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48
48화
무투술이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모두가 같은 조건이라는 정보 이전에 무지한 무술에 대한 두려움이 드는 것이다.
감독관은 시시각각 변하는 응시자들의 표정을 즐기며 입을 열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앞에 그려진 원 안에서 대련을 하면 됩니다. 원 밖으로 내보내거나 기절시키거나 상대가 항복 선언을 하면 승리입니다.”
감독관의 말에 따라 열 명의 시험관들이 열 개의 원 앞에 섰다.
아직 나서지 않은 시험관 세 명의 손에는 커다란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지금부터 고유의 번호가 음각되어 있는 나무 각패를 다섯 개씩 나눠 줄 겁니다. 상대를 이기면 각패를 빼앗는 형식입니다. 각패는 하나당 1점입니다. 자신의 것 외에는 번호가 중복될 수 없습니다. 최하 점수는 5점입니다. 각패를 하나도 들고 있지 않아도, 다섯 개를 들고 있어도 동일하게 5점을 받습니다.”
감독관의 설명과 동시에 시험관들이 돌아다니며 응시자들에게 나무 각패를 나눠 주기 시작했다.
가브는 51번이라고 새겨진 나무 각패 다섯 개를 받았다.
각패를 받으니 응시자들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진다. 무투술이지만 이곳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다른 상대와 겨룬다는 것을 실감하며 전의를 불태우는 것이다.
“원 안에 먼저 올라선 자가 대련 상대를 지목하면 됩니다. 거부권은 없습니다. 자신 없으면 각패를 내놓고 패배를 선언하십시오. 시험은 지금부터 한 시간 후에 종료됩니다. 그러면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삐이익.
감독관의 말에 아래 있던 시험관이 호각을 불어 시작을 알렸다.
동시에 실력에 자신이 있는 몇 명이 원 안으로 들어갔다.
원 안에 올라선 날렵한 인상의 사내가 바로 가브를 지목했다.
“저기요. 검은 머리.”
“51번, 나오세요.”
사내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선택한 것이다.
사병들 중에 기사 시험을 보러 온 자들은 나이가 많아도 실전 경험이 풍부하여 상대하기 까다롭고, 20대 귀족들은 재능과 체력을 겸비했으니 만만한 30대 귀족 가브를 노렸다.
사내와 가브가 원 안에 마주 보고 서자 시험관이 적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체 부위를 부러트리거나 죽이면 실격입니다. 자, 시……작!”
시작과 동시에 날렵한 사내가 먼저 달려오며 주먹을 휘둘렀다. 가브도 피하지 않고 그의 얼굴에 마주 주먹을 뻗었다.
퍽!
사내의 주먹이 마저 휘둘리기 직전, 가브의 주먹이 그의 왼쪽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홍채가 위로 올라가며 흰자가 눈을 가득 채우고, 몸은 아무런 방어 행동 없이 뒤로 넘어간다.
쿠웅.
둔탁한 굉음에 대기자들은 물론 이제 막 대련을 시작한 다른 응시자들의 시선도 이쪽으로 향했다.
확인되는 정보는 한 명은 서 있고 한 명은 누워 있는 것뿐, 그게 빠르다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것도 없어 금방 다시 시선을 돌렸다.
“51번…… 승!”
대련 시험의 첫 승리가 선언되는 순간이다.
시험관 역시 살짝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며 기절한 사내의 허리춤에 달린 나무 각패를 하나 풀어 가브에게 건넸다.
‘엄청나다…….’
가브의 대련을 처음부터 보았던 린 바레스는 긴장했던 마음도 잊고 입만 쩍 벌리고 있었다.
그때, 가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와 겨루고 싶은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저 건방진…….”
“요행으로 이긴 놈이 꽤 오만하군.”
가브의 말을 따른다는 묘한 굴욕감 때문인지 손을 드는 자들은 없었다.
그러나 인상을 쓰며 앞으로 걸어 나오려는 자들은 몇 있었다.
가브는 그중 한 명을 지목했다.
“저기 33번.”
“33번, 나오세요.”
33번은 산적 같은 얼굴에 팔뚝이 수박만 한 사내였다.
그는 주먹을 우두둑 소리가 나게 풀며 이죽거렸다.
“귀족 나리가 빨리 내려가고 싶은가 봅니다.”
가브는 대답 없이 검지를 들어 까딱거렸다.
그 모습에 산적 사내는 얼굴을 확 찌푸리며 곰처럼 튀어 나갔다.
“후회할 거요!”
주먹이 아니라 두 팔을 벌리며 몸통 박치기를 해 왔다.
꾀는 있는지 턱도 바짝 내린 채 달려든다.
가브는 한 치 앞에 다가올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옆으로 한 발 이동하며 그의 턱 옆을 주먹으로 짧게 끊어 쳤다.
꽈직.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관성에 따라 그는 앞으로 나가다가 선 밖에서 고꾸라졌다.
“어?”
“응?”
워낙 짧은 순간이었기에 가브의 주먹을 보지 못해 어떤 상황인지 이해를 못하는 자들이 많았다.
시험관은 선을 한참 넘어선 사내를 보고는 호각을 불며 대련 종료를 발표했다.
“51번…… 승! 여기 들것 하나!”
시험관이 응급치료사들을 부르는 사이, 가브의 지목은 계속되었다.
“저기 61번.”
가브는 33번 바로 옆에 있던 사내를 지목했다.
상대를 고를 것 없이 서 있는 차례대로 부르는 것이다.
퍽, 퍽, 콰직, 쿵!
그의 자리는 다른 어떤 곳보다도 빠르게 진행되었고, 교체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린은 홀린 듯이 그의 대련을 지켜보다가 누군가의 지목에 앞으로 끌려 나갔다.
2승 1패를 하고 돌아왔을 때도 가브는 여전히 그 위에 올라가 있었다.
“저 사람 대체 뭐야…….”
“지금 몇 명이나 나가떨어졌지?”
“기절한 사람만 열 명이 넘는 것 같은데…….”
연병장은 축제나 단합 대회가 있을 때도 사용될 수 있게 끄트머리에 계단 형식의 관중석이 만들어져 있다.
시험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관중석에서 한 중년인이 지팡이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고 있다.
“가츠, 가츠 아이드……. 어디서 굴러온 놈이지?”
중년인, 펜릴 백작은 지팡이를 들어 자신의 옆의 호위병의 팔을 건드렸다.
“쟤 시험 끝나면 얼굴 한번 보자고 그래.”
“예, 백작님.”
펜릴 백작이 지팡이를 지지대 삼아 자리에서 일어날 때, 대련장에서는 시험관이 이미 나무 각패 스무 개를 채운 가브를 말리고 있었다.
린 바레스는 나름대로 열심히 싸웠으나 5승 3패로 7점밖에 획득하지 못했다.
베로 갈라문트는 충격을 받아서인지 매 대련마다 멍하니 있다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끝나서 5점 처리가 되었다.
가브는 이번 시험으로 인해 유명 인사가 되었다.
20점을 받은 사람은 두 명이지만 그중 한 명은 끊임없이 도전하며 한 시간을 꽉 채워 20점을 얻은 반면 가브는 단 한 번도 원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하…… 불쌍한 우리 어머니. 못난 아들을 둬서…….”
가브 옆자리의 린은 고개를 숙인 채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것처럼 울상을 짓고 있다.
대련 시험 때 7점밖에 획득하지 못했으니 탈락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브는 그의 어깨를 잡으며 위로했다.
“다음 시험 잘 보면 되지.”
“형님…… 이미 틀린 것 같아요. 벽돌 나르기에서 네 개밖에 못 날랐거든요. 그것도 두 개는 같이 나른 거고…….”
“그 시험은 점수를 잘 받았을 거다. 그러니까 다음 시험에만 집중해.”
“정……말요? 그럴까요?”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생기가 돋아난다. 가브는 대답 대신 믿음직한 얼굴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금세 분위기가 바뀐 린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전의를 다졌다.
다음 날, 드디어 마지막 시험이 다가왔다.
아침 일찍 연병장에 모인 응시자들은 다른 때와 달리 웅성거림이 심했다.
가브는 그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은백색 갑옷을 입고 Y 모양으로 뚫린 면갑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기사들이 응시자들 앞에 쭉 서 있다.
‘붉은달 기사단…….’
열 명이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은 일흔한 명의 응시자들을 가뿐히 압도하고 있었다.
“뭐지? 오늘 시험이 뭔데 저분들이 장비까지 싹 다 갖추고 계시지?”
“설마 뭐 붉은달 기사단과 싸워서 이겨라 이딴 건 아니겠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멍청아.”
“뭐? 멍청?”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단상에 하얀 로브를 입은 중년인이 천천히 올라섰다.
응시자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지 않자, 그가 지팡이를 살짝 들었다가 아래로 내리찍었다.
쿠아아아앙!
“꺄읍!”
“허억, 뭐, 뭐야?”
분명 재질이 쇠가 아닌 나무인 지팡이인데 바닥을 찍자 천둥이 내리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덕분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며 그에게 집중했다.
그는 방금 전 엄청난 일을 벌인 사람답지 않게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기사 시험 총관리를 맡고 있는 마법사 펜릴입니다.”
“마법사…….”
“저분이 펜릴 백작님이구나……. 처음 봐.”
“방금 그건 그럼 마법인가?”
펜릴은 미소를 유지하며 응시자들을 천천히 둘러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네 번째 시험은 예상하고 있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마물 사냥입니다. 대련 시험을 기준으로 열 개 조를 만들었습니다. 여기 앞에 나와 있는 붉은달 기사단 분들은 여러분의 조에 파견되어 매년 있던 사망 사고를 줄이도록 노력할 거예요.”
안전 요원으로 기사단원들을 파견하는 것이다. 펜릴의 설명이 끝나고, 낯익은 감독관이 나와서 응시자들의 번호를 불렀다.
가브는 마지막 조인 10조의 조장이 되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린 바레스도 같은 조가 되었다.
조원은 총 일곱 명으로 특이한 경우만 아니면 어떤 마물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전력이었다.
가브의 조에 배정된 붉은달 기사단원이 귀찮음 가득한 얼굴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케빌 워즈다. 장비가 있으면 사물함에서 가져오고, 아니면 저기 뒤의 감독관한테 가서 대여해 오도록. 10분 준다.”
“예!”
“예, 로드!”
붉은달 기사단은 전원이 귀족 작위를 지니고 있다. 영지 대신 제국 최고의 기사단을 택했을 뿐이다.
케빌의 말에 조원들은 바로 달려 나가 각기 숙소나 대여소로 흩어졌다.
다시 모였을 때 절반은 자신의 장비, 절반은 대여 장비를 갖춰 입고 나타났다.
일반 사병들은 자신의 장비보다, 크기가 조금 안 맞아도 훨씬 질이 좋은 대여 장비를 택했다.
가브의 조 이외에도 모두가 준비되었을 때, 감독관이 깃발을 하나 구하여 높이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알레시아 숲으로 가서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깃발을 따라오십시오!”
기사 시험 응시자 행렬은 이번에는 서문을 지나 두 시간 남짓 걸어가 울창한 숲 앞에 멈춰 섰다.
붉은달 기사단원들은 쿠거를 데리고 오지 않아 응시자들과 함께 걸었다.
알레시아 숲은 고블린과 코볼트가 주로 서식하고, 가끔 오크와 트롤이 나타나는 곳으로 실전 시험을 보기에 가장 적당한 사냥터였다.
안전이 완벽하게 보장된 곳이 아니라 진짜 마물이 나오는 숲이 코앞에 다가오니 응시자들의 얼굴에 흥분과 두려움, 설렘이 섞여 떠올랐다.
린 바레스는 꽤 좋은 체인갑옷과 날카로운 장검을 지녔지만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린.”
“에! 예? 가츠 형님.”
“긴장되나.”
“아, 조금……. 하하, 그래도 오크 몇 번 잡아 봐서 괜찮아요.”
오크는 인간만큼이나 머리가 비상하고 성장력이 뛰어나 같은 오크라도 강함의 폭이 천차만별이다.
발렉이라는 오크가 홀로 한 용병단을 괴멸시킨 이야기는 꽤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린에게는 필요 없는 정보다.
“그래? 그러면 걱정 없겠네.”
“그, 그렇죠?”
그때 감독관의 외침이 들려왔다.
“마물들의 코를 베어 오면 점수로 산정됩니다! 고블린, 코볼트, 오크, 트롤 순으로 점수가 차등 적용됩니다! 기사님들이 개입된 전투는 당연히 점수 미포함입니다!”
감독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다시 응시자들을 보며 말했다.
“시간은 해가 지기 전까지 이곳에 돌아오면 됩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1조부터 나와 주십시오!”
‘헙.’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고득점자 조장이 포함된 조를 괜히 뒤에 배치한 것이 아니었다.
먼저 나가면 그만큼 점수를 벌기 유리하고 위험은 덜하다.
“10조 나오십시오.”
가브의 10조 차례가 오기까지는 대략 30분이 걸렸다.
감독관은 숲 안쪽을 깃발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디로 가든지 자유입니다. 뒤의 기사님은 한 발짝 물러서서 여러분을 지켜보기만 하고 일절 관여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럼, 네비아 여신의 가호가 있기를.”
여신의 이름까지 들먹이자 조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한층 올라갔다.
가브는 뒤에 팔짱을 끼고 눈을 반쯤 감고 있는 케빌을 보고 물었다.
“뛰어도 됩니까?”
조원들도 무장을 했지만 붉은달 기사단처럼 판금갑옷으로 중무장한 자는 없었다.
아무리 몸에 마나가 진하게 깃들어 있다고 해도 중갑을 입고 빠르게 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 물음에 케빌의 얼굴이 확 일그러진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떠 가브를 잠시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디 한번 뛰어 봐.”
“예, 그럼…….”
가브는 고개를 돌려 조원들에게 말을 이었다.
“가장 늦게 출발하는 만큼 빨리 뛸 겁니다. 장비 단단히 잡고 잘 따라오세요.”
“예, 형님!”
“가츠 님만 믿습니다!”
“뛰는 건 잘합니다!”
조원의 총합 점수는 모든 조가 동일하다. 20점인 가브의 조에 열등생들이 모여 있다는 뜻이다.
그들은 그만큼 가브를 맹신하며 따랐다.
슥, 스걱.
‘어라, 이놈 봐라.’
케빌의 눈빛은 분노에서 호기심으로 점점 바뀌어 갔다.
가브는 마치 이 우거진 숲속을 꿰뚫고 있는 듯이 발걸음에 거침이 없었다.
그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고블린이나 코볼트를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바로 제거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코를 베어 담는 것은 그 뒤의 조원들의 몫이었다.
붉은달의 기사 케빌은 물론 마물 사냥을 나간 횟수가 손에 꼽히는 린 바레스마저도 그가 숙련된 마물 사냥꾼의 기운을 물씬 풍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물이 너무 없어.’
가브는 마음이 급했다.
이번 과목을 만점 받아도 모자란데 하필 열등생들이 조원이고, 가장 마지막에 출발해서 그런지 마물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브는 더욱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던 그가 갑자기 멈춰 섰다.
“훕, 후욱, 후욱. 이제 그만 뛰어도 됩니-.”
“쉬…….”
가브는 뒤늦게 붙은 린 바레스의 입을 막고 침묵을 유지했다.
그 분위기에 다른 조원들도 가쁜 숨을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가장 뒤에 온 중갑의 케빌은 그 명성을 입증하듯이 가벼운 숨만 내뱉고 있었다.
가브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작게 입을 열었다.
“오우거도, 점수로 산정됩니까?”
“뭐, 뭐?”
가브의 발밑을 본 케빌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