제와 같은 시각까지 기다려도 하차프 자작은 오지 않았다.
가브는 철사로 창고 자물쇠를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안의 작은 문을 여니 계단 열 개 정도 내려가는 지하가 보였다.
문 하나를 더 열어 보니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긴 동굴이 나왔다.
동굴은 대략 150미터, 그 끝에는 견고한 철문이 있었고, 밖에서 잠겨 있었다.
대책 없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면 경계만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가브는 철문에 귀를 대고 소리에 집중했다.
웅성웅성.
꽤 멀리에 있는지, 아니면 철문이 방음이 잘되는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여러 명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가브는 다시 뒤돌아서 동굴을 나왔다.
동굴의 방향, 길이를 계산하여 지상에는 어느 위치에 있는지 추측하여 찾아갔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기에 정확한 위치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곳이군.’
가브의 발이 멈춰 선 곳은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작은 저택이었다.
다른 저택과는 달리 정문이 쇠창살이 아니라 나무 문으로 안을 볼 수 없게 완전히 막혀 있었고, 담은 4미터에 가까운 높이로 마치 작은 성과 같았다.
사박, 사박, 사박.
가브는 발소리를 죽이며 저택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주변에 담보다 더 높이 올라가 안을 관찰할 수 있는 장소도 없었다. 근처에 있던 나무는 아예 베어 버린 흔적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타다닥.
가브는 주변을 한 번 살피고는 벽을 박차고 단숨에 담을 올라탔다.
끝부분에는 손가락 길이의 가시가 여러 개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매달려서 안을 살피려면 어쩔 수 없이 잡아야 했다.
턱.
‘큭.’
알고 잡았는데도 그 끝이 매우 날카로워 쉽게 굳은살을 파고들어 갔다.
찔리자마자 순간 어지러운 것을 보니 독까지 묻어 있는 듯했다. 과한 방어다.
해수 훈련 때, 검을 쥐는 것보다 더 먼저 하는 것이 바로 수백 가지의 독에 면역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독되어 가장 많은 아이들이 죽어 나간다.
살아남은 자들은 거의 모든 독에 면역이 강한 몸을 가진다. 가브 역시 그렇다.
가브는 독을 무시하고 안을 살펴보았다.
이 작은 저택에 보이는 순찰병만 열 명이다.
중간중간에 경계를 서고 있는 자들은 더 많았다.
스슥.
가브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순찰병에게 발각되기 전에 다시 내려왔다.
이곳에, 뭔가가 있다.
* * *
협회 본부, 가브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배쉬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찾아왔으나, 세실리아와 발튼은 자리에 없었다.
“세실리아 선배가 좀 늦으시네요.”
“오겠지.”
말하기가 무섭게 세실리아와 발튼이 들어왔다. 표정이 꽤 다급해 보였다.
“조장, 그자를 찾아봤는데 말입니다.”
“말해.”
얼마나 말하고 싶은지 오자마자 바로 본론을 꺼내었다.
“저에게 동생분을 인계한 자는 이미 예전에 죽었고, 그자의 흔적을 찾아다니다 보니 한 귀족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정확히는 그 귀족의 별장인데…….”
가브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끼어들었다.
“그레이 남작…….”
가브의 말에 세실리아가 고개를 번쩍 든다.
“알고 계셨습니까?”
“하차프 자작을 추적하다가 알게 되었다. 남작 주제에 별장이 왕성보다 경비가 더 삼엄하고, 어둠이 짙은 날이면 고위 귀족들이 마차를 타고 은밀하게 방문하더군.”
이것으로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레이 남작의 별장이 흑마법과 연관이 있다는 것, 동생 하렌이 누군가에 의해 구울로 만들어졌다는 것.
으드득.
그 누군가를 향한 분노에 가브는 절로 주먹이 쥐였다.
가브 일행은 그 별장을 감시하기로 했다.
배쉬는 협회원들을 통해 그 마을에서 새어 나오는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대장, 여긴…… 들어가기가 정말 쉽지 않구만요. 제가 별짓을 다 해 봤는데…….”
“잠입에는 성공했으나 경계가 심하여 본관까지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비밀 통로는 본관 안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합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자작 열여덟 명, 백작 열한 명, 후작 세 명이 주기적으로 다녀가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중에는 붉은달 소속 기사 세 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붉은달 기사단. 왕실 기사단으로 제국, 아니 대륙 최고의 기사단으로 정평이 나 있다.
쉰 명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기사단장급 실력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국왕의 자랑이며 제국의 전력이다.
국왕은 직접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귀족의 작위를 내렸으며, 후작이라고 해도 감히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가브는 뒷조사가 발각되어 기사단이 움직일 것을 대비하여 바로 협회원들의 활동을 중지시켰다.
결국, 두 달간의 조사로 알아낸 것은 선택된 귀족들 외에는 안의 일을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잠입도 안 되고, 소문도 새어 나오지 않는다…….”
가브의 걱정 어린 표정에 배쉬가 다가와 작게 말했다.
“저기, 선배님.”
가브가 눈짓하자 배쉬가 문 쪽을 향해 손가락을 튀겼다.
그러자 해수 한 명이 검은 복면을 뒤집어씌운 사내 한 명을 끌고 왔다.
“그레이 남작의 별장에서 일하는 하인입니다. 아시다시피 워낙 외부 진입이 차단되어 있어 심부름을 나왔을 때 데려왔습니다.”
“뭐?”
가브는 확 미간을 좁히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넌…….”
가브가 마음만 먹으면 깊은 곳까지 잠입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잠입했던 흔적이 발각되면 상대에게 경각심을 주고, 최악의 경우에는 흑마법 특성상 아예 꼬리를 자르고 자취를 감출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실행하지 않은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그 날카로운 기운에 배쉬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그저 위축되었다.
가브는 그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배쉬의 마음을 안다. 잘해 준 것도 없는데 자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시키는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려고 항상 노력한다. 그로 인해 이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 사람들이 없을 때 알려 주기로 했다.
잡혀 온 하인은 둘의 대화를 듣고 본능적으로 수장임을 짐작하고 납작 엎드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쇼!”
가브는 하인에게 다가가 복면을 단단히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니야. 네가 정하는 거지.”
“저는 일개 하인일 뿐입니다…….”
“귀족들이 별장에 방문해서 밤사이에 뭘 하지?”
“연, 연회장에 들어가는 하인은 따로 있습니다. 그들은 저처럼 밖으로는 절대 못 나옵니다. 저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몰라요.”
스윽.
가브는 하인의 복면을 벗기고 가까이서 눈을 마주했다.
가브의 싸늘한 눈을 마주한 그는 순간 얼어붙었다.
“넌 여기에 납치된 순간부터 별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가서 지금 일을 고한다면 너는 물론 가족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내가 아니라 그레이 남작에게서.”
“남작님이 그럴 리가…….”
하인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가브는 어느새 단검을 꺼내어 그의 눈에 가까이하고 작게 속삭였다.
“질문을 바꾸겠다. 뱀이 입을 벌리고 있는 문양, 본 적이 있나?”
“뱀…….”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리는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린다.
“안 돼……. 나는…… 내 가족을 위해, 난……. 죽어, 죽이면…….”
동시에 홍채에 희미하게 붉은 기운이 일렁이는 것이 보인다.
“나는 그것을! 아니, 아니야!”
하인은 돌연 눈을 번쩍 뜨더니 단검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가브는 그의 눈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미리 이상함을 짐작하여 단검을 뒤로 뺐다.
푹!
“끄아아아!”
빠르게 빼낸 덕분에 단검이 눈을 찔렀지만 뇌까지 파고들지는 못했다.
눈에서 하얀 진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던 하인은 갑자기 입을 쩌억 벌렸다가 세게 다물었다.
콱! 주르륵.
하인의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가브는 곧바로 그의 두 볼을 눌러 입을 벌리고 안으로 말려들어 가는 혀를 잡았다.
하인의 눈에 붉은 기운이 사라지고 생기가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
“말해! 무슨 일을 당한 거야!”
“꺼어어어…….”
가브가 계속 혀를 잡고 있었으나 죽으려고 자신의 혀까지 깨문 자를 살려 두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이내 눈을 까뒤집으며 몸이 축 늘어졌다.
정적이 감도는 방 안, 가브는 살짝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흑마법…….”
묻는 것이 아니라 확인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세실리아도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이런 식의 강력한 세뇌는 들어 본 적도, 자료로 접해 본 적도 없다.
하인은 죽었지만 얻은 정보는 있다.
그레이의 별장이 흑마법과 확실히 연관이 있다는 것이고, 그곳에 격이 다른 강력한 흑마법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브는 테이블에 놓인 그레이 남작의 이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배쉬는 조사에 들어갔던 협회원들을 피신시키고 이쪽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 작은 흔적도 없애고.”
“예, 선배님…….”
“제국의 귀족을 만만하게 보지 마라. 꼬리가 길면 잡힌다. 지금쯤 이 하인이 사라진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확실하게 해.”
“예! 알겠습니다.”
가만히 듣던 세실리아가 가브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가브는 싸늘하게 식어 가는 하인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귀족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귀족이 되어야지.”
카난을 잡으려면 카난의 영역에 들어가야 한다.
귀족이 되어 굳게 닫혀 있는 그들의 세상에 들어간다.
* * *
귀족이 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돈으로 몰락 귀족의 작위를 사거나, 귀족 밑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약을 해서 서임식을 받고 국가에서 개최하는 정식 기사 시험에 합격하여 귀족의 자격을 얻는 것이다.
현재 가브가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후자다. 아무리 짧아도 3년은 걸리는 장기 계획이다.
저벅저벅.
가브는 알레트 시의 외곽을 걷고 있었다.
그레이 남작의 영지와 가까운 영지에 사병을 뽑는 곳을 찾기 위해 밤까마귀로 가는 길이었다.
특이한 행색이나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해수로 활동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건물 구석에 낡은 천으로 얼굴과 몸을 칭칭 감싸고 지나가는 여인이 시선을 잡았다.
‘어설프군.’
살짝 비치는 얼굴은 하얗고, 흔치 않은 양말에 안쪽 옷깃의 재질이 고급스러운 것으로 보아 대상인이나 귀족의 자식이 가출이라도 한 듯 보였다.
벌써부터 꼬리가 붙었다.
아무리 귀족의 자제라고 해도 저렇게 호위병 한 명 없이 가문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눈치 빠른 도적들의 먹잇감이 된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목숨을 잃거나 다른 왕국에 노예로 팔리는 것이다.
“후, 흠…….”
여인은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연신 주먹을 쥐며 무언가를 다짐하고 있다.
이 세상은 목숨이 두 개가 아닌 이상에는 남의 일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가브는 시선을 거두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여인을 지나치려고 할 때, 돌연 그녀가 휙 돌아서는 바람에 어깨가 스쳤다.
동시에 세상이 검은 장막으로 뒤덮였다. 환상이다.
사방이 불로 뒤덮여 있고, 바닥에는 시체가 가득하다. 그 공간에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한 조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터벅, 터벅.
여인은 맨발로 시체 위를 거닐고 있다. 성문 앞에 앙상한 깃발이 하나 세워져 있고, 그 끝에 중년인의 머리가 꽂혀 있는 것이 보인다.
-아…….
그녀는 천천히 깃발을 내려 중년인의 머리를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내가, 내가 오빠만 찾으러 가지 않았어도…….
한참을 흐느끼던 그녀의 처량한 시선이 널브러져 있는 장검에 멈춰 섰다.
하얀 손이 홀린 듯이 그것을 집더니 돌연 검 끝을 자신의 목에 겨눴다.
푸욱.
가녀린 목이 피로 녹슨 검에 꿰뚫림과 동시에 장면이 모래처럼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흡.”
가브는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현실을 자각했다.
이렇게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환상을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여인은 가브를 지나쳐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다. 그 뒤로 사내들 두 명이 따라붙는 것이 보인다.
‘몰락한 귀족, 사라진 오빠, 자살하는 여인.’
어쩌면, 일이 쉽게 풀릴 것 같다.
가브는 그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이엘은 사람들을 피해 골목길에 들어선 것을 금세 후회했다. 그 뒤로 험상궂은 사내들이 쫓아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눈치채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달리지는 않고 조금 빠르게 걸었다.
“흡.”
앞에 무섭게 생긴 사내가 마주 오고 있다. 그녀는 바로 옆으로 방향을 꺾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곳은 갈림길 하나 없이 쭉 이어진 길이었고, 곧이어 막다른 길이 나왔다.
“후…….”
이엘은 그제야 사내들에게 몰이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품에서 호신용 단검을 빼 들며 뒤돌아섰다.
스릉.
앞에는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 셋이 히죽거리며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다치고 싶지 않으면 비켜.”
“어이구, 무섭다.”
“나는 다치고 싶은데 어떡하지?”
“목소리도 예쁘네?”
가운데의 민머리 사내가 건들거리며 앞으로 다가왔다.
“어이, 아가씨, 그거로 사람 한 번이라도 찔러 봤어?”
“한 발짝만 더 오면…… 당신이 첫 번째가 될 거야.”
“어휴, 그거 설레는데?”
사내는 놀리듯이 한 발을 성큼 앞으로 내밀었다.
이엘은 바로 호기롭게 단검을 뻗었다.
턱.
“와, 이 여자 진짜로 찌르려고 했네?”
사내는 단검을 든 이엘의 손목을 잡아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그녀의 얼굴을 둘둘 말고 있는 헝겊을 거칠게 당겼다.
사라락.
“휘유~.”
“와우.”
그제야 한껏 눈에 힘을 주고 있는 이엘의 새하얀 얼굴이 드러났다.
반듯한 이마, 가지런한 눈썹에 깊고 푸른 눈, 아담한 코와 입술은 곱게 자란 부잣집 막내딸을 연상시켰다.
“이거 놔!”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잡힌 손을 뿌리치려다가 마음대로 안 되자 손에 들린 단검을 떨어트리고 다른 손으로 잡아채어 다시 휘둘렀다.
그때 또 한 사내가 재빨리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아채 꺾으며 단검을 떨어트리게 했다.
“어어, 위험하지.”
“꺄읍.”
챙그랑.
이엘은 두 손이 봉인된 채 사나운 눈으로 그들을 보며 소리쳤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나는 이엘 아이드다! 네놈들이 귀족을 이렇게…… 꺅!”
부우욱!
민머리 사내는 귀족의 이름을 듣고도 콧방귀를 뀌며 그녀의 겉옷을 찢었다.
그러자 평민들은 구하기 힘든 고급 원단의 평상복이 드러났다.
“진짜 귀족인가 보네.”
“오…….”
민머리 사내는 투피스 차림의 그녀를 홀린 듯이 바라보다가 몸을 더듬거렸다.
“어디에 골드를 숨겨 뒀을라나, 찾아볼…… 어?”
그때, 언제 왔는지 모르는 낯선 남자가 바로 옆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스윽.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 들고는 검신을 살피며 작게 으르렁거렸다.
“지금 그 손 놓고 사라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