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41
41화
민머리 사내는 확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라는 거야, 이 새끼? 야, 이거 밟아.”
그의 명령에 옆에 있던 사내가 가브의 등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가브는 몸을 살짝 비틀며 사내의 발바닥을 단검 끝으로 맞이해 주었다.
푹.
“끄악!”
사내의 발등에 뾰족한 검신이 툭 튀어나왔다가 사라졌다.
가브는 그의 발목을 잡아당겨 무릎 뒤를 한 번 더 긋고 발을 밀어 넘어트렸다.
“이 새끼가!”
이엘의 손을 잡고 있던 한 사내도 품에서 단검을 꺼내며 덤벼들려고 했다.
가브는 반 박자 빠르게 그에게 밀착하여 단검으로 손등을 찍었다.
푹.
“크흑.”
가브의 단검은 그의 손을 관통하여 그 아래에 사내가 잡고 있는 단검 손잡이를 쳤다.
단검은 사내의 손에서 벗어나 떨어졌고, 가브는 공중에서 그것을 낚아채어 사내의 겨드랑이에 꽂았다.
척, 푸욱!
“끄아악!”
사내는 어깨 위로 검 끝이 살짝 튀어나온 것을 보며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두 명이 당하자 민머리 사내는 다급히 허리띠에 맨 쇠 곤봉에 손을 뻗었다.
턱.
쇠 곤봉이 빠지지 않는다. 마치 묵직한 바위가 위에서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아래를 보니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손을 누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도적 일을 하면 이 정도 각오는 되어 있겠지.”
“어-.”
가브는 애처로운 그의 눈빛을 똑바로 바라보며 손목을 뒤로 확 꺾었다.
우두둑.
“끄윽.”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가브는 사내의 손목을 향해 단검을 내리쳤다.
스걱!
“끄아아악!”
“꺄읍!”
원래 단검으로 뼈까지 단번에 자르는 것은 쉽지 않으나, 단검의 날이 잘 서 있고 가브의 기술도 한몫했다.
가브는 피가 뚝뚝 흐르는 사내의 잘린 손을 들고, 벽에 딱 붙어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이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흠칫 놀라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으나 더 이상 뒤로 가지 못했다.
그 반응에 가브는 발을 멈추고 물었다.
“이자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예?”
“이대로 놔주실 겁니까, 남작님에게 보내실 겁니까?”
이엘은 잘린 손을 보다가 고개를 휙 돌리며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보, 보내요. 아니, 지금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게.”
“예.”
가브는 살짝 묵례를 하고는 뒤돌아서 신음을 흘리고 있는 민머리 사내에게 잘린 손을 내밀었다.
“들어.”
“예, 옙!”
사내는 허리를 굽신거리며 두 팔을 뻗어 자신의 손을 받았다. 한 손은 손목 아래로 없어 모양새가 영 이상했다.
가브는 그의 등에 검날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말을 이었다.
“남작님에게 보내지 않으니 내가 지금 너희를 죽여도 상관없게 되었다.”
가브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세 사내의 무릎이 빠르게 바닥을 쳤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제겐 처자식이 있습니다! 하, 한 번만! 한 번만 불쌍히 여기시고 살려 주십시오!”
가브는 한 올의 감정도 들어가지 않은 건조한 눈으로 그들을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살고 싶으면 뛰어라. 셋을 셀 때까지 남아 있는다면…….”
타다다닥.
사내들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들의 무기도 챙기지 않고 바로 도망쳤다.
그들이 사라지고 가브가 다시 뒤돌아서니 이엘이 또 움찔하며 놀란 토끼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가브는 단검의 날 부분을 잡고 그녀에게 손잡이 부분을 내밀었다.
“아…… 가,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살펴 가십시오.”
가브가 묵례를 하고 바로 뒤돌아서자, 이엘의 모기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가브는 마치 부를 줄 알았다는 듯이 그 조그마한 목소리에도 바로 뒤돌아서 대답했다.
“예.”
이엘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입술을 덜덜 떨면서 물었다.
“그…… 바쁜가요?”
“지금은 쉬고 있는 중이라 한가합니다.”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가브는 이엘의 의도를 파악하고 듣고 싶은 대답을 했다.
그녀는 두 주먹을 꽈악 쥐고는 눈을 살짝 들어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어디…… 출신이죠?”
“고향은 사막 너머 크레아 왕국이고, 지금은 여기 레이브 길드 소속입니다.”
가브는 자연스럽게 안주머니에서 동패를 꺼내어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레이브 길드에서 보증하는 마물 사냥꾼 신분패였다.
“아, 마물 사냥꾼…….”
마물 사냥꾼과 용병은 같은 칼 밥을 먹는 직업이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 다르다.
용병은 사람끼리 싸우는 일이 잦아 거칠고 무서운 반면, 마물 사냥꾼은 계획성이 좋고 사람에게 함부로 칼을 들이대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다.
이엘은 동패에 얼굴을 들이대고 세세히 살펴보고는 다시 돌려주고 몸을 뒤로 물렸다.
“……10실버…….”
“네?”
“일급 10실버 호위병…… 하시겠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마친 그녀를 보며 가브는 바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영광입니다. 가드라고 불러 주십시오.”
“가드? 이름이 특이하군요.”
이엘은 검지로 가브의 어깨를 톡 건드리며 입술을 열었다.
“이엘, 이엘 아이드예요.”
제 딴에는 경계를 하며 철저히 검증을 했다지만, 순진한 아가씨임은 변함이 없었다.
가브는 짐을 챙긴다는 명목으로 협회에 잠시 들렀다가 나왔다.
이엘은 가브의 권유로 다시 천으로 얼굴을 감싸고 후드를 깊이 눌러썼다.
평민과 구별되는 귀족 특유의 새하얀 피부 외에도 그녀의 외모는 뭇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쉬웠다.
이엘은 우월감이 넘치는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고 눈치를 보며 걸었다.
덕분에 가브의 드넓은 등판에 머리를 지속적으로 찍는 중이다.
콩, 콩.
가브가 뒤돌아서자 이엘은 이마를 매만지며 고개를 또 숙였다.
“아, 미안해요.”
“아닙니다. 저기서 식사부터 하죠.”
“네? 네.”
가브는 구석에 있는 작은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쩝쩝.
냠냠.
둘은 한동안 닭고기를 뜯어 먹는 데 열중했다.
가브의 손이 마지막 남은 닭 다리를 향하다가 멈추고 그 옆의 퍽퍽살을 집었다.
“음, 맛있군요.”
“네……. 후룹, 이게 이렇게 맛있구나…… 후우.”
이엘의 얼굴에서 진심이 묻어 나온다. 가출한 이후에 제대로 된 식사는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배를 매만지다가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혔다.
가브는 신경 쓰지 않고 테이블에 두 팔꿈치를 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헤이달 남작가 장남의 청혼을 거절하기 위해 가출한 오빠를 찾아 나선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히는 거절할 권리를 찾는 거예요.”
짧게 동행하는 동안 그녀는 목적지를 말하며 자연스럽게 그 이유를 밝히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 폴 아이드 남작은 한 달 전에 마물 토벌전에서 큰 부상을 당하여 현재 의식이 없다.
이 세계에서는 귀족 작위를 세습받기 위한 최소 조건이 국가에서 주최하는 기사 시험에 합격하여 정식 제국 기사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기사 시험에 합격했어도 여자에게는 작위가 세습되지 않는다.
그래서 딸만 있는 귀족들은 아들을 낳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거나, 사위를 얻어 영지를 유지하려 한다.
귀족들이 서로 혈연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유다.
그런데 아이드 남작가가 아들은 생사가 불분명하고 딸밖에 없으니, 하이에나 같은 귀족들이 영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이다.
헤이달 남작가의 장남이 청혼한 것 역시 그 탐욕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그…… 오빠는 15년 전에 용병이 된다며 히스로 떠났다는 겁니까?”
“네…….”
아슈 제국과 히스는 판테르 대륙 끝과 끝이다. 이엘도 무리한 동행이라는 것을 알기에 주눅이 든 것이다.
“결혼할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절대……. 정실도 아니고 첩이에요. 소문도 폭군에 색마, 얼굴만 봐도 딱…… 으.”
말하면서 얼굴이 떠올랐는지 두 손을 말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가브는 마음을 다잡았다. 무조건 그녀가 다시 성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남작님은 혼자 두셔도 되는 겁니까?”
“그자가…… 출정식에 저를 초대했어요. 그때 결혼 발표를 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어요. 발표하면 끝이에요. 그사이 빨리 오빠를 찾아와서…….”
‘출정식.’
그날이다.
환상에서 봤던 사건의 윤곽이 조금씩 나온다.
사건은 아무리 길어도 한 달 안에 발생한다.
가브는 넌지시 말을 꺼냈다.
“아이드성으로 돌아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가브의 말에 이엘의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금세 물방울이 맺힌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히스까지 가시는 건 무리죠? 오늘 일당은 드릴게요. 저 혼자서…….”
아이처럼 눈물이 헤픈 여자다. 가브는 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헤이달 남작가는 성정이 난폭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네…….”
가브는 앞으로 몸을 더 기울이며 비밀 얘기를 하듯이 속삭였다.
“출정식 날, 결혼 발표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자존심에 금이 가겠지요.”
일부러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썼다. 이엘도 귀족이기에 자존심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고 있다.
귀족이란 족속의 뇌는 일반인과는 다르다. 금전이나 실리보다 자존심과 명예를 중시한다.
그녀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자존심…….”
“어차피 결혼식은 마물 토벌을 다녀온 후에 올리지 않습니까? 일단 출정식은 참석하시고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발표 후에는 돌이킬 수 없을 거예요.”
“출정식에 가지 않으면, 그들에게 명분이 생깁니다.”
가브는 그녀와 눈을 마주하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아이드 남작가를, 삼킬 명분.”
가브의 말에, 안 그래도 큰 이엘의 눈이 빠져나올 듯이 커졌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톡 떨어트릴 것 같은 눈으로 잠시 가만히 있다가 자리를 박찼다.
“가드 씨와 대화하다 보면 제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알게 돼요. 가요, 성으로.”
* * *
아이드성, 4미터 높이의 돌담이 둘려 있는 1천 가구 규모의 마을이다.
이엘은 가출을 했다고 해도 자신의 집 마당에 다다르자 기세부터 달라졌다.
저 정도면 허리가 꺾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허리를 꼿꼿이 펴고 도도한 걸음을 유지했다.
“잠시 멈추십시오. 어디서 오셨습니까?”
이엘은 얼굴을 가렸으면서 정작 못 알아보는 문지기를 째려보며 거침없이 천을 풀어 헤쳤다.
“저예요.”
“이, 이엘 아가씨!”
“그, 그…….”
병사들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차마 직속 귀족에게 말을 잇지 못하고, 그 옆에 따라붙는 가브에 관해서도 묻지 못했다.
저벅저벅저벅.
이엘은 입구를 통과하면서부터 걸치고 있던 낡은 옷까지 벗어 던지고 도도하게 걸음을 옮겼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고는 허리 숙여 인사하고 슬금슬금 물러섰다.
반응을 보니 그녀는 그다지 영지민들과 친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하긴, 지금 성격이면…….’
저택에 다다르자 다섯 명의 남녀가 이엘을 맞이했다. 문지기가 미리 그녀의 귀환을 전달한 것이다.
중앙의 다부진 체격에 가죽옷을 입은 중년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묵례를 했다.
“아가씨, 오셨습니까? 옆의 사내는…….”
이엘은 가브의 옷소매를 잡아끌며 대답했다.
“내 호위병이에요. 나 쉴게요.”
가브는 이엘을 따라 복도를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흔한 장식품 하나 찾아보기가 힘들고, 하인도 몇 명 되지 않는다.
밖에서 보니 사병도 스무 명 안팎인 듯했다. 잘사는 상인만 못한 가난한 귀족인 것이다.
“음…….”
그런데 이엘이 소매를 놓지 않고 있다.
따라붙은 하녀가 눈치를 보는 것이 곧 그녀의 침실인 듯한데, 멈출 줄을 모른다.
“여기예요.”
이엘은 무슨 이유인지 자신의 침실을 소개했다. 그러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며 손짓했다.
“뭐 하세요, 안 들어오고?”
“아, 예.”
가브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하녀를 뒤로하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이 닫히자 그제야 이엘이 의자에 앉으며 맞은편을 가리켰다.
“이제 어떡하죠?”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출정식이죠.”
참석을 하려고 왔지만 이대로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가브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정떨어지게 행동하는 건 어떻습니까? 화장도 좀…… 못나게 하고.”
“아…….”
말을 하고도 너무 농담 같았나 걱정했는데, 그녀의 표정이 심각하다.
“정떨어진다면…… 어떻게?”
가브는 마주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대했다.
“성격이 고약한 건 자칫하면 매력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고상함을 따지는 귀족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해 보는 겁니다. 더럽거나, 품위가 없거나.”
“음…… 그런 걸로 효과가 있을까요?”
“출정식이면 보는 사람도 많으니 저 사람을 부인으로 들이면 가문의 망신이라는 걸 보여 주는 겁니다.”
“아…… 네, 열심히 해 볼게요.”
그녀는 크게 결심한 듯이 입을 앙다물며 주먹을 꼬옥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